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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장동건, 미남은 무엇으로 사는가

  • 김지수 기자
  • 입력 : 2017.08.26 07:00 | 수정 : 2017.08.28 10:12

    “지금 나는 유명한 걸로 유명한 사람… 아내 고소영과는 싸우지 않아"
    “스물 한 살에 비정규 계약직으로 방송국 입사, 준비도 없이 유명해졌다"
    한국영화, 장동건이라는 매력자본 바탕으로 2000년대 블록버스터 산업화 이뤄내
    최근 박훈정 감독의 새영화 ‘브이아이피'에서 국정원 요원 역 맡아

    25년째 한결같이 따뜻한 성품을 간직한 ‘규격 미남' 장동건. 그가 영화 ‘신세계'로 이름을 얻은 박훈정 감독의 새 영화 ‘브이아이피'에 출연했다.
    25년째 한결같이 따뜻한 성품을 간직한 ‘규격 미남' 장동건. 그가 영화 ‘신세계'로 이름을 얻은 박훈정 감독의 새 영화 ‘브이아이피'에 출연했다.
    장동건은 미남이다. 미남이라 배우가 됐고, 여태껏 사랑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장동건이 ‘국민 미남’으로 살아온 게 썩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인 정도의 모습이랄까. 그래서 그를 보고 있으면 미남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미남으로서 태어나서 감당해야 했을 ‘사회문화적 책무'가 버거웠으리라 짐작된다.

    기질적으로 겸손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시끌벅적한 ‘공공재'로 다뤄지기까지, 그가 보냈을 자기 부정과 인정의 시간이 가늠된다고나 할까. 뭐 당신이 그럴 필요까지? 라고 묻는다면, ‘코리안이라고 보기엔 너무 진한' 장동건의 미모가 내 취향이 아니라서가 첫 번째 이유고, 그가 걸어온 ‘미남의 역사'가 그리 평탄하고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미남의 살갗 너머, ‘직업인'으로 장동건을 규정하는 키워드는 3가지다. ‘착하다, 독하다, 거대하다'.

    그는 이병헌이나 유아인처럼 영혼이 자유로운 아티스트가 아니다. 오히려 미디어 산업의 등짐을 나눠진 성실한 영화 노동자에 가깝다. 장동건이 넘치는 끼를 보여주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저 ‘태극기 휘날리며' ‘태풍' ‘마이 웨이' 등 피와 먼지가 뒤엉킨 거대한 영화 현장에서 영웅적이리만치 묵묵하게 자기 임무를 수행해왔을 뿐.

    장동건은 청년기에 ‘첩혈 쌍웅'과 ‘영웅본색'을 보고 자랐고, 성인이 되어서는 ‘대부'와 ‘원스어폰어타임인 아메리카'가 내 인생의 영화가 되었다고 했다. 최근 장동건은 ‘악마를 보았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하드보일드 영화 ‘신세계'로 명성을 얻은 박훈정 감독의 ‘브이아이피’라는 영화에 출연했다. ‘브이아이피'는 ‘악마를 보았다'와 ‘신세계'의 자극적인 클리셰를 재배치한 잔인한 ‘청불' 영화다.

    그는 북한 고위급 자제 출신으로 연쇄 살인 행각을 벌이는 잘생긴 악마(이종석 분)를 처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한 국정원 요원 역을 맡았다. 영화의 오프닝과 피날레의 강렬한 액션을 제외하면, 장동건은 뱀파이어를 연상시키는 뻔뻔한 사이코패스와 행동파 경찰(김명민 분) 사이를 오가며 시종일관 무기력한 회사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몇 마디 어색한 욕설과 불안을 가중시키는 줄담배로 ‘분량'을 채워가며.

    25년간의 영화 커리어를 통틀어 화면과 이야기의 중심을 장악하던 미남 장동건의 존재감이 이토록 최소화될 수 있다니! 바로 그 점에서, ‘브이아이피'의 캐스팅의 역학과 감독의 쿨함이 돋보일 정도다.
    감독의 요구로 돌출된 눈썹과 의심이 없어 뵈는 선한 눈조차 안경으로 가린 장동건은, 자신이 기능적인 직장인으로 보이길 바랬다고 설명했다.

    영화 ‘브이아이피' 촬영 현장에서의 박훈정 감독과 장동건. 기획 귀순을 소재로 한 잔인한 ‘청불' 영화에서 감독은 장동건을 장르적 계산 하에 치밀하게 사용했다.
    영화 ‘브이아이피' 촬영 현장에서의 박훈정 감독과 장동건. 기획 귀순을 소재로 한 잔인한 ‘청불' 영화에서 감독은 장동건을 장르적 계산 하에 치밀하게 사용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연쇄살인 ‘사건’ 그 자체예요. 개인적인 욕심은 줄이자고 생각했어요. 저는 다른 배우들과 바통 터치하듯 찍었어요. 릴레이 경주를 한다고 생각했죠. ”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사건의 종지부를 찍는 해결사 노릇을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완성되기까지 7년이 걸린다'는 루머에 시달릴 만큼 오랜 기간 촬영된 장동건의 야심작 ‘7년의 밤(정유정 원작, 추창민 감독)'의 뚜껑을 열기 전, 그러니까 그동안 3년간의 공백을 깨고 나온 작품이라는 점에 의미를 두어야 할까.

    장동건을 만났다. 영화 ‘브이아이피'에 관한 의례적인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변이 오고 갔다.

    -킬러로 출연했던 전작 ‘우는 남자(2014년)'와 캐릭터가 비슷합니다.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다행히도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이 많지 않더군요(웃음).”

    -여성의 신체 훼손 등 아무리 장르 영화라해도, 잔혹한 장면이 과용된 것 같더군요.

    “개인의 편차가 있지요. 오히려 밋밋하다는 평도 있고요. 혐오스러운 장면은 존재 이유가 중요한데, 그런 악행의 이미지를 통해 살인마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감정이 쌓이도록 했어요. 장르적 완성을 염두에 두고서요.”

    -영화 내내 끝도 없이 담배를 피우더군요. 줄담배에 호흡이 가빠질 정도였어요.

    “그러게요. 영화 끝내고 6개월간 한 가치도 입에 대지 않았어요. 요즘엔 다시 아이코스를 피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출연 의미를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한 영화에서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 전반부엔 리액션이 적고 감정도 드라이하지만, 후반부에 강렬한 변화가 있다는 점입니다.”

    급하게 인터뷰의 커브를 틀었다. 영화 이야기보다는 장동건의 ‘미남의 전사'를 들어보는 게 더 흥미로울 듯했다.

    -원래 배우를 꿈꿨습니까?

    “아니요. 배우가 꿈은 아니었어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생계를 해결하는 직업으로 배우를 시작했어요. 1992년 MBC에 2년 비정규 계약직으로 첫 입사를 했습니다. 출퇴근을 한 6개월 정도 한 것 같아요. 선배들이 “3년 정도 엑스트라 하면 자리 생길 거다" 해서 맘잡고 기다렸죠. 그런데 바로 캐스팅이 됐어요. ‘우리들의 천국'이란 드라마에요.”

    이후 눈 밝은 MBC 미니시리즈 PD들은 ‘눈의 황홀경'을 위한 청춘 드라마에 이 미남 배우를 꾸준히 캐스팅했고, 장동건은 한동안 클로즈업과 줌인의 세계에서 살았다.

    -구름을 탄 기분이었겠군요.

    “아니요. 저는 그게 막 좋지만은 않았어요. 마음의 준비도 안 됐는데 유명해졌어요. 드라마 ‘마지막 승부'까지 연이어 하면서 끌려가는 느낌이었어요. 너무 불안하더라고요. ‘마지막 승부'로 팬들도 생기고 TV 스타로 이름이 막 알려지니까. 안 되겠다 싶어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갔어요. 연극원 1기로요.”

    -중간에 왜 그만뒀습니까?

    “재학 중 2년 동안 외부 활동을 하면 안 된다는 교칙이 있었어요. 맘먹고 2년간 활동을 딱 접었는데, 학칙이 개정돼 다시 2년이 연장되더라고요. 끝까지 다닐까 고민하다, 조바심이 나서 현장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학업을 마치지는 못했지만, 막 뜨기 시작한 청춘스타가 2년간 대학을 다니기 위해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이다.

    나르시시즘의 뉘앙스가 없는 장동건의 얼굴. 눈가의 주름이 평온한 느낌을 준다.
    나르시시즘의 뉘앙스가 없는 장동건의 얼굴. 눈가의 주름이 평온한 느낌을 준다.
    -그즈음에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한 건가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당시 ‘투캅스' 같은 전형적인 형사 영화만 있던 시절에 나온 독창적인 액션 영화이기도 했지만, 출연 배우인 안성기, 박중훈, 장동건의 앙상블도 정말 좋았어요.

    “‘아이싱' ‘의가형제' 등 드라마 몇 편, ‘연풍연가' 등 멜로 영화 몇 편 찍고 1999년에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하게 됐어요. 사실 이명세 감독님 영화라는 것만 알고 무슨 역할인지도 잘 몰랐어요(웃음).”

    -이명세 감독 영화의 특징이지요. 배우를 캐릭터보다는 스크린에서 움직이는 그림의 요소로 생각하시니까요. 미장센 만큼 대사도 그리 중요하지 않고요(웃음).

    “네. 그래서 안성기 박중훈 선배님이 하신다는 게 큰 힘이 됐어요. 저분들 옆에서 그냥 함께 서 있기만 해도 좋겠다, 그랬죠. 그래도 그때 그분들과 작업했던 게 이후 제 영화 현장에서 행동 양식에 큰 영향을 줬어요. 이번 영화 ‘브이아이피'에서 이종석 씨를 보니 그 시절 제 생각이 났어요. 어린 친구가 목마름이 있으니까, 선배들한테 ‘도와주세요'하는 눈빛이 되는 거예요(웃음).”

    빼어난 비주얼 감각으로 한국영화계의 독보적 미장센을 만들어온 이명세 감독은 ‘청춘스타' 장동건을 ‘작지만 빛나게' 사용했다. 카메라가 그의 서구적인 이목구비는 무시한 채, 터프한 형사 박중훈 뒤에 서성이던 그를 무심히 비추자 비로소 미남에 가려졌던 인간 장동건의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쩌면 배우의 가장 큰 매력은 외모가 아니라 성격이다. 그 자신, 그 영화에서 선하고 조용한 성격이 들켜버려 쑥스러웠을 테지만. 아직도 나는 그 영화에서 박중훈과 장동건이 놀이터에서 어린아이처럼 눈싸움하던 천진난만한 장면이 기억난다.

    이후 2000년대 한국영화는 장동건을 앞세워 급격하게 산업화로 나아갔다. 장동건의 매력 자본은 블록버스터의 ‘안전 자산’으로 활용되기 충분했다. 컴퓨터로 오차 없이 뽑아낸 듯한 이목구비와 함께 육체적 한계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그의 끈기를 바탕으로 ‘로스트메모리즈(2002년)'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 ‘태풍(2005년)’ 무극(2006년), ‘워리어스 웨이(2010년)' ‘마이웨이(2011년)' 등 대작 영화가 이어졌다.

    어마어마한 판돈과 물량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는 터지는 폭약 속에 피투성이로 내달리는 장동건의 육체와 분노를 먹고 점점 더 몸집을 불렸다. 10년이 넘도록 장동건이라는 이름은 영화계와 광고계를 아우르며 높은 크레딧을 가진 우량주로 거래됐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는 어땠을까?

    -대작 영화에 주로 참여한 건 본인의 의지였습니까?

    “일단 강제규, 곽경택 감독을 믿었습니다. 그분들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요.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재미있고 저와도 잘 맞았고요. 떠올려보면 2001년에 출연한 ‘2009로스트메모리즈'는 그때까지 제작된 한국 영화 중에 제작비 규모가 가장 큰 작품이었어요. 그 기록을 ‘태극기 휘날리며'가 깼고, 다음 기록을 또 ‘태풍'이 깼어요. 부담은 있었지만, 큰 영화라고 해서 안 할 이유도 없었어요.”

    선한 눈빛 속에 한 가정의 모범적인 가장의 모습이 비친다.
    선한 눈빛 속에 한 가정의 모범적인 가장의 모습이 비친다.
    2010년 이어령 전 장관의 둘째 아들 이승무 감독이 연출한 할리우드 합작 영화 ‘워리어스 웨이(전사의 길)'에 출연한 건 다소 의외였다. 서부 활극의 클리셰들이 뒤죽박죽 결합된 그 기이한 ‘웨스턴 판타지’는 참여한 배우와 스태프의 화려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평단과 관객에게 싸늘하게 외면당했다.

    -‘워리어스 웨이'는 왜 한 겁니까?

    “(미소지으며)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욕심이 났었죠. 프로듀서도 ‘반지의 제왕'을 했던 분이었고, 특수효과팀도, 캐스팅도 좋았어요. 코믹한 잔혹함을 지닌 타란티노 옛날 작품처럼 될 줄 알았는데, 유명 제작자가 붙으면서 판이 지나치게 커졌어요. 결국은 너무 보편적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 같아요.”

    -후회는 없나요?

    “그 작품에 3년의 세월을 보냈죠. 그런데 그때 경험이 좋았어요. 할리우드 시스템을 경험하니 배짱도 좀 생기더군요. ‘무극'이나 ‘위험한 관계' 같은 중국 합작 영화도 경험해보니 좋았고요. 어디서 만드느냐에 의미를 두기보다 그런 다양한 현장 경험을 해보는 건 늘 좋은 것 같아요.”

    다국적 자본이 ‘엉켜버린' 현장, 어설픈 완성품에 대한 책임 전가 식 ‘하소연'을 좀 들어보려 했던 나는 그의 반듯한 답변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한 점 흥분이나 동요도 없는 다정한 목소리로 장동건이 말을 이었다.

    “매사에 잘하려고 욕심을 부리다 보면 오히려 관객을 불편하게 할 때도 있더라"고. “그때가 슬럼프였나? 아님 갱년기였는지도 모르겠어요(웃음).” 그러다 정유정 원작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7년의 밤'을 만나고 다시 신발 끈을 조일 수 있었다고.

    어쩌면 배우는 마라토너다. 결국은 페이스메이커 없이 혼자 달리는.

    “이번에 ‘7년의 밤'에서 배우 개인으로는 여한이 없이 해본 것 같아요. 그만큼 한계도 느껴 봤고요. 정말 필요한 시기에 추창민 감독님을 만나서, 한 장면에 A B C D E까지 모든 버전을 다 찍어봤어요(웃음).”

    -영화의 사이즈와 상관없이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곽경택 감독님과 찍은 ‘친구'예요. 개인적으로도 변화가 큰 작품이었고 촬영하면서도 푹 빠져있었어요. 자신감도 얻었지요. 당시만 해도 주인공이 사투리를 쓴다는 게 큰 사건이었어요. 장동건이란 배우가 험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도 큰 모험이었습니다.”

    부산을 배경으로 두 친구의 ‘조폭의 성장사'를 다룬 영화 ‘친구'. 그는 ‘친구'가 그저 작가주의 ‘컬트 영화' 정도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멀티플렉스도 없던 시절에, 6개월 장기 상영에 820만 관객이 든 거예요.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많았죠. 청소년 모방범죄가 나타나고 뉴스에서 심각하게 다뤄지기도 했어요. 그럴 땐 아차, 싶은 맘도 있었지만, 배우로서는 참 뿌듯한 영화예요.”

    두 친구 사이 우정의 평형이 깨지면서 장동건이 내뱉은 대사 “니가 가라, 하와이” “ 내가 니 시다바리가?” “고마해라, 마이 뭇다 아이가"가 15년이 넘었는데도, 귀에 생생한데..., 그때가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유오성에게 배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흥얼거리며 ‘남자에게 서른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했다던 젊은 날의 장동건. 그렇게 빛나는 장동건에게도 청춘은 예외 없이 지나갔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장동건, 미남은 무엇으로 사는가
    -전반적으로 운이 좋은 인생이네요.

    “그렇지도 않아요. 뭔가 어긋나서 삼수까지 했지만, 대학에 연거푸 낙방했고요. 노량진 학원가를 떠돌며 가출도 하고 싶었는데, 제가 현실적인 사람이라 포기한 거죠(웃음).”

    그는 자신이 부유하진 않았지만 평온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3대가 함께 살던 집은 늘 따뜻한 기운이 공간을 채웠다. 내적으로 부침이 컸던 사춘기 시절도, 어른 말씀 한번 거스르지 않고 조용히 지나갔다.

    -부모님께 어떤 가르침을 받았습니까?

    “말보다는 분위기와 삶 그 자체였어요. 평화로운 분위기. 기억이 존재하는 일곱 살 때부터 죽 그랬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어릴 때의 저를 돌이켜보면, 저도 부모님이 해주셨던 것 같은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나이 드는 것도 그래요. 제가 20대 때는 마흔 넘은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었죠. 그 나이에 무얼 할까? 그런데 아버지가 어느 날, 젊은 저를 지그시 바라보며 그러세요. “니가 나보다 재밌게 사는 것 같지? 그렇지 않다.” 그때 알았어요. 나이 들면 드는 데로 삶이 더 좋아지는구나.”

    실제로 마흔 중반을 넘어서니, 예전에 재미없던 게 새록새록 더 재미있어진다고, 그가 순하게 웃었다. “좋아요, 나이 드는 게. 60대 때는 더 재미있겠죠.” 육십이 되어, 흰 머리가 무성한 장동건을 상상해보니 나쁘지 않다.

    정작 46세의 그는, 넋 놓고 늙기엔 너무 바쁘다. “큰 애가 일곱 살, 둘째가 세 살… 아이들의 귀여움이 사라지기 전까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그래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고 늦둥이 아빠다운 소박한 바람도 내비치며.

    -고소영 씨에게는 좋은 남편인가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웃음). 상대방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먼저 사과하는 편이냐고요? 음… 안 싸우려고 해요. 맞춰주려고 노력하죠. 싸워서 이기면, 그게 이기는 건가요? 승리할수록 더 힘들어지는 거예요, 부부 사이엔.”

    -최근에 잘 생김을 인정하고 나니 편하신가요?

    “편합니다. 예전엔 작은 농담도 결례가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있었는데, 요즘은 다 받아주는 분위기가 되니 좋습니다(웃음).”

    -유명인으로 사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학교에 가면 아들 친구들이 저를 알아봅니다. 그 아이들이 제 영화를 봤을까요? 아니거든요. 우디 앨런 영화 중에 이런 대사가 있어요. “저 사람은 유명한 거로 유명하다". 저는 그런 사람인 거죠(웃음).”

    -익숙하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균형감이 생기니 예전보단 편안합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장동건, 미남은 무엇으로 사는가


    -직업 배우로 사는 건 어떻습니까?

    “잘 하려고 집착할수록 흥미를 잃더군요. 편안하게 즐겁게 오래 일하고 싶습니다.”

    -모든 직업인의 꿈이지요.

    “맞아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되니 더욱 그렇습니다(웃음).”

    25년간, 그 흔한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 영화에서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장동건.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이나 아내와 출연했던 영화 ‘연풍연가'를 제외하면, 사십이 넘어 출연한 ‘신사의 품격'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그 자신, “그럴싸한 멜로 영화가 없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지만, 시간의 중력이 조각처럼 날선 그의 얼굴 윤곽을 조금씩 허물어뜨리고, 주름이 그의 이마와 눈가에 평범한 기운을 드리울 때쯤, 사랑의 열병에 빠진 ‘아름다운 남자’ 장동건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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