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 · 일반

"재건축만 올랐을까"…'헛다리' 진단에 섣부른 대책 우려

  • 이재원 기자

  • 입력 : 2018.01.11 10:50

    지난 8일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기자간담회에서 “서울 강남 4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에서 (일반) 주택이 아닌 재개발·재건축만 올랐다. 재건축에 투기적 수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책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가 이런 진단을 내놓자 부동산 업계에서는 곧바로 동의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들이 나왔다. 진짜 재건축만 올랐는지, 그리고 지금 시점에 재건축 투기를 막겠다며 대책을 쓰는 것이 적절한지에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정부가 잘못된 진단을 내릴 경우 엉뚱한 처방을 내놓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 정말 문제가 재건축에만 있는 것일까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조선일보DB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조선일보DB
    ◆ 재건축만 올랐나

    전체 아파트 중 재건축 아파트의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큰 것을 사실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 자료에 따르면 작년 전국 아파트값은 3.37% 상승했다. 이중 재건축 아파트 값은 10.76% 오르며 재건축을 제외한 일반 아파트(2.44%)보다 4배가 넘는 상승률을 보였다.

    하지만 이는 전체 아파트와 재건축 아파트를 비교했을 때 수치다. 재건축 아파트가 몰려 있는 강남 4구와 용산구 등 서울 주요지역 집값을 살펴보면 수치는 크게 달라진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하는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살펴본 강남 4구와 용산구 등 서울 5개 구의 재건축 단지 집값 상승률은 인근 주요 단지의 가격 상승률과 큰 차이가 없다. 거꾸로 재건축 단지보다 인근 단지가 크게 오른 경우도 있다.

    작년 1월 하한가와 상한가의 평균값을 올해 1월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분석해 보면,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전용 79㎡) 가격은 작년 1월 11억2000만원에서 올해 1월 14억2000만원으로 26.8% 올랐다. 하지만 인근 신축 단지인 래미안 대치팰리스(84.98㎡)도 15억5000만원에서 19억4500만원으로 25.5% 뛰었고, 입주한 지 20년차를 맞은 대치현대(85㎡)도 25.9%의 상승률을 보였다.

    송파구 잠실동도 마찬가지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잠실주공5단지(76.5㎡)는 작년 초 13억1500만원에서 올해 초 17억3000만원으로 31.6% 올랐다. 인근 리센츠(84.99㎡)와 잠실엘스(84.8㎡)도 각각 31.8%와 33.6% 오르며 비슷한 상승세를 보였다.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99.61㎡·20.0%)과 인근 둔촌푸르지오(84.9㎡·18.8%), 현대4차(84.94㎡·16.5%)를 비교해봐도,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87.54㎡·20.7%)과 인근 한가람(84.96㎡·18.9%), 한강대우아파트(84.98㎡·18.0%)를 비교해봐도 재건축만 올랐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거꾸로 재건축이 힘을 쓰지 못한 곳도 있다. 서초구 반포동에서는 반포주공1단지(107.47㎡)가 10.0% 올랐지만 래미안 퍼스티지(84.93㎡)와 반포리체(106.14㎡)는 각각 17.3%와 17.4% 상승했다. 재건축만 오른 것이 아니라 강남 4구가 올랐다고 보는 것이 맞는다는 의미다.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 재건축 규제하면 효과가 있을까

    정부는 지난해 8·2 부동산대책을 발표한 이후 집값 상승세가 둔화했다고 판단한다. 또 기재부 차관보는 지난 8일 “단기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지역의 가격 안정화를 위해 보유세를 시행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하면서 정부가 당장 보유세를 높여 집값 상승을 막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결국 재건축 규제가 올해 첫 부동산 정책이 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본격적으로 들썩이기 시작한 것은 정부가 지난 2014년 9·1 부동산대책을 내놓으며 재건축 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하면서부터다. 당시 재건축 아파트 단지는 하루 만에 1억원씩 호가가 뛰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재건축 연한을 다시 연장하는 방안이 우선 후보로 꼽힌다. 또 안전진단을 강화하거나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는 방안 등을 통해 재건축 사업을 어렵게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공급 측면에서는 재건축 용적률을 크게 높여 공급을 늘리는 방안도 거론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런 방식으로 재건축을 규제하더라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본다.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신축 아파트 공급이 달리다 보니 앞으로 새 아파트가 될 재건축 아파트에 미래 가치가 붙으면서 가격이 오르는 것”이라면서 “아파트의 가치를 정부 규제로 잡을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센터장도 “정부 규제가 반드시 재건축 수요 억제라는 결과로만 이어지지는 않는다”면서 “재건축 연한을 늘리면 공급이 줄어 값이 오를 수 있는 데다, 용적률을 높여주면 시장이 이를 호재로 봐서 값이 더 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분양가를 규제하면 집값이 잡히는 것이 아니라 분양에서 당첨된 사람만 시세차익을 누리는 소위 ‘로또’ 아파트가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 재건축 규제 필요할까

    재건축 아파트가 주변 시세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것을 고려하면, 정부가 규제 타깃으로 잡기에 재건축만큼 좋은 것이 없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섣부른 시장 규제가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수도권에서도 전세금이 떨어지는 곳이 속출하고 지방은 미분양이 쌓이는 상황에서 또다시 시장을 누르는 정책을 썼다가는 화를 키울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이미 대출 규제를 강화하며 정책 방향을 명확히 했고, 금리도 당분간은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시장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하는 이유로 꼽힌다.

    함영진 센터장은 “수요 억제만으로는 일시적으로 거래를 줄일 수 있겠지만 공급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규제만으로 집값을 잡기 어렵다”면서 “공급을 확대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기사보내기
    • facebook
    • twitter
    • google
    • e-mail
  • Copyrights © 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