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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원숭이도 내 연기 스승" 곽도원의 '귀여운 인생'

  • 김지수 기자
  • 입력 : 2017.12.23 07:00 | 수정 : 2017.12.23 07:44

    영화 ‘강철비'의 곽도원… ‘북한 남자’ 정우성과 국경 초월한 ‘브로맨스’ 선보여
    어린 시절 청력 잃어, 아버지도 장애인… 밀양연극촌에서 7년 수련 후 영화계 데뷔
    ‘범죄와의 전쟁' 이후 악역으로 인기… 엉성한 듯 치열한 ‘비만 요정'

    배우 곽도원(45세). 그는 18살에 연기를 시작했으며 고교 졸업 후 대학로에서 아동극 배우를 전전하다 삼십대 중반에 극적으로 영화계에 진출했다.
    배우 곽도원(45세). 그는 18살에 연기를 시작했으며 고교 졸업 후 대학로에서 아동극 배우를 전전하다 삼십대 중반에 극적으로 영화계에 진출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배우가 있다. 뛰어난 배우, 진정한 배우, 위대한 배우. 뛰어난 배우는 미모와 연기력이 있으면 어느 정도 될 수 있다. 진정한 배우가 되려면 상당한 용기와 존재의 강렬함이 필요하다. 위대한 배우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제한된 육체에도 불구하고 그에겐 매번 영화 전체의 주제와 캐릭터의 광휘가 드리워진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부터 ‘변호인' ‘아수라' ‘특별시민'에 이르기까지 곽도원을 볼 때마다 ‘영장류 동물의 야성'이 남아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속에서 그는 칼이나 도끼 등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주먹이나 발길질로 힘의 자국을 선명하게 남기는 ‘육중한' 폭력을 행사해왔다.

    말하자면 그 폭력성은 조직폭력배의 사생결단이라기보다 고교 교련 교사의 권위적인 구타에 가까웠다.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때조차도 검사나 보좌관 등 양복 입은 고급 관료로 타자를 대면할 때 그의 표정과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저런 모습인가 싶을 정도였으니.

    ‘부산행'과 ‘범죄 도시'에서 마블 코미디의 히어로를 표방하며 육체를 만화적으로 사용한 마동석과 달리, 곽도원은 사지의 중력을 제대로 실은 폭력적인 악역으로 명성을 얻었다.

    공포 영화 트라우마가 심한 나는 여전히 ‘곡성'을 못 봤지만 그 영화에서 곽도원이 어떤 모습을 보였을지는 상상이 간다. 쩔쩔매는, 무기력한, 두려움에 빠진, 부성애 강한… 짐작건대 송강호가 아버지를 연기할 때보다 좀 더 어수룩했을 것이며, 유해진이 시골 사람을 연기할 때보다 덜 수다스럽고, 김윤석이 경찰을 연기할 때보다 더 둔해 보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곽도원은 아직 위대한 배우까지 이르진 못했지만 상당한 용기와 존재의 강렬함을 갖춘 ‘진정한 배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조차 ‘저런 방식으로 저 정도 크기로 우는구나!' 가족이 우는 모습을 관찰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소설가 오정희가 아버지의 시신을 보면서도 머리로는 묘사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는 일화만큼이나 치열한 고백이다. 자기 삶을 제물로 바치는, 대체 예술가들은 얼마나 지독한 존재들인가 말이다.

    배우가 아닌 자연인 곽도원의 모습을 처음 본 건 영화 ‘아수라'가 끝났을 때였다. 그는 정우성, 황정민 등 여러 배우와 함께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출연했다. 본능적으로 ‘수컷’은 ‘나와바리'를 벗어나면 긴장하기 마련이어서, 당시 한없이 자기를 낮추는 ‘무도' 멤버들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자기'를 드러낸 자유로운 남자는 정우성과 곽도원 두 사람뿐이었다.

    ‘살짝 어리둥절하지만 별 것 아니군!’, ‘승부욕은 있지만 함께 노는 게 더 재밌어' 몰입과 여유, 팀워크와 개인기를 능란하게 오가는 두 사람을 보면서, 힘의 위계에 억압당하지 않고 오랫동안 자신과 타자를 정중하게 대접해온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영적인 위엄이 감지됐다.

    청각 장애 친구들에게 “이렇게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도 상받으니, 꿈 포기하지 말아라
    청각 장애 친구들에게 “이렇게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도 상받으니, 꿈 포기하지 말아라"고 했던 곽도원. 그도 어린 시절 열병을 앓아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최근 개봉한 영화 ‘강철비'는 북한군 최정예 요원 엄철우(정우성 분)와 남한의 외교안보 수석 곽철우(곽도원 분)가 핵전쟁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줄거리로 개봉 일주일 만에 250만 관객을 돌파했다. 클러스터형 로켓 탄두 발사, 한·중·미·일의 외교전 등 치열한 파워게임이 펼쳐지지만, 무엇보다 곽도원과 정우성의 국경을 초월한 브로맨스가 아름다운 영화다.

    마르고 잘생긴 ‘북한 남자' 정우성과 뚱뚱하고 귀여운 ‘남한 남자' 곽도원이 함께 국수를 먹고 지드래곤의 노래를 들을 때, 남한의 ‘부대찌개’와 북한의 ‘땅굴’에 대해 썰렁한 농담을 주고받을 때, 폭력의 중력이 사라진 곽도원의 평화로운 몸무게는 거품처럼 가벼워져 요정 ‘팅커벨'처럼 느껴질 정도다.

    곽도원을 만났다. 윤곽 없는 후덕한 얼굴, 진한 쌍꺼풀, 시종일관 겸손한 말투와 우렁찬 웃음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기특해하는 그에게 ‘비만 요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는 18살에 연기를 시작했으며 고교 졸업 후 대학로에서 아동극 배우를 전전하다 삼십대 중반에 극적으로 영화계에 진출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싱숭생숭하고 얼떨떨하고… 좋습니다. 하하하. 이 무거운 이야기를 집중해서 봐주시고 간간이 웃어주시니 행복하지요.”

    -오프닝 스코어가 ‘스타워즈'를 한참 앞질렀더군요.

    “하하하. 전 우주 전쟁은 좀 어지러워요. 예전부터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우주 전쟁 못지 않게 한반도 핵전쟁 위기 시나리오도 스펙터클하게 어지럽더군요. 무엇보다 가까우면서도 먼듯한 서울과 평양이라는 도시의 연결, 파괴력이 무시무시한 공중 교전 장면에 모골이 송연해졌습니다.

    “상상을 해본 거지요. 감독의 설명을 빌자면 힘의 균형이라는 차원에서 이런 상상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소련과 미국만 핵을 보유하던 80년대 냉전 시대엔 오히려 평화가 유지됐고 문화도 융성했다고 합니다. 팝, 집시, 히피 문화가 들불처럼 일어났다지요. 다각도의 외교적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부국강병으로 가는 길은 뭘까? 그런 현실적인 상상…”

    그는 가끔 통일된 이후를 상상하면 가슴이 뛴다고 했다. “캠핑카 한 대를 사서 평양을 지나 백두산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 끝까지 가보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계인들이 다 한국으로 몰려오는 그런 행복한 상상 말입니다. 하하”

    곽도원과 정우성의 우정이 돋보이는 영화 ‘강철비'. 두 사람은 비슷한 에너지를 지녔다.
    곽도원과 정우성의 우정이 돋보이는 영화 ‘강철비'. 두 사람은 비슷한 에너지를 지녔다.
    -정우성 씨가 북한 사투리와 액션을 맡고 곽도원 씨가 외국어와 유머를 맡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긴장과 이완을 오간 성공적인 분업이었어요.

    “네. 우성 씨 액션이 정말 좋았죠. 우리 친구는 액션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상대를 위해 힘 조절도 세심하게 하고 부상 앞에서도 움츠리지 않죠. 저야 뭐 액션이 끝나면 그제야 나타나서 입으로 해결을 보곤 했지만. 하하하. 저도 영화 ‘황해' 계단에서 액션 비슷한 것을 했습니다만, 대부분 출연작에선 폭력적으로 때리는 역할을 했어요.”

    -두 사람이 함께했던 영화 ‘아수라'에서도 정우성의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안면을 강타하는 장면이 충격적이었습니다만.

    “그런 연기는 하기 전부터 하고 난 후까지 마음이 무척 고생스럽습니다. 정말 고생스러워요.”

    -어쨌든 당신을 생각하면 ‘완력'이라는 단어가 함께 떠오릅니다. 곽도원의 육체는 물리력의 증거로 너무 확실해요. ‘악의 중력'이랄까… 연기를 위해 몸무게를 빼지 않는다는 게 사실인가요?

    “확실히 중력의 도움을 받죠. 그런데 그런 폭력적인 역할을 만들어내려면 준비를 정말 많이 해야 해요. 너무 힘들어서 사경을 헤맨다는 느낌이 들 정도죠.”

    -사경을 헤맨다…

    “네. 그렇게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요. 캐릭터의 어떤 단서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연기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죠. 그런데 어느 순간 기적처럼 실타래의 실이 풀어질 때가 있습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원숭이도 내 연기 스승" 곽도원의 '귀여운 인생'
    -예를 들어주시지요.

    “가령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 선배를 제압해버리는 폭력 검사 역은 모델이 있었어요. 윤종빈 감독이 설명해줬는데, 어떤 검사가 넥타이에 와이셔츠를 차려입고 아래는 검도복 바지를 입고 있더랍니다. 책상 옆에는 죽도를 세워두고요. 거기서 힌트를 얻었죠.

    반면 영화 ‘변호인'의 차동영 검사는 이근안이라는 실존 인물에서 모티브를 땄어요. 그분이 나중에 목사 안수까지 받아서 영화 ‘밀양'에도 영감을 줬다지요, 아마! 아무튼, 어떤 영상에서 그분이 조사받고 계단을 내려오다 “이 살인자야!”라고 외치는 군중을 힐끗 쳐다봐요.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타인의 삶을 조종하고, 압력을 행사하는 초인적인 인간의 눈빛이지요.

    “맞아요. 판사가 일하는 현장을 본 적이 있어요. 중부지검에서 일흔 넘은 할아버지에게 마흔 살 정도 된 판사가 벌금형을 선고하는 상황이었죠. “사건번호 0000, 벌금, 150만 원!” 얼굴도 안 보고 선고하더군요. 할아버지가 “참 나!” 한마디 했더니, 돌려세운 후 차렷 열중쉬어를 시키고 벌금을 배로 올렸어요. 공포에 질려 로봇처럼 걸어가는 할아버지, 안하무인으로 반말하던 판사… 그걸 보고 “아! 권력의 얼굴이 저거구나" 무릎을 쳤어요.”

    -‘나는 옳다. 고로 나는 강하다.' 혹은 ‘나는 강하다. 고로 나는 옳다'... 죄지은 자를 심판하는 역할을 맡은 검사와 판사들은 자칫 그런 전능감이 빠지기 쉽습니다. 반면 ‘타짜2’의 악역에선 좀 더 원초적이더군요.

    “전작인 ‘타짜'에서 김윤식 선배가 아귀를 너무 잘 하셨으니까요. 촬영 3일 전까지 어찌할 바를 몰라 벽에 머리를 찧던 중이었어요. 우연히 대공원에 바람 쐬러 갔다가 대장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 바나나를 뺏으며 난도질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죽일 듯이 패고는 나무 위로 올라가 유유히 오줌을 싸더군요. 부끄러움이 없이 도발하는... 아! 저게 악의 얼굴이구나. 배우로서는 그런 모티브가 연기로 연결되면 쾌감이 커요.”

    사람이건 원숭이건 영장류 동물은 모두 그의 관찰 대상이 된다는 게 놀라웠다.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악의 중력'이 사라져서 경쾌하기 이를 데 없더군요. 공기처럼 가벼워 보였어요.

    “제 본명이 곽병규예요. 이번 영화 ‘곽철우' 역은 ‘병규’가 가장 많이 나왔어요(웃음). 외교안보수석이라는 책임은 무겁지만, ‘엄철우' 역인 정우성 씨와 사적인 대화를 나눌 땐 제 모습이 드러난 거죠.”

    -상대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한껏 귀여움을 떠는… 서로를 제압하지 않으려는 맑은 기운이 좋았어요.

    “(함빡 웃으며)그걸 관객들이 느껴주길 바랐어요. 영화를 만드는 저희로서는 2시간 18분 동안 마라톤을 뛰는데, 관객들이 함께 따라 뛰면 숨이 찰 수 있거든요. 그때마다 우성 씨와 저희 둘이 좀 쉬시라고 테이블에 물 잔도 올려 드리고 하는 겁니다.”

    -서비스 정신이 탁월하군요!

    “그럼요. 저흰 서비스직이니까요(웃음). 저희로선 유머도 여러 버전으로, 카메라 세팅 다 바꿔서 찍는데, 그렇게 하면 현장에서 3~4배 힘들어도 객석에서 웃어주시면 보람이 크죠.”

    -국익이 복잡하게 얽힌 외교 상황과는 별개로 두 사람의 버디 무비만을 따로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직과 뺀질의 대조적인 매력을 보여준 ‘태양은 없다'의 정우성과 이정재 커플 이후로, 이토록 사랑스러운 동갑내기 브로맨스가 있었나 싶어요. 가히 국경을 초월한 신성한 우정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두 손을 모아 쥐고)무척 감사하네요. 참 감개가 무량합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원숭이도 내 연기 스승" 곽도원의 '귀여운 인생'
    -어떤 부분이 감개가 무량한가요?

    “제가 여기까지 왔다는 게 정말 신기합니다.”

    -무슨 말이지요?

    “제가 교회 누나 따라 연극이란 걸 처음 봤습니다. 18살에 대학로 소극장에서 ‘바쁘다 바빠'라는 연극을 봤어요. 그때 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네요. 태어나서 18년 만에 사람이 그렇게 많이 모인 자리는 처음 가봤어요. 자리도 없어서 극장 입구에 합판 얹어 만든 임시 자리에서 내려다봤는데, 거기서 무대와 무대 뒤의 동선을 다 본 거예요. 배우들이 뒤에서 장난치다가도 무대로 나오면 확 달라져서 사람들을 울리고 웃겼어요. 들어가면서 저희들끼리 또 아쉬워하고… 그런 풍경을 내려다보며 생각했죠. ‘아! 나도 저걸 하고 싶다.'”

    -재능이 있었나요?

    “힘들게 들어간 극단에서 저 말고 제가 연기하는 걸 다 반대했어요. 그런데 그분들 중 저만 남아서 연기를 해요. 게다가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해 주니 얼마나 감개가 무량한지…”

    더불어 그는 어린 시절 열병을 앓아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신경이 끊어져서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다. 연기는 상호작용이라 남의 말을 잘 들어야 좋은 연기가 나오는 법인데,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핸디캡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잘 들리지 않는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했나요?

    “저는 초등학교 때까지 남들도 저 같은 줄 알았습니다(웃음). 한쪽이라도 들리니 배우로 먹고살 수 있는 거죠. 하하하. 남들보다 목소리도 두껍고 우렁차서 연극 무대에선 더 도움이 됐어요. 국립 극단 야외무대에서 마이크가 꺼진 적이 있었는데, 제 목소리만 들렸다고 해요. 비행기가 날아간다든가 써라운딩 시스템에 대해선 전혀 감이 없지만요. ”

    곽도원은 자신의 아버지도 평생 장애인으로 살았다고 했다. 불행감이 느껴지지 않는 명랑한 목소리였다. “6.25 전쟁 중에 파편을 맞아서 그렇게 되셨대요.”

    -예전에 ‘곡성'으로 상을 받는 무대에서 청각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적이 있지요?

    “아! 그때 오프닝 무대가 장애인분들의 공연이었어요. 휠체어 탄 남자분이 일반 여자분과 탱고를 췄었지요. 그다음 농아 친구들이 합창하는 걸 보고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왔어요. 아이들한테 감사한 마음에…”

    그는 그때 무대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 처음 시작할 때 사람들이 다 반대했어요. 저 같은 사람 주인공으로 쓰면 흥행 안된다고. 그때 나홍진 감독만 저를 믿어줬어요. 장애우 친구들 공연하는 거 보고 감동했어요. 저도 장애가 있어요. 한쪽 귀가 안 들려서 말귀도 잘 못 알아듣고 더듬거려요. 근데 얘들아, 포기하지 않고 꿈꾸니까 다 이루어지더라. 이렇게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도 상 받는다. 부디 꿈 포기하지 마라, 얘들아!”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원숭이도 내 연기 스승" 곽도원의 '귀여운 인생'
    -포기하고 싶을 때는 없었나요?

    “한때 포기했었죠. 연기한다고 돌아다니다 어머니 임종도 못 보고 그래서 다 때려치웠던 적이 있어요. 양말 팔러 다니고 그랬어요. 그때 전철 선반 위 신문에서 밀양연극촌 한 달 워크숍 한다는 기사를 봤어요. 그때 한 달만 제대로 배우고 다시 해보자, 하고 밀양엘 갔어요. 스물일곱 살, 12월 30일 저녁 8시 50분이었어요.”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다"라고 그가 꿈꾸는 표정을 지었다. 두 달에 한 번 월급 10만 원을 받아 소주 사 먹으며 촌에서 7년을 보냈다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무대에 세워주니, 담배 한 갑 살 돈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천국 같은 시간이었다.

    -무엇을 배웠습니까?

    “걷고 말하는 법, 무대 조명등 달고, 세트 짓고, 페인트칠하고, 의상 미싱 박는 법… 하루에 3~4개씩 희곡을 소화했어요. 7시 반에 기상해서 새벽까지, 365일 7년을 그렇게 치열하게 보냈어요. 제 연기의 기본기는 모두 거기서 다져졌어요.”

    -그렇게 치열하게 준비해도 운이 닿지 않아 사라지는 사람도 많지요. 기회의 문은 어떻게 열었습니까?

    “사실 서울로 와서 뭘 해 먹고 사나 막막했어요. 영화 하려면 충무로에 가면 된다고 해서 충무로에 갔더니 인쇄소하고 애견센터만 있더라고요(웃음). 그때 우연히 길에서 연희단 거리패에서 연극 하던 후배를 만났어요. 단편 영화에라도 출연하려면, ‘필름메이커스’라는 스태프 사이트에 프로필을 올려야 된다고 알려주더군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출연한 단편 영화 ‘열정 가득한 이들'과 ‘비만 가족' 두 편이 그해 KBS 단편 영화 프로그램에 상영되고, 미장센 단편 영화제에서 전계수 감독을 만나 ‘러브픽션’에 출연하면서 곽도원의 영화 인생이 풀렸다.

    “영화에 출연하면서도 해프닝이 많았어요. 완전히 또라이였죠. 바스트샷, 투샷이 뭔지도 모르고 연결이 뭔지도 몰라 중구난방 뛰어다녀서 감독들이 ‘아, 쟤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구나'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셨어요(웃음). 연기가 너무 힘들어서 제가 시나리오를 써서 단편을 하나 찍어보기도 했어요. 근데 그때 카메라 잡았던 감독도 알고 보니 초짜여서 황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하하.”

    -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일종의 돌파력이 있네요.

    “하하하. 제가 하자 많은 인생에 잃을 것도 별로 없어요. 잘 안되면 제주도 가서 게스트하우스 하며 살자, 그랬죠. 세밀하게 계산하지 않고 무대뽀로 전진해서 간 것뿐이에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원숭이도 내 연기 스승" 곽도원의 '귀여운 인생'
    힘이 들어간 인생과 힘을 뺀 인생은 어떤 쪽이 더 파워풀할까? 치밀하게 엘리베이터를 설계한 인생이 그때그때 순진하게 부딪힌 인생보다 덜 위험하다고 할 수 있을까? 엉성한듯 치열하게, 무겁지만 가볍게, 앞으로 나갔던 인간 곽도원을 보면서 생의 무게가 한층 가벼워지는 것 같다.

    더불어 곽도원과 함께라면 전 세계에서 가장 전쟁 위험이 높다는 남북관계도 그리 어렵지 않게 풀릴 것 같다는 즐거운 착각을 하게 된다. 서로 무서워서 총부리를 겨눈 남한군과 북한군에게 “뭘 많이 멕여야지~" 툭 긴장을 풀어버린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지혜로운 이장님처럼.

    -마지막으로 북한군 ‘엄철우' 정우성 씨와 나눈 대화 중 어떤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빙그레 웃으며)넌 살 좀 찌고, 난 살 좀 빼고… 반포동에서 소주나 한잔 하고 싶다.”

    알고 보면 위험을 무릅쓴 우정이란 대단히 예민한 사람, 측은지심을 가진 사람의 몫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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