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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에 밤샘… 스타트업 떠나는 靑春들

  • 임경업 기자

  • 류영욱 인턴기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졸업)

  • 입력 : 2017.08.16 03:00

    [절반이 1~2년 내 스타트업 퇴직]

    자유로운 조직문화 기대했다가 온갖 잡일에 커피심부름까지… "차라리 中企로" 이직 속출
    대졸자 절반 "스타트업 싫다"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창업허브의 한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사무실. 창업 2년 차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인 이곳에서는 창업자인 김모(35)씨 혼자만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짜고 있었다. 33㎡(약 10평) 크기의 사무실에는 책상이 5개 있었지만 4개는 주인 없는 빈 책상이었다. 김씨는 "지난달 직원 2명이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 남았다"며 "그동안 10여 명을 뽑았지만 짧으면 1주일, 길어도 5개월 사이에 회사를 나갔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들어왔다가 조금만 힘들어도 실망하고 떠난다"고 했다.

    청년 인재들이 스타트업을 떠나고 있다. 공기업·대기업 대신 스타트업이라는 모험을 택한 청년들이 '안정적인 대기업이나 차라리 중소기업이 더 낫다'며 이직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6월 30일부로 해산)가 6월 스타트업 근무 경험이 있는 15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775명)이 스타트업을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서울창업허브 사무실이 텅 비어 있다.
    텅 빈 서울창업허브 -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서울창업허브 사무실이 텅 비어 있다. 스타트업 취직을 선택했던 청년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과 낮은 급여 등의 이유로 스타트업을 떠나고 있다. /이진한 기자
    김도윤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는 스타트업 창업자에게만 주목하지만 누군가는 스타트업 직원으로 일해야 한다"며 "아무도 스타트업에 취업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국내 창업 생태계가 무너질뿐더러 일자리 창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스타트업 환상'이 깨진 청년들

    청년들이 스타트업을 그만두는 이유로는 낮은 급여(16.1%), 열악한 근무 환경과 복지(14.7%), 고용 불안(12.3%), 폐업(12%) 등으로 조사됐다. 한마디로 처우는 열악하고 성공할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것이다. 서울 K대 사회과학계열을 졸업한 김모(27)씨는 지난해 9월 주식정보제공 스타트업을 그만두고 현재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그는 근무하는 동안 계약된 급여 월 200만원 중 160만원만 받았고, 입사 두 달 만에 구조조정을 이유로 계약만료 통보를 받았다. 그는 "월 매출 1억원도 안 되는 회사에 직원이 40명이었다"며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직원은 없고, 종잣돈 몇 푼에 의욕만 앞선 사람들만 넘쳐났다"고 말했다. 화장품 스타트업에 다니는 이모(29)씨는 "입사 후 10개월 동안 직원 16명 중 6명이 퇴사했다"며 "스타트업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일을 해야 하는데, 젊은 세대들은 이를 황당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씨 역시 입사 후 제품 개발, 마케팅, 총무팀 등으로 명함을 3개나 새로 팠다.

    스타트업 떠나는 직원들 외
    자유로운 조직 문화를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많다. 중견 식품기업에 다녔던 장모(28)씨는 '보수적인 기업 문화가 싫다'는 이유로 지난해 9월 한 스타트업으로 옮겼다. 장씨는 그러나 "회식 자리에서 술을 강요하고 사장 한 마디에 출근 시간이 30분 당겨졌다"면서 "서류작업도 전통 기업 못지않게 많고 상하 간 소통이 안 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차량공유 서비스 스타트업에 다니다 올해 1월 퇴사한 이모(30)씨는 "신입이라는 이유로 가습기·정수기 청소 같은 잡일에 팀장 커피 심부름까지 했다"고 했다. 1년간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지난 3월 퇴사한 임모(27)씨는 "한 달에 열흘 넘게 밤 10시가 넘어서 퇴근했고 주말에도 일했다"며 "반년 치 밀린 월급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해 겨우 받았지만 퇴직금은 못 받아 현재 민사소송을 넣은 상태"라고 했다.

    대졸자의 절반 "스타트업 취업 싫다"

    올 상반기에 스타트업을 포함한 신설 법인 수는 4만9424개로, 관련 통계를 시작한 200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양적 팽창과는 달리, 스타트업의 일자리 질(質)은 개선이 안 돼 고질적인 인재 유출 문제를 떠안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오픈서베이의 작년 10월 조사에 따르면 대학 졸업예정자의 49%가 '스타트업 취업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2015년 같은 조사(15.5%)에 비해 부정적인 의견이 세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우진 국민대 글로벌창업벤처대학원 부원장은 "젊은 창업자들은 조직 생활에 대한 경험 없이 회사를 설립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재무나 인사·조직 관리에서 상당한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현재 대부분 스타트업들이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상순 서울시립대 경영대 교수는 "정부가 스타트업에 자금만 지원해주고 무작정 창업으로 내모는 것은 총 한 자루 던져주고 전쟁터 보내는 '학도병식 창업 지원'"이라며 "정부가 보여주기식 실적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젊은 사업가를 위한 노무·인사·재무와 같은 창업 교육 지원에도 나서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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