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한국선박해양 통합 논란'...도리어 조선사 신규 발주 지원 힘들어진다

  • 김형민 기자
  • 입력 : 2018.01.10 06:05

    오는 7월 설립될 한국해양진흥공사를 두고 정부 내부에서 한국 조선업과 해운업의 상생을 위한 '신조발주(신규 선박 발주)' 업무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해양진흥공사가 한국선박해양을 흡수 통합할 예정인데, 공공기관인 해양진흥공사가 신조발주를 통해 한국 조선사를 돕는 행위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한국선박해양은 최근 몇년간 수주 가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조선사에 대해 신규 선박을 발주하는 등 조선업과 해운업 발전을 위해 올해 1월 설립됐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은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해양진흥공사의 한국선박해양 흡수통합에 반대했으나 해양수산부가 통합을 강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관계자는 9일 "해양진흥공사가 선주 역할을 하는 행위는 WTO 협정에 위배돼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이를 감안하면 해양진흥공사의 주된 업무가 선박 발주 해운사에 대한 금융 차입 보증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국은 지난 1994년 WTO 정부조달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세계 무역의 자유화’를 위해 국내외 국가 및 기업을 대상으로 공정 경쟁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다. 적용 대상기관은 중앙정부기관, 지방정부기관, 국영기업, 정부투자기관 등이다. 이들 기관이 경쟁 입찰 등 공정 경쟁의 원칙을 어기고 자국 기업 보호나 지원에 나서면 다른 국가로부터 제소당해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

    ◆ 한국해양진흥공사, 한국선박해양 흡수 통합...기대했던 ‘신조발주’ 기능 사라지나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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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월 설립된 한국선박해양은 조선업과 해운업의 상생구조를 만들기 위해 설립됐다. 한국선박해양의 주요 업무는 국내 조선사에 선박을 발주하고 이를 국내 해운사에 임대하는 신조발주다. 신조발주를 통해 조선사는 수주 물량을 확보할 수 있고 해운사는 부채비율 상승 없이 유리한 조건에 배를 확보할 수 있다.

    한국선박해양의 신조발주는 WTO 제소 위험에서도 사실상 자유롭다. 한국선박해양의 주요 주주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다. 한국선박해양은 상법상 주식회사 일뿐 아니라 정부의 직접 지배를 받지 않는다. 한국선박해양이 한국 조선사에 신조발주를 추진해 WTO 제소를 당해도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한국선박해양을 통합하는 해양진흥공사의 사정은 다르다. 해양진흥공사는 정부의 직접 지배를 받는 정부투자기관이다. 따라서 공정한 경쟁 입찰을 거치지 않고 한국 조선사에 선박을 발주하면 WTO 협정에 어긋난다. 해양진흥공사의 설립 초기 자본금은 정부 예산 2000억원, 해양수산부·기획재정부 보유 항만공사 지분 1조3500억원(현물출자) 등 총 3조1000억원이다.

    정부는 지난해 초 해양진흥공사 설립 논의 과정에서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은 한국선박해양을 해양진흥공사의 흡수 통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는 해운업 지원 기관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면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전면 통합을 주장했다. 결국 한국선박해양, 해운보증보험 등 부산에 위치한 해운업 지원 기관이 해양진흥공사에 모두 통합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해운업 관계자는 “해양진흥공사 설립으로 조선과 해운업을 동시에 지원할 수 있는 신조발주 기능이 사라질 위기”라며 “정부가 무리하게 흡수통합을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이 업계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 “설립법상 신조발주 문제없어” vs “조선업 해운업 상생 구조 어려워질 것"

    해수부는 이같은 논란에 대해 해양진흥공사 설립법에 신조발주 기능을 주요 업무로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8월 대표 발의한 한국해양진흥공사법안에는 '선박의 취득·관리 및 처분의 수탁'이 주요 업무로 명시됐다.

    문제는 공사설립법에 선박의 발주 기능을 포함했다고 하더라도 국제법에 걸리면 불이익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해운업 및 조선업 전문가들은 해양진흥공사의 업무가 중고선박을 매입해 해운사에 임대하는 세일즈 앤 리스백(S&LB)과 해운사에 대한 금융 보증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S&LB은 자율경쟁을 위배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국제법상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는다. 해수부도 지난해 8월 발표한 해양진흥공사의 핵심 기능을 ‘중고’ 선박의 매입 후 재용선이라고 명시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조선업과 해운업 강국으로 두 산업의 상생 필요성이 강하게 요구돼 왔다”며 “해양진흥공사 설립으로 상생 구조 마련이 힘들어질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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