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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맞춰줄게요"…가상화폐거래소 손짓에 어수선한 여의도

  • 전준범 기자
  • 입력 : 2018.01.08 06:05

    “처음엔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일단 연봉을 낮춰야 했고,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었거든요. 두 번째 연락이 왔을 땐 좀 고민하다가 거절했습니다. 만약 또 연락이 온다면,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국내 한 중견 증권사에서 일하는 김경목(가명)씨는 지난해 가상화폐 거래소 한 곳으로부터 두 차례 러브콜을 받았다. 같은 증권사에서 일하다가 먼저 이직한 동료가 함께 일해보자며 김씨를 설득한 것이다. 처음 연락받은 지난해 상반기에는 곧바로 거절 의사를 전했다.

    그러나 두 번째 연락을 받은 연말에는 상황이 180도 달라져 있었다. 그 사이 가상통화 광풍이 전국을 흔들었고, 거래소들은 연일 떼돈을 벌었다. 다시 찾아온 동료는 김씨에게 “연봉 수준을 맞춰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포토핀(photopin) 제공
    포토핀(photopin) 제공
    인력 블랙홀로 급부상한 가상화폐 거래소의 주요 타깃이 된 여의도 분위기가 연초부터 뒤숭숭하다. 금융회사와 금융당국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영입 제안이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러브콜을 받은 이들은 무섭게 성장하는 가상화폐에 대한 호기심과 불확실한 가상화폐의 미래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 “보너스 수시로 준다” 달콤한 손짓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금융투자업계의 화두는 ‘뜨거운 증시’였다. 지난해 1월 한국거래소 개장일에 2022.23포인트로 출발한 코스피지수는 반년만에 20%가량 상승하며 2500선에 접근했다. 김씨가 이직 제안을 즉시 거절한 건 그때까지만 해도 당연한 일이었다.

    또다른 증권사 직원 K씨는 “1년 전 국내 3~4위권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며 “가상화폐의 개념도 잘 모르던 때라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고 정중히 거절한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증시가 잠시 횡보하는 틈을 타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가상화폐 열풍이 쓰나미처럼 한반도를 뒤덮었다. 지난해 초 100만원대에 거래되던 비트코인은 같은해 11월 26일 1000만원을 돌파(빗썸 기준)했다.

    이후 비트코인 시세는 불과 12일만인 12월 8일 2000만원의 벽까지 뚫었다. 올해 1월 현재는 2400만원을 넘나들고 있다. “내가 아는 지인이 수억원 벌었다”는 이야기가 난무하고, 주식시장에서 수천만원 번 정도로는 어디 가서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상황이 자연스러워졌다.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고객서비스센터와 콜센터의 모습 / 조선일보DB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고객서비스센터와 콜센터의 모습 / 조선일보DB
    그러는 사이 빗썸·코인원·코빗 등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는 엄청난 수수료 수익을 올렸다. 빗썸의 경우 하루 수수료 수익만 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옛 동료가 두 번째 제안할 땐 ‘월급만큼의 보너스를 여러 번 받을 수 있다’며 나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곳간을 두둑히 채운 거래소들은 대대적인 인력 확충에 나섰다. 빗썸만 해도 올해 40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현재 직원 수(450명)만큼을 더 뽑겠다는 것이다. 이중 콜센터 직원 300명을 뺀 나머지 100명은 핀테크·해외영업·금융투자 등의 분야에서 뽑을 예정이다. 여의도 직장인들에게 러브콜이 집중되는 것도 바로 이들 분야다.

    두 달 전쯤 한 가상화폐 거래소로부터 경력이직 제안을 받았다는 자산운용사 직원 H씨는 “인센티브와 복리후생 조건이 너무 매력적이었고, 무엇보다 태동 단계인 업계의 활기가 신선하게 다가왔다”며 “보수적인 성향이라 끝내 용기를 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 “사업다각화에 필수”…금융투자 전문가 러브콜 이어질듯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사업 다각화를 위해 금융투자 전문가를 앞다퉈 영입하고 있다. 언제까지 수수료 수익에만 의존할 수 없는 노릇이고 정부 규제도 점차 강화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상화폐 거래소를 처음 만든 이들은 대부분 정보기술(IT) 전문가다. 가상화폐 거래 형태 자체가 주식 거래와 비슷한데 아직까진 시스템이나 제도적으로 부실한 면이 많다보니 금융투자 전문가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조선일보DB
    조선일보DB
    하지만 여전히 러브콜을 거절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가상화폐 시장 관계자들은 말한다. 거래소를 운영하는 한 IT업체 관계자는 “다들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규제·보안 등 리스크 요인을 우려해 주저한다”며 “(그들이) 이미 금융회사에서 꽤 높은 연봉을 받고 있다는 점도 영입에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전했다.

    물론 성공 사례도 제법 많다. 빗썸은 지난해 8월 이상준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1국 팀장을 영입해 금융전략기획실을 맡겼다. 그는 금감원에서 자본시장조사국, 자산운용검사국, 감사실 등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금융권뿐 아니라 IT업계 거물도 속속 가상화폐 거래소에 합류하고 있다.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이석우 전(前) 카카오(035720)공동대표를 대표로 영입했고, 전수용 전 NHN엔터테인먼트(181710)부회장은 빗썸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가상통화 시장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엇갈린다. 투자전문업체 GMO의 공동창립자 제레미 그랜섬은 4일(현지시간) “비트코인의 움직임은 역대 버블 사례와 유사하다”며 “거품이 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가상화폐 기술은 중앙집권적 시스템에서 권한을 빼앗아 사람들에게 되돌려준다”며 “페이스북 서비스에 가상화폐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심층적으로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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