기업
중기 · 벤처

전기검침기 수출 1위 누리텔레콤 조송만 회장 “美기업 제치고 963억원 규모 노르웨이 사업 따내”

  • 백예리 기자

  • 입력 : 2018.01.13 08:00 | 수정 : 2018.01.14 02:10

    아프리카에선 가난한 사람들이 전기를 훔쳐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전력 사용량을 정확히 검침하는 게 어려워 전기료 징수 역시 쉽지 않다. 한국전력공사가 독점적으로 전력을 판매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과 유럽 국가는 크고 작은 규모의 전력사 수천 개가 경쟁하면서 일부 가구를 대상으로 전기를 판매한다. 바꿔 말하면 대단위 가구에 검침 시스템을 설치하기 위해선 여러 개의 전력사에 각각 접촉해 사업기회를 따내야 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각기 다른 환경을 가진 국가들에 원격 검침 시스템을 수출해 성공한 회사가 있다. 바로 지능형 검침 인프라(AMI·Advanced Metering Infrastructure)를 개발·판매하는 누리텔레콤이다. 누리텔레콤은 현재 19개국에 AMI를 수출하고 있다.

    조송만 누리텔레콤 회장이 누리텔레콤의 원격 검침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 /백예리 기자
    조송만 누리텔레콤 회장이 누리텔레콤의 원격 검침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 /백예리 기자
    AMI는 전력 시스템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연동해 에너지 사용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조작하는 지능형 검침 시스템이다. 스마트 미터기, 검침용 단말기, 데이터 관리 시스템, 과금 시스템 등으로 구성된다. 조송만(58) 회장은 대우통신에서 7년간 엔지니어로 일한 뒤, 회사를 나와 1992년 누리텔레콤을 만들었다. 조 회장은 “한국이 비싼 외국산 AMI에만 의존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독자 기술로 AMI를 개발했다”며 “기존 통신 기술을 활용해 시스템에 적용하는 데만 5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 “中企, 살아남으려면 해외진출 해야”

    ‘국산 AMI’를 개발했지만, 사업은 쉽지 않았다. 가정용 AMI 사업 추진이 연기되면서 국내 시장이 정체됐고,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해외 프로젝트 수주가 줄줄이 끊겼다. 조 회장은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만 했다”며 “2005년 태국 AMI 시장 진출을 시작으로 2006년 노르웨이·2007년 스웨덴·2014년 가나·2015년 이라크, 노르웨이·2017년 베트남으로 시장을 확대했다”고 말했다.

    누리텔레콤은 해외시장 점유율을 꾸준히 높여 지난해(3분기 기준) 매출액 343억원, 영업이익 43억원을 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618%, 영업이익은 288% 올랐다.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반영하면 전체 매출액 900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출의 60%가 해외 프로젝트를 통해 나온다. 조 회장은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선 빠르게 해외시장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해외진출 현황과 성과는.
    “19개국에서 46개 회사와 함께 일하고 있다. 2000년부터 2017년까지 17년간 누적된 AMI 사업 수주 실적은 국내와 해외가 각각 1500억원, 2055억원이다.”

    - 해외진출을 통해 배운 것은.
    “다양한 국가에 진출해 시행착오를 많이 겪으면서 배운 것은 ‘해외에서 사업을 하려면 그 나라의 문화를 철저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술만 가지고선 안 된다. 한 태국인 사장이 우리 회사를 수차례 방문해 ‘누리텔레콤 제품이 최고다’ ‘꼭 너희 제품 사줄게’ 하고서는 파일럿 프로젝트만 진행하고 본 사업권은 결국 태국업체에 줬다. 한국에서는 보통 결정권자인 사장이 와서 한 말은 100%라고 믿지 않나. 그 이후로는 좀 더 투명한 입찰을 할 수 있는 선진국을 두드려야겠다 생각해 북유럽 시장을 간 것이다. 북유럽 시장은 노르웨이-스웨덴 순으로 진출했다.
    최근에는 중국 기업의 기술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고, 글로벌화가 한국보다 잘 돼 있다. 우선순위에서 기술이 둘째고 가격이 첫 번째인 국가는 중국 기업을 선택한다. 누리텔레콤의 전략은 ‘가격 경쟁’이 필요한 나라가 아니라 기술과 축적된 노하우로 승부할 수 있는 국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스웨덴 직원이 누리텔레콤의 AMI 제품을 설치하고 있다. /누리텔레콤 제공
    스웨덴 직원이 누리텔레콤의 AMI 제품을 설치하고 있다. /누리텔레콤 제공
    - 국가별 진출 전략이 궁금하다.
    “아프리카는 도전(盜電)이 많이 일어나는 국가다. 정확한 검침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전기를 공급한 만큼 전기료를 징수하기도 쉽지 않다. 누리텔레콤은 이 특성을 파악하고 ‘온라인 선불식 검침 시스템’으로 아프리카 시장을 공략했다. 휴대폰이나 은행을 통해 전기료를 미리 내면 그 금액만큼 해당 가구에 전기를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실시간으로 전기 사용량을 검침하기 때문에 집계의 정확성도 높다. 집에 사람이 없는 시간에 전력 사용량이 늘어나면 자동으로 차단해 도전을 방지했다.
    유럽의 경우, 효율적으로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시간대별·계절별 전기 요금을 차등 적용한다. 전기를 가장 많이 쓸 땐 요금을 높게 해 전기를 덜 쓰게 만들고, 안 쓸 땐 요금을 낮게 해 그 시간에 더 쓰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유럽 니즈에 맞춰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미국·유럽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한 개 기관(한국전력공사)이 전력을 공급하는 게 아니라 소규모 전력사가 적게는 수천 가구, 많게는 수만 가구를 대상으로 전기를 판매한다. 누리텔레콤은 소규모 전력사가 공동으로 발주한 프로젝트를 공략했다. 2015년 12월 노르웨이 전력 분야 3위 업체인 BKK 등 27개 전력사가 공동으로 발주한 소리아(SORIA) 프로젝트의 주사업자로 응찰해 793억원 규모의 사업을 수주했다. 이후 단말기 통신방식 변경 등으로 170억원이 늘어나 전체 사업 규모는 963억원이 됐다. 27개 전력사의 전체 고객인 74만호를 대상으로 AMI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 소리아 프로젝트 수주 의미는.
    “소리아 프로젝트는 국내 업체가 해외에서 수주한 AMI 관련 단일 구축 프로젝트 중 최대 규모다. 특히 이 프로젝트처럼 소규모 전력사들이 모여 74만호 가구에 AMI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세계 최초인데, 이를 누리텔레콤이 수주한 것이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AMI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과의 경쟁에서 이겼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 누리텔레콤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검증된 기술력’이다. 누리텔레콤은 2000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국내외 중대형 AMI 시스템 구축 성공 사례를 만들어왔다. 특히 해외의 경우 무선 통신 규격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현지에서 시스템을 실제로 구축해보지 않으면 오류나 부작용을 경험할 수 없다. 국내에서 잘 돌아가던 시스템이 해외에선 작동하지 않기도 한다. 대상 가구 수에 따라 결과가 또 다르다. 가구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부작용이 많이 발생한다. 소비자가 사용한 전력량을 계량해 비용을 청구하는 직접적인 경제와 관련돼 있기 때문에 기술의 정확도가 중요하다. 하지만 (일반 제품처럼) 실험해볼 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 AMI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수주한 경험이 얼마나 많은가’가 회사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 소리아 프로젝트 이후 매출절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현재 아프리카 시장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소리아 프로젝트가 2019년 1월에 완료돼도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현재 입찰 진행 중인 대형 프로젝트가 3개인데, 이 중 1개만 돼도 소리아 프로젝트 이상의 실적을 낼 것으로 보인다. 추가로 캐나다 법인을 통해 북미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인데 이 시장에서도 2~3년 안에 소기의 성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북미 시장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보수적이다. 자국이 아닌 외국 회사가 진입하기 어렵다. 한국 기업이 진출하기 쉬운 국가는 직접 진출하고, 어려운 국가는 캐나다 법인을 통해 진출할 계획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시장을 넓힐 수 있다고 본다.”

    누리텔레콤 기술연구소 직원들이 제품을 테스트 하고 있다. /누리텔레콤 제공
    누리텔레콤 기술연구소 직원들이 제품을 테스트 하고 있다. /누리텔레콤 제공
    - 새로운 개발 계획은.
    “AMI와 인공지능(AI)을 결합한 스마트홈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지난해 인수한 자회사 ‘모임스톤’을 통해 올해 상반기에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분석하고 전기 사용량을 제어하는 8종의 AI 폰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 폰은 AI 스피커 기능을 하면서 각종 홈 IoT(사물인터넷) 기능도 수행한다. 또 비디오 기능을 넣어 집 밖에서 방문객이 초인종을 누르면 누구인지 폰을 통해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 경영 철학은 무엇인가.
    “기본적인 경영 철학은 1위 사업자가 시장 대부분을 독점하고 있는 큰 시장에 들어가 기술력으로 승부하자는 것이다. 보통 강력한 경쟁자가 없는 시장이 유리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일단 큰 시장에 들어가야 우리가 차지할 수 있는 파이도 커진다. 그 시장에서 1위 사업자의 점유율을 10%만 가져와도 살아남을 수 있다. 강력한 1개 경쟁사가 아니라 10~20여개의 업체와 경쟁해야 한다면 전략도 복잡해진다.”

    -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AMI 시장에서 세계 1위 기업이 되는 것은 당연한 목표다. AMI·IoT·AI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싶다. 구글도 검색 플랫폼 하나로 시작해 지금은 전 분야를 다 아우르는 거대 기업이 되지 않았나. 누리텔레콤 역시 우리 기술을 이용해 진출할 수 있는 많은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올해는 누리텔레콤 별도 매출 1000억원 돌파를 목표로 잡았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매출 1조원 기업이 되는 것이 꿈이다. 잘못하면 거짓말쟁이가 될 수 있으니까 달성 기한은 정하지 않겠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해 뛰겠다.”


    • 기사보내기
    • facebook
    • twitter
    • google
    • e-mail
  • Copyrights © 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