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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나를 지키며 일하려면... 올인하지 말라, 스스로를 궁지에 몰지 말라"

  • 김지수 기자
  • 입력 : 2017.10.14 07:00 | 수정 : 2017.10.16 08:07

    재일 한국인 최초 도쿄대 정교수 된 강상중
    고물상 아들로 태어나 비판적 지식인으로 성장… 일본 내 ‘강상중 신드롬' 일으켜
    역경의 시대, 일의 의미를 찾는 책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출간
    일할 능력 없는 장애아, 노인은 죽여도 좋은가… ‘대리 살인' 사건, 일본 사회 충격 안겨
    일에서 무리한 ‘자아실현’보다, 자연스러운 ‘나다움' 추구해야

    “부모님이 선택한 일은 제게 ‘가르침’을 주기도 했습니다. 폐품 회수란 사회의 순환 구조 자체를 취급하는 일이라, 부모님 곁에서 어깨너머로 보는 동안 ‘세상의 축도’ 같은 것을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에 이익이 되는 것과 무익한 것. 유해한 것과 무해한 것. 재활용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 낡아도 가치가 있는 것과 낡으면 쓸모없어지는 것.”-강상중의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중에서.

    재일한국인 학자 강상중(67세). 일본 사회에서 비판적 지식인으로 유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 매스컴에서 냉정한 태도, 세련되고 지적인 분위기, 호소력 강한 목소리로 많은 팬을 확보한 스타 지식인이기도 하다. 현재 구마모토현립극장 관장으로 있다./사진=이태경 기자
    재일한국인 학자 강상중(67세). 일본 사회에서 비판적 지식인으로 유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 매스컴에서 냉정한 태도, 세련되고 지적인 분위기, 호소력 강한 목소리로 많은 팬을 확보한 스타 지식인이기도 하다. 현재 구마모토현립극장 관장으로 있다./사진=이태경 기자
    폐품수집상의 아들로 태어나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 정치학 정교수가 된 사람. 강상중을 설명하는 데 이 한 줄이면 충분하다. 한국에서 그는 ‘고민하는 힘' ‘살아야하는 이유' 등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얼마 전 불안한 시대 일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이란 책을 냈다.

    문고본 형태의 작은 책, 군더더기 없는 단호한 제목, 고민으로 숙련된 단단한 체구의 중년 남자가 표지에 박힌 강상중의 책은 기이한 포스를 내뿜고, 읽는 즉시 빨려 들어간다.

    일찍이 2008년 일본에서 먼저 출간된 ‘고민하는 힘'은 출간 당해 100만 여부가 판매되며 일본 사회에 ‘강상중 신드롬’을 일으켰다. 소설가 나스메 소세키와 사회학자 막스 베버, 도저히 연결될 것 같지 않은 두 인물의 삶과 사상을 교차 편집하며 훑어 내려간 강상중의 ‘학문적 태피스트리'는 두께와 질감과 문양 모든 면에서 정교하고 매혹적이다.

    100년 전 근대가 개막될 무렵 시대와 마주했던 동양의 소설가와 서양의 사회학자의 서사에 당대 대중들의 고민을 창날처럼 꽂은 것.

    예컨대 나는 누구인지, 돈이란 무엇인지, 왜 일을 하는지, 청춘은 정말 아름다운지, 왜 죽어서는 안되는지(‘고민하는 힘'), 그리고 왜 이토록 고독한지,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살아낼 근거를 찾아낼 수 있는지(‘살아야 하는 이유’) 등에 대해.

    학력 사회 모델이 붕괴하고 위기가 일상이 된 지금, 강상중은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에서 당장의 취업보다 ‘일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다양한 시점을 가지고, 인문학에서 배울 것’을 권한다.

    격동하는 사회를 바라보는 학자로서의 날카로운 시선과 일본 내 비주류 인간으로 살았던 실패와 슬픔의 개인사를 병치시키는 서술 기법은 지적 긴장 속에서도 독자들을 안도시킨다.

    책에는 ‘사람은 모두 걸어 다니는 식도란다'라는 말로 부자와 빈자를 관통하는 유물론적 사고의 정수를 보여주었던 어머니와 동아줄 묶는 모습 하나에도 숙련의 아름다움이 풍겼던 아버지, 결혼 이후에도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37살에 정규직 교수로 자리 잡기 까지 그가 겪었던 정체성 분열의 아득한 순간들이 깃들어 있다.

    일본에서는 한국인, 한국에서는 일본인이 되는 경계인 강상중. 예전엔 딜레마였지만 지금은 ‘좋은 인생'으로 결론내렸다./사진=이태경 기자
    일본에서는 한국인, 한국에서는 일본인이 되는 경계인 강상중. 예전엔 딜레마였지만 지금은 ‘좋은 인생'으로 결론내렸다./사진=이태경 기자
    강상중을 만났다. 추석을 하루 앞둔 날이었고, 도시는 텅 비어있었다. 한국인들이 들뜬 채 집을 떠나는 아침, 그는 몇 개의 국내 강연 일정을 마치고 고향인 구마모토로 돌아갈 준비로 분주했다. 작은 트렁크와 손가방, 그리고 테이블 저 너머 아내의 다소곳한 기다림과 함께 호텔 로비에서 인터뷰가 시작됐다.

    -책이 간결하고 정직하며 묵직합니다. 어떻게 쓰십니까?

    “일본이나 한국이나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책은 바빠서 못 읽습니다. 짧은 시간에 깊이 있는 지식을 전할 수 있도록 쓰기 전에 많이 읽습니다. 일본이라면 신칸센, 한국이라면 KTX 열차 안에서 다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어요.”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웃으며)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을 오가며 씁니다. 지성의 건강을 위해 당대의 싱싱한 ‘날 것’의 지식과 고전의 저장식인 ‘말린 것’을 동시에 취하고 있습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정보인 ‘날 것’은 제철 음식이라 맛있지만 안전성과 영양이 검증되지 않았으니, 톨스토이나 막스 베버 같은 ‘말린 것'의 지성에 재빠르게 튜닝하여 이 시대의 도착한 다양한 문제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정보는 어떻게 흡수합니까?

    “매일 신문을 읽어요. 신문 읽기는 피부 호흡, 신간 일기는 폐호흡, 고전 읽기는 복식 호흡입니다. 페이퍼의 활자는 정보를 능동적으로 흡수하게 만들어요. TV나 인터넷에서 흘러가는 플로우(flow)와는 다르죠. 플로우와 스톡이 동시에 있어야 균형 잡힌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매일 중앙지와 지방지 하나를 읽고 긴 텀으로 인문 고전을 읽어요. 그 사이 월간지 하나 정도를 중간 지식으로 받아보고요.”

    일본 NHK ‘직업 특강'으로 방영되었던 강상중의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일본 NHK ‘직업 특강'으로 방영되었던 강상중의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이라는 제목이 매우 설득력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일이란 무엇입니까?

    “일본이나 한국이나 예전엔 엘리트들만 대학에 갔지만, 지금은 절반 이상이 대학을 나오는 시절이죠. 필사의 노력을 다해 대기업에 취직해도 그만두거나 과로사를 해요. 일이란 대체 뭘까요? 일은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에요. 가장 쉽게는 급여노동을 떠올려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는 거죠.

    그럼 돈이란 무엇인가? 일본 대지진 때는 돈이 있어도 생수 한 명 사 먹을 수 없었어요. 그때는 서로서로 돕는 네트워크 즉 사회관계자본이 돈보다 더 중요했어요.

    얼마 전 재일 교포 1세 할머니들을 만났더니, 그분들은 강도와 매춘 빼고 다 해봤답니다. 그분들에게 일은 임금이 아니라 가족을 지키는 전부였어요. 내 생각에 화폐 경제에 편입되지 않은 다른 종류의 일이 있어요. 이를테면 상품 경제 외부에 있는 할머니의 노동 같은 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월급이 아닌 사회관계로 만족을 주는 회사와 일을 찾게 될 거예요.”

    -선생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해보죠. 자이니치라는 출생이 그토록 큰 족쇄가 되었습니까?

    “재일동포 출신으로 일단 일본 사회에서 취직이 어려웠어요. 빠징코나 폐품 회수 자영업자 등 선택지가 좁았지요.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용기를 내서 소니에 지원했는데, 가타부타 연락도 없었어요(웃음). 한마디로 무시를 당한 거예요. 몇 년 전 소니 본사가 있는 시나가와에서 간부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하면서 “소니에서 떨어진 강상중입니다"라고 했더니, 그분들이 “강 선생, 행운이십니다" 그래요. 소니는 그때 이후로 힘든 시기를 보냈고, 지금은 삼성을 못 따라간다고요. 지금은 웃으며 얘기하지만, 대학 시절엔 어두운 얘기였어요.”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독일 유학 시절에 임마누엘이라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는 이민자 2세로 저의 독일판이었어요. 임마누엘과 지내면서 ‘자이니치’는 세상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는 당시 체험을 눈을 가리고 있던 비늘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개운했다고 설명했다. 자신만이 국제적인 역학과 차별의 희생자라 여겼지만, 세상 어디에나 그런 삶이 있다는 깨달음. 그 순간은 스스로를 상대화하여 복안의 시점으로 볼 수 있게 된 순간이었으며, 동시에 ‘천직’을 깨닫는 순간이었다고.

    “내 고민이 애초에 개인이 마음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괴로워할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일임을 깨달았죠.”

    강상중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비상근강사로 일하던 시절에 만난 개신교 목사 도몬 가즈오 목사의 주선으로 서른일곱의 나이에 국제기독교 대학의 정규직 조교수 일을 얻었다. 그보다 더한 깨달음은 도몬 목사가 전해준 ‘모든 일에는 때가 있나니’ (전도서 제3장)라는 구약성서의 한 구절이었다.

    그는 책에서 ‘이 말을 들었을 때 벼락에라도 맞은 듯한 느낌에 무심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라고 썼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나를 지키며 일하려면... 올인하지 말라, 스스로를 궁지에 몰지 말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나니’라는 말은 유유자적한 듯 보여도 몹시 냉정하고 침착한 예지예요. ‘지금’, ‘여기’를 열심히 살면서 ‘그때’를 기다릴 것. 아무리 힘든 일이 있고 또 계속해서 나쁜 일이 이어진다 해도 반드시 ‘때’가 온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 그는 국제기독교대학에서 10년을 일한 후 도쿄대학으로 초빙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개인사와 사회사가 아리랑 곡선을 그리다 결국 ‘나다움'과 ‘직업’이라는 순결한 순간으로 모인다.

    -‘나다움'을 알고 자연인으로 산다는 건 어떤 형태인가요?

    “자연스럽다는 건 ‘부족함을 안다' ‘자족한다'는 것이죠.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는 거죠. 과거의 저는 재일한국인으로 태어난 상태를 뛰어넘으려 했기 때문에 무리를 했어요. 생각해보면 제가 나가노 데쓰오에서 강상중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면서 자연스러움에 가까워졌지요.”

    -하지만 ‘나다움’에 대한 강박적 집착이 낳는 부작용도 있지 않을까요?

    “그건 ‘나다움’보다 ‘나'에 대해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밤까지 ‘나'에 집착해요. ‘나’라는 우상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으니 괴롭죠. 나도 고교 시절에 ‘나’에 빠져 허우적대면서도 정작 ‘나’에 대한 결론을 못 내리는 심리적 억압 상태에 있었습니다. 실어증도 앓았어요.

    대학에 들어가서 재일동포 2세 친구들과 만나면서 치료가 됐어요. 결론적으로 나를 너무 의식하면 부자연스러워집니다. 나를 덜 의식해야 다른 사람과 섞여 살 수 있어요. 일도 마찬가지죠. 때로는 ‘그냥 해보자'는 마음으로 사회에 들어가 일을 해보면서 접점을 만들어보려는 게 더 나은 자세에요.”

    -자연스럽게 살았고 그래서 멋진 일을 성취한 사람으로 스티브 잡스를 뽑은 점이 의외였어요.

    “스티브 잡스는 리비아와 시리아 쪽의 이민계 2세였을 거예요. 문과와 이과의 중간계 사람이었고, 나보다 6살 아래죠. 재일동포 2세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과 함께 잡스의 초대를 받아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는 내가 쓴 ‘어머니'라는 자전적 책을 읽은 후여서, 그의 역사와 내 역사가 겹쳐졌어요.

    잡스는 고등학교 시절 셰익스피어와 플라톤을 읽었고, 험너 멜빌과 딜런 토머스의 시를 가까이했다고 합니다. 동양사상과 선에 경도되어 한때 인도에 간 적도 있고요. 나다움을 추구하며 자연스럽게 살았기에 애플 같은 즐거운 제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나는 삼성 갤럭시를 좋아합니다만, 애플을 씁니다. 덜 인위적이고 잡스의 스피릿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독서가 ‘나다움’을 발견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지식과의 접속이 아닌 나다움과 연결된다는 지점이 흥미롭더군요.

    “예전에 ‘여행 도중에'라는 책을 본 적 있는데, 거기에 ‘나라는 존재는 지금까지 만남의 일부다'라는 구절이 있었어요. 원래 ‘나'는 자기 안쪽으로 파고드는 질문인데, 만남의 축적으로 ‘나'를 바라본 게 흥미로웠어요. 거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책'과의 만남이에요.”

    책과의 만남은 시공을 초월한 사람들과 만남이라 그 울림이 더 크다고 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나를 지키며 일하려면... 올인하지 말라, 스스로를 궁지에 몰지 말라"
    “독서가 대단한 건 재귀능력 때문이에요. 책갈피 사이에서 뒤돌아보고 반성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죠. 예외적으로 내 어머니는 읽고 쓰기를 못하셨지만, 놀랍게도 선조를 생각하며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졌어요. 드문 경우죠. 그런 면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건 놀라운 특권이에요.”

    그는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에서 다섯 권의 책을 추천했다. 외딴 섬에서 자급자족하며 자본주의 정신의 원형을 일궈낸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팽창하는 성장 사회에서 일본인의 패색감을 묘사한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 그리고 빅터 프랭클의 ‘삶의 물음에 예라고 답하라'와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다.

    그중에서도 경영사상가 피터 드러커의 이름이 조금 생뚱맞게 느껴졌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의 주인공을 자처하는 기업가들이 신봉하는 학자가 아니던가.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권한 건 밸런스를 맞추는 차원에서인가요?

    “피터 드러커는 경영과 효율만 강조한 학자로 알려졌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피터 드러커가 ‘매니지먼트'에서 주장한 건 모든 조직은 사회의 필요에 응답해야 한다는 겁니다. 기업이 사적 이익만 극대화해서 사내에 축적하면 큰 실패라는 거죠. 기업이나 개인이나 사회에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질문해야 합니다.

    알고보면 이 세계를 움직인 근본 사상은 동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지식인들이 퍼뜨렸어요. 밀턴 프리드먼, 슘페터, 칼 포퍼 같은 유대인이 앵글로 색슨계 미국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글로벌화된 거죠. 그런 흐름 속에 피터 드러커가 있고, 그는 근본적으로 스탈린이나 나치 등 전체주의에 반감을 갖고 사상을 만들어 갔어요. 파시즘에 대한 경계가 대단했어요.

    그런데 지금 사회는 어떤가요? 미국의 트럼프나 영국의 브렉시트, 프랑스와 독일의 극우 세력과 일본의 한국인 혐오 발언 등 피터 드러커가 그토록 경계했던 파시즘으로 기울고 있어요. 이런 열등화 현상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이 죽거나 말거나 전체가 잘 되면 된다는 사고지요. 세월호 사건이 그 상징이었고, 광화문 촛불이 회복의 시작이었어요. 아시아에서 이렇게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뤄낸 나라가 없습니다. 앞으로 5년이 한국 사회의 중요한 기로가 될 겁니다.”

    그는 자기 인생에서 한국인이라는 게 이토록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일본 말을 쓰면서도 한국을 이야기할 때는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라는 표현을 썼다.

    -일본은 어떻습니까?

    “얼마 전 일본 사회에서 충격적인 일이 있었어요. 지적 장애아를 돌보는 요양병원에서 일하던 청년이 19명을 죽이고 수십 명을 다치게 했어요. 그 청년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어서 물어보니, 자기는 대리 살인을 했다고 해요. ‘일도 못 하는 지적 장애아들이 부모와 사회에 부담을 주고 있지 않으냐, 그래서 대신 죽여줬다’는 논리죠. 그런데 이 경악할만한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이 인터넷 공간에 의외로 많았어요.

    임금 노동을 못 하고 남의 돌봄을 받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회가 무서워지는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아이는 게놈의 염기 서열을 따지고 우생학적으로 선별해서 낳아야 할까요? 이런 문제는 이제 종교도 답을 못해요. 초고령사회에서 어르신을 돌보는 게 젊은이를 키우는 것보다 낭비라면, 세대 간의 격차와 갈등도 첨예해지는 거예요. 자본주의는 돈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조차 돈으로 표현하는 사회예요. 어쩌면 그 무지막지함에 맞서는 힘이 인문학이지요.”

    인문학은 곧 인간력이라는 그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는 독일 뉘른베르크 대학에서 베버와 푸코를 공부했다. 그가 정치학을 공부할 당시 일본 경제는 일류였고, 정치는 삼류였다.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여왕’이라 불릴정도로 인기를 끌며 ‘일류 일본'의 부흥기를 누렸다. 하지만 일본 경제가 미궁으로 추락하자, 지금은 상대적으로 정치학의 인기가 높아졌다./사진=이태경 기자
    그는 독일 뉘른베르크 대학에서 베버와 푸코를 공부했다. 그가 정치학을 공부할 당시 일본 경제는 일류였고, 정치는 삼류였다.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여왕’이라 불릴정도로 인기를 끌며 ‘일류 일본'의 부흥기를 누렸다. 하지만 일본 경제가 미궁으로 추락하자, 지금은 상대적으로 정치학의 인기가 높아졌다./사진=이태경 기자
    -한국에서 좋아하는 작가나 학자가 있습니까?

    “많이 알지 못해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감동적으로 읽었고, 김소월의 많은 시와 이광수의 ‘무정'이라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특히 이광수의 ‘무정'은 걸작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좀 더 평가받았으면 합니다.”

    -지금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습니까?

    “어느 쪽도 아니지만 양쪽에 다 있는 존재. 그건 내가 만들려고 한 모습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죠. 내 책이 한국어로 번역돼서 한국 독자들이 나를 받아들여 줬으니까. 예전엔 딜레마에 빠졌지만 지금은 ‘좋은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일에서 행복을 느낍니까?

    “대지진 이후 아내가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어요. 언제 지진이 또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스스로 먹을 것을 만들어내기로 한 거죠. 채소나 식물이 자라서 열매 맺는 모습을 보면 참 감격스러워요. 큰 즐거움입니다.”

    -마지막으로 구직 활동을 하고 있거나 어떤 이유로든 지금의 일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하나의 일에 전부를 쏟아붓지 않는 것,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다움'을 찾지 않고 직업의 안정성에 의존한 채 계급사회의 계단을 올라가면 엄청난 혼란에 빠질 거예요. 샐러리맨에 머물지 말고 농사, 자원봉사, 사회 공헌 등 다양한 스테이지에서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갖고 사십시요. 그래야 후회가 없어요. 텃밭 얘기도 했지만 머지않아 사회관계자본이 돈과 상품 경제보다 중요한 시기가 올 거예요. 행복과 풍요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500만 엔의 월급쟁이가 200만 엔의 월급쟁이보다 행복할 거라는 단순 비교 시대는 끝났습니다.”

    일본은 20년 후의 한국을 보여준다, 는 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원전 사고와 대지진, 오랜 불황을 견디고 묵묵히 제로 성장 시대를 수긍하는 일본인들의 반성적이고 담백한 책들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미래에 대한 큰 기대 없이 ‘오늘의 나’와 ‘내 옆의 이웃'을 보듬어 사는 과장 없는 삶. 어쩌면 비관론을 정직하게 받아들일 때 인생을 마음껏 살아갈 수 있다. 그 일과 삶의 근본 철학을 재일한국인 강상중의 유려한 말로 들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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