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 분석] '나랏빚' 계산에 안 잡히는 국민연금... '숨은 빚' 문제 없을까

입력 2017.09.27 06:01

국민연금 보유 국채 내부 거래로 인식
국가 ‘고용주’ 아냐, 충당 부채도 미반영

올해 6월 말 기준 598조원이 쌓여 있는 국민연금은 100조원이 넘는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2013년 실시한 3차 재정 계산에 따르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오는 2043년 2561조원까지 증가했다가 오는 2060년 고갈된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오는 2060년 국민연금 고갈시 정부가 재정으로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할 돈을 약 3400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가진 100조원의 국채나 연금 고갈시 정부가 지급해야 할 3400조원은 엄밀히 말하면 모두 국가가 책임져야 할 ‘나랏빚’이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연금이 가진 100조원이 넘는 국채의 경우 내부 거래로 인정해 국가 부채에 반영하고 있지 않다. 또 국가 회계 간 교환 거래가 명확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3400조원의 돈도 연금 충당 부채로 포함하고 있지 않다. 국민연금 운용 방식을 재설계하는 논의를 진행하는 동시에 국가의 책임 수준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출처=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① 왜 100조 국채 매입? “안정성 때문”

올해 기준 국민연금은 국내채권에 47.8%의 적립금을 투자하고 있다. 285조8000억원이다. 국내채권 중 국채의 비중은 43.9%로 126조원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국채를 많이 사들이는 건 안정성 때문이다. 한국의 국민연금 제도는 부분 적립이자 부분 부과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칠레와 같이 가입자가 낸 연금을 그대로 다시 돌려받는 완전 적립 방식과 연금 제도가 성숙한 유럽이 그해 근로 세대가 낸 적립금으로 그해 노인 세대에 연금을 지급하게 도입한 부과 방식의 중간이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덜 내고 더 받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낸 돈을 20~40년 후 받는다.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이 적립해 놓은 돈을 잘 불려 나중에 지급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국민연금에게 국가가 보증을 서고 발행하는 국채는 안정된 투자처다. 해외도 연금이 가진 본국의 국채 비중은 높은 편이다. 다만 한국의 국민연금은 오는 2043년까지 급속히 덩치가 커지면서 투자처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다. 적립금이 많아지면서 국채와 국내 주식을 더 많이 사들여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오는 2021년까지 국내채권 투자 비중을 40%로, 국내주식 투자 비중을 20%로 좀 낮추고, 해외 투자 비중을 35%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② 각종 국가 채무 계산에서는 제외

반면 국민연금이 매입하는 많은 양의 국채는 ‘나랏빚’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지난 2011년부터 정부 간 내부 거래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국채는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으로 국가가 빚을 지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가 발행한 채권을 국가의 회계 또는 기금이 매입하면 ‘가족 간 거래’로 인식해 회계상 빚을 진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정부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국채를 매입하면 국가는 ‘빚’으로, 국민연금은 ‘자산’으로 잡혀 회계상 이중 계산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 부채에 반영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정부가 미래에 책임져야 할 ‘연금 충당 부채’ 계산에서도 제외되고 있다. 정부는 공무원 연금과 군인연금은 국가가 고용주라는 인식 아래 향후 지급해야 할 금액을 연금 충당 부채로 계산해 국가 부채 지표에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과 사학연금은 국가가 고용주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 회계 간 교환 거래가 명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래 지급해야 할 금액을 부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제 기준도 비슷하다. 국제통화기금(IMF) 정부재정통계편람은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험제도는 기여와 급여 사이에 엄밀한 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정책에 따라 급여 구조가 변경될 수 있어 정부에 대해 계약상의 의무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보장 급여를 정부 부채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③ ‘숨은 빚’ 문제 없을까

국민연금에 대한 이러한 국가 부채 계산법은 ‘숨은 빚’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국민연금을 가입자가 잠시 맡겨 놓은 돈으로 간주하면 국채 매입은 국가가 가입자들에게 빚을 낸 것과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채는 내부 거래가 아니라 당연히 국가 부채로 인식해야 한다.

다른 나라와 한국의 국민연금 상황이 다르다는 점도 문제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채나 미래에 정부가 지급해야 할 연금 충당 부채는 모두 국민연금이 지속 가능하게 튼튼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가입자가 낸 연금을 그대로 다시 돌려받거나 그해 걷어 그해 지급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부분 적립·부과식 국민연금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또 국민연금은 빠른 속도의 고령화까지 겹쳐 오는 2060년 적립금 고갈이 예상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사회보험제도를 국가 부채에 반영하지 않는 점을 한국에 그대로 반영하기엔 상황이 특수한 것이다.

정부도 국민연금 고갈에 따른 재정 건전성 유지에 대해 고민을 밝힌 적이 있다. 정부는 지난 2013년 국민연금 지급을 국가가 보장하도록 법에 명시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추진되자 “국민연금 국가 지급 보장이 잠재 부채로 잡혀 대외신인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부는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다. 국민연금이 국채를 매입할 때는 가입자가 아닌 ‘정부’가 주체이면서 고갈 후 돈을 지급해야 할 때는 정부가 아닌 ‘가입자’가 주체라는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④ 국채 통한 공공투자 논의도 ‘사회적 논의’ 절실

결국 전문가들은 고갈을 앞두고 국민연금의 성격과 운용 방식에 대해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오는 2043년까지 2561조원 쌓이는 국민연금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국민연금 고갈 후 제도를 부과식으로 전환할 것인지,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얼마나 더 올릴 것인지 등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국민연금이 가진 ‘나랏빚’에 대해서도 새로운 국가 회계 기준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개혁이 이뤄져야 국가의 재정 책임 수준도 산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정부는 국채를 이용한 국민연금 공공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저출산·고령화로 고갈에 직면한 국민연금이 직접 쌓여있는 적립금으로 관련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의도다. 국채를 이용한 국민연금 공공투자는 역시 정부간 내부 거래이기 때문에 국가 부채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한 시민 단체 관계자는 “국민연금 공공투자는 필요하다”라면서도 “하지만 국가 부채 부분에서는 지표에 반영되지 않도록 재정이 아닌 국민연금을 활용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는 있다”라고 밝혔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교수는 “다른 나라 대부분은 한국처럼 연금을 적립해서 지급하지 않는다”라며 “국제 기준이 내부 거래로 보더라도 한국은 다른 국민연금 제도를 도입하고 있고, 정부가 재정건전성 지표에서는 통합재정수지와 사회보장성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를 나눠서 사용하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을 국가 부채 지표에 당연히 반영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을 기여금을 저축해서 주는 것이냐, 국가가 다음 세대의 세금을 걷어서 주는 것이냐 등 보는 시각에 따라 국가 부채 반영 여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논의를 통해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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