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규제' 한국, 세계 100대 스타트업 중 57개는 시작도 못한다

  • 박건형 기자

  • 김경필 기자

  • 입력 : 2017.08.08 03:11

    [오늘의 세상]
    법망에 묶인 4차 산업혁명… 美·中 등선 자유롭게 신사업 허용후 문제 부분만 事後 규제

    한국선 새 사업 일단 불법 규정… 차량 공유 우버, 곧바로 철수
    원격진료도 한 발짝도 못나가… 中기업은 3000만명 고객 확보
    "특정 지역에서 기업들이 자유롭게 기술 개발할 수 있는 규제 프리존 도입할 필요"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콜버스'는 2015년 12월 전세버스를 이용한 심야 버스 공유 서비스를 시작했다. 심야에 남아도는 전세버스를 활용해 교통편을 구하기 어려운 이용자들을 비슷한 목적지끼리 태워 나르는 서비스였다. 하지만 승객이 늘자 택시업계는 운수사업법에서 허가받지 않은 차량이 운수업을 하고 있다며 콜버스를 서울시에 고발했다. 유권해석을 맡은 국토교통부는 심야 콜버스 운행을 허가했지만, 운수사업법을 근거로 사업권은 택시회사와 노선버스 사업자에게만 발급해줬다. 규제 덕분에 스타트업의 아이디어가 고스란히 기존 사업자들에게 넘어간 것이다. 박병종 콜버스 대표는 "여론이 악화되자 나중에 국토부가 택시 업체의 차량을 빌리는 조건으로 사업할 수 있도록 해줬지만, 스타트업이 차량을 대여까지 해가면서 경쟁하라는 것은 사업을 접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면서 "사업 초기부터 로펌 자문까지 해가며 철저히 대비했지만 규제를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콜버스는 버스 공유 사업을 사실상 접고, 전세버스 예약 중개 서비스로 사업 방향을 전환한 상태이다.

    4차 산업혁명 경쟁력 갉아먹는 규제

    콜버스의 사례처럼 규제는 한국에서 새로운 기술 개발과 이를 이용한 사업이 등장할 수 없도록 하는 거대한 장벽이 되고 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업은 한국에서는 일단 '불법'으로 규정된다.

    아산나눔재단은 지난달 13일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에서 "세계 최대 차량 공유 업체 우버는 한국의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는 공중위생관리법에 저촉된다"면서 "세계 100대 스타트업 중 57개 업체는 한국에서는 각종 규제 때문에 사업을 시작조차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우버는 2013년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뒤 서울시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여객운수법과 위치정보법 위반으로 고발하자 철수했다.

    한국에선 시작도 못 하는 4차 산업혁명 관련 사업 정리 표
    차세대 의료로 주목받는 원격진료도 한국에선 아직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는다. 미국 스타트업 프로테우스디지털헬스는 환자가 약을 제대로 먹었는지 실시간으로 의사에게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 서비스로 2억8000만달러(약 3150억원)가 넘는 투자를 받았고, 중국 원격의료 업체 위닥터그룹은 900개 병원에서 3000만명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한국 의료법은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않으면 진단이나 처방이 불가능하다. 또 약사법은 약국 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팔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의사가 멀리 떨어진 환자로부터 증상을 전해 듣고 약을 처방하고 약사가 이에 맞춰 약을 택배로 보내는 것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개인 정보 관련법은 '21세기의 석유'로 불리는 데이터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에선 대부분의 정보가 '개인 정보'로 규정돼 이를 활용하려면 개개인으로부터 일일이 정보 수집과 활용을 사전에 동의받아야 한다. 반면 미국, 영국 등에서는 기업이 수집한 개인 정보를 일단 활용할 수 있게 해주고 개인이 거부한 경우에만 해당 데이터 활용을 금지한다.

    정유신 서강대 교수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빅데이터를 많이 모은 기업들의 기업 가치가 계속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도 경쟁에 뛰어들 수 있게 규제 개혁이 시급하다"면서 "하지만 관련 법안이 20개가 넘는 데다, 개인 정보 보호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서 좀처럼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규제 접근 방식 전면 개편해야

    전문가들은 한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규제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해외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신사업을 할 수 있게 일단 허용하고 문제가 될 부분만 골라 규제하지만, 국내에서는 모든 것을 규제의 틀에 넣은 뒤 논란이 되면 마지못해 조금씩 풀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광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기술규제연구센터장은 "미국, 중국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앞서가는 나라들은 일단 어떤 사업이든 할 수 있도록 하고, 나중에 법을 만들어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규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면서 "이 덕분에 에어비앤비, 우버 같이 기존에 없던 서비스도 자유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경 교수는 "특정 지역에서 기업들이 규제 없이 자유롭게 기술 개발과 테스트를 할 수 있는 규제 프리존 같은 정책을 도입하는 것도 규제 완화의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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