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

[IMF협상팀이 말한다]② 김우석 "거시 경제 '착시 현상' 경계해야…금리 인상 서둘지 말 것"

  • 세종=전슬기 기자
  • 입력 : 2017.11.09 12:00

    IMF협상 부단장 김우석 예일회계법인 회장
    “거시 경제 착시 현상 파악 잘 못해 외환위기”

    1997년 12월 3일, 한국 정부는 피 말리는 협상 끝에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합의안에 서명을 한다. 그러나 시장의 ‘달러 탈출’은 계속됐다. 정부는 12월 21일부터 플러스 협상에 돌입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100억 달러 조기지원을 얻어냈다. 이후 정부는 외국 채권단과의 외채 만기 연장 협상도 성공했다.

    나라에서 빠져나가는 돈을 막자 정부에겐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IMF 지원금 외 나라에 들어올 ‘새로운 돈’이 필요했다. IMF 협상팀은 다시 짐을 꾸려 아시아와 유럽,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외국환평형기금 채권을 팔기 위해서다. 부도가 났다고 알려진 나라였지만, 한국의 외평채는 의외로 120억달러의 수요가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1998년 4월 처음으로 40억달러 외평채를 발행했다.

    당시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과 뉴욕으로 건너가 40억달러 외평채 발행에 직접 서명을 한 사람은 김우석 예일회계법인 회장(당시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 국장)이다.

    “샌님 같은 공무원이 정부 대리인으로 40억달러 '빚'을 지겠다고 서명을 하려니 손이 덜덜 떨렸어요. 한국은 부도가 난 나라였지만 그나마 몇몇 거시 경제 지표가 좋았던 것이 인정되면서 40억달러의 외평채 발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당시 상황을 이같이 회고했다. 평생 국제 금융 정책 업무를 담당해온 김 회장은 최근 한국 경제의 상황에 대해 금리 인상은 조금 더 유보할 여유가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외환위기가 거시 경제 지표의 ‘착시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발생했는데, 최근 좋아 보이는 경제 여건에도 가계 부채 등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일 서울 서초동 예일회계법인에서 김우석 회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박상훈 기자
    지난 2일 서울 서초동 예일회계법인에서 김우석 회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박상훈 기자
    -국가가 부도 상황인데 어떻게 40억 달러 외평채를 발행했나.

    “IMF 협상팀은 1998년 1월 외국 채권단으로부터 외채 만기 연장을 얻어냈다.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걸 막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과 IMF 협상 지원금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웠다. 새로운 돈(New Money)이 필요했다. 1998년 1월 장단기 자금 확보 대책들이 논의됐다. 난관은 정크 본드 수준으로 떨어진 국가신용도였다. 정부는 외평채 발행을 해본 적도 없었다.

    외평채 발행은 국회가 동의해준 것이 100억달러였는데, 우선 30억달러만 해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사실상 국가가 부도 상태인데, 너무 많은 액수를 빌려달라고 하면 시장에서 엄청나게 바가지를 쓸 것 같았다. 채권 장사를 하러 아시아와 유럽, 뉴욕으로 건너갔다. 외평채를 발행하려 했던 전날 신용평가사들이 일본의 신용 등급을 부정적인 전망으로 변경했다. 시장이 급속히 얼어붙어서 하루를 더 버텼다.

    1998년 4월 9일 시장에서 가격을 흥정하는데, 120억달러 정도의 수요가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당초 계획은 30억달러 규모로 외평채룰 발행하는 것이었는데, 10억달러를 더 얹어 40억달러 어치를 발행했다. 한국은 부도가 우려되는 국가였지만, 일부 거시 경제 지표가 탄탄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

    -외환위기 발생 당시 경제 지표가 너무 좋아 ‘착시 현상’이 있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 측면이 있다. 외환위기가 오기 전 성장률, 물가, 재정 수지 등의 지표는 훌륭했다. 다만 경상수지만 지속적으로 안좋았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는데,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서둘렀다는 비판도 많았다. OECD에 가입하면 자본의 자유화를 서약하고 추진해야 한다. OECD 가입 다음해인 1997년 237억달러 경상 수지 적자가 났다. 당시 경제 운용계획의 4배가 넘는 적자였다. 그것에 대해 환율을 절하하자는 등 실무 대책 등이 많이 거론됐으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상수지가 적자면 외국도 돈을 빌려주는 걸 자제하고, 우리도 돈을 빌리는 걸 자제해야 한다. 그러나 국제 흐름은 돈을 주겠다는 곳이 많았고, 국제 금리도 상대적으로 낮았다. 국내 기업들은 투자를 위해 외화를 단기로 차입하고 중장기로 운영했다. 외화 차입 기간과 투자 기간이 미스 매치 되면서 불균형이 생겼다. 해외 통화를 빌려다 국내 통화 혹은 제 3의 통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통화 불일치도 발생했다. 국가 장부상으로는 단기 외채 유입이 급증하며 외화 자산이 많았는데, 이것은 착시 현상이었다.”

    지난 2일 서울 서초동 예일회계법인에서 김우석 회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박상훈 기자
    지난 2일 서울 서초동 예일회계법인에서 김우석 회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박상훈 기자
    -요즘 경제지표도 좋은 편이다. 지금은 ‘착시 현상이’ 없나.

    “현재 경제 지표에 1997년 외환위기 처럼 ‘착시 현상’이 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다만 정부도 인식을 하고 대처를 하고 있지만, 가계 부채 증가율이 너무 높다. 가계 부채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향후 위험해질 수 있다. 특히 내년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 가계 부채 위험이 본격화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금리 인상 시기는 조금 더 유보할 여유가 있는 것 같다. 금리를 인상할 경우 가계 부채 부담이 상당해질 수 있다. 급속한 복지 지출 증가도 들여다 봐야 할 문제다. 외환위기 때도 언급된 노동 개혁은 점점 후퇴하고 있다. 성장에 계속 걸림돌이 될 것이다.”

    -IMF가 요구했던 고금리 정책을 저금리로 전환하는데 애를 많이 먹었다고 들었다.

    “IMF는 처방으로 은행 문 닫아라, 종금사 폐쇄해라, 콜금리를 30% 이상 유지해라 등 고통스러운 정책을 요구했다. 특히 콜금리를 30% 이상 유지하라는 정책은 기업을 쓰러뜨리는 정책이었다. 극약처방인 만큼 단기간 조치를 하고 끝내야 하는데, 우리한테는 정해진 시한도 없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펄펄 뛰었는데, 당시 미셸 캉드쉬 IMF 총재의 뜻이라는게 확인 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했다. IMF 자금을 받고 시장이 안정되자 제일 먼저 고금리를 내리려고 애를 썼다. IMF 입장이 워낙 강경해서 5개월 만에 끌어내렸다.”

    -지금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적정한 수준인가.

    “외환 보유고는 외환위기를 겪으며 다다익선(多多益善)으로 많을 수록 좋다는 인식이 생겼다. 그런데 외환은 너무 많이 갖고 있는 것도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손실이다. 외환 보유고는 조달 비용이 운영 비용 보다 높다. 역마진을 내고 보유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외환 보유고 수준은 적지는 않다.”


    지난 2일 서울 서초동 예일회계법인에서 김우석 회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박상훈 기자
    지난 2일 서울 서초동 예일회계법인에서 김우석 회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박상훈 기자
    -통화스와프는 어떤가. 중국과 통화스와프는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통화스와프는 필요하다. 통화스와프는 실행할 때까지는 비용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을 대비해 제 2선 외환 보유액으로 보험을 들어놓는 것이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는 2년 만에 끝났고, 일본도 700억달러에서 100억달러까지 줄다가 흐지부지 됐다. 중국과의 통화 스와프는 다행히 연장됐다.

    중국의 위안화가 기축 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통화 스와프의 효과가 적지 않냐는 의견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의 무역 규모는 2000억달러 정도 된다. 중국은 위안화의 국제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우리도 위안화 역외 시장을 육성하겠다고 몇년 전에 발표한 적이 있다.

    장기적으로는 위안화 역외 시장을 서울에 만들 수 있다고 하면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은 위안화를 기축 통화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인 노림수를 가지고 있겠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한국으로서는 통화 스와프를 맺어놓으면 나쁠 것은 없다.”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미국의 '환율 조작국' 지정 여부를 감안하면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말도 나온다.

    “지켜보는 국제적인 눈이 많아서 환율을 우리 나라 구미에 맞게 조정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외환 당국이 환율을 조절하려면 한국은행이 외환 시장에서 외환을 사고 팔거나 정부가 외평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한은이 개입한 순간 미국의 ‘환율 조작국’에 걸릴 수 있다. 기본적으로 시장의 원리에 맞추되 일시적으로 불안할 때 개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화는 국제 수지 흑자가 계속되면 강세 기조를 유지할 수 있다.”

    -결국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한 거 아닌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기간 중 우리 나라의 무기 구매 협의로 인해 양국의 자유무역협정(FTA)를 둘러싼 갈등이 좀 완화된 것 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통상 문제는 정치 싸움이다. 대미 무역 흑자에 대한 설명 자료를 만들어 계속 대응해도 설득이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강성 정책을 어느 정도 들어주는 정치적인 몸짓이 필요할 것 같다.

    중국과의 관계도 변화가 필요하다. 중국 시장은 그동안 우리 나라에게는 굉장히 유망한 시장이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갈등을 겪으며 정치적인 문제에 굉장히 취약한 시장이라는 걸 알았다. 사드 문제가 해결돼도 중국 시장은 예전처럼 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해외 투자의 경우 중국 시장 위주에서 베트남, 인도 등으로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외환위기 후 20년간 정부와 시장의 역할 분담이 잘 안됐다는 비판이 있다.

    “전통적 주력 산업은 민간의 자율에 맡기고 정부는 공정 경쟁 환경을 조성하거나 과잉 중복 투자 등에 대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새로운 산업에 대해서만 초기 연구 투자 등에 대해서는 일단 정부가 직접 개입해 선도하고, 민간이 견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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