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 대가: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CEO]금융위기 예견한 투자의 달인… 세계 최대 헤지펀드 키우다

  • EconomyChosun 
  • 김종일 기자
    입력 2017.11.25 21:45

    2009년 미국 재무부는 19개 대형 은행에 대해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했다. 이 결과를 발표한 날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웃음을 띠며 문서 하나를 건넸다. 브리지워터의 검토 보고서였다. 보고서 표지 제목은 '동의한다(We agree)'였다. 재무부가 실시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 공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일화는 세계 최대 헤지펀드로 평가받는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Bridgewater Associates)를 이끌고 있는 레이 달리오(Ray Dalio)가 미국 정부나 중앙은행 관계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브리지워터는 처음에는 기업들에 리스크 자문을 해주고 경제 보고서를 작성해주는 회사로 출발했다. 당시 보고서를 본 데이비드 모펫 전 프레디맥(미 국영 모기지 업체) 최고경영자(CEO)는 "지금까지 읽은 것 중 경제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가장 잘 설명해준 보고서"라고 평가했다. 보고서에 감명받은 세계은행의 연금투자부문 최고운용담당자(CIO)는 브리지워터에 500만달러 채권 투자금을 맡겼다. 이후 브리지워터는 글로벌 채권, 통화, 주식 등에 투자하는 헤지펀드 업체로 변신했다.

    브리지워터는 위기에 강했다. 다른 헤지펀드들이 마이너스 수익률로 고생하던 1998년, 2003년, 2008년에 큰 성과를 거뒀다. 글로벌 헤지펀드 업계가 유럽 재정위기로 큰 시련을 겪었던 2011년에는 나홀로 23%라는 수익률을 달성하며 '세계 최고' 자리에 올라섰다. 브리지워터의 대표 펀드인 퓨어알파펀드가 2011년 기준 358억달러(40조원)의 누적 순익을 기록해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312억달러)를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선 것이다.

    '불황지수' 개발해 리스크 줄여


    브리지워터는 2007년 금융위기를 예견한 것을 비롯해 지속적으로 탁월한 실적을 내고 있다. 헤지펀드 업계 수익률이 대부분 마이너스를 기록한 2010년에 45%라는 기록적인 수익률을 달성했다. 현재 브리지워터는 1540억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헤지펀드 회사가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달리오를 '매크로(거시) 투자기법의 달인'이라고 평가했다. 금리와 환율, 경제 상황 등 거시지표를 중시한다는 판단이다. 거시지표를 중시하는 그는 신기하게도 시장과 다르게 움직인다. 바로 그가 2000년에 개발한 '불황지수(depression gauge)' 덕분이다.

    불황지수는 미시지표와
    거시지표를 종합해 경기불황을 판단

    불황지수는 그가 수차례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피할 수 있게 해준 효자다. 불황지수는 개인과 기업의 부채 증가세 같은 미시지표와 금리와 주식의 급락과 같은 거시지표 등을 종합해 경기불황을 판단한다. 가령 브리지워터에서는 기준금리가 0%에 가까운 수준이 되면 더 이상 지표로서 금리를 신뢰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금리와 관계된 상품 포지션을 줄여 리스크 관리에 들어간다.

    대신 브리지워터는 적은 수익이라도 돈을 벌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든 투자한다(go anywhere)'는 투자 전략을 갖고 있다. 고수익을 노려서 리스크를 키우기보다는 전 세계를 누비면서 적은 수익이라도 꾸준히 올리는 원칙을 지킨다.

    또 달리오는 투자하는 상품 간의 관계를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리스크를 대폭 줄였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통화에 투자할 때 달러화와 같은 기축통화와 신흥국 통화에 동시에 투자해 리스크를 줄인다. 하지만 달리오는 달러화에 투자하면 달러화의 등락에 따라 변동되는 상품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달걀(투자)을 모두 다른 바구니에 담는 것이다. 이런 원칙 덕에 브리지워터에는 '손절매'라는 개념이 없다. 또 이런 리스크 관리 시스템에 힘입어 브리지워터가 지난 20여년간 12% 이상의 손실폭을 기록한 것은 단 두 번뿐이다.

    레이 달리오는 2015년 미국 백악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도 했다. /블룸버그

    소통·투명성 강조… "실패로부터 배우자"


    "레이, 당신은 오늘 50분 동안 횡설수설하더군요. 전혀 준비하지 않은 게 분명했어요. 그 고객은 반드시 유치했어야 했는데…. 오늘 정말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달리오가 고객과 투자 상담을 한 이후 그 자리에 배석했던 직원으로부터 받은 이메일 내용이다.

    달리오는 이 이메일을 전 직원에게 공개하면서 이 직원을 본받으라고 했다. 브리지워터에선 이른바 '뒷담화'가 금지돼 있다. 할 말이 있으면 본인에게 직접 하라는 것이다. 최고경영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밝히는지가 브리지워터의 주요 인사 평가 기준이다.

    달리오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찾아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것을 최고의 투자원칙으로 삼고 있다. 과거의 성공 기억에 매달려 잘못된 자신감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다. 달리오는 직원들이 자신의 말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이견(異見)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기업 문화를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많은 공을 들였다.

    또 브리지워터는 소통과 투명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임직원의 하루 일상을 비디오카메라로 녹화하게 한다. 문제 있는 의사결정을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빅브라더'를 방불케 하는 이런 시스템 때문에 이직률도 높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브리지워터의 경우 사내 직원들의 압박감이 커 5분의 1 이상이 입사 5년 안에 회사를 떠난다"고 지적했다.

    AI에 경영 맡긴다

    브리지워터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한 경영 자동화 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브리지워터는 인사부터 각종 경영적 판단까지 도맡아 하는 AI CEO를 곧 내놓을 예정이다. /블룸버그

    브리지워터에서 임직원이 지켜야 할 행동 규칙은 123쪽 분량에 이른다. 창업자인 레이 달리오가 자신의 경영 철학을 회사 내에서 유지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다. 달리오는 자신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이 철학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최고경영자(CEO)처럼 기업의 크고 작은 결정을 대신해 줄 인공지능(AI)을 개발하고 있다.

    브리지워터가 2015년 설립한 연구소에서 개발하는 이 시스템의 이름은 '원칙 운영체제', 줄여서 '프리OS(PriOS)'다. IBM에서 AI 프로그램 '왓슨' 개발을 주도한 데이비드 페루치가 연구소장을 맡았다.

    이 AI는 직원들이 어디에 전화를 걸어야 하는지와 같은 사소한 업무까지도 매일 위치정보시스템(GPS)처럼 알려주고, 어떤 사람을 고용하고 해고하고 배치해야 할지도 결정하는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브리지워터는 AI 완성 이후 5년 안에 경영에 관한 의사결정의 75%가량을 맡기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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