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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신용 사회와 그 적들... 돈이란 무엇인가

  • 김지수 문화부장
  • 입력 : 2017.12.08 06:00 | 수정 : 2017.12.08 15:58

    김지수 문화부장
    김지수 문화부장
    회사원들은 새벽까지 인터넷 거래소를 유령처럼 헤매느라 아침엔 좀비같이 넋 빠진 표정으로 앉아 있다. 박봉의 월급을 받던 계약직 직원이 일주일 만에 2천만 원을 9천만 원으로 굴려 현금화한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SNS 투자 무용담에 부러움 섞인 ‘좋아요'가 수백개씩 달린다. 기실 공무원들도 쉬쉬하며 이미 몇 억씩 대출을 받아 ‘몰빵’ 중이다.

    바야흐로 비트코인 광풍이 불고 있다. 한쪽에선 거래소 서버가 다운된 사이 급락한 비트코인 때문에 ‘내 돈 내놓아라'는 곡이 터지고, 한쪽에선 월급으로 받은 비트코인 때문에(블록체인협회의 월급 시스템) 급여 액수가 달마다 춤을 춘다고 난감해한다. 신기술이 세계 통화의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고 주장하는 IT 산업 관계자들과 달리, 경제학자들은 지금의 가상화폐 시장을 위험한 도박판으로 본다.

    동북아 경제연구소 하승주 소장은 SNS를 통해 ‘남들이 다 버블이라고 하고 자기가 생각해봐도 버블이고 그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게임인 경우, 그래도 뛰어드느냐 마느냐 고민하신다면 딱 한 가지만 명심하면 됩니다. 버블이 꺼지는 순간 아무도 탈출하지 못합니다’라고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가상화폐인 리플(Ripple)과 블록체인 기반의 국제 거래 솔루션을 공동 개발한 스텔라 재단의 CTO 제드 멕케일럽도 얼마 전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이 금과 같은 안전자산이 되려면 10년은 있어야 하며, 현재의 투기 열풍은 문제가 있다”고 진단하지 않았던가.

    신기술은 항상 공포와 욕망이라는 두 개의 신발을 신고 우리에게 걸어왔다. 인간보다 우월한 인공지능에 지배당할 거라는 과장된 공포와 화폐보다 우월한 가상 화폐로 떼부자가 될 거라는 가없는 욕망. 만질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액정 위의 숫자에 돈 놓고 돈 먹는 이 아수라 객장은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1816년 영국에서 시작된 금본위제는 1971년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이 금과 미 달러화의 교환을 정지한다고 발표하면서 종료됐다. 이름하여 ‘닉슨 쇼크'다. 이 발표로 세계 경제가 받은 충격은 대단했지만, 비로소 돈은 ‘금의 뒷받침' 없이 통화로 독립할 수 있었다.

    돈이란 과연 무엇일까.

    ‘돈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쓴 일본 파이낸셜 아카데미 그룹 대표 이즈미 마사토는 ‘돈은 신용을 가시화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신용이란 무엇인가. 금융 세계에서는 ‘돈을 갚는 힘' 즉 지불 능력을 신용으로 부른다. 자산이나 수입이 높으면 경제적 신용은 높아진다. 더불어 내 수입은 나의 신용을 수치화한 것이다.

    내가 오늘 지킨 약속이 작은 신용이 되고 그 신용이 미래에서 본 과거로 쌓여 커다란 인간적 신용이 되는 식이다. 작업 기일을 지킨다, 말한 것은 행동으로 옮긴다, 대체로 좋은 결과를 낸다 등등으로 쌓인 신용에는 엄청난 파워가 있다. 신용이 있으면 경력을 높이기 쉽고 신용이 있으면 신용이 좋은 동료들이 다가온다. 신용이 좋은 친구들과 가까이하면 믿을만한 좋은 기회가 많이 열린다. 이것이 신용 경제의 본질이다.

    돈과 신용에 관한 기분 좋은 사례가 있다.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무하마드 유누스는 빈곤에 허덕이는 방글라데시를 구하기 위해 그라민 은행을 세웠는데 그 융자 시스템이 독특했다. 같은 지역에 사는 5명을 한 그룹으로 묶어 차례로 한 명씩 소액대출을 해주었던 것. 먼저 대출을 받은 사람이 융자금을 갚아야 다음 사람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조건이다.

    즉 자신이 돈을 갚아야 동료가 융자를 받기 위한 ‘신용' 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신용 보증인으로 성장해가면서 ‘돈의 본질'인 신용을 배운 방글라데시는 짧은 시간에 세계 최빈국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라민 은행의 정반대에 있던 대출 시스템이 바로 2008년 금융선진국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론이었다.

    은행이 남발한 불량대출의 위험을 폭탄 돌리기처럼 다른 금융기관의 신용에 복잡하게 얹어 전가한 이 부도덕한 시스템으로, 세계 경제의 신용은 크게 휘청거렸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엔 다시금 매도자가 매수자에게 점점 ‘부풀려진 가상화폐’를 돌리고 빠지는 위험한 풍경이 전국에 생중계 되고 있다. ‘투기’를 21세기 시대 정신으로 외치며 사회 전체가 돈 놓고 돈 먹는 시스템으로 움직이던 금융 위기 직전의 분위기와 소름 끼치도록 비슷하다.

    비트코인 열풍은 일종의 집단 환각이다. 이 돈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믿음의 공유에서 가치가 나온다. 안타깝지만 신용이 아닌 욕망을 중심으로 재편된 화폐 매트릭스의 환각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네오는 없다.

    국민 전체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호시절은 지나갔어도, 여전히 돈을 모을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이 운명을 나누는 것은 ‘저축이 습관화되어있느냐'다.

    수입이 적어도 꾸준히 저축하는 사람이 있고, 수입이 높고 아이가 없어도 저축한 돈이 거의 없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많든 적든 무조건 수입의 20%는 따로 떼어 저축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는 일본 최고 금융전문가의 소박한 조언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다. ‘인생 한방’, ‘일확천금'을 꿈꾸는 신용 사회의 적들은 코웃음 칠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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