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제도로도 과세 가능
부가가치세가 쟁점 될 듯
양도소득세도 법정비 필요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 과열을 잡기 위한 방법으로 ‘세금 부과’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제도로 가상화폐에 대한 사업소득세, 양도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등은 충분히 걷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가상화폐 구입시 10% 세금을 부과하는 부가가치세의 경우 가상화폐 정의에 대한 정부의 판단이 필요하며, 양도소득세는 일부 법적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
◆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등 가능할 듯
우리나라에는 현재 뚜렷한 가상화폐 과세 기준이 없다. 한국은 물론 여러 국가들이 가상화폐에 대한 법적 정의를 명확하게 내리지 못하고 있어서다. 가상화폐는 획득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 개인이나 회사가 갖는 자산의 성격을 가지는 반면 재화나 용역을 거래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 화폐의 일종인 결제 수단의 성격을 지닌다.
가상화폐의 과세 방법으로는 부가가치세, 사업소득세, 양도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등이 거론된다. 이 중 부가가치세를 제외한 나머지 세목들은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볼 경우 과세가 어렵지 않다. 정부가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보고 기존에 있는 세금 제도를 적용하면 된다. 정부가 가상화폐의 화폐적 성격에 대해 뚜렷하게 규정하진 않아도 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영국, 독일 등 다수 국가들은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분류해 관련 세법을 적용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해당 세목들에 대한 가상화폐 과세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가상화폐 이용 증대에 따른 과세상 쟁점 분석 및 대응 방안 연구'에 따르면 가상화폐 사업소득세는 소득세법에 열거된 사업 소득에 직접 해당하지는 않으나 포괄적으로 규정된 소득세법 제 19조20항에 의해 과세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양도소득세와 법인세도 가상화폐가 주식 또는 기타자산과 유사하기 때문에 과세가 가능하며, 상속증여세도 증여세법에 의해 과세가 가능하다고 바라봤다.
국세청이 지난 5일 실시한 ‘2017 국세행정포럼’에서 김병일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도 ▲사업자의 가상화폐 관련 사업소득 등은 현행 세법상 소득세 또는 법인세 과세 가능 ▲가상화폐는 경제적 가치를 가진 재산으로 볼 수 있어 현행 세법으로 상속·증여세 과세 가능 ▲개인이 단순 투자 목적으로 가상화폐를 거래하고 매매차익이 발생한 경우 양도소득세 부과 바람직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연구진들은 “사업소득세, 양도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등은 가상화폐에 대한 화폐로서의 인정 여부가 정해지지 않아도 과세가 가능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 부가세는 정부 판단, 양도소득세는 법적 정비 필요
다만 부가세의 경우 정부의 판단이 필요하다. 현행법에 따르면 부가세의 과세 대상은 ‘사업자가 행하는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과 재화의 수입’이다. 재화는 재산 가치가 있는 물건과 권리를 뜻하며, 용역은 재화 외 재산 가치가 있는 행위 등을 말한다.
정부가 가상화폐 공급을 재화나 자산으로 보면 부가세를 당연히 부과해야 한다. 가상화폐를 거래소에서 구매할 때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부가세 세율이 10%인 점을 감안하면 가상화폐를 100만원 구매할 때 10만원을 세금으로 더 내야 한다. 총 110만원이 필요한 셈이다. 예를 들어 법정통화를 소지하고 있는 소비자 A는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구매한 후 관련 가상화폐를 이용해 물품을 샀고, 물품을 공급한 판매자 B는 다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환전했다고 가정하면 소비자 A와 판매자B는 모두 10%의 부가세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세계 주요 국가들은 가상화폐에 부가세 부과를 하지 않거나 해당 과세 제도를 없애고 있다. 재화나 서비스로 공급된 가상화폐가 일종의 ‘거래의 매개체’로 화폐 성격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가상화폐가 지닌 화폐의 성격을 부가세법상에서는 일부 인정한 셈이다. 미국, 영국, 일본은 가상화폐에 대해 부가세를 부과하지 않으며, 독일과 싱가포르만 부과하고 있다. 호주도 부가세를 부과하다가 면세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최고사법기구인 유럽사법재판소도 지난 2015년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바꾸는 거래는 부가가치세 부과 대상이 아니다’고 판결하면서 가상화폐 공급에 화폐적 성격이 있다고 인정했다.
따라서 가상화폐에 대한 부가세 부과 여부는 관련 산업에 곧바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 나라가 가상화폐에 부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면 거래소의 탈(脫)한국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가상화폐 구매자들이 우리 나라에서는 10% 세금을 더 내야 하기 때문에 국내 거래소를 이용하지 않을 수 있다. 호주 정부는 비트코인에 대한 부가가치세 과세 방침을 밝힌 이후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영국으로 빠져나가는 사태를 겪었다.
양도소득세의 경우도 일부 법적 정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는 현행 소득세법상 과세 대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과세를 위해서는 관련 규정 보완이 필요한 것이다. 양도소득세를 과세하지 않는 경우 거래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언급되고 있다. 양도가액의 일정비율(증권거래세의 경우는 0.5%)로 부과하는 것이다.
가상화폐 과세를 위해서는 세원 추적이 어려운 점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가상화폐가 '익명성'이라는 특성이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거래소 등 가상화폐 거래를 매개하는 중개인들을 규제하면서 과세 정보를 축적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