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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당 7000만원씩 드립니다"…강남 재건축 이사비 '쩐의 전쟁'

  • 이진혁 기자
  • 입력 : 2017.09.13 14:39 | 수정 : 2017.09.13 15:35

    서울 강남권 재건축 수주를 놓고 건설사들의 ‘이사비 베팅(betting)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에 이르는 사업을 놓고 벌어지는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이사비 지원이라는 ‘당근’으로 조합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건설사들이 나섰다. 조합원들 역시 당장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해 빠르게 사업을 진행해야 하고 이사도 고려해야 하다 보니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주는 건설사에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현대건설은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조합원들에게 가구당 7000만원의 이사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 단지의 조합원은 총 2292명으로, 이사비에만 소요되는 자금만 1600억원에 이른다. 현대건설은 관리처분인가가 나면 5000만원, 입주 때 2000만원을 즉각 조합원들에게 지원하기로 했다.

    반면 현대건설과 시공권을 놓고 경쟁 중인 GS건설은 조합원들에게 별도의 이사비를 제공하지 않는다.


    GS건설과 현대건설이 시공권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조선일보DB
    GS건설과 현대건설이 시공권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조선일보DB
    송파구 잠실 미성크로바 재건축 사업장에서도 롯데건설과 GS건설이 시공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데, 롯데건설이 먼저 이사비 무상지원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롯데건설은 입찰 제안 마감일인 이달 22일 이사비 지원 금액을 공개할 예정이다.

    롯데건설은 이사비 지원이 필요없는 조합원은 앞으로 나올 분담금에서 제외하겠다고 제안했다. 롯데건설은 대우건설과 경쟁한 ‘신반포 15차’에서도 기존 이주비 외에 9억원의 추가 이주비와 5억원의 별도 이사비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시공권은 대우건설로 넘어갔다.

    부산 부산진구 시민공원 촉진3구역 재개발사업 시공권 경쟁에 나선 롯데건설은 조합원 이사비로 총 3000만원을 제시한 적이 있다.

    건설사들이 이사비 지원을 내거는 이유는 조합원들의 환심을 사기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단지 설계와 평면, 내부 자재, 조경, 커뮤니티시설 등은 당장 아파트가 지어지는 게 아니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이사비는 바로 조합원들이 손에 쥘 수 있다. 이사비만 해도 수천만원에 이르는 거액이니 조합원은 이런 매력적인 조건을 무시하기 쉽지 않다. 건설사가 조합원들의 마음을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셈이다.

    하지만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이사비 지원이 결국 건설사의 제 살 갉아먹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지금도 많게는 1억원 정도의 이사비 지원 제안이 나오는 상황에서 앞으로 압구정 ‘현대아파트’나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매머드급 아파트의 재건축이 진행되면 건설사가 훨씬 더 많은 금액의 이사비를 조합원들에게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이들은 설명한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수주 경쟁 흐름이 지속되다 보면 건설사 브랜드 이미지나 시공 능력, 단지 설계계획 등 건설사 본연의 경쟁력보다는 이사비 지원 금액에 따라 재건축 사업 판도가 좌지우지될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며 “결국 단지 품질이나 외관 경쟁력 등도 떨어져 조합원 입장에서도 길게 보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장이 혼탁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과거 재개발이나 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의 경우 시공사가 조합을 상대로 금품·향응 등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사비가 이런 수단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일반분양 때 조합에 베푼 이사비가 반영돼 분양가가 더 비싸질 가능성도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막대한 이익을 거둘 수 있는 도시정비사업 시공권을 두고 건설사들이 지나치게 경쟁을 벌이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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