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책

가상화폐 인정한 일본 정부 고백 “인가제로 투기만 키웠다”

  • 김형민 기자
  • 입력 : 2017.12.05 09:58

    "가상화폐를 규제하기 위해 거래소 인가제를 도입했는데, 오히려 투기를 조장한 꼴이 됐다"

    지난 1일 한국에서 열린 제10차 금융감독 협력 세미나에 참석한 히미노 료조 일본 금융청 차관은 이렇게 말했다. 가상화폐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방침은 상당히 앞서나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일본 금융당국 차관의 고백은 세간의 평가와는 사뭇 달랐다.

    히미노 차관은 "곤혹스럽다"는 말까지 했다고 알려졌다. 가상화폐와 관련해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거래소 관리·감독을 하기 위해 인가제를 도입했는데, 오히려 이것이 가상화폐 거래소의 홍보수단이 됐다는 것이다. '규제의 역설'이었다.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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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전세계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가상화폐 거래소 인가제를 도입했다. 일본은 이미 지난해 5월부터 가상화폐와 관련한 법률을 개정하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치면 은행법을 개정했고 자금세탁방지 규정을 도입했다.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인가제와 등록제를 도입해 사실상 가상화폐 거래를 금융당국이 관리·감독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이같은 가상화폐 거래소 인가제 도입은 비트코인 등 대표적인 가상화폐가 테러자금으로 흘러가거나 범죄조직의 자금세탁 등으로 악용될 수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또 금융당국의 관리와 감독을 통해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방점을 뒀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예상했던 가상화폐 인가제는 오히려 관련 시장에 열풍을 불어 왔다. 일본 가상화폐 거래소 업체들은 정부의 인가제 도입을 광고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공신력을 인정받아 ‘우리는 안전하다’고 홍보했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영업행위에 대한 책임을 업체가 아닌 정부가 지게 된 형국이 됐다.

    그 결과 일본의 가상화폐 투자는 갈수록 늘어났다. 전세계적으로 엔화 거래 비트코인은 전체 비트코인 거래에서 62%를 차지한다. 달러화 비트코인 거래가 21%, 원화가 9%인 것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다.

    일본 금융당국자의 '고백'은 현재 우리 금융당국의 고민과 맞닿아있다. 블록체인 협회와 국회 등은 가상화폐 거래소 인가제를 도입해 소비자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는 오히려 정부의 인가가 가상화폐 거래소에 공신력을 부여해 가상화폐 거래를 금융업으로 인정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 4일 국회 공청회에 참석해 “정부는 가상화폐를 금융시장으로 보지 않고 있고 자금세탁, 탈세, 소비자 보호 등의 관점에서 규제할 것"이라며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사례에 반면교사 삼겠다는 우리 정부의 가상화폐 관련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반대로 시장 참여자들의 요구도 거세질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는 규제를 통해 기술의 발전과 소비자 피해 최소화라는 두가지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다”며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는 금융당국 입장에서 가상화폐 인가제 혹은 ICO도입은 당장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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