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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칼럼] 기업가 홀대하는 나라

  • 전재호 산업부 재계팀장

  • 입력 : 2017.09.13 15:28

    [팀장칼럼] 기업가 홀대하는 나라

    약 2개월 전 공무원들 사이에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새 책 ‘경제철학의 전환’이 화제가 됐다. 특히 국내 경제·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공무원들이 많이 읽었다고 한다.

    변 전 실장은 이 책에서 존 케인스(John M. Keynes)의 수요 확대 정책보다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의 공급 혁신을 통한 새로운 수요 창출 모델이 지금 한국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과거에 마차, 수레로 가득찼던 거리가 자동차로 채워진 것은 금융·재정으로 수요를 확대해서가 아니라 공급 혁신으로 새로운 수요를 만들었기 때문이고 4차 산업혁명 시기에도 마찬가지라는 게 요지다.

    슘페터식 정책의 핵심은 기업가가 혁신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업가란 일상 업무만 처리하는 경영자가 아니라 토지·노동·자본 등 생산 요소를 결합해 새로운 생산 방법을 개발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기업가를 홀대하고 무시하는 풍토로는 한국에서 혁신 기업가를 육성하기는 어렵다.

    얼마 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해진 네이버 총수가 애플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가 했던 것처럼 미래를 보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사과했으나 재계에서는 “평소 기업가를 한 수 아래로 보는 정부의 시각이 드러난 것 아니겠냐”는 반응이 나왔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정치가 기업과 기업가를 머슴으로 보는 오만함과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말 미국 워싱턴 D.C.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재계 총수들을 만나 “기업인들께서 저를 ‘친노동’쪽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 친기업이다. 기업의 고문변호사도 오랫동안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을 보면 기업가의 의욕을 북돋아 주는 내용은 거의 없다. 오히려 공정위는 과거 ‘대기업 저승사자’로 불렸던 조사국과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될 기업집단국을 신설했고, 국세청은 대기업·대자산가의 탈세를 집중적으로 검증하는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면서 대기업과 총수들을 겨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업가가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원인 중 하나는 정경유착과 그에 따른 반기업 정서도 한몫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기업들이 우선 달라져야 하지만, 정부도 달라져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재벌에 달라진 모습을 보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 얼마 전 요금제 할인율을 상향하라는 정부 방침에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가 반발하자 공정위와 방송통신위원회가 갑자기 현장조사에 나서 압박한 게 대표적이다. 정부가 기업들을 길들이려고 공권력을 사용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정경유착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요즘 경제단체, 대기업 사람들을 만나면 힘이 빠지는 기분이라고 한다. 정부는 당근 없이 채찍질만 하는데 재계는 보복당할까 이렇다 할 목소리도 못 내고 있다. 정부는 우리 기업가들이 왜 스티브 잡스처럼 못 하느냐고 나무라지만 말고 스티브 잡스 같은 기업가가 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부터 살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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