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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잡이' 낚싯배 4500척… 그들의 위험한 질주

  • 금원섭 기자

  • 최종석 기자

  • 입력 : 2017.12.07 03:11

    [낚시꾼 태우는 어선들, 위치 장비 꺼놓은 채 바다 휘젓고 다닌다]

    낚싯배가 잡는 고기 11만6000t… 오징어 1년치 어획량과 맞먹어
    '명당' 뺏길까봐 위치 정보 끄고 경차에 스포츠카 엔진 달듯 개조

    규제 없어 어민 피해, 어자원 파괴
    미국은 면허제, 독일은 낚시시험, 뉴질랜드는 하루 어획량 제한

    낚시꾼을 태우는 영업용 어선 4500척이 1년 내내 전국 어장을 휘젓고 다니며 아무런 제한 없이 조업하면서 한 해 동안 이들이 낚는 물고기가 전체 어획량(무게 기준)의 1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선을 무게 기준으로 단순 환산하면 횟집이나 가정집 식탁에 오르는 생선 8마리 중 1마리는 낚시꾼이 잡은 생선인 셈이다.

    6일 수협중앙회 산하 수산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바다 낚시꾼들이 한 해 동안 잡는 생선량이 11만6000t으로 우리나라 연간 오징어 어획량과 맞먹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최근 1년간 바다낚시 경험이 있는 성인 남녀 5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들은 한 해에 평균 8번씩 바다낚시를 나갔고, 한 번에 6.5㎏ 정도의 물고기를 잡았다고 답했다. 여기에 수산경제연구원이 파악한 바다낚시 인구(224만명)를 곱했다. 낚시꾼들은 물고기 크기나 번식 시기를 가리지 않고 마릿수 제한 없이 생선을 잡고 있어 어(魚)자원 고갈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민들 "낚시꾼들이 물고기 씨 말린다"

    충남 지역 어민 이모(58)씨는 "주꾸미가 제철인 8월이 되면 영업용 낚싯배가 한 번에 낚시꾼 20명을 태우고 나가 1인당 5㎏씩, 전체 100㎏쯤 잡는다"면서 "이렇게 하루 세 차례 나갔다 오면 물고기 300㎏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작 물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우리 동네 어민들은 하루 5~6시간 바다에 나가도 40~50㎏밖에 못 잡는다"며 "어민들은 금어(禁漁) 기간도 지켜야 하고 정해진 어장을 벗어날 수 없지만, 낚시꾼들은 아무 제한도 없이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해외 선진국들은 낚시를 어떻게 관리하나
    원래 고기잡이배에는 어민만 탈 수 있었다. 영업용 낚싯배 제도가 도입된 것은 지난 1996년이었다. 어민들의 어한기(漁閑期) 소득 보전을 위한 부업으로 허용된 것이다.

    하지만 영업용 낚싯배가 애초 도입 취지와는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어민 김모(56)씨는 "외지인들이 10억원씩 하는 전용 낚싯배를 들여와 손님을 받는다"고 했다. 이런 낚싯배는 고성능 엔진을 달아 물고기가 잘 잡히는 포인트까지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해수부는 전체 낚싯배(4500척)의 절반 정도가 낚시꾼을 태우는 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배로 파악하고 있다. 수협 관계자는 "이들은 '무늬만 어업인'인데도 어민으로 행세하면서 면세유 혜택도 받고 있는 등 문제가 많다"고 전했다.

    "낚싯배, 경차에 스포츠카 엔진 단 셈"

    낚시꾼을 태우는 영업용 어선들은 심각한 안전 문제를 안고 있다. 어선이나 여객선은 자기 위치를 다른 배와 기지국에 알려주는 장치(AIS)를 달아야 하지만, 낚싯배에는 이런 의무가 없다. 어업계 관계자는 "낚싯배 중에 위치를 알려주는 장치를 단 경우도 있지만 출항하면 곧 이 장치를 꺼버리는 게 보통"이라고 전했다. 다른 낚싯배들에 고기가 잘 잡히는 포인트가 알려지는 걸 꺼리는 게 주요 이유다.

    낚싯배 안전사고는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 2013년 77건이던 낚싯배 사고는 지난해 208건으로 3배가 됐다. 올해도 8월까지만 160건이나 사고가 터졌다. 정원 초과, 음주 운전 등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아 적발되는 건수도 지난 2014년 112건에서 지난해 853건으로 7배로 늘었다.

    낚싯배들은 정식 어선과 달리 조업 구역 규제가 느슨해 초장거리 원정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 해경 관계자는 "서해에서 고기 잡던 낚싯배가 제주도까지 진출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해수부가 작년 12월~올 3월 낚싯배를 운영하는 16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80㎞ 이상 배를 몰고 나가 낚시한다는 응답이 15%나 됐다.

    일부 낚싯배는 엔진 마력을 과도하게 높이기도 한다. 새벽 시간에 좋은 포인트를 선점하기 위한 속도 경쟁 때문이다. 한 낚싯배 선주는 "스피드 자체가 가장 큰 경쟁력"이라며 "그러지 못하면 손님 다 빼앗긴다"고 말했다. 해양 전문가들은 "이런 낚싯배들은 경차에 스포츠카 터보 엔진을 단 셈인데 선체가 감당하겠느냐"며 "충돌하면 더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대부분 '낚시 면허제' 시행

    미국·캐나다·호주와 유럽 대부분 나라는 '낚시 면허제'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정한 요금을 내거나 관련 교육을 받은 사람만 낚시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미국에선 별도 요금을 내야만 낚시 면허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어종별로 잡을 수 있는 크기와 양도 정해져 있다.

    독일은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한 사람만 낚시를 할 수 있다. 시험은 다양한 어종과 물속 생태계, 낚시용품 등에 대한 소양을 테스트한다. 뉴질랜드는 민물낚시만 면허제로 운영한다. 바다낚시의 경우 하루 잡을 수 있는 최대량과 물고기 크기,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제한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관련 규제가 전혀 없다. 낚싯배 사고가 날 때마다 '낚시 면허제' 내지 '낚시 신고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낚시업계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김임권 수협중앙회장은 "국민이 낚시를 즐길 권리가 어민의 생존권, 바다 생태계 보호 등과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낚시꾼에 의한 어자원 남획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만큼 정부가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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