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명에 거주하는 주부 김현주씨는 지난달 이케아에서 구입한 ‘크리스마스 한정판 럭키박스’를 열어보고 크게 실망했다. 럭키박스에 담긴 낱개 제품 가격을 더해본 결과 2만7100원으로 럭키박스 판매가인 2만8100원보다 저렴했던 것이다. 구성품 역시 ‘한정판’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할인 중이던 스템프펜, 소프트토이 등으로 특별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씨는 “이상하지 싶어 같은 지역에 사는 엄마들에게 물어봤지만 다른 박스들도 구성에 별반 차이가 없었다”며 “크리스마스 선물로 선전하고 할인 상품들로 꾸려놓은 어린이 럭키 박스는 아이에게 실망감만 선물했다”고 하소연했다. 이케아코리아 측은 이와 관련 “상품 포장비와 인건비가 추가돼 가격이 1000원가량 올랐으며 현재 원하는 소비자에 한해 환불 및 교환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명 ‘럭키박스’로 불리는 랜덤박스는 브랜드와 가격이 제각각인 상품을 무작위로 상자에 담아 발송하는 확률형 상품 서비스로, 소비자는 물론 판매자도 상자를 열 때까지 상품을 알 수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난 2007년 스타벅스커피코리아가 시작한 ‘럭키백’ 마케팅이 매년 인기를 끌면서 오프라인에서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랜덤박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 랜덤박스 사기관련 소비자 상담 매년 늘어…일부 업체는 소비자가 올린 불만족 후기 숨기기도
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식음료·화장품업계를 비롯해 유통업계 전반에 랜덤박스 바람이 불고 있다. 이니스프리는 이달 자사 브랜드 ‘한란’과 캐릭터 ‘스누피’가 협업한 상품을 랜덤박스에 담아 출시했으며,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탐앤탐스’는 지난달 ‘2017 베스트 MD(상품기획자) 상품’으로 구성된 랜덤박스 500개를 한정판매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앞서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와 손잡고 최대 12만원 상당의 인기 상품을 5만원에 선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소비자를 우롱하는 랜덤박스가 기승을 부리면서 관련 민원이 해마다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6년 1372 소비자상담센터를 통해 접수된 랜덤박스 사기관련 소비자상담은 총 148건으로 전년대비(89건) 66% 증가했다. 지난해 6월까지 누적 상담건수는 100건에 달한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8월 랜덤박스 판매 업자 더블유비, 우주그룹(우주마켓), 트랜드메카 등 3개사에 과태료 1900만원과 3개월간 영업 정지 처분을 내린 바 있다.
당시 더블유비는 총 41개의 브랜드시계가 랜덤박스 대상인 것처럼 광고했지만, 실제로는 9개의 브랜드 시계만을 소비자에게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해당 상품들을 무작위로 선택해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것처럼 광고했지만 실제로는 재고유무 등에 따라 일부 브랜드를 자의적으로 선택해 소비자에게 발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주그룹 역시 광고한 68개 시계중 46개 시계만 공급했고, 트랜드메카는 71개중 9개의 브랜드 시계만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들 업체는 소비자가 작성한 불만족 후기도 누락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트랜드메카의 경우 자사가 소비자로 가장해 거짓후기를 올리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의 법 위반 행위 건수가 많고 소비자 기만성이 크다는 점과 이미 랜덤박스를 구매한 소비자에게 피해 보상이 불가능한 점 등을 감안해 시정명령, 공표명령, 과태료 처분과 함께 영업 정지 처분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향후 확률형 상품에 대한 법 위반 행위를 지속적으로 감시·시정할 계획도 밝혔다.
◆ 오픈마켓 환불 정책 뒤에 숨는 업체들…교환·반품 가능한데 ‘불가능’ 고지도 여전
그러나 아직까지 달라진 것은 크게 없다는 것이 소비자들의 평가다. 지난 9월 한국소비자원에 상담 사례를 접수한 한 소비자는 “오픈마켓에서 딸아이 2명과 조카딸 1명까지 3명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기 위해 랜덤박스 3개를 주문했는데 모든 제품이 똑같았다”면서 “랜덤으로 집어넣기보다는 정해진 상품을 담는 것 같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 이 소비자가 교환 및 환불을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행법상 ‘통신판매중개자’로 분류되는 오픈마켓은 판매자가 직접 등록한 상품에 대해 광고·상품주문·배송 및 환불의 의무와 책임을 회사가 아닌 각 판매자가 부담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오픈마켓은 판매자와 구매자 간 중간 다리 역할을 해,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판매자가 소비자와의 분쟁을 직접 해결할 책임은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교환 및 환불에 몇주가 걸리는 경우도 있다.
또다른 소비자는 “여아용 럭키박스를 사야했는데 실수로 남아용 럭키박스를 구입했다. 송장에 인쇄된 상품명을 보고서야 그것을 깨달았다”며 “택배 상자를 뜯지도 않은 상태에서 교환 또는 반품을 요청했으나 럭키박스의 특성상 교환 및 반품이 불가하며 그러한 안내가 쇼핑몰에 표기된 상품의 상세설명에 기재가 되어 있기에 교환과 반품이 불가하다고 안내를 받았다”고 했다.
앞서 공정위의 처벌을 받은 사업자들과 비슷한 행태가 반복되는 상황이다. 이들은 랜덤박스라는 이유만으로 상품 수령일로부터 7일 이내에 전화를 통해서만 교환 및 반품이 가능하다고 고지하거나 아예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하다고 고지했다. 이같은 행위는 전자상거래법 제17조 제3항 및 제21조 제1항 제1호에서 정한 청약 철회가능 여부 및 기간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거짓된 사실을 알려 청약 철회를 방해한 행위에 해당한다.
이에 한국소비자원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소법)’ 제17조 제2항 제1호에 따르면 소비자에게 책임이 있는 사유로 재화 등이 멸실되거나 훼손된 경우는 청약철회의 제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돼 있다”면서 “하지만 이는 제품 박스의 훼손까지 포함한다기 보다는 제품 자체의 훼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때 포장만 뜯었고 제품은 훼손한 것이 아니므로 제품 박스가 훼손되었다고 청약철회를 거부하는 업체의 주장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