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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함께 살려면 적당히 두려워하고 약간은 비겁해져라"

  • 김지수 기자
  • 입력 : 2017.12.30 07:00 | 수정 : 2017.12.31 10:01


    남자들 생산성 높이려면 밤에 ‘집사람' 돼야
    소통하는 조직의 비밀은 ‘상호허겁’... 서로를 적당히 두려워하는 상태가 최적
    뉴턴 경제학에서 다윈경제학으로, 이제는 인간 행동이 곧 경제
    3년간 국립생태원 원장 경험 녹여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 펴내

    서울대 동물학과를 나온 최재천은 사회생물학의 창시자 에드워드 윌슨 하버드대 교수 밑에서 생물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2006년부터는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있다. /사진=김지호 기자
    서울대 동물학과를 나온 최재천은 사회생물학의 창시자 에드워드 윌슨 하버드대 교수 밑에서 생물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2006년부터는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있다. /사진=김지호 기자
    “이 까치 멋있지요? 참 댄디한 새예요. 보고 있으면 옷 잘 입는 멋쟁이 남자 같아(웃음). 이 잎꾼개미는 대단한 농사꾼이에요. 인간보다 더 오래 경작 생활을 했다고… 이 돌고래 표정 좀 봐요.”

    최재천 교수의 연구실이 있는 종합과학관은 이화여대에서도 ‘골고다 언덕'으로 유명한 뒷산 끄트머리에 있었다. 12월의 칼바람을 피해 연구실로 들어서니 햇살이 나지막이 비춰드는 모양이 꼭 봄날 새 둥지 같다. 그 안에서 긴팔원숭이, 멕시코 야생조, 까치와 돌고래 인형이 여기저기 똬리 틀고 앉아 있었다. 동물학자의 표정은 더없이 온화했다. 명함을 받아드니 ‘최재천', 그 이름 석 자도 동물 삽화와 함께였다.

    같은 언어, 같은 문화권에 살아도 소통과 공감이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이다지도 다정하게 동물들과 친교할 수 있을까? 그가 얼마 전엔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숲을 탐험하던 학자가 맘잡고 쓴 조직 경영기다. 교수 사회 온갖 보직을 피해 다니며 ‘얌체처럼' 살던 그가 500명이 모인 신생 조직 국립 생태원의 초대 원장으로 얼떨결에 성공하기까지, 숲과 공직 사회를 넘나드는 즐거운 고생담이 가득하다.

    생태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그는 키 작은 꼬마에게 상장을 주기 위해 무릎을 꿇은 적이 있다. 그 사진이 SNS에 공개돼 화제가 됐다. 사진과 함께 책에서 읽은 어떤 한 구절이 하모니처럼 떠올랐다.

    ‘서로 상대를 적당히 두려워하는 상태(일명 상호허겁)가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며 평화를 유지하게 만든다. 우리 인간은 무슨 까닭인지 자꾸만 이러한 힘의 균형을 깨고 홀로 거머쥐려는 속내를 내보인다. 그러나 내가 그동안 관찰해온 자연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자연에서 제일 먼저 배울 게 있다면 이 약간의 비겁함이다.’

    쭈뼛거리며 서있는 작은 여자 아이 앞에 무릎을 꿇은 최재천 교수. 2016년 5월, ‘우리 들꽃 포토에세이 공모전' 시상식에서./사진 제공=메디치
    쭈뼛거리며 서있는 작은 여자 아이 앞에 무릎을 꿇은 최재천 교수. 2016년 5월, ‘우리 들꽃 포토에세이 공모전' 시상식에서./사진 제공=메디치
    그때나 지금이나 ‘적당한 두려움과 약간의 비겁함’을 행동 철학으로 가진 통섭의 대가가 말문을 열었다. 배우 한석규를 닮은 나긋나긋한 목소리, 지나가던 까치도 궁금해 엿들을 만큼 ‘조용한 왕수다’가 이어졌다.

    -제목이 무척 시적입니다.

    “(웃으며)원래 제목은 ‘내가 해봐서 모르겠는데'였어요.”

    -무슨 말인가요?

    “일정 예산을 갖고 운영하는 국가 지도자, 공기업 사장, 기관장, 총장 등의 리더가 조직을 망하게 하는 이유를 ‘내가 해보니 모르겠더라’는 말이에요.”

    -경영 고수들은 ‘당신이 3년 반 해서 사장해보고 뭘 알아?’ 반문할 텐데요.

    “처절한 시장 경제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기업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죠. 하지만 국가 기관은 달라요. 불가항력적인 외부 충격이 아니면 정말 망하기 어려워요. 만약 그랬다면 그건 리더가 자기 고집, 자기 명예, 잇속을 추구했기 때문인데, 그렇게 조직을 망가뜨린 사람을 저는 용서 못 하겠다는 거죠. 그래서 이 책은 애초에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일삼았던 어떤 지도자와 몇몇 총장분들께 ‘왜 그렇게 조직을 망가뜨렸는지 설명을 해보라'는 쓴소리로 시작했어요.”

    목소리는 봄바람 같지만, 에둘러 말하지 않는 직설화법에 언뜻 매서운 칼바람이 일었다.

    갯벌을 메워 공장을 짓겠다는 군민을 설득해 2014년 개장한 국립생태원은 개장 첫해부터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2013년 10월부터 3년 2개월간, 그는 일개미처럼 부지런히 움직였다.

    최초의 농사꾼 잎꾼개미가 그의 초대로 중남미 열대림에서 서천까지 날아왔다. 생태원 오솔길엔 제인 구달의 길, 다윈의 길, 소로의 길이 차례로 열렸고, 해마다 꽃이 필 때면 찔레꽃 언덕에선 소리꾼 장사익이 와서 목청을 뽑았다. 소설가 김훈과 ‘정글의 법칙'의 개그맨 김병만도 홍보대사로 손을 보탰다. 임기 3년 내내 목표 관람객 수는 300%를 초과했다. 죽어가던 지역 경제가 살아났다.

    최재천은 그 모든 것이 ‘군림(君臨)의 경영(經營)'이 아니라 ‘군림(群臨)의 공영(共營)'이 이룬 결과였다고 한다. 혼자 다스리지 않고 함께 일하면 망하기가 더 어려운 일이라고, 여왕개미가 침팬지가 꽃과 곤충이 그에게 속삭이더라고.

    -초대 국립 생태원 원장으로 조직을 통솔하고 지휘했다기보다 작은 전통을 몇 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기질적으로 카리스마가 없는 리더였어요(웃음). 돌아보면 저는 어느 조직에서나 작은 전통을 몇 개 만드는 거 정도가 제 일이었어요. 심지어 젊은 시절 시흥에 있는 군 창고에서 방위병으로 복무할 때도 그랬어요. 서울대생에 은테 안경 낀 샌님이었으니 층층시하 얼마나 괴롭힘을 많이 당했겠어요. 마침내 제가 최고참으로 그들 위에 군림했을 때 어마무시한 명령을 내렸어요.

    -어떤 명령이었죠?

    “‘모두가 서로 존대하고, 자기 일은 절대 남 시키지 말아라.'”

    -방위병에게… 정말 어마무시한 명령이네요. 그런데 그런 개혁 리더가 떠나면 조직은 더 큰 몸살을 앓습니다.

    “그렇더군요. 어찌 되었든 ‘군림과 공영'이라는 전통을 경험한 조직원은 그 전과는 확실히 마음 자세가 달라요.”

     경제학자들에게 기꺼이 진화생물학자의 노트를 빌려주겠다고 나선 ‘통섭학자' 최재천의 책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
    경제학자들에게 기꺼이 진화생물학자의 노트를 빌려주겠다고 나선 ‘통섭학자' 최재천의 책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
    -생태원 직원들이 요즘 만나면 뭐라고 합니까?

    “다른 기관장 10명이 할 일을 3년 안에 다 하셨다고(웃음). 억척스럽게 일하셨다고요. 저는 왜 우리가 이곳에서 일해야 하는지 그 비전을 공유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선지 다들 애사심이 넘쳐 신명 나게 일했대요(웃음).”

    -그런데 국립생태원을 경영하시면서 건강과 아내의 신임 두 가지를 잃었다 하셨어요. 생태원의 성공이 이런 삶의 구멍을 채워줄지 모르겠다고요. 아내가 많이 화가 난 모양이지요?

    “배신감을 크게 느꼈다고 해요. 제가 젊은 시절엔 ‘거리 귀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밤을 패고 돌아다니던 놈이었지만, 미국에서 돌아와서는 아내에게 훈련받아 ‘집사람'으로 근 20년을 살았거든요. 그랬던 사람이 육십 줄에 다시 옛날 버릇이 나오니 황당해하더라고요.”

    -집사람으로 살던 시절은 어땠습니까?

    “미시간 대학에 교수로 있다가 모교인 서울대에서 불러서 급하게 한국엘 왔어요. 그 바람에 아내는 시간 강사로 여러 학교를 뛰고, 육아는 정규직인 제 몫이 됐어요. 저녁마다 일찍 와서 아이를 봤는데, 그게 참 고마운 일이 됐어요. 밤 9시에 아이를 재우고 새벽 1시까지 온전히 4시간이 내 몫이 된 거예요. 논문과 책을 원 없이 썼어요. 전화 한 통 오지 않고 참 절간처럼 고요한 나날이었죠. ”

    -대한민국 남성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게 밤무대를 뛰어서라고 하셨습니다만, 한국남자가 ‘집사람'으로 사는 것도 여건상 쉽지 않습니다.

    “(웃으며)알아요. 당시에 저도 교수회의에 가면 모든 게 전날 술자리에서 결정돼 있었어요. 불이익을 당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게, 전 선배 교수들보다 제 아내가 더 무서웠어요(웃음). 미국에서 제 별명이 ‘미제수면제'였어요. 하버드대학 강단에서는 아이를 재워서 한쪽 어깨에 눕히고 가르쳤는데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문화였어요. 화학과 교수 한 분은 강의실 한쪽에 아예 아이 놀이 공간을 만들기도 했는데, 그분이 노벨상을 받을 때 더 큰 박수가 나왔어요.”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강의실에 아이를 데리고 오다니 무식한 교수'라는 편지도 받았다. 그럴 땐 2년째 그가 다시 오길 기다리고 있는 미시간 대학으로 딱 돌아가고만 싶더라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젠 아이도 자라고 그로서는 진정한 ‘거리 귀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황금기가 왔건만, 습관의 힘은 무섭더라고.

    ‘거리에서 삼겹살을 굽고 있어도 이 시간이면 책 읽고 쓰기 딱 좋은데…’ 싶어 발걸음은 어느새 집을 향했다. 그랬던 그가 국립생태원으로 원장으로 불려가 서천에서 ‘밤무대의 황태자’로 살았으니 아내가 배신감을 느낄 법도 했다. 3년 넘게 조직의 구성원들과 울고 웃으며 보낸 소통의 비밀은, 칼릴 지브란의 시에도 있는 구절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였다.

    또다른 지적인 동물이 만일 ‘인간실록'을 편찬한다면 그 제목이 “스스로 갈 길을 재촉하며 짧고 굵게 살다 간 동물
    또다른 지적인 동물이 만일 ‘인간실록'을 편찬한다면 그 제목이 “스스로 갈 길을 재촉하며 짧고 굵게 살다 간 동물"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무뎌진 공감력을 다시 벼려야한다고./사진=김지호 기자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사공이 많아야 배가 제대로 간다, 경영이 아니라 공영이다… 통섭만큼이나 참신한 조어를 많이 만들었어요. 확실히 숲과 문명사회를 동시에 경험한 리더로서 오래 삭힌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조어를 참 좋아해요(웃음). 보직을 피하려고 다녀도 작은 조직에 추대를 많이 받다 보니, 제 나름의 스타일이 있더군요. 저는 리더로서 누구에게나 강압을 한 적이 없어요. 깍듯이 존대했죠. 가까이 있되 거리를 지키려고 했어요. 당장 업적이 안 나와도 개인의 행복을 더 우선시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사실 실험실 과학은 성공하면 논문이 되지만, 제가 하는 연구는 까치, 긴팔원숭이 관찰이라 게네가 뭘 안 보여주면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논문을 많이 쓸 수가 없죠. 그래도 외국 학계에서는 많이 썼다고 인정을 하는데, 실험하는 교수들은 단순 비교로 논문 수가 적다고 저를 비판해요. ‘연예인처럼 외도한다'고.

    어느 날 같은 연구실 쓰는 후배 교수가 그러더군요. “학생들한테 좀 엄하게 해주세요. 논문 쓰라고 닦달 좀 해주세요.” 제가 그랬죠. “못합니다. 제 아들한테도 그런 적이 없어요.” 그러면 이 엄혹한 경쟁 사회에서 어떻게 먹고사느냐고 해요. 다그쳐서 실적이 나오면 연구실엔 좋을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겐 좋지 않아요.

    교수는 학생이 연구자로서 홀로 성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줘야 해요. 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요(웃음). 그런데 재미난 건 제 연구실 출신 90%가 ‘연구실이 생애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해요. 근처만 오면 들러서 한참을 웃고 떠들다 가죠”

    더불어 최재천은 그 자신, 한 번도 남을 깔본 적 없고 잘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마음을 열고 겸손히 동물들에게 배우자'라는 제인 구달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산다고. 그러나 과연 ‘우연의 축복'만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는 말이 진심일까?

    -정말 잘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나요? 50대에 대학의 석좌교수로 초빙된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닌데요.

    “저는 1등을 해본 기억이 없어요(웃음). 2등까지 가본 게 다예요. 은메달도 대단한 거지만, 은메달 딴 사람은 자기가 최고가 아니란 걸 알아요. 실패도 많이 해봤고 바닥도 수시로 기었어요(웃음). 어쩌다 하버드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사람이 돼서 언론에서 굉장한 사람처럼 저를 띄웠지만, 제가 연구한 ‘민벌레'로 제가 인류 발전에 기여한 적도 없어요.

    심지어 ‘민벌레’는 너무 하찮아서 아무도 몰라요(웃음). 하버드대에서 10년 동안 있으면서 생각한 건 ‘어떡하면 저들과 비슷해질 수 있나'였어요. 잘난 놈을 너무 많이 봤는데, 심지어는 제가 가르치는 19살짜리 학생조차 논문 읽고 저한테 덤비면 그 천재성에 등에서 식은땀이 났어요.”

    2012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최재천의 ‘Secret Lives of Ants’. 지난 5년 간의 판매 부수가 지난 18년간 베르베르의 ‘개미' 영문판의 판매부수를 웃돈다.
    2012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최재천의 ‘Secret Lives of Ants’. 지난 5년 간의 판매 부수가 지난 18년간 베르베르의 ‘개미' 영문판의 판매부수를 웃돈다.
    그렇게 ‘잘나지 못한’ 그가 얼마 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과학 출판사 앨스비어의 백과사전 편찬에서 ‘사회 행동’ 분야 책임디렉터를 맡았다. 동물행동학이 학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와중에, 대한민국의 동물행동학자가 동양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학계의 추대를 받은 것이다. 연이은 ‘우연의 축복'이었을까? 얼마 전엔 그 백과사전을 책임지는 총괄 편집자로 추대되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저로선 상상도 못 할 큰 명예죠. 그래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추적을 해봤어요. 일단 제가 연구한 민벌레는 열대 지방에 살아요. 그래서 서울대로 부임했을 때 저는 그 연구를 지속할 수가 없었어요. 설상가상으로 학생들은 코끼리, 침팬지, 돌고래를 공부하고 싶다고 전국에서 몰려왔지요. 돈 없는 교수가 학생들 데리고 아프리카로 갈 수도 없고, 그래서 다 함께 주위에 흔한 개미를 연구했어요.

    그렇게 해서 쓴 책 ‘개미 제국의 발견(1999년)'이 영미에선 베르베르의 ‘개미’보다 훨씬 더 많이 팔렸어요. 나중엔 학생들에게 ‘너희들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 했더니 개구리, 물고기, 딱정벌레, 나비… 아주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녀요. 그 많은 논문 공부하느라 재미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자괴감도 들었어요. ‘아! 나는 뭐 하는 놈인가.' 하나만 들이 팠으면 그 분야에 대가 소리를 들을 텐데. 그런데 얼마 전에 백과사전 출판사가 7명의 학계 대가들의 리뷰를 전해줬어요.”

    7명의 생물학 마스터들의 리뷰는 이랬다. ‘우리 학계에 최재천만큼 다양한 종을 깊이 있게 연구한 사람이 없으니 백과사전 편집장으로 합당하다’. “살다 보니 이런 반전도 있더라”고 그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2012년 7월, 돌고래 ‘제돌이’를 제주 앞바다에 놓아주었다./사진 제공=메디치
    지난 2012년 7월, 돌고래 ‘제돌이’를 제주 앞바다에 놓아주었다./사진 제공=메디치
    -핵심이 뭔가요?

    “제 욕심만 차리지 않고 가능하면 남하고 같이 사는 걸 추구해도 뒤처지거나 굶어 죽지 않는다는 거예요.”

    -자존감이 튼튼하시군요.

    “저는 2등의 자존감이 강해요. 내가 잠 안 자고 노력하면 2등은 할 수 있겠다(웃음). 은메달리스트들이 억울함, 아쉬움도 있지만 야릇한 편안한 같은 게 있어요. 2등으로 가는 길엔 남들 도움을 많이 받아요. 혼자서 뛰면 어렵지만 섞여서 같이 뛰면 슬금슬금 앞으로 갈 수 있어요.”

    -동물에게 배웠습니까?

    “그럼요. 동물이 사는 모습을 보면 인간을 추측할 수 있어요. 특히 영장류와 개미에게 많이 배웠어요. 영장류는 이인자가 일인자보다 더 오래 많이 누려요(웃음). 개미는 굉장히 정치적인 동물이에요. 그런데 여왕개미는 절대 군림하지 않아요. 알만 낳죠. 조직의 미래만 책임지고 매일매일은 일개미들이 철저하게 다수제로 그 문화를 만들어요.

    리더들도 여왕개미처럼 국가의 철학과 질서만 세우고 일은 완벽하게 군중에게 위임해야 해요. 두뇌 하나가 절대 두뇌 10개를 당할 수 없어요. 그래서 군림(君臨)이 아니라 군림(群臨)해야 한다는 거예요.”

    -사람 조직은 동물 사회와 달라 ‘인사가 만사’라는 말도 있습니다. 리더 입장에서도 군림(君臨)이 아니라 군림(群臨)이 유지되려면 좋은 인사가 바탕이 되어야 할 텐데요.

    “인사는 과학이에요. 과학적 인사의 출발점이 뭔지 아세요? 관찰입니다. 다행히 저는 평생 관찰을 하고 살았어요(웃음). 진화생물학자로 실험실에 가면 가장 먼저 도마뱀 관찰을 시킵니다. 제일 재미없는 동물이거든요. 그늘에 있다가 먹이도 잡고 짝짓기도 하는 그 느리고 느린 과정을 매일 보고 기록합니다. 나중에 그 일지를 보며 중요한 행동을 중심으로 정량화를 하죠,

    제가 국립생태원에 있을 때 같은 방식으로 인사를 했어요. 전부는 못 하고 높은 자리에 있는 직원들 중심으로 그들을 관찰하고 기록했어요. 가령 행정만 했던 어떤 직원의 관찰 일지를 보니 꽃을 가꾸고 잡초를 뽑는 행동이 유독 많았어요. 그분을 과감하게 식물관리 연구실장을 발령냈더니 입이 귀에 걸려 찾아왔어요. 은퇴하면 이런 일을 하려고 자격증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거죠. 까맣게 그을려서 신나게 바깥일을 하니 그 즐거움이 조직 전체에 전염이 돼요.”

    국립생태원장 시절, 부서간 소통을 위해 ‘원격바'를 열었다. ‘원격바'는 ‘원장이 격주로 구워주는 바베큐’의 준말./사진 제공=메디치
    국립생태원장 시절, 부서간 소통을 위해 ‘원격바'를 열었다. ‘원격바'는 ‘원장이 격주로 구워주는 바베큐’의 준말./사진 제공=메디치
    -사실 몇 년 전부터 인간을 입자로 보던 뉴턴 경제학이 다윈 경제학을 받아들이면서 행동경제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요.

    “따지고 보면 제일 엉성한 학문이 경제학이에요(웃음). 경제예측이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드문데, 그 이유가 경제 주체인 인간을 너무 몰라서거든요. 그래서 늦게나마 행동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거죠. 애초에 다윈은 자기가 하는 학문을 자연의 경제학이라고 정의했어요.

    경제는 인풋과 아웃풋을 가장 중요하게 따지는데, 진화야말로 모든 결정이 손익계산이거든요. 경제학과 진화생물학의 접근이 같은 거죠. 그런데 자연이 비정한 적자생존으로만 유지되는 줄 알았더니, 아닌 거예요. 공감과 이타성이라는 자연의 룰이 있었던 거죠.”

    -실제로 요즘엔 많은 사회 조직이 정글이나 적자생존보다 생태계나 공생이라는 말을 유행어처럼 쓰고 있지요.

    “재미있는 게 80년대만 해도 학회에 가면 남성 생태학자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남성의 90%는 경쟁을 연구하고 여성은 공생을 연구했어요. 신기하죠(웃음). 저는 여성성이 더 많았는지 공생에 관심이 갔고, 이제는 확실히 경쟁보다는 공생이 대세가 됐죠.”

    -경영자들에게 추천하는 과학책 목록에 ‘침팬지 폴리틱스'와 ‘공감의 시대'라는 프란스 드 발의 책이 두 권이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저는 마키아벨리와 손자의 책을 읽은 분들께 프란스 드 발의 ‘침팬지 폴리틱스'를 반드시 권해요. 그 양반이 침팬지를 연구해서 일약 스타가 됐어요. 최고 권위를 가지려면 다른 수컷과 손 잡아야 한다는 동맹과 협업의 논리가 자연에서부터 나와요. 혼자서 천하를 평정 못 합니다.

    오랑우탄도 침팬지와 자식을 같이 키워서 고릴라에게 쳐들어가죠. 사회성 곤충인 개미도 여러 여왕개미가 동맹해서 천하 통일을 이룬 뒤 그들끼리 피비린내나는 정쟁으로 일인자를 가려요. 바야흐로 통섭의 정권이 탄생하는 거죠.”

    최재천은 그의 스승인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며 일명 ‘통섭의 학자'로 스타가 됐다. 통섭이란 뭘까?

    통합이 물리적 합침이고, 융합이 화학적 합침이라면 통섭은 생물학적 합침이다. 남남으로 만난 부부가 서로 몸을 섞어 전혀 새로운 유전자 조합을 지닌 자식이 태어나는 과정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통섭학자의 야망은 매우 커서 그는 앞으로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소통하는 지성의 통섭을 꿈꾼다고 했다.

    “침팬지는 맹수에게 다친 친구를 보살펴주고, 코끼리는 우울해하는 어린 코끼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르렁 소리를 들려준다.” 공감이 동물의 본능이라고 말하는 최재천 교수./사진=김지호 기자
    “침팬지는 맹수에게 다친 친구를 보살펴주고, 코끼리는 우울해하는 어린 코끼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르렁 소리를 들려준다.” 공감이 동물의 본능이라고 말하는 최재천 교수./사진=김지호 기자
    세상에서 가장 하찮아 보이는 ‘민벌레'를 관찰하며 시작한 그의 학문의 지경은 어떻게 이렇게 깊고 넓어진 걸까? 문득 엉뚱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선생 인생에서 ‘민벌레'는 어떤 의미인가요?

    그가 씨익 웃으며 미국 곤충학 교과서를 가져와서 ‘민벌레' 파트를 펼쳐 보였다. 달랑 2페이지였다.

    “이번에 의뢰가 왔어요. 네가 아직 전 세계 민벌레 일인자니 개편 교과서를 새로 쓰라고요(웃음). 제가 반골 기질이 있어서 남들 다 하는 개미, 메뚜기, 잠자리를 하지 않고 사회성 곤충으로 진화가 덜 된 ‘이 아이'를 선택했어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기를 쓰고 경쟁이 심한 분야에 들어가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했더니, 이젠 이 분야가 또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제가 최고가 된 거예요. 참 재밌어요.”

    -경쟁에 뛰어들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했더니 일인자가 됐다… 갈수록 ‘신의 한 수’군요.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어요. 그런데 그게 다 욕심을 안 부리고 살아서예요. 욕심을 부리면 당장은 얻지만 정작 큰 걸 놓쳐요. 소탐대실이죠. 큰 걸 얻으려면 작은 걸 버려야 해요. 저는 대탐소실 형이에요. 평소에 작은 걸 슬슬 남 주고 결정적인 것에 덤비는 거죠. 알고 보면 야비한 놈이에요(웃음).”

    -어쩌면 생명계에 최적화된 인간이 아닌가 싶습니다(웃음). 마지막으로 다가오는 2018년을 위해 리더와 청년들이 모두 귀담아들었으면 하는 자연의 지혜를 전해주시지요.

    “제가 프란스 드 발의 ‘공감의 시대'를 번역하면서 배운 게 있어요. 공감은 호모사피엔스만의 특성이 아니에요. 진화를 위해 보존되어온 동물의 본능이죠. 공감력은 새로 기르는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걸 무뎌지지 않게 해야 해요. 아이들, 청년들의 공감력은 아직 무뎌지지 않았어요. 어른들이 “양보하지 마라, 쟤보다 1점 더 받아야 한다" 경쟁 앞세워 젊은이들 공감력을 무시하니 그 분노감에 ‘헬조선’이란 말이 터지는 거죠.

    세계적인 시야에서 보면 한국은 지금 대단히 주목받는 ‘꿈의 나라'에요. 지금에라도 경쟁이 가져온 뒤틀린 마음, 그 불행감을 걷어주려면 어른들이 과감하게 말해야 해요. “조직 위해 목숨 바치지 말아라. 개인의 행복이 우선이다. 집에 가라! 여행 다녀라!” 개인이 행복하면 조직이 잘 굴러갑니다.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조직이 자연과 닮았다는 걸 경험으로 알아요. 자연은 남을 해쳐야 잘 사는 것이 아닌 상태로 진화했어요. 경쟁 관계에 있는 동물은 기껏해야 제로섬게임을 하지만, 곤충과 식물처럼 많은 생물은 서로를 도와서 한계를 뛰어넘어요. 인간도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경협'의 지혜가 필요해요. 경쟁하면서 협동할 수 있어요. 손을 잡아야 살 수 있어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함께 살려면 적당히 두려워하고 약간은 비겁해져라"
    카리스마는 없고 두려움은 있으며, 적당히 비겁하고 욕심 없이 야비한, 그리하여 ‘함께 있되 거리를 둘 줄 아는’ 최재천 같은 리더가 내년엔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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