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님비시대]⑤ "무릎 꿇어도 특수학교는 안돼"

조선비즈
  • 이상빈 기자
    입력 2017.09.12 09:40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이른바 ‘명문’ 학교 주변에는 더 비싼 돈을 주고라도 서로 살겠다고 아우성이지만, 같은 학교라도 가까이 두길 꺼리는 학교도 있다. 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 그런 특수학교가 지난 15년간 단 한 곳도 들어서지 않은 곳, 다름 아닌 서울이다.

    특수학교에서 교육을 받기 원하는 장애 학생들은 학교가 부족해 2~3시간이나 되는 시간을 보내는, 그야말로 ‘등하교 잔혹사’를 겪고 있다. 하지만 학교가 들어서는 주변 지역 주민 반대로 짓고 싶어도 짓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당신 같으면 (특수학교 건립을) 찬성하겠느냐”며 지역 주민들은 목청을 세운다.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주거 생활을 위협할 위험시설도 아니지만, 단지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짐작만으로 특수학교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시설이 돼 버렸다. 특수학교는 과연 모두가 꺼리는 기피시설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또 특수학교 건립이 무산되면 주변 집값은 뜰까?

    ◆ “특수학교 대신 국립 한방병원 들어서야”

    서울 강서구 양천로55길 허준 테마거리. 조선시대 명의 허준 선생의 출생지로 알려진 이곳은 허준박물관이 들어서면서 ‘허준 거리’로 지정됐다.

    기자가 찾은 11일, 허준 거리 일대는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서울 강서구에 옛 공진초 부지에 들어서기로 예정된 특수학교가 지역 주민에 반대에 부닥쳐 난항을 겪고 있다. /이상빈 기자
    “강서구청장은 특수학교 앞장서서 막아내라!” “국립한방병원 건립하여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자”

    장애인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 내용들이다. 인근 주민들은 국립 한방병원이 지어져야 할 곳에 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학교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고 나섰다.

    강서구 특수학교는 발달장애를 가진 장애학생을 위해 지어지는 학교다. 서울시교육청은 지금은 마곡지구로 옮겨 문을 닫은 옛 공진초등학교 터에 특수학교를 지으려고 한다.

    지역 주민들은 두 가지 논리를 들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고 있다. 이 부지는 허준 박물관, 한의사협회 주변 입지라는 점을 들어 국립 한방병원을 짓는 것이 좋다는 논리가 첫 번째. 또 서울에서 15년 동안 하나도 지어지지 않은 특수학교를 왜 하필 이곳에 지어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논리가 두 번째다.

    인근 아파트 주민 박모(46)씨는 “허준 선생 생가가 있는 의미 있는 자리인 만큼, 전국 최초로 들어서는 국립 한방병원을 지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양천구에 지으려던 걸 강서구로 가져와서 지으려고 하는데, 15년이 넘도록 서울 어디 하나 지어지지 않은 특수학교를 우리 집 앞에 짓는다니 말이 되느냐”며 “특수학교도 지역균형에 맞춰 지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 옛 공진초등학교 부지. /이상빈 기자
    이와 관련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부지로 계획된 곳이라 학교를 짓는 게 맞는다는 게 교육청 생각”이라며 “원래 양천구에 들어설 학교를 이곳에 짓는다는 건 예비 부지를 알아보는 공문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와전된 것”이라고 말했다.

    ◆ 무릎 꿇은 장애 학생 학부모 마음에도 “내 집 앞엔 안 돼”

    지난 5일, 서울시교육청은 강서구 탑산초교 강당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주민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장애학생 학부모들과 인근 지역주민, 이해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장애학생의 학부모들은 “나를 때리더라도 우리 애들은 편하게 학교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하며 무릎을 꿇고 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읍소했다.

    강서구 화곡동에는 특수학교가 하나 있지만 이곳의 정원은 100명 밖에 안 돼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은 인근 구로구에 있는 학교나 일반 학교에 다녀야 한다. 일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멸시받고 쫓겨나기 일쑤다. 그렇다고 다른 지역에 있는 특수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등하교에 2~3시간이 넘는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장애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 설립이 절박한 처지.

    발달 장애가 있는 19세 딸을 둔 이은자 전국장애인학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는 “우리 애들은 그나마 가까운 특수학교에 가려고 차로 1시간 30분 걸리는 길을 나선다”며 “15년 동안 한 곳도 생기지 않은 학교인 만큼 꼭 지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 주민들은 무릎 꿇은 이들에게 “장애인에게 학교가 뭐가 필요하냐”, “주민도 권리가 있다”는 조롱 섞인 말을 퍼부었다.

    공진초와 인근 아파트 단지 사이의 ‘허준 테마거리’는 조선시대의 명의 허준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초등학교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는 특수학교를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여럿 걸려있다. /이상빈 기자
    ◆ 집값 떨어지지 않았다는데…

    특수학교가 유해시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반대하는 건 결국 집값 때문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특수학교가 들어오면 결국 집값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인근 A공인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신나게 오른 마곡·강서 집값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를 보면 특수학교가 들어선다고 집값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 것으로 나온다.

    올해 초 부산대 연구진이 전국 167곳의 특수학교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특수학교 주변 1㎞ 안에 있는 아파트값은 평균 5.46% 올랐다. 하지만 특수학교와 거리가 더 떨어진 비인접지역은 평균 5.35% 오르는 데 그쳤다.

    박재국 부산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외국에서는 특수학교가 오히려 좋은 시설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고, 주민들의 반대도 거의 없다”며 “주민 편의시설을 갖춘 특수학교는 오히려 지역 주민들이 선호하는 시설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교육청 측은 지역 주민들을 위해 주민편의시설도 함께 마련해 특수학교를 건립하겠다는 입장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설립 시 교육청 예산으로 주민 편의시설도 같이 함께 계획해 지역 주민에게도 실제 도움이 될 수 있게 지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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