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도 걸렸다, 도요타·애플 이어 '1등의 저주'

입력 2018.01.05 03:11

[오늘의 세상]

'컴퓨터 두뇌' CPU 70% 장악… 인텔 칩, 해킹에 치명적 약점

작년 6월 보안 취약 알고도 쉬쉬
2006년 후 판매한 모든 칩 문제… 보안 패치 깔면 성능이 30% 저하

시장 지배하며 스스로 과대평가… 내부문제 생기면 쉽게 넘기려 해
도요타·애플도 사건 감추다 역풍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인텔의 반도체 칩에서 치명적인 보안 결함이 발견돼 세계 IT(정보기술) 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해커들이 인텔 칩이 내장된 컴퓨터에 침입해 아이디와 비밀번호 같은 개인 정보를 쉽게 훔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텔은 컴퓨터의 두뇌격인 CPU(중앙처리장치) 반도체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어 사실상 거의 모든 컴퓨터가 해킹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게다가 인텔은 문제를 파악하고도 6개월 넘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3일(현지 시각) 인텔 주가는 3.4%나 폭락했다.

삼성전자·애플의 배터리 게이트에 이어 세계 반도체 산업을 일군 인텔까지 위기를 겪는 데 대해 "1등의 저주가 재현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분야에서 독주하는 기업들이 품질 관리와 소비자와의 소통 등 기본적인 가치를 등한시해 스스로 추락한다는 것이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1위 기업들은 막강한 시장 영향력을 믿고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진다"면서 "이 때문에 품질 관리에 실패하고도 문제를 축소하고 숨기다가 사건을 더 크게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치명적 설계 문제에 은폐까지

인텔 반도체 칩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2일 영국 기술 전문 사이트인 레지스터의 폭로로 알려졌다. 레지스터는 "전문가들이 인텔의 반도체 칩에서 해킹에 악용될 수 있는 치명적인 버그를 찾아냈다"면서 "지난 10년간 인텔이 판매한 모든 반도체 칩에 동일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인텔 반도체칩 결함 외
반도체 칩은 윈도 같은 운영 체제(OS)가 컴퓨터를 구동하는 공간과 사용자가 실제 이용하는 공간이 철저히 분리돼 있어야 한다. 사용자가 마음대로 운영 체제를 변경해 컴퓨터가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인텔이 2006년부터 출시한 컴퓨터용 반도체 칩인 '코어 프로세서'에는 설계상 실수로 사용자가 운영 체제의 공간으로 침투할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권영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프로세서연구그룹장은 "이 통로를 이용하면 해커들은 사용자의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등을 빼내는 것은 물론 컴퓨터 자체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업데이트를 하면 반도체 칩 속도가 30%가량 느려지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인텔은 오래전에 문제를 파악하고도 은폐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인텔 반도체 칩의 결함은 미국 구글과 오스트리아 그라츠 공대 공동 연구팀이 지난해 6월 처음으로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를 곧바로 인텔에 알렸지만 인텔은 뚜렷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결함이 있는 제품을 판매해왔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최고경영자(CEO)도 3일 CNBC방송 인터뷰에서 "구글에서 이 문제를 수개월 전에 통보받았다"고 인정했다.

인텔도 피하지 못한 1위 기업의 저주

세계 1~2위를 다투던 자동차 기업 도요타와 폴크스바겐에서 삼성전자·애플, 인텔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기업들이 품질 문제로 줄줄이 위기를 겪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장기간 독주를 하며 오만에 빠지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압도적인 1위 기업일수록 경쟁자가 없고 견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내부 관리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스스로의 역량을 과대평가하면서 소비자와의 소통이 부족해지고 큰 문제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불량 가속 페달 문제가 불거졌던 도요타와 디젤자동차 배기가스 저감 장치를 조작했던 폴크스바겐, 구형 아이폰의 성능을 소비자 몰래 떨어뜨린 것으로 드러난 애플 모두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더 큰 역풍을 맞았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1등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품질 문제가 발생하면 매출은 물론 브랜드 이미지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면서 "경영진이 문제를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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