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 전통의 라이벌인 인텔과 AMD가 손을 잡았다. 두 회사가 기술 파트너십을 맺고 함께 칩을 만드는건 1980년대 이후 처음이다.

‘공동의 적’으로 부상한 엔비디아의 그래픽칩 기술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적 제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6일(현지시간) 인텔은 AMD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패키징 레벨에서 통합한 8세대 프로세서 '코어 H'를 공개했다. 이 제품은 인텔의 CPU 칩과 AMD가 개발한 그래픽처리장치(GPU) 2개가 하나의 기판 위에 2.5D 방식으로 패키징돼 있다. 인텔은 이 기술을 EMIB(Embedded Multi-Die Interconnect Bridge)라 명명했다.

인텔은 AMD의 GPU를 통합한 8세대 프로세서 ‘코어 H’를 공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1980년대 처음으로 이뤄지는 두 회사의 협력을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엔비디아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했다.

인텔, AMD가 함께 만든 코어 H는 일단 노트북PC에 탑재될 전망이다. CPU, 패키징 기술력이 뛰어난 인텔과 그래픽 기술이 뛰어난 AMD의 파트너십은 각종 전자기기에 탑재되는 칩 사이즈를 줄이는 한편 더욱 강력한 연산, 그래픽 성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노트북PC 이후 두 회사의 협력 관계가 서버, 모바일 등으로 확대될 지는 미지수다.

인텔 코어 H는 PC용 프로세서로는 처음으로 2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가 탑재되는 것도 특징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인텔은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등 국내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2세대 HBM 시제품을 공급 받아 최적화 테스트를 진행해왔다. HBM은 D램을 실리콘관통전극(Through Silicon Via, TSV) 기술을 적용해 다이(Die)를 적층시켜 데이터 전송률을 크게 높일 수 있는 기술이다.

전통의 라이벌인 인텔과 AMD가 협력 관계를 모색하기 시작한 건 지난 5월경부터로 추정된다. 당시 인텔은 AMD의 GPU 기술을 자사 CPU와 융합하기 위해 AMD와 라이선스 계약 체결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인텔은 라이선스 비용을 내며 엔비디아의 GPU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계약은 지난 3월부로 끝났고 인텔은 계약 연장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이 엔비디아와의 계약 연장을 거부한 건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자동차 등 인텔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분야에서 엔비디아가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타임즈 등 미국 주요 외신은 인텔과 AMD의 파트너십을 '엔비디아를 겨냥한 포석'으로 평가했다.

엔비디아는 서버, PC용 CPU 생태계를 지배하는 인텔의 아성에 계속해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특히 딥러닝(Deep Learning) 시대가 태동하던 지난 2011년경부터 엔비디아는 ARM 기반 아키텍처를 활용한 CPU를 만들고 있기도 하다. 자사의 GPU와 ARM 기반의 CPU를 조합한 것이다.

AMD의 경우 인텔이나 엔비디아와 달리 CPU와 GPU를 한데 통합한 APU(성능가속프로세서)를 주력 제품으로 키워왔다. CPU와 GPU, 두 프로세서 사이의 데이터 전달 과정을 하나의 칩 내에서 공유하고, 신호 교환 경로를 단축했다. 특히 AMD는 지난 2006년 엔비디아의 경쟁사인 GPU 업체 ATI를 인수한 이후 그래픽 기술력을 강화해 인텔보다 그래픽 처리 성능이 앞선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업계에서는 이번 두 회사의 협력이 인텔 칩의 그래픽 성능을 높일뿐 아니라 CPU와 GPU가 통합된 칩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텔, AMD는 고성능 GPU를 스탠드얼론(Stand-Alone·독립형) 방식이 아니라 CPU 칩에 하나로 통합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며 “두 회사의 파트너십은 중장기적으로 AI, 자율주행차 시대에 맞는 더 효율적이고 강력한 칩의 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