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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류승완 "'군함도'가 CJ 스타일? 완벽한 편집권 보장받았다"

  • 김지수 기자
  • 입력 : 2017.08.12 07:00 | 수정 : 2017.08.14 17:37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동생 류승범과 함께 전설적인 등장
    액션, 형사, 느와르, 첩보... 새 영화 내놓을 때마다 장르 확장
    ‘군함도'는 ‘베테랑'과는 몇 만 광년 떨어진 영화
    “스트레스 받을 땐 뛴다… 아내와는 가장 많은 대화"
    “편집권은 감독 권한… 영화 크레딧엔 투자자보다 창작자 이름 먼저 나와야"

    사진=이태경 기자
    사진=이태경 기자
    2년 전 여름, 평범한 형사가 망나니 재벌 3세를 혼내주는 판타지 영화 ‘베테랑'으로 소시민들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안겼던 류승완 감독이, 최근 일제 강제 징용의 역사를 다룬 영화 ‘군함도'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 자신, ‘영화에 대한 논란이 아니라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에 대한 입장 차이'라고 일축하지만.

    개봉 이틀 만에 2백만 관객을 돌파하며 달리던 ‘군함도'는, 현재 6백만에서 주춤하며 손익분기점을 가까스로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모든 영화는 자기만의 운명을 갖고 태어나는 하나의 생물이다. 일본 강점기 시대 혹독한 노역을 치른 강제 징용자들에게 영화적 ‘대탈출'을 선물해주고 싶었던 감독 류승완의 소망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을까.

    역사적 아픔과 계몽, 영화의 오락적 가치, 감독과 배우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격렬하게 부딪힌 채로 ‘군함도'는 여전히 출렁이고 있다. 그러나 모든 논란을 차치하고서라도, 역사 속에 잊혀가던 강제 징용자 군중을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류승완의 용기는 인정해주고 싶다.

    ‘군함도' 이전에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를 소비했던 수많은 영화를 떠올려 보라. ‘암살(최동훈 감독)'과 ‘밀정(김지운 감독)'과 ‘아가씨(박찬욱 감독)'와 ‘박열(이준익 감독)' 등등에서 우리가 본 주인공들은 죄다 매력적인 독립운동가와 변절자 혹은 부르주아 친일파가 아니었던가.

    그리하여 ‘군함도'라는 영화의 훼손할 수 없는 한 가지 가치가 있다면,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네’이다.

    그것은 야전에서 굴렀던 감독 류승완의 출신 성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70여 년 전, 지하 1,100미터 갱도의 막장에 매장됐던 조선인 노동자들의 검은 육체에 깊은숨을 불어넣었다. 여타 지식인 출신의 감독들이라면 생각조차 못했을 위험하고 무모한 구출 작전이었다.

    류승완을 만났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도 초콜릿 케이크를 입에 오물거리며, 아이처럼 명랑하게 웃었다.

    사진=이태경 기자
    사진=이태경 기자
    -여전히 ‘군함도'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기분이 어떤가요?

    “(물컵을 만지작거리다 빙그레 웃는다)재밌어요. 흥미로워요.”

    -무엇이 흥미롭습니까?

    “영화와 관객이 역동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이요. 코엑스 어떤 극장에서는 일본 우두머리 야마다 목을 벨 때 박수가 터져 나왔다더군요. 영화를 안 본 것으로 추정되는 분들의 비난에 대해서는 ‘보고 하는 말이냐?’며 지지하는 분들의 댓글 격론이 벌어지기도 하죠. 그 와중에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후보로 올렸던 사도 탄광을 자체 탈락시켰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군함도'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논란을 예상했다는 말인가요?

    “영화를 만든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되고 있다는 거죠. 많은 분이 ‘군함도'에서 일어났던 징용의 역사를 찾아보고 사실 고증과 과거사, 친일파의 행적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으니까요.”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 항에서 남서쪽으로 있는 섬으로, 19세기 후반 미쓰비시 그룹이 이곳을 탄광사업으로 개발해 큰 수익을 올렸다. 1974년 폐광됐다.
    군함도에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500~800명, 당시 사망자는 121명이다. 현재 국내 생존자는 6명이다. 군함도는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으로 인정돼 2015년 7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며칠 전엔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 박유하 교수가 비평을 남겼더군요. 영화 ‘군함도’엔 피해자가 없다는 논지로.

    “각자의 생각이 있겠지요. 이건 영화에 대한 논란이라기보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에 대한 각자의 입장이라고, 저는 봅니다.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는 점점 더 햇빛 아래 드러나겠죠. 2차 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들을 보세요. 히틀러가 기관총 맞은 것으로 나와도 독일 정부가 왜곡 논란을 꺼내지 않아요. 홀로코스트의 선봉에 나치가 있었기 때문이죠. 독일은 나치 부역자를 부끄러운 역사로 보고 청산 작업을 해왔어요.”

    -일본과 독일은 역사를 대하는 인식이 다르지 않습니까?

    “다르죠. 예전에 독일에 있는 유대인 마을에 가본 적이 있는데, 할리우드 스타처럼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누구냐고 했더니, 당시 희생자라라는 거예요. 놀랐죠. 즉결처형당한 총알 자국이 있는 건물도 그대로 남겨뒀더라고요. 베를린 한복판에 거대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추모기념비가 있었는데, 그건 또 당시 독가스 제조회사가 세웠어요.”

    -두고두고 기억하고 사죄하겠다는 의미지요.

    “맞아요. 그런데 같은 전범 국가였던 일본은 어떻습니까? 사기업인 미쓰비시가 군함도로 조선인을 데려올 수 있었던 건 일본 제국이 국민동원령을 내리고 인력 착취를 허용했기 때문이에요.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는 지금 엘리베이터와 자동차로 잘 나가는 회사가 됐는데, 자기들은 예전 미쓰비시와 우리는 다르다고만 합니다. 한심하죠. 그래서...”

    -그래서 기분이 어떠신가요?

    “보고 있는 거죠. 저는.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세세한 논란은 안 봐요. 이를테면 영화에 대한 합리적 비판은 저도 환영하는데, 이번엔 참 특이해요. 국뽕과 친일이 한 영화에 모아진다는 게… 영화를 안 보고도 비판이 가능하다는 게… 내 영화에 대한 반응에 대해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라 덤덤하게 보고 있어요.”

    사진=이태경 기자
    사진=이태경 기자
    류승완 감독은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동생인 배우 류승범과 함께였다. 가식 없이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형제의 영화적 에너지는 한국 영화계에 전례가 없던 스타일이었다. 류승범의 연기는 전혀 기반이 없는 ‘날 것'이었고, 류승완의 연출은 성룡과 쿠엔틴 타란티노와 버스터 키튼이 리듬 있게 뒹구는 야생의 ‘활극'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영화를 독학했다. 감독, 각본, 배우, 무술 감독까지 1인 시스템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그의 겁 없는 B급 스타일이 메이저로 유입되면서 한국 영화계는 풍부한 질감을 갖게 됐다.

    2001년 전도연과 찍은 액션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 이후 17년간 류승완은 수많은 화제작을 만들며 충무로 대표 감독으로 성장했다. 한국 누아르의 새로운 장을 연 ‘부당거래(2010년)'와 스펙터클한 해외 첩보물 ‘베를린(2013년)'을 거치면서 류승완 감독은 더욱 차갑고 크고 정교해졌다.

    -220억 제작비면 어마어마한 규모인데, 투자사로부터 완벽한 편집권을 보장받았나요?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저는 이제까지 편집실에서 단 한 번도 쫓겨나거나 제 의도와는 다른 장면이 들어가는 걸 허용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제 동의 없이 삭제된 장면도 없지요. 설득하든 드러눕던 어떤 방법으로든 싸우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왜 그걸 물으시나요?”

    -기존의 CJ 블록버스터와 유사한 느낌이 있습니다. ‘명량'이나 ‘국제 시장'을 본 것 같은… 물론 대규모 캐스팅, 로케이션, 세트, 물량 공세가 주는 착시 효과가 있습니다만.

    “그런 느낌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정말 그렇던가요?”

    -기존의 류승완 감독 영화와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초기부터 제 작품을 봐온 분들은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어떤 부분이 그렇던가요?”

    -류 감독 영화는 장르적인 관습을 따르면서도 동시에 의외의 역습과 찌르는듯한 희비극의 정서가 있는데, 이번 영화는 다소 도식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제까지 류승완의 영화를 볼 때는, 항상 류승완이 화면 어딘가에 함께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히치콕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런데 이번엔 안보이더군요. 영화가 갖는 결론의 웅장함에 감독의 생동감이 압도당한 건 아닌지요?

    “재밌는 이야기 해드릴게요. 이런 똑같은 반응을 만난 적이 있어요. ‘주먹이 운다'라는 영화를 할 때였죠.”

    -가족이 등장하고, 신파적인 흔적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신파적이라니요? 후반부에 비극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데도요? 오히려 ‘군함도' 사운드에서는 오열하는 소리를 멀어지게 만들었어요.”

    -그렇다면 도식적인 느낌이 드는 건 대탈출을 목표로 설정했기 때문일까요?

    “(갸우뚱하며)글쎄요. 다른 대탈출 영화들과 달리 ‘군함도'는 탈출의 주인공이 군인이 아니에요. 2차 대전을 다룬 영화를 보면 군인이나 포로가 탈출의 의무를 갖고 있어요. 이 영화에선 아니에요. 오로지 살기 위해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죠. 당시 역사를 보면 개인이나 40명 정도의 집단 인원의 탈출 시도가 있었다고 해요. 저는 이런 비극적인 소재와 인물을 다루면서 이분들에게 감독인 제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절실하게 생각했어요.”

    영화 ‘군함도'의 대탈출 장면.
    영화 ‘군함도'의 대탈출 장면.
    -감독의 소망이 개입됐군요.

    “감독은 무엇보다 자신이 다루는 인물에 대해 충실히 알고 있어야 해요. 그분들의 두려움은 살아서 집에 못 갈 거라는 공포였어요. 그분들의 소망은 밥 좀 배불리 먹어봤으면, 좁은 갱도에서 허리 좀 펴봤으면, 밤에 마른자리에서 한번 자봤으면 이었죠. 저는 그들이 스스로 그 지옥도에서 탈출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스타일이 달라진 건 확실하죠.

    “인물과 사건을 다루는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짝패'나 ‘아라한 장풍대작전'같은 액션을 찍는 방식으로 이 영화를 찍을 순 없어요. 이 영화는 ‘베테랑'과도 몇만 광년 떨어져 있지요. 기존의 제 영화와 다르게 느끼는 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제 영화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나갈지는 두고 봐야죠.”

    -탈출을 선두에서 이끈 송중기의 캐릭터가 입체적이지 못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스타들이 등장하면 관객 각자의 욕구가 충돌하지요(웃음). 송중기는 극 중에서 군인 명령을 위반하고 자기 신념에 따른 선택을 합니다. 그가 왜 거기에 갔고, 왜 다른 선택을 했는지 순수한 방향성을 갖고 있어요. 소지섭은 경성 깡패 출신으로 조직원과 자기가 살기 위해 중간 관리자 자리를 차지하죠. 관객이 무엇을 더 보고 싶어 하는 지 알겠지만, 제가 만든 영화 안에서 그들은 어긋나지 않습니다. 다시 만들어도 결과는 같을 거예요.”

    -초반부 갱도에 등장하는 소년들의 앙상한 팔다리는 CG를 사용했습니까?

    “아니요. 그 소년은 우리 둘째 아이와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친구예요. 캐스팅 당시부터 이 영화의 출연자들은 작은 배역까지 깡마른 사람들로 캐스팅했어요. 다들 체중이 50kg 이하였죠. 황정민, 이정현 배우도 가슴뼈와 갈비뼈까지 드러납니다. 촬영 중에도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도록 특별 식단으로 관리했습니다. 배우와 스태프들 모두 ‘이 영화는 특별하다’는 자기 확신이 없었다면 완성하지 못했을 거예요.”

    -고통스러웠겠습니다.

    “역사 속의 징용자들을 생각하면 힘들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우린 세트지만, 그분들은 실제 1,100m 막장 속에서 허리도 못 펴고 살았으니까요.”

    -10대 소년 배우들도 그 과정에 공감했습니까?

    “그럼요. 원래 마른 친구들인데, 현장에서도 아무거나 먹지 않더라고요. 분장팀이 몸의 윤곽이 더 앙상하게 드러나도록 분장을 한 정도입니다.”

    ‘군함도’의 한 장면.
    ‘군함도’의 한 장면.
    -현장에서 노동 시간은 제대로 지켜졌나요?

    “다들 힘들었지만, 표준 근로계약서를 작성했고 규정대로 모두 지켰습니다. 수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공간이라 거짓은 있을 수 없습니다.”

    -험난한 길이라 예상했습니까?

    “영화 처음 만들 때 나가사키 평화 공원을 방문하려고 했어요. 그쪽에서 무슨 일이냐고 경계하더군요. 그때 예감했죠. 험난한 길이 되겠구나. 꽃길만 걷고 싶었다면 이 영화를 안 했겠죠.”

    -리얼리티와 판타지를 어느 정도로 분배했습니까?

    “탈출에 성공해서 나가사키까지 갔다가 원폭 투하에 죽은 분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갱도 안에서 가스 유출 사고가 났을 때 번지지 않도록 매몰시킨 사건은 하시마 인근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입니다. 숙소인 반지하 6조 다다미는 늘 파도가 들이쳤고 젖은 방에서 피부병에 걸린 사람도 많았죠. 탈출 장면도 사학자와 군사전문가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판타지 장면도 취재에 근거해서 리얼리티를 쌓아갔습니다.”

    -가녀리지만 강단 있는 이정현과 아역 배우 김수안이 빼어난 연기를 했습니다.

    “여자와 어린아이가 가장 큰 전쟁 피해자예요. 마지막에 아이가 살아서 관객과 눈을 맞추면서 끝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황정민이 아이를 업고 뛸 때는 ‘부산행'이 겹쳐지기도 하더군요.

    “그 영화가 관객의 뇌리에 남아 있으니, 더욱 강렬해졌을 거예요. 김수안 양은 다른 작품으로 봤을 때도, 천재적인 기운을 느꼈어요. 그 아이 어머니가 작명소에서 받은 원래 이름이 극 중 이름인 ‘소희’였다고 해서 놀랐어요.”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라는 독립 영화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28살에 제작비 6500만 원으로 괴물 같은 영화를 만들었지요. 가끔은 그때가 그리울 때도 있습니까?

    “아니요. 전 지금이 좋습니다. 나이 들어 여기저기 아프다는 것만 빼면요(웃음).”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다른가요?

    “그때는 제가 최고가 될 거라는 얼토당토않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많은 걸 내려놓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20대의 젊은 에너지로 나이 들어서 욕심부리지 않으니 참 좋습니다.”

    -나이 들어서 무엇을 내려놓았나요?

    “감독은 결국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영화 촬영을 전후해서 100가지가 넘는 선택을 매일 해내야 합니다. 점점 NG냐 오케이냐 선택 기준이 선명해져요. 매 순간 너무 욕심내지 않고 영화가 요구하는 방향에 맞게 가려고 합니다.”

    -예전에 영화감독은 전쟁 지휘관과 맞먹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습니다만.

    “철없던 시절의 실언이었습니다(웃음). 어떤 것도 실제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어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요?

    “무작정 뜁니다. 바람을 맞으면서 걷기도 하지요.”

    -비슷한 시기에 극장에 걸렸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는 보았습니까?

    “봤습니다. 아이맥스에 어울리는 새로운 연출이 좋았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아내가 프로듀서 역할을 하죠. 제작사의 대표이자 아내인 강혜정 씨는 류감독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많은 대화를 하는 사람이죠. 저와 아내는 영화 현장에서 담배꽁초 줍던 시절, 밑바닥 조수 시절부터 함께 했습니다.”

    -소중한 파트너겠군요.

    “네. 파트너이기 전에 우리 집 세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하지요.”

    사진=이태경 기자
    사진=이태경 기자
    -한국에서 영화감독으로 사는 소회를 말해주겠어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합니다. 원하는 장면을 만들어냈을 때는 희열을 느껴요. ‘군함도'에서도 마지막 대탈출 장면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전경, 중경, 후경이 모자람 없이 꽉 찬 풍경이지요. 사운드와 이미지 연출에서 제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해요.”

    -슬플 때는 언제입니까?

    “오해받을 때죠. 스크린 독과점 논란 같은 것들이요. 배급 문제는 제 권한이 아닙니다. 감독이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부분이죠. 마음이 무거워요. 앞으로 한 영화가 상영관을 몇 % 이상 장악하지 못한다는 제도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현재 독과점 논란에 대한 책임에 있는 배급사·멀티플렉스는 침묵하고 있다. 창작자로서 곤란한 논쟁이 휘말렸지만, 영화계에서도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누구보다 사회참여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온 감독 류승완과 제작자 강혜정 부부는 최근 그간 몸담은 한국영화감독조합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여성영화인모임 등 소속 단체에서 모두 탈퇴했다.

    -영화 시작할 때 뜨는 크레딧 순서에 문제를 제기했었지요. 투자자 이름이 먼저 뜨는 것은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요. 정정이 되었습니까?

    “네. ‘군함도'에는 투자자보다 창작자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그게 올바른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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