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엔 악마가 프라다를 입었다. 그러나 11년이 흐른 올해 메릴 스트립(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패션잡지 편집장으로 나온 배우)은 아마 프라다를 입지 않을 것이다. 과거 프라다의 위상은 도시의 야경을 배경으로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초고층 빌딩의 스카이라운지였다면, 지금은 그 빌딩 저층부의 레스토랑 정도로 떨어졌다.
급격한 위상 추락을 겪은 브랜드는 프라다 외에 조르지오 아르마니, 살바토레 페라가모 등이 있다. 이들 명품 브랜드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프라다는 위기 상황이다. 2013년 70홍콩달러를 웃돌던 주가는 현재 30홍콩달러도 되지 않는다(프라다는 홍콩 증시에 상장돼 있다). 2016년도(2016년 2월~2017년 1월) 매출액은 31억3929만유로(약 4조2021억원)로 전년보다 10.3% 감소했다. 2013년 이후 줄곧 하락세다. 매출액보다 이익이 더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2016년도 세전 이익은 4억1543만유로(약 5561억원)로 2013년보다 55% 줄었다. 당기순이익도 2013년 6억3781만유로에서 2016년 2억8419만유로(약 3804억원)로 역시 55% 감소했다. 순이익률은 같은 기간 17.8%에서 8.9%로 크게 떨어졌다.
프라다의 실적이 악화되고 있는 주요 원인은 중국의 반(反)부패 운동이다. 프라다 실적이 꺾이기 시작한 2014년엔 홍콩과 마카오를 포함한 중화권 매출액이 6.3% 감소했다. 루이뷔통 등 다른 명품 브랜드도 역시 중국과 홍콩에서 부진한 판매 실적을 보였다. 중국 본토의 부호들이 에르메스나 샤넬과 같은 더욱 고급스러운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도 프라다 부진의 한 이유다. 프라다의 부진은 작년까지 계속됐다.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2016년 매출액은 전년보다 10% 감소했다.
다른 원인은 하락하는 브랜드 가치다. 브랜드 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가 발표하는 '세계 100대 브랜드' 순위에서 지난해 프라다는 81위를 차지해 2015년의 69위에서 12계단 내려갔다. 반면 루이뷔통과 에르메스, 구찌는 순위가 상승했다.
프라다는 3년째 계속되는 실적 부진에 대처하기 위해 판매 채널을 정비하고 있다. 프라다 CEO 파트리치오 베르텔리는 2016년을 "도전적인 전환의 해였다"라고 표현했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 매장을 더 많이 여는 대신 기존 매장을 고객이 더 쇼핑하기 좋도록 리모델링하고, 팝업 스토어와 같은 새로운 콘셉트를 시도하고 있다.
투자가 집중되는 분야는 온라인 채널이다. 패션 전문지 '패셔니스타'에 따르면 명품 브랜드 온라인 편집숍 '네타포르테(Net-A-Porter)'나 '마이테레사(MyTheresa)'에서 프라다 제품이 판매가 호조를 보였다. 프라다는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 판매 전략을 세울 인력을 채용했다. 또 밀레니얼 세대를 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해 좀 더 저렴한 가격대의 핸드백을 출시했다.
아르마니는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1975년 만든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다. 의류, 액세서리, 시계, 주얼리, 향수, 화장품, 가구 등 '패션'이라고 불리는 넓은 분야에 걸쳐 있지만, 시작은 남성 정장이었다. 의대생이었던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평소 패션 감각이 뛰어났고, 패션에 대한 열정 때문에 의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밀라노의 고급 백화점 라 리나 센테에 바이어로 취직했다. 패션과 관련한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감각을 인정받아 이탈리아 브랜드 니노 세루티의 남성복 디자이너가 됐고, 이후 친구 세르지오 갈레오티와 함께 '조르지오 아르마니'라는 브랜드를 출시했다.
아르마니의 성공을 상징하는 사건은 2010년 일어났다. 두바이 부르즈할리파에 '아르마니 호텔'이 문을 열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디자인하고 투자했으며, 부르즈할리파의 12개층 객실 160곳과 고급 식당 8곳, 스파 시설 등을 갖춘 초호화 호텔이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아르마니는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25억1000만유로(약 3조3627억원)로 전년보다 5% 감소했다. 다만 순이익은 비용 절감 등의 노력으로 전년의 2억4100만유로에서 2억7100만유로(약 3630억원)로 증가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실적 부진에 대해 "2016년은 패션과 럭셔리 업계에는 힘든 한 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거시 경제적 요인과 소비 패턴의 전반적인 변화가 원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른 명품 브랜드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LVMH, 에르메스 등은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보다 5% 이상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아르마니의 부진의 원인으로 지난 몇 년간 아르마니가 추진한 브랜드 다변화 전략을 지적한다. 특히 중급 브랜드를 확장하는 전략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루이뷔통은 저가 품목을 줄이고 고가 상품을 늘려 매출액이 늘었다. 중가 제품에 집중하느라 고가 액세서리 시장에서 아르마니의 매력은 루이뷔통이나 구찌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다.
지난 7월 아르마니는 실적 부진에 대한 대책으로 7종의 브랜드를 3종으로 통폐합하기로 했다. 대표 브랜드인 '조르지오 아르마니', 중급 브랜드인 '엠포리오 아르마니', 젊은층을 겨냥한 저가 브랜드 '아르마니 익스체인지'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고급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 프리베', 인테리어 브랜드 '아르마니 까사'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에 통합되고, 보급형 브랜드 '아르마니 꼴레지오니', 청바지·캐주얼 브랜드인 '아르마니 진스'는 엠포리오 아르마니에 흡수된다.
2000년대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구두 '바라'는 단정한 스타일로 꾸미기 원하는 부유층 여성의 필수 아이템이었다. 바라는 페라가모 창업자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첫째 딸인 피암마 페라가모가 디자인한 여성화다. 앞코가 둥글고 굽이 낮아 활동하기 편하고, 구두 앞부분의 리본 장식이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현재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성장은 정체돼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4억3790만유로(약 1조9261억원)로 전년보다 0.6% 증가하는 데 그쳤고, 영업이익은 2억6070만유로(약 3492억원)로 전년보다 1.5% 감소했다. 매출액과 영업이익 증가세가 둔화되다가 지난해엔 영업이익이 감소로 돌아선 것이다. 고객이 예전보다 페라가모를 덜 찾게 됐기 때문이다.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매출액이 줄었다. 서울 주요 백화점에서도 매장이 사라졌다.
오랫동안 페라가모를 이끈 미셸 노르사 전 CEO에 이어 지난해 8월 CEO에 취임한 에랄도 폴레토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 있는 매장을 활성화시키고, 제품군을 새롭게 혁신하려 한다. 이를 통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페라가모의 매출 성장률을 명품업계 평균의 두 배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에랄도 폴레토는 디자인 개선을 위해 마시밀라노 지오네티를 대신해 젊은 세 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발탁했다. 기욤 메이앙은 남성복을, 폴 앤드루는 여성화를, 풀비오 리고니는 여성복을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