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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선 르포]④ "자율운항선박 시대요? 바다엔 변수 너무 많아 자율주행차와는 다르죠"

  • 부산·상하이=조지원 기자
  • 입력 : 2017.12.06 06:01

    ‘원가절감·생산성 향상’ 터미널 완전무인자동화는 진행중
    “한국 컨테이너터미널 자동화 기술, 중국의 절반 수준"

    “쓰리(3), 제로(0), 원(1)”

    지난달 25일 광양항을 떠나 상하이 와이가오차오항으로 가는 현대포스호 브릿지(선교)에서 문정규 3등 항해사는 필리핀인 조타수에게 쉬지 않고 방향을 지시했다. 조타수가 복명복창 후 오토파일럿(자동조타장치)에 지시받은 방위를 입력하는 동안에도 3등 항해사는 전방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항해사는 항해 중이거나 정박 중인 다른 선박을 피하기 위해 잠시도 쉬지 못하고 선박 방향을 계속 바꿨다. 특히 어선이나, 어선이 쳐놓은 그물을 육안으로 식별하고 피하는 일은 항해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항해사들은 레이더로 선박을 탐지한 후에도 재차 확인하면서 방향을 틀고 또 틀었다.


    현대포스호에서 전방을 주시 중인 3등 항해사와 조타수 /조지원 기자
    현대포스호에서 전방을 주시 중인 3등 항해사와 조타수 /조지원 기자
    중국 연안에 가까워지자 상선, 어선 구분할 것 없이 수많은 선박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핏 봐도 레이더에 잡히는 배만 수십 척이 넘었다. 하지만 항해사들은 이 정도로는 어선이 많은 편도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현대포스호는 거대한 덩치를 이끌고 여러 선박 사이를 빠져나갔다.

    선원 없이 원격 조종으로 항해하는 자율운항선박(무인선박) 개발 과정에서도 충돌회피가 핵심 기술로 꼽힌다. 특히 바다는 육지처럼 정해진 도로가 없고 날씨 등 여러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충돌회피가 더욱 중요하다. 지난 10월 영국 롤스로이스(Rolls-Royce)는 자율운항선박 개발 과정에서 구글과 손잡고 물체를 미리 탐지하고 식별해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을 개발하기로 했다.

    현대포스호 항해사들은 바다에서도 언젠가는 자율운항시대 도래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해진 포장 도로를 달리는 자율주행차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자율운항선박은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아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레이더에 잡히는 선박은 쉽게 피할 수 있겠지만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선박이나 그물은 육안으로 봐야만 피할 수 있다. 목선(木船)이나 그물을 표시하기 위한 부표에 레이더가 잡을 수 있도록 센서를 부착해야 한다면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호 현대포스호 선장은 “중국이나 인도 연안에 가보면 레이더에 잡히지도 않는 나무로 만든 작은 어선들이 바다 위에 꽉 차 있다”며 “자율운항선박이 성공하려면 유럽, 미국이 아닌 중국, 인도 앞바다에서 시범운행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중국 인근 해역에 떠있는 선박들 /조지원 기자
    중국 인근 해역에 떠있는 선박들 /조지원 기자
    ◆ 브릿지부터 기관실까지 곳곳에 사람 손때 묻어

    해운업계에서 최근 자율운항선박 개발에 속도가 붙고 있다. 무인선박 개발 프로젝트인 AAWA(Advanced Autonomous Waterborne Applications)를 주도하는 롤스로이스는 2035년까지 원양 선박의 완전 무인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 선사 NYK도 2019년 북미 노선에서 자율운항선박을 시범 운항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2035년 무렵엔 선원 한 명 없는 완전 자율운항선박을 보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선박은 사람 손길이 많이 필요했다. 현대포스호엔 선장, 기관장을 포함한 해기사 12명과 필리핀 부원 11명 등 23명 모두 자기 위치와 업무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선박을 운항하기 위한 최소 인력이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빠지면 운항이 어려울 정도다.

    항해 장비가 모여 있는 브릿지엔 사람이 없는 경우를 막기 위한 장치까지 있다. 선교항해감시경보시스템(BNWAS)은 브릿지에서 12분 동안 아무 조작이 없으면 경보음을 울렸다. 3분 안에 알람을 끄지 않으면 선장실 등 외부에도 비상벨이 울려 다른 선원이 즉시 달려올 수 있게 했다. 선장실과 UPP데크 등 주요 시설엔 브릿지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있다.

    메인 엔진 등이 모여 있는 선박 기관실에서도 사람이 할 일은 많았다. 기관사들은 엔진, 보일러 등 주요 설비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상태를 점검했다. 특히 선박연료유는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필터를 거쳐 엔진에 공급하는데, 좋지 않은 기름일 경우 찌꺼기가 많이 쌓여 필터가 빨리 막힌다. 선박연료유에 따라 필터가 몇 시간 만에 막힐지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기관사들은 수시로 확인해 일일이 손질했다.

    방종문 현대포스호 기관장은 “기관실은 한 군데라도 잘못되면 바로 셧다운(정지)되는데, 사람이 없으면 돌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겠냐”며 “기계 종류가 많고 사람 손길이 많이 필요한 디젤엔진으로는 무인화가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율운항선박엔 전기배터리가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미국 롱비치항 내 무인운반장치 /롱비치컨테이너터미널 홈페이지
    미국 롱비치항 내 무인운반장치 /롱비치컨테이너터미널 홈페이지

    ◆ 터미널은 완전무인자동화 진행 중이지만…“한국은 중국 기술력 절반 수준”

    선박과 달리 항만은 이미 완전무인화가 진행 중이다. 완전무인자동화터미널은 크레인, 트랙터 등 터미널 내 모든 설비를 무인자동화한 것으로 인건비‧동력비 등 운영비용을 기존 터미널 대비 37% 이상 줄일 수 있다. 터미널 안에서 화물을 싣고 내리는 작업을 모두 AI 기반으로 한 무인장비들이 맡아서 한다. 터미널을 완전무인자동화하면 생산성은 기존 터미널 대비 40% 이상 높이면서 하역비는 낮출 수 있다. 즉 항만의 경쟁력이 높아진다. 주요 글로벌 항만들이 무인화에 나서는 이유다.

    네덜란드 로테르담항, 미국 롱비치항 등은 이미 완전무인자동화터미널를 개장해 운영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안벽 크레인까지 무인화해 ‘로보틱 항만’으로 불리고 있다. 싱가포르도 2045년까지 65개 선석을 모두 무인화할 계획이다. 중국도 완전무인자동화 컨테이너터미널을 공격적으로 조성하고 있다. 지난 5월 아시아에서 최초로 칭다오항에 완전무인자동화 컨테이너터미널을 만들었고, 세계 1위 상하이항도 올해 안에 완전무인자동화터미널을 개장할 예정이다.

    반면 한국의 부산항, 인천항 등에서는 야드 자동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야드 자동화는 야드 크레인 4~5기를 사무실에서 한 명이 맡아서 조종하는 수준이다. 핵심인 갠트리 크레인 무인화나 무인운반장치(AGV)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국내 컨테이너터미널은 모두 반자동화 항만으로 중국 대비 기술력이 절반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해양수산부는 제3차 전국항만기본계획을 통해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고(高)생산성화, 무인자동화, 친환경화를 위한 차세대 스마트포트 구축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완전무인자동화, 100% 전기 동력 사용 등을 할 수 있는 시범터미널을 2025년부터 건설할 계획이다.

    항만이 완전무인자동화하면 기존 장비 운전인력, 사무직 등 일자리 80%가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와 관련, 해외 자동화터미널은 기존 인력을 로보틱 장비 모니터링, 원격운전 보조, 고도화 시스템 유지보수, IT 관리 등 고부가가치 항만인력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KMI는 “무인자동화항만분야는 기계, 전기, 전자, IT, 물류가 융합된 복합산업”이라며 “고부가가치 신규직종 창출, 항만 연수원 프로그램 개편, 인공지능 기반 항만운영 신기술 개발 및 신속한 도입 등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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