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관리의 미래]② 자산관리 대중화시대…부의 지형도 바뀐다

조선비즈
  • 전준범 기자
    입력 2017.10.18 06:00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AI(인공지능)이 자산관리 서비스에서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그동안 1%의 고액 자산가에만 제공됐던 전문가의 자산관리 서비스를 일반 대중에게도 제공하는 것이 AI를 통해 가능해질 전망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AI 기술을 중심으로 서비스, 상품, 조직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조선비즈는 ‘자산관리의 미래’라는 주제로 5회에 걸쳐 AI가 가져올 국내외 자산관리 산업의 변화를 진단하고 금융투자회사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오는 10월 25일 열릴 미래투자포럼에서도 ‘인공지능(AI)이 가져올 자산관리 혁명’이란 주제로 이 같은 내용을 다룬다. [편집자 주]

    과거 금융투자 시장에서 자산관리 서비스 또는 PB(프라이빗 뱅커) 서비스는 법인이나 고액 자산가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알뜰살뜰 모은 월급 일부를 금융투자에 활용하는 대다수 개인은 정보 획득과 시장 분석 등에서 자산가에 비해 항상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100세 시대가 되면서 자산을 불리는 방법 만큼이나 보유 자산을 잘 지켜내는 관리법도 투자자의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금융회사들도 일반 대중을 겨냥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첨단 정보기술(IT)의 발달은 기존 은행과 증권사의 PB가 제공해온 고가의 자산관리 서비스를 대체할 만한 저렴하고도 매력적인 금융 상품의 탄생을 촉진시키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자산관리 대중화 시대의 핵심으로 꼽힌다. 누구나 자산관리를 받을 수 있는 시대의 도래는 퇴직연금처럼 그간 방치된 채 잠들어 있던 자산도 관리의 영역으로 끌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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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를 위한 자산관리 시대 열린다”

    KB증권은 지난 7월 종합 자산관리 서비스 ‘에이블 어카운트(able Account)’를 출시했다. 에이블 어카운트는 KB증권의 통합 자산관리 플랫폼(UMA·Unified Managed Account)을 통해 하나의 계좌에서 국내외 주식과 펀드, 채권, ELS(주가연계증권) 등 여러 투자자산을 거래·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용자 투자 스타일에 어울리는 포트폴리오도 제공한다.

    KB증권은 에이블 어카운트의 최소 가입금액을 1000만원으로 설정해 진입 장벽을 낮췄다. 매매 발생시 부과되던 수수료도 없앴다. 이완규 KB증권 IPS본부장은 “올해 안에 지점 운용형 자산관리 서비스도 추가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나금융투자는 올해 하반기부터 자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통해 의미있는 수급 정보를 제공하는 ‘팩트 서비스’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황순배 하나금융투자 이비즈니스실 실장은 “일부 전문가만 받아보던 수급 관련 고급 정보를 일반 투자자에게도 제공하기 위해 팩트 서비스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팩트 서비스는 1개월간 빅데이터 분석을 실시해 얻은 4가지 고급 정보를 투자자에게 준다. 4가지 정보는 실제 가격 형성 주체가 누구인지, 어느 시간대에 거래가 많이 이뤄지는지, 상위 5개 거래원은 누구인지, 어느 체결량에 많은 거래가 이뤄지는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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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핀테크 스타트업의 등장도 자산관리 대중화 시대를 앞당기는 데 기여하고 있다. 두나무투자일임은 지난해 10월 일반인의 투자 활동을 지원하는 모바일 투자일임 서비스 ‘카카오스탁 맵(MAP)’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카카오스탁 맵은 투자자문사가 직접 매매하는 것과 동일하게 고객 계좌에서 주식 투자가 이뤄지는 서비스다. 모든 과정은 사용자가 선택한 전문 투자자문사의 전략에 따라 자동으로 진행된다. 최소 투자 금액은 500만원이다. 상장지수펀드(ETF)는 50만원부터 일임이 가능하다. 수수료는 연 0.5~1.5% 수준이다.

    일반 펀드의 경우 투자 종목을 수개월 뒤에나 볼 수 있다. 펀드매니저에 대한 정보도 얻기 어렵다. 반면 카카오스탁 맵은 투자자가 택한 자문사의 투자전략과 포트폴리오, 매니저 정보 등을 모두 공개하고 있다.

    오재민 두나무투자일임 대표는 “고액 자산가에게만 열려 있던 투자자문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모든 투자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불균형을 해소함으로써 누구든지 수월하게 자산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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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용 절감’ 로보어드바이저…자산관리 대중화의 핵심

    IT를 바탕으로 한 자산관리 대중화 시대의 중심에는 로보어드바이저가 있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전세계 로보어드바이저 관리자산 규모는 2015년 상반기 200억달러(약 22조6400억원)에서 2020년 4500억달러(약 509조4000억원)로 22.5배 커질 전망이다.

    로보어드바이저 분야를 선도하는 건 세계 최대 자본시장인 미국이다. 미국 골드만삭스는 2014년 주식 트레이딩 AI ‘켄쇼’에 투자한 이후 한때 600여명에 달했던 뉴욕 본사 트레이더를 2명까지 줄였다. 켄쇼가 개발한 분석시스템 ‘워런(Warren)’은 애널리스트 15명이 4주 동안 달라붙어야 끝낼 수 있는 분석 작업을 단 5분만에 처리할 수 있다.

    한국 역시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받아들이는 모습은 외국과 조금 다르다. 국내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를 ‘투자 수익률 극대화를 위한 도구’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투자 실적이 인간 전문가에 비해 딱히 뛰어나지 않다”며 로보어드바이저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을 수익률 관점에서 바라보는 건 무의미하다고 지적한다. 투자 주체가 인간이든 로봇이든 주식 시장에서 주가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하고 투자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김우창 카이스트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아무리 뛰어난 AI가 시장을 잘 예측한다고 해도 수익을 무한대로 내는 건 불가능하다”며 “인간 역시 과거에 잘했던 투자 전문가가 계속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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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식시장 자체가 ‘랜덤워크 이론(random walk theory)’에 따라 움직이는데 수익률로 누가 더 나은지를 비교하는 게 무슨 의미냐는 지적이다. 랜덤워크 이론은 주가가 과거 가격에 의존하지 않고 임의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상승과 하락을 예측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내용이다.

    지난 1973년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버튼 말키엘(Burton Malkiel) 교수도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눈 가리고 다트를 던져 주식을 고르는 원숭이와 전문가(펀드 매니저)와의 성과 차이는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미국 등 금융 선진국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를 수익률 극대화 도구가 아닌 ‘비용 절감’ 수단으로 생각한다. 골드만삭스가 켄쇼에 투자한 궁극적인 이유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다. 금융회사 뿐 아니라 이용자도 자문·일임 계약을 별도로 맺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기존 대비 70% 이상 저렴한 수수료를 내거나 아예 무료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로보어드바이저 시장 확대에 따른 비용 절감은 자산관리 시장 문턱을 낮추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다. 2015년 로보어드바이저 벤처 에임(AIM)을 설립한 이지혜 대표는 “로보어드바이저의 장점은 소액 투자자가 저렴한 비용으로 자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앞으로는 특정 계층이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자산관리 세상이 열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 방치된 자산도 관리받는다

    자산관리 대중화 추세는 그간 방치돼 온 자산도 관리 받게끔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퇴직연금 시장이다.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말 기준 147조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원금 보장형 상품에 묶여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상태다.

    정부는 지난해 300인 이상 사업장을 퇴직연금 의무가입 대상으로 지정한데 이어 올해에는 100인 이상 사업장으로 범위를 확대했다. 2018년에는 30인 이상 사업장, 2022년에는 모든 사업장이 퇴직연금 제도에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퇴직연금 적립금은 2020년 378조원, 2030년 960조원으로 불어난다.

    이처럼 막대한 돈이 쌓이고 있음에도 그동안 한국에서는 퇴직연금을 자산관리의 영역에 적극 포함시키지 않았다. 관리보다는 ‘보관’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퇴직연금 제도의 본래 취지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립금을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해 수익률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퇴직연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변화 조짐은 최근 들어 서서히 감지되고 있다. 일례로 삼성자산운용은 지난해 4월 ‘삼성 한국형 타깃데이트펀드(TDF·target date fund)’를 국내 시장에 출시해 투자자의 호응을 얻었다. 한국형 TDF 수탁고는 지난달 2000억원을 돌파했다.

    TDF는 투자자의 생애주기에 어울리는 투자 방법으로 자산을 불려주는 연금상품이다. 가령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투자자는 주식 대신 상대적으로 안전한 채권 투자 비중을 늘리고, 젊은 투자자는 적극적인 주식 투자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식이다. 한국에선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국에서는 TDF 시장 규모가 1000조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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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지난달부터 개인형 퇴직연금(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 개인적립금 계좌에 부과되던 운용 수수료와 자산관리 수수료를 면제해 퇴직연금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삼성증권(016360)도 퇴직연금 계좌관리 수수료를 지난 7월 무료로 전환했다.

    퇴직연금 시장이 크게 발달한 미국도 모든 국민이 보다 좋은 퇴직연금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4월 법 개정을 통해 동일한 지수를 추종하는 퇴직연금 상품 가운데 수수료가 가장 저렴한 상품을 제공하지 않으면 고객이 금융회사를 고소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예를 들어 고객 A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해주는 금융회사 B가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들 중 하나에 투자하고자 한다. 과거에는 수수료가 가장 비싼 상품에 투자해도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객 A가 수수료가 더 저렴한 상품을 발견하면 금융회사 B를 고발할 수 있다.

    김우창 교수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을 거면 아예 비지니스를 하지 말라는 게 이 법안의 요지”라며 “자산관리 대중화의 세계적인 흐름은 언젠가 부의 지형도도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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