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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멘탈갑 엄마' 김미경 "아이의 자존감? 부모의 완벽한 사과가 먼저"

  • 김지수 기자
  • 입력 : 2017.12.09 06:00 | 수정 : 2017.12.15 19:21

    “아이는 부모에게 성과를 주려고 태어난 존재 아냐"
    “부모 잘못은 천번이라도 사과하고, 생명 대 생명으로 존중해야”
    첫째는 ‘엄마 고발장' 쓰고, 둘째는 자퇴서 쓰고...
    아이 앞에 무릎꿇고, ‘실패의 육아사' 겪으며 ‘엄마의 자존감 공부' 펴내


    우주의 나이로 보면 부모와 자식은 거의 동갑이라고 말하는 김미경(54세). 자식은 생명 대 생명으로 존중해야 한다고./사진=김지호 기자
    우주의 나이로 보면 부모와 자식은 거의 동갑이라고 말하는 김미경(54세). 자식은 생명 대 생명으로 존중해야 한다고./사진=김지호 기자
    김미경은 말로 흥한 사람이다. 연세대학교 작곡과를 나와 피아노학원을 차렸을 때도, 부모 상담을 워낙 잘해 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그토록 야단맞았던 천재성, ‘꼬박꼬박 말대답'하는 재능이 뒤늦게 꽃을 피워 23년째 말로 먹고산다.

    ‘네 꿈을 펼치라'며 20~40대 여성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던 스타 강사 김미경이 ‘자존감'을 화두로 돌아왔다. 출간되자마자 서점가에 여유 있게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엄마의 자존감 공부'에는 김미경 특유의 울림 강한 자기 성찰의 ‘말'이 가득하다.

    ‘아이는 부모에게 성과를 주려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만 명의 엄마가 있으면 만 명의 모성이 있는 게 정상이다'
    ‘똑똑한 아이들은 마침내 알아낸다.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인데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을. 내가 능력도 없고 노력도 안 하는 나쁜 애가 아니라 처음부터 게임의 룰이 잘못됐다는 것을.’

    지금 김미경의 전하는 메시지가 거품 섞인 ‘말 잔치'가 아니라 중력을 갖춘 육중한 몸의 언어로 들리는 이유는 그녀 자신, 28년간 ‘실패의 육아사'를 거친 세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첫째 딸에게 장문의 ‘엄마 고발장'을 받고, 둘째 아들에게 ‘고교 자퇴 플래카드'를 걸어주고, 뒤늦게 무릎 꿇고 사과한 후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서 그들의 자존의 인생 파트너로 씩씩하게 산다는 김미경.

    다행히 늦둥이 막내는 ‘어떻게 꿈을 설계하는지'를 아는 행복한 중학생이 됐다. 앞선 시행착오의 찬란한 보상이다.

    김미경을 만났다. 희생과 자책의 무력한 ‘국민 엄마’가 아닌, 사과하고 믿어주는 ‘멘탈갑 국민 엄마'. 오십이 넘어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고 런칭한 패션 브랜드 ‘릴리킴'의 러플 달린 검은 블라우스를 입은 채였다. 잠금장치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2시간 내내 폭포처럼 말이 쏟아져 내렸다. 넘치는 스테미너에 감전돼 이야기를 듣는 내내 온몸에 열이 올랐다.

    “자식에게 사과하라, 사과하라, 또 사과하라.”/사진=김지호 기자
    “자식에게 사과하라, 사과하라, 또 사과하라.”/사진=김지호 기자
    -첫째 딸이 썼다는 ‘엄마 고발장’이 놀라웠어요. 여섯 살 때 상한 토스트를 먹여서 기절시킨 엄마, 초등학생 때 가정 통신문 싸인 가르쳐주며 대신 시킨 엄마, 수능 시험 볼 때 도시락 싸간다고 하니 급식 안주냐고 분노한 엄마, 서운하다고 아니 더 서운하다고 받아친 엄마… 그런데 그 딸이 성인이 돼서 엄마는 최선을 다해 자기 운명과 맞서 싸워왔다는 걸, 인정하고 고맙다고 했더군요.

    “신기한 건 아이들은 아무리 어려도 엄마 노릇 허술하게 한 건 다 기억한다는 거예요. 큰 애 고발장이 사실 10장도 넘는 데 추린 게 그 정도예요(웃음). 지금은 모녀 관계가 서로를 희화화할 정도로 회복됐지만, 딸이 대학교 1학년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당시에 딸은 자기가 노력해서 만들어내지 못한 결과를 엄마한테 뒤집어씌우고 싶었대요. 저한테 크게 한번 ‘한풀이’를 했는데 그때 제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어요. 무릎 꿇었죠(웃음). 그래도 감사한 건 엄마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온 걸 알아줘요.

    딸 애 말이 어떤 날은 온종일 울고만 싶었대요. 그때 우연히 제가 30대 후반에 들고 다니던 강연 일정이 빼곡히 적힌 다이어리가 떠오르더랍니다. 큰 애가 그래요. “엄마! 당시엔 엄마가 날 내팽개치고 다닌 줄로만 알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우리 엄마는 이때 울고 싶어도 참고 강연을 했겠구나. 엄마가 나한테 울 수 있는 자유를 준 거구나.' 나는 내가 40대가 되면 엄마를 완벽히 용서할까 걱정돼(웃음).” 중요한 게 뭔지 아세요? 완벽한 사과에요. 자식을 향한 완벽한 사과.”

    -성경에도 아이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습니다만, 자식에게 완벽한 사과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중요해요. 제가 큰 애한테 진심으로 사과한 건, 둘째가 먼저 사고를 쳤기 때문이에요. 둘째가 중2 때 부터 엇나가기 시작해서 고2 때 자퇴를 했어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특별한 아이는 자랄 때 평균적인 아이보다 찌질해 보여요. 공부? 안 하죠. 잠은? 오후 3시까지 처자죠(웃음). 약속 시간? 늦어도 모냥 빠진다고 걸어가요(웃음). 어릴 땐 대체 뭐가 되려고 저러나? 내가 집에 없어서 저러나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한 배에서 나와도 다 기질이 다른 거 아시죠? 저도 4녀 1남 중 둘째인데, 우리 형제들이 정말 달라도 그렇게 다를 수가 없거든요. 알고 보면 ‘오후 3시까지 처자는 것'도 재능이에요. 느리게 가는 사람이 움켜쥐는 게 분명히 있다는 거죠. 우리 집 둘째는 웬만한 소리를 다 듣고 그걸 기억해요. 일본어도 주변에서 얘기하는 거 듣기만 하고 배웠어요. 이 아이가 피아노도 그렇게 한 거죠. 들은 걸 칠 수 있다는 걸 알고 중3 때 속성으로 외워서 3개월 만에 예고를 간 거예요.

    기초도 없고 악보도 잘 못 보니 예고에 가서 바보처럼 앉아 있다가 우울증이 왔어요. 자기한테 성질내는 게 우울증이면 남한테 터뜨리는 게 분노조절장애인데, 두 가지가 같이 온 거죠. 하도 때려 부숴서 집안에 문짝이 몇 개나 날아간 지 몰라요. 어느 날 괴성을 지르면서 서가에 있는 책을 다 집어 던지고 있었어요. 그때 제가 그 책을 얼굴로 다 맞으면서 아이한테 갔어요.”

    -왜죠?

    “안아주려고요. 내 아이니까...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애를 제가 꼭 안으면서 그랬어요. “너랑 나랑 한 팀이야.””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멘탈갑 엄마' 김미경 "아이의 자존감? 부모의 완벽한 사과가 먼저"
    괜찮다고, 엄마 빨리 안 죽으니 천천히 가자고, 부러진 나뭇가지라도 방향을 틀면 다시 자랄 수 있다고, 김미경은 있는 힘을 다해 아이에게 속삭였다. 아이가 자퇴한다고 했을 때, ‘어떡하니? 나 이제 중졸 엄마야?’라고 속상해하던 철없던 김미경은 그 뒤로 매일 밤 PC방을 돌다 새벽이슬을 맞으며 돌아오는 아이를 위해 진수성찬을 차렸다. 묵묵히 좋아하던 반찬으로 차린 엄마표 밥상을 나눠 먹던 아이는 조금씩 지하 10층에서 지상 2층으로 고개를 디밀었다.

    -몇 달 동안 새벽 3시에 밥을 차려주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요?

    “이 아이는 문제가 없다, 문제가 없다, 문제가 없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어요. 얘는 태어날 때부터 높은 자존감을 갖고 태어난 거구나, 스스로 세상에 나온 거구나, 그런 깨달음이 왔어요. 공부도 여러 재능 중 한 가지일 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계속 밥을 해줬어요. 저는 그때 살이 엄청 쪘죠(웃음). 그랬더니 어느 날 “엄마! 뮤지션들은 일본 가는 게 꿈이야." 그래요. 드디어 자기 갈 길을 찾은 거죠. 우리 둘째는 지하 10층까지 떨어졌다 2층까지 올라온 힘으로 평생을 돌파할 힘을 얻은 거예요. 피아노를 전공했으니, 저는 알죠. 슬픔을 모르는 사람의 음악은 들을 수가 없어요(웃음).”

    -지금 아드님은 어떻습니까?

    “일본에서 음악 공부를 하는데, 어느 날 일본 교수의 코멘트를 보여줬어요. “네 음악은 깊은 슬픔도 있고 대단한 환희도 있다. 감정이 놀랍도록 다양하다.” 요즘엔 전화 오면 2시간씩 통화해요. 대부분 잘난 체죠(웃음). 저는 그러죠. “거봐, 엄마가 이 불행이 우리 편이 될 거라고 했잖아.”

    얼마 전에 아이한테 편지가 왔다고 했다. “그때 내가 던지는 책 다 맞으면서 달려오는 엄마를 보고 ‘이 여자는 날 살리려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내가 저 여자는 못 이기겠다' 그런 생각을 했대요.”
    당시 아이가 분노한 이유는 없어진 돈 5만 원 때문이었다. 식구들이 자기를 의심하자 ‘난 아니야!' 절규했던 것. “그런데 편지에 이런 고백이 있어요. ‘엄마, 사실 그때 5만 원 내가 가져갔다!’”

    -맙소사! 반전이네요.

    “네. 그런데 저도 아들이 가져간 줄 알았어요(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궁지에 몰린 아이의 창피함과 분노의 감정이 먼저 보였어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어요. 아들도 그런 엄마 모습을 봤던 거고요.”

    -왜 이 책을 썼나요?

    “사실 안 쓰고 싶었던 얘기에요. 그런데 쓸 수밖에 없었어요. 세상 모든 관계는 사실 남편과의 관계도 주고받는 거래잖아요. 거기서 비켜난 관계가 유일하게 부모 자식 관계예요. 그런데 우리가 30대에 아이를 낳아, 먹는 것부터 옳고 그른 것을 다 가르쳐야 하잖아요. 생물학적으로 도덕적으로도 아직 부족한 30대에… 그게 참 무리예요. 나는 41살에 막내를 낳았는데 이제야 좀 행복하게 아이를 키워요. 두 아이를 통해 배운 뒤에야. 막내가 참 행복하게 큰다는 게 느껴져요. 행복한 아이는 좋은 점이 참 많아요.”

    스타 강사이기 전에 28년간 ‘실패의 육아사'를 거친 세 아이의 엄마 김미경이 쓴 ‘엄마의 자존감 공부'.
    스타 강사이기 전에 28년간 ‘실패의 육아사'를 거친 세 아이의 엄마 김미경이 쓴 ‘엄마의 자존감 공부'.
    -어떤 아이가 행복한 아이죠?

    “행복한 아이는 부모의 불필요한 제지를 받지 않고 자라서 자기 역량 발휘가 빨라요. 자기 역량을 알면 꿈을 빨리 설정하죠. 꿈에 대한 통찰이 되면 돈도 빨리 벌어요. 결국 한 인간의 자립과 완성이 빨라지는 거예요. 엄마가 잠재력을 누르고 일방적으로 끌고 간 아이는 아주 먼 데로 돌아서 자기 갈 길을 찾아요. 그런데 먼 데로 돌아서 꿈을 찾으면, 그때는 이미 옴짝달싹 못하게 생계에 목줄 잡혀 있을 때가 많죠.

    네이선이라는 유명한 레고 블록 아티스트도 집안 분위기 때문에 변호사의 길로 갔다가 다시 레고로 돌아왔다잖아요. 억대 연봉을 받으면 뭐하겠어요. 퇴근 후에 레고에 매달릴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거죠. 서울대 연고대 나와 삼성 가면, 평생 잘 살 거라는 신화는 이제 깨질 때가 됐잖아요. 아이가 정말 중요한 시기에 부모는 손을 떼야 해요.”

    -그럼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가르칠 게 없다면요?

    “생명 대 생명으로 아이를 존중해야죠. 지구 나이로 보면 아이가 어리게 보여도, 우주의 나이로 보면 30년 차이는 동갑이에요(웃음). 한 생명이 지구로 오기 위해 천년을 기다렸다면, 천 한 살이나 천 서른한 살이나 티끌 차이에요. 부모는 당장 아이를 맡을 경제력과 체력이 되니까 키우는 거죠. 시간이 지나 내가 육십이 되고 아이가 삼십 되면 자식이 더 현명해지는 거 순식간이잖아요.

    존중하고 자기 인생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가는 게 우선이라고 봐요. 그런데 엄마들이 아이를 완전히 압도해버려요. “엄마가 정보망 돌려 다 알아봤는데 이 학원에 이 선생한테 가면 서울대는 직행이래" 이렇게 나오면 아이는 대적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그때부터 열 살짜리 아이가 마흔 넘은 성인 남녀의 꿈을 지고 사는 거예요. 게다가 잘난 부모의 지적 폭력은 또 얼마나 대단하게요.”

    -지적 폭력이라니요?

    “보통 아버지들이 많이 저질러요. 아침부터 영자신문 보면서 아이들 기죽이는 거죠. ‘아! 대체 우리 아버지처럼 되려면 얼마나 공부를 해야 하나' 애들은 완전 쫄아요. 아버지 눈초리는 늘 이런 메시지가 함축돼 있죠. ‘너는 이 좋은 환경에서 그것도 못 하냐.' 그럼 애들은 십 대 때부터 ‘못난 놈 콤플렉스’로 사는 거예요. 어떤 청년은 ‘못난 놈' 상처가 곪아서 아버지를 피해 지방에 가서 살아요. 그러면 그 청년의 자기 인식은 항상 ‘나같이 못난 놈이'에서 출발하는 거죠.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멘탈갑 엄마' 김미경 "아이의 자존감? 부모의 완벽한 사과가 먼저"
    강의하다가 ‘사과 퍼포먼스' 시키면 아버지들이 손 들고나와서 그렇게 울면서 사과를 해요. 그동안 공부 못하는 아들을 사람 취급도 안 했다, 심지어 부하직원처럼 대했다면서요. 얼마 전 어떤 엄마는 남편에 대한 분노를 십 년 넘게 딸한테 풀었대요. 걸핏하면 어린아이 머리채를 잡았다는 거죠. 그럴 땐 살면서 넘친다 싶을 정도로, 천 번이라도 사과하라고 해요. 자녀의 분이 풀릴 때까지,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김미경은 몇 년 전부터 미혼모의 자립을 돕는 그루맘 사업을 시작했다. 아이의 자존감만큼이나 엄마의 자존감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내린 결정이었다. 연남동에 새롭게 마련한 작업실은 그녀의 꿈과 자선사업이 함께 결합된 복합 구조다. 1층은 미혼모들이 모여 교육과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카페 공간, 2층은 재봉틀과 샘플 옷들이 가득한 의상 작업실, 3층은 강연을 준비하는 집필실이다.

    -어머니도 양장점을 하며 1남 4녀를 키우신 억척 여성이셨지요?

    “네. 엄마가 증평에서 50년간 양장점을 하셨어요. ‘리리 양장점'이라고. 백합꽃을 의미하는 릴리를 대충 쓴 상호였죠. 제가 이번에 만든 패션 브랜드 이름이 그래서 ‘릴리킴'이에요.”

    -대한민국 여성 중에는 생계를 짊어진 ‘억척 어멈'이 많습니다(웃음). 그런데 그런 팔자도 억울해할 거 없다,고 재밌게 해석하셨더라고요.

    “네. 저희 아버지도 평생 돈 버는 데 재능이 없으셨어요(웃음). 저도 현재 재정에서 많은 부분을 제가 책임지고 있어요. 알고 보면 그것도 다 감당할 만큼 에너지가 돼서 하는 거예요. 보통 집에서 경제적 가장 노릇 하는 여성은, 정작 부자 남자 만나 시어머니 짐꾼하면서 백화점 쇼핑 다니며 살라고 하면 못살아요(웃음). 억울한 생각이 들 땐, 이렇게 해석하라고 하죠. ‘아! 저 남자가 잘 나갈 수 있었는데 나 잘난 체 하며 살라고, 굳이 인생 꼬여서 나한테 온겨~’”

    -미혼모들의 자존감은 어떻게 세워주고 있습니까?

    “내년에 ‘릴리킴' 브랜드로 패션쇼를 하는데 미혼 엄마 4명이 모델로 설 거예요. 연예인 엄마들과 함께요. 제 눈엔 미혼 엄마들이 참 당당하고 예뻐요. 자녀들이 갓난아기부터 다양한데, 그 아이들이 초등학생 정도 되면 제가 얘기해주려고요. ‘네 엄마가 얼마나 운명적으로 강한 여자인가’에 대해서요. ‘네 엄마는 너를 낳지 않을 수도 있고 입양을 보낼 수도 있었는데 너를 사랑해서 용기를 냈다. 그러니 세 번째 용기는 네가 내야 한다’고 알려주려고요.’”

    ‘남자 한번 잘못 만났다고 평생 망한 것처럼 살아서 되겠느냐'고, 미혼 엄마들이 스스로 꼬인 인생 풀면서 살려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친정엄마'처럼 한참을 이야기했다. 현재 패션 브랜드 ‘릴리킴’의 수익금은 모두 미혼 엄마를 돕는 그루맘 사업에 쓰인다.

    김미경은 오십 이후 맞은 갱년기를 인생이 나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시기라고 했다. 그때 잊고 있던 20대 시절의 꿈을 소환해야 한다. 재봉틀을 사고 제 2의 직업으로 패션 디자이너를 선택한 김미경./사진=김지호 기자
    김미경은 오십 이후 맞은 갱년기를 인생이 나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시기라고 했다. 그때 잊고 있던 20대 시절의 꿈을 소환해야 한다. 재봉틀을 사고 제 2의 직업으로 패션 디자이너를 선택한 김미경./사진=김지호 기자
    더불어 조심스럽게 이 사업에 애착을 갖는 이유가 ‘운값’ 때문이라고 했다. ‘운값'이라는 말에 얼마 전에 인터뷰했던 일본 변호사 니시나카 쓰토무의 말이 생각났다. ‘받은 은혜를 갚지 않으면 운이 나빠진다’던.

    -운값을 치러야 한다고요?

    “네. 오십이 넘으니 그런 생각이 나더군요. 체력도 타고났고 살면서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어요.”

    -그 운값은 몇 년 전 논문 표절 의혹으로 슬럼프를 겪으며 치르지 않았습니까? 세상인심이 냉정해서 ‘김미경, 어째 너무 잘나가더라니’ 식의 말들이 무성했지요.

    “너무 빠른 속도로 높이 올라가면 그만큼 힘든 슬럼프를 겪게 되죠(웃음). 2013년 3월 경이었는데,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이제 4년 됐네요. 무엇보다 지지해주던 팬들한테 많이 미안했죠. 힘들 땐 본질로 돌아가요. 예전엔 일하는 나였는데, 그 밑에 있던 게 공부하는 나였어요. 그때 공부를 원 없이 했어요. 물리학, 양자역학, 사주 명리, 중국철학… 우주 생성과 소멸의 법칙을 공부하다 보니 우리 인생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도 과학적으로 풀리더군요.”

    김미경은 “단언컨대 그때 그 슬럼프가 없었으면 아들도 못 살렸을 것”이라고 했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영광과 모욕 사이를 오가는 게 사람인가 말이다.

    -의연하게 극복했군요.

    “아들한테 한 말이 나한테 했던 말이에요. “얼마나 많은 불행이 내 편이 되려고 오는 줄 아느냐?(웃음)” 유명인들, 잘 나가다 신문에서 안 보여도 저는 걱정 안 해요. 아픈 시간 잘 보내고 있구나, 하는 거죠. 5년 전 많이 아팠지만, 그때부터 스타 강사 김미경이 사라지고 ‘그냥' 김미경이 살아나온 거죠. 천운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공부 안 했으면 강의가 진부해져서 더 큰 낭패를 봤을지도 모르죠.”

    -그게 이치에 맞는 인생이다?

    “그렇죠. 단언컨대 인생은 절대 사건 중심 아니에요. 해석하는 데로 풀려요. 그런데 그 해석 능력은 공부해야 나와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멘탈갑 엄마' 김미경 "아이의 자존감? 부모의 완벽한 사과가 먼저"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한테도 엄마가 해결사가 아니라 해석사가 되어야 한다고 한 거죠?

    “맞아요. 지금도 해석해주려고 공부 많이 해요. 아이들은 성장이 곧 질문이잖아요. “엄마, 사랑하는 남자가 싫어졌어.” “엄마, 선생님이 날 갈구는데 어떡하지?” “엄마, 내 친구는 떡볶이값을 나한테만 내라고 한다?” “엄마, 공부는 왜 해야 해?” 이런 말 들으면, “알았어. 엄마가 공부해볼게" 하고는 그때부터 이틀을 붙들고 고민해요. 공자는 뭐라고 했지? 물리학적으로 풀이하면 이 관계가 어떻게 표현되는 거지?

    그러고는 “엄마가 이틀을 생각해봤는데 말이지…”하면서 해석을 해주죠. “인간관계도 웨이트와 같아서 무거운 거 들어야 내성이 생긴다.” “친구가 고의로 삥 뜨는 게 아니면, 떡볶이값 내고 네 마음 편한 게 더 좋지 않니.” “네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쓱 훑어보는 게 공부야. 그 상태에서 네가 더 무슨 일을 보탤 수 있는지 택하는 게 전공이지.” 성심성의껏 답해주는 게 중요하죠. 그냥 “공부해! 싫으면 나가서 돈 벌든가!" 이러면 이건 조폭이죠(웃음).” 질문 안 하는 것 같아도 아이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이 다 질문이에요. 그거를 흘려들으면 안 돼요.”

    -어떤 부모가 가장 위험한 부모인가요?

    “자기 꿈을 대신 아이에게 짐 지우는 부모죠. 아이는 자기만의 천재성을 타고나는데, 그거 무시하고 자기 방식대로 조종하는 부모. 자기 애한테는 관심 없고 옆집 애한테만 관심 있는 부모죠. 그럴 거면 차라리 옆집과 헤어지세요(웃음). 착각하면 안 돼요. 그거 진짜 사랑, 아니에요. 조종하지 말고 존중해야 해요.

    반대로 위대한 부모는 같이 성장하는 부모예요. 나와 아이, 두 생명을 존중하면서. 그래서 30살에 시작하면 60살 정도는 돼야 제대로 된 부모가 돼요.”

    김미경은 자존감이 탄탄한 사람이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자존감은 그녀의 부모가 김미경을 그렇게 대접했기 때문이라고. 둘째 아들이 무너질 때, 그녀가 행했던 ‘자존감 살리기 퍼포먼스’도 모두 김미경의 부모가 그녀에게 했던 것들이다. 새벽 3시의 진수성찬, 자퇴 축하 플래카드 같은 것들…

    -자식을 감동시키는 이벤트에 참 탁월하십니다.

    “다 보고 배운 거죠(웃음). 저는 증평 촌에서 서울로 왔어도 한 번도 서울 애들한테 기죽은 적이 없어요(웃음). 그 잘난척은 ‘잘난 척 하도록 키우는' 우리 집 가풍에서 나왔어요. 제가 고3 때 서울로 피아노 레슨 다니다 감기를 심하게 앓았거든요. 그때 저희 아버지가 증평에서 학교가 있는 청주까지, 차로 1시간 동안 점심을 날랐어요. 설렁탕 그릇을 소쿠리로 덮어 밥상째로 들고서. 무려 3개월 동안을요. 그 정성을 어떻게 잊어요.

    제가 연세대학교 작곡과에 수석으로 붙었을 때, 저희 어머니는 플래카드 걸고 며칠간 동네잔치를 열었죠. 신이 나서 온 동네에 개다리춤을 추고 다니셨어요. 저는 그걸 받아서 둘째가 자퇴한 날 ‘축! 자퇴' 플래카드를 걸어줬죠. 나중에 검정고시로 조기 졸업했을 땐 홍대 지하 까페 빌려서 아들 친구, 친지 다 불러모아 조기 졸업식 열어줬어요. 내 맘대로 상장은 또 얼마나 많이 줬게요(웃음). 그때 아들놈이 한 인사말이 가관이에요. “나는 정말 잘 될 것 같습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멘탈갑 엄마' 김미경 "아이의 자존감? 부모의 완벽한 사과가 먼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의 자존감 텃밭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라고, 강조에 강조를 거듭했다.

    -혹 그러다 잘난 척이 지나치면 자기만 아는 독불장군이 되지 않을까요?

    “옳고 그름은 분별하도록 가르쳐야죠. 선악만 제대로 가르치면 돼요. 반면 아이가 제힘으로 해낸 것만은 맘껏 축하해줘야 한다는 얘깁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계속 부어줘야 해요. 그래야 “난 진짜 괜찮은 아이야"라고 믿어요. 20살 이전에 그 확신을 줘야 해요. 그런데 부모들은 자기 잘난 척에만 목숨을 걸어요. 애한텐 힘을 안 주고, 애 서울대 보내는 거로 자기 힘만 과시하려고 하죠. 잘난 부모를 둔 아이 중에 분노가 많은 게 그래서죠.”

    -아이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뭔가요?

    “(1초도 고민 없이)엄마의 자존감이죠. 자존감은 100% 그대로 노출돼요. 자기는 불안에 벌벌 떨면서 아이한테 ‘괜찮아, 잘 될 거야' 이러면 전달이 안 돼요. 제가 아이의 자존감을 먼저 이야기한 이유는 그래야 엄마들이 따라오니까. 새로운 나이마다 그 나이의 자존감이 필요해요. 사십에는 사십에, 오십에는 오십에 걸맞은 자존감이 있어야죠.

    갱년기 왔다고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바디프렌드 하나 살 돈도 없고…’ 이렇게 나오면 슬픈 거예요. 20대와 50대는 거의 몸과 마음의 변화 수준이 비슷해요. 갱년기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질문하라고 오는 거죠. 우리 모두 20대에 별 고민 없이 얻어걸린 직업으로 생계 유지하며 50대까지 살았잖아요. 그래서 오십이 넘으면 회귀본능이 생겨요. 자연의 이치인 거죠.”

    -20대와 50대가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닮았죠?

    “첫째 시간이 너무 많아. 둘째, 없던 권력이 생겨요. 내 맘대로 해도 터치할 사람이 없죠. 다른 건 있어요. 20대가 불안한 자유라면 50대는 권태로운 자유야. 의무를 다하고 나니 이제부터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불안하죠. 바로 그 시점에 50대는 20대의 꿈을 소환해야 해요. 실제 해보니 너무 좋아요. 디자인하고 재봉틀 돌리고, 옷 만드는 일이 정말 행복해. 그런데 어른들 말씀이 60이 되면 더 좋대요. 아직 가장 좋은 시절은 오지 않았다는 거죠(웃음).”

    -듣기만 해도 즐겁습니다만, 다 돈이 있어야 하는 일 아닌가요?

    “헐벗고 굶주렸다면 그거부터 해결해야죠. 그런데 최소한 먹고살 수만 있으면, 주민센터 취미교실만 이용해도 충분히 가능해요. 모든 꿈은 결국 육체노동이에요. 90%가 열정과 몸이거든요. 소환 즉시 바빠질 수밖에 없고 갈수록 몸이 똑똑해져요.”

    아이의 꿈, 엄마의 꿈이 함께 자라야 한다. 김미경은 84세 병자인 자신의 엄마 홍순 씨의 자존감에도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사진=김미경
    아이의 꿈, 엄마의 꿈이 함께 자라야 한다. 김미경은 84세 병자인 자신의 엄마 홍순 씨의 자존감에도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사진=김미경
    -그런 엄마의 자존감도 결국 그 어머니로부터 대물림되는 거 아닐까요?

    “배우게 되죠. 전 엄마한테 지금도 배워요. 저희 엄마가 83살이신데 7년째 투병 중이에요. 밥도 침대에서 먹죠. 그 상황이면 노인들은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져요.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 한참 풀 죽어 지내시더니, 의사한테 1시간 정도 거동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는 전화가 왔어요.

    “미경아, 나 생일 선물로 재봉틀 하나만 사줘. 홍순희(엄마 이름)가 곧 재봉틀 아니냐? 나 1시간이라도 재봉틀 박을란다. 나는 나답게 살다 죽고 싶어.” 83살 홍순희 씨가 1시간 동안 요만큼 재봉틀 박고는 좋아서 막 웃으세요. 통증이 오면 “통증, 넌 니 할 일 해라. 난 내 할 일 할 껴" 호통도 치시고.

    50년간 온종일 재봉질만 하다 병이 들었는데도, 83살 홍순희 씨는 재봉틀을 자존감의 근거로 높인 거예요. 우리 엄마는 살면서 자기 몸값을 다하셨어요. 반면 우리 아버지는 평생 사고 치고 돈 못 버셨죠(웃음). 심약하게 태어나셨고 책임감도 별로 없었지만, 자식에게는 정말 잘하셨어요. 지금은 70% 용서하고 30%는 괜찮은 점만 보고 살아요.”

    -막내딸은 어떻게 크고 있나요?

    “아주 행복하게 자라요. 막내는 꿈을 일찌감치 정했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파티시에가 되겠다고. 그러면서 자기 직업은 대학을 안 가도 될 것 같대요(웃음). 1시간 동안 초집중해서 빼빼로 만든 후에 도수 치료도 받으러 다녀요. 빵 만드는 레시피를 꼼꼼히 정리해놨는데, 거기서 실패 노트가 가장 큰 보물이래요(웃음).

    저는 한 학기 끝나면 아이들한테 수고했다고 선물과 편지를 주는데, 어느 날 막내가 친구한테 보낸 편지가 그거랑 비슷해서 놀랐어요. ‘이번에도 힘든 환경 변화를 참 잘 겪어냈다. 14년 동안 사느라 진짜 애썼다. 너 같은 훌륭한 아이가 내 자식이라 참 좋구나' 이걸 친구 버전으로 썼더라고(웃음). 그 아이도 인간 대 인간으로 다른 친구를 존중해 나가더라고요. 참, 신기하죠?”

    그랬다. 참, 신기했다. 투병 중에도 웃으며 재봉틀을 돌리는 83세 순희 씨와 깊은 슬럼프를 딛고 ‘국민 언니'에서 ‘국민 엄마'로 거듭난 미경 씨, 씩씩하게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와 자퇴를 자랑으로 여기는 아들, 실패 노트를 보물처럼 간직한 14살 막내 딸까지. 자존감은, 꿈은 저렇게 축복처럼 이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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