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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

[가상화폐 광풍] "새벽 4시 일어나 시세 확인"...작전세력도 등장

  • 이민아 기자

  • 입력 : 2017.12.07 07:34

    연봉 3500만원을 받으며 중소기업에 다니던 이모(30)씨는 지난 8월 회사를 그만뒀다. 가상화폐에 투자하면 한달치 월급을 하루만에 벌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씨는 퇴사 후 가상화폐를 2개월간 공부해 지난 11월 초 2000만원을 투자했다. 그리고 3주만에 1000만원을 벌었다.

    이씨는 “가상화폐로 돈을 훨씬 더 많이 버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며 회사에 다닐 필요가 있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내게 코인은 투기가 아니라 정보를 미리 알고 돈을 버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새벽 3~4시에도 주기적으로 일어나서 가상화폐 시세를 본다고 전했다. 이씨는 “가상화폐는 국경도, 장 마감도, 상한가 하한가도 없기 때문에 꾸준히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가상화폐 투기 광풍이 번지면서 일상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가상화폐 거래에 신경을 쏟고 있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일부는 “본업보다 가상화폐 거래가 훨씬 중요하다”면서 실시간으로 변하는 가상화폐 가격을 보느라 일을 뒷전으로 미루는 경우도 있다. 소수의 투자자들만 알던 가상화폐가 널리 알려지면서 이른바 ‘묻지마 투자’로 큰 손실을 보는 경우도 발생했다.

    최근 벌어진 가상화폐의 가격 변동폭은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원’에 상장된 ‘아이오타’가 가장 컸다. 아이오타는 12월 1일만 해도 가격이 1개당 1400원대였다. 하지만 지난 4일부터 2600원대로 올라선 이후 6일 현재 최고 9580원까지 상승했다. 5~6일 이틀간 상승률이 약 80%에 달했다.

    6일 새벽 아이오타의 가격은 1개당 5400원대까지 순식간에 추락했다가 오전 9시 9000원대를 돌파하며 출렁였다. 7일 현재는 다시 5400원까지 폭락했다. 8000원대에 아이오타를 구입했던 직장인 이모(27)씨는 “순식간에 돈 백만원이 사라졌다”면서 “이 코인이 왜 오르는지도 모른 채 마냥 오를 줄 알고 샀다가 낭패를 봤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기념 주화. 실체가 없는 가상화폐를 금으로 주조해 만들어 판매하는 업체까지 등장했다./사진=이민아 기자
    가상화폐 기념 주화. 실체가 없는 가상화폐를 금으로 주조해 만들어 판매하는 업체까지 등장했다./사진=이민아 기자
    가상화폐 시세를 보느라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직장인 강모(31)씨는 요즘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면 30분에 한번씩 스마트폰을 들여다 본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가상화폐 거래소에 접속해 자신이 구입한 가상화폐 ‘이더리움 클래식’과 ‘비트코인 캐시’의 호가 창을 확인한다. 그는 6일 아이오타 대란 때 하루 종일 거래소 홈페이지에 접속해 있었다고 했다.

    강씨는 “요즘 데이트 하면서 가상화폐 가격을 주기적으로 습관처럼 보고 있다”면서 “남자친구도 가상화폐에 꽤 많은 돈을 투자했기 때문에 데이트하면서 주기적으로 함께 가격을 확인하는 것이라서 다툰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최근 들어 대화의 주제가 지나치게 가상화폐로 쏠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서로 ‘가상화폐를 언제 사고 언제 팔아야 하느냐’를 물어보며 데이트 시간의 반 이상을 보낸다”고 말했다. 그는 가상화폐 투자로 수백만원을 벌어들이는 남자친구를 보며 본인도 회사를 그만두고 전문 투자자로 나서볼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 “가상화폐 투자는 개미 무덤”...주식 시장처럼 ‘세력’ 등장

    해외 메신저 앱인 ‘텔레그램’에서는 가상화폐 ‘펌핑(pumping)세력’들이 활개치고 있다. 펌핑 세력이 ‘언제 어떤 코인이 얼마나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는 메시지를 단체 메신저 창에 보내는 식이다. 이들 채팅방이 특정 코인의 시세를 끌어올린다는 의미로 ‘펌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들 펌핑 세력은 주로 시가총액이 작은 마이너 코인들을 대상으로 움직인다. 이들에 의해 시세가 하루만에 2배 가까이 상승하는 코인들도 있다. 이들이 개입하는 마이너 코인들은 시세가 하루에도 수십퍼센트 이상 등락하다가 급격히 떨어진다.

    이들 채팅방 운영진은 시세를 조종하면서 수백만원에 달하는 월회비를 내는 VVIP들에게 일반 채팅창 참여자들보다 더 빨리 가상화폐 정보를 제공해 더 큰 차익을 낼 수 있도록 한다. 국내에도 참여자 수가 1만7300여명에 달하는 디바(D.va)라는 펌핑 세력이 있다. 이들은 특정 코인에 호재가 있다는 점을 알리고 그 시점에 물량을 매수하라고 알린다. 급격히 상승하는 시세를 본 개미들이 뛰어들기 시작하면 세력들은 가상화폐 보유분을 매도해 차익을 실현한다.

    가상화폐에 돈을 투입하는 개미 투자자들의 대다수가 이들 세력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다. 가상화폐 투자 8개월차인 직장인 박모(26)씨는 “펌핑 세력의 메시지가 절반 이상은 맞아떨어진 편”이라면서 “비록 일부는 폭락해 돈을 좀 잃었지만 세력들을 따라다니면서 수익을 좀 냈다”면서 “이 채팅방에서 메시지가 올까 노심초사하면서 시간을 보내느라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박씨는 “투기니 시세조종이니 해도 따라다니면서 돈을 벌었으면 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 가상화폐 때문에...금·은 등 전통 현물 거래 시장 위축

    가상화폐 열풍은 현물 거래 시장의 판도도 바꿔놓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등락폭이 적은 비트코인이 점차 ‘안전 자산’처럼 여겨지면서, 금·은 등 전통적인 현물 안전자산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 조폐국이 판매한 아메리칸이글 금·은화의 판매량은 지난 11월 기준 1만2000온스로 전년 동기 대비 92% 감소했다. 이는 전달 판매량인 1만5500온스보다도 3500온스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은화는 38만5000온스가 팔려 전년 대비 87%, 전월 대비 63% 판매량이 감소했다.

    피터 허그 키트로코메탈스 글로벌트레이딩디렉터는 “현물거래에 관심을 잃은 개인 투자자들의 매도량이 많아 현물에 붙는 프리미엄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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