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ㆍ조세

억대 연봉 대기업 사무직 쏙 빠진 ‘부자 증세’…세수 증대 효과도 낮아

  • 조귀동 기자

  • 입력 : 2017.08.02 15:04

    소득세 증세 효과 연 1조원도 안돼
    고소득 화이트칼라, 소득 불평등 주범이지만 실효세율은 낮아


    억대 연봉 대기업 사무직 쏙 빠진 ‘부자 증세’…세수 증대 효과도 낮아
    정부가 2일 발표한 2017년 세법 개정안에서 초고소득층을 겨냥한 소득세율 인상 및 주식 양도소득과세 등을 발표했다. ‘소득재분배 및 과세형평 제고’가 목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안정적인 세입 기반 확보가 필요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부담 능력이 있는 고소득층 대상으로 소득세 최고세율을 조절했다”고 설명했다. 재정 소요 증가분을 부자 증세로 충당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러한 부자 증세 방침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 것인지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먼저 세수 증대 효과가 있느냐는 ‘실용적인 관점’에서의 비판이다. 초고소득층이 1인당 부(富)는 많을 지 몰라도, 숫자가 적기 때문에 결국 추가로 걷을 수 있는 세수는 적다. 두 번째는 과연 초고소득층만을 겨냥한 증세가 불평등 문제에 대한 처방이 맞느냐는 ‘명분론적 관점’에서의 비판이다. 실제 소득 불평등 확대 추이를 보면 최상위 0.1%나 1% 뿐만 아니라 대기업 사무직이나 전문직 근로자가 주축인 상위 1~10%의 자산과 소득도 가파르게 늘었기 때문이다. 불균등하게 경제 성장의 과실을 차지해온 중상위층(upper middle class)에 대한 과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세수 확보에도 발목을 잡고 있다.

    ◆상위 10% 과세하면 4조원 확보 가능하지만…정부는 외면


    억대 연봉 대기업 사무직 쏙 빠진 ‘부자 증세’…세수 증대 효과도 낮아
    소득세 증세는 과세표준 기준 3억원 이상 인 사람에 대한 소득세율이 3억~5억원은 현재 38%에서 40%로, 5억원 초과는 40%에서 42%로 각각 2%포인트 높아진다는 내용이다. 소득세율이 높아지면 종합소득세 뿐만 아니라 양도소득세도 영향을 받는다. 기획재정부는 “세율이 높아지는 사람은 9만3000명 정도(2015년 귀속분 기준)로 추정된다”며 “근로소득자는 상위 0.1%인 2만명, 종합소득자는 상위 0.8%인 4만4000명 정도”라고 설명했다. 6만4000명은 20세 이상 성인 인구 기준으로는 0.17%, 경제활동인구 기준으로는 0.24%에 해당된다. 초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만 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부자 증세로 걷을 수 있는 세금이 재정 소요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소득세 증세로 늘어날 세수를 2022년까지 총 2조2000억원으로 전망한다. 2018년엔 6100억원, 2019년엔 1조4500억원 각각 세수 증대 효과가 발생하고, 이후에는 연 1000억원 이하 정도 효과만 발생한다.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6년 종합소득세는 15조원, 근로소득세는 32조원, 양도소득세는 13조7000억원이 각각 걷혔다. 2016년 소득세수 대비 3.6%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재정전문가들은 중상위층에 대한 세수 확대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해 말 발간한 ‘소득수준별 세 부담 평가와 발전방향’ 보고서에서 세율 24% 이상(과세표준 4600만원 이상), 세율 15% 이상(과세표준 1200만원 이상), 전체 근로소득자를 대상으로 각각 세율을 3%포인트씩 올렸을 때 세수 증대와 지니계수 개선율을 추정했다. 과세표준 4600만원 이상에게 소득세를 3%포인트 올릴 경우 세수 증가율은 6.3%에 달했다. 2015년 현재 근로소득세 납세자 가운데 과세표준 4600만원 이상인 사람은 152만명으로 전체 근로소득세 납세자의 10.2%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소득 상위 10% 이상 중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증세했을 경우 근로소득세에서만 1조7000억원 이상(2015년 근로소득세 기준 단순 계산) 세수를 늘릴 수 있단 얘기다. 같은 비율로 세수가 늘어난다고 했을 때 소득세 전체는 3조9000억원 증가한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소득세 과세 대상을 확대할수록 세수 확보와 재분배 효과가 컸다고 분석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이 보고서에서 “소득 재분배 기능이 약한 이유는 평균 임금 50~250% 구간에서 소득세 실효세율 누진도가 낮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은 “평균 임금 250% 이상 고소득 구간만 국한하면 소득세 누진도가 OECD 평균치에 비해 낮지 않다”고 덧붙였다. 결국 상위 1%가 아니라 상위 1~10%의 중상위층에 대한 낮은 세금이 문제라는 얘기다. 이 보고서는 현재 한국의 최고세율과 최고세율 적용 기준이 모두 OECD 회원국 가운데 중간 정도라고 분석했다.

    ◆상위 1~10%, 전체 소득 34.3% 차지

    억대 연봉 대기업 사무직 쏙 빠진 ‘부자 증세’…세수 증대 효과도 낮아

    대기업 화이트칼라, 전문직 등이 주축이 된 중상위층은 불평등 확대의 주축 가운데 하나다. 홍민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국세청 국세통계연보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최상위 1%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9.0%에서 2015년 14.2%로 5.2%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상위 1~10%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27.4%에서 34.3%로 6.9%포인트 증가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이들의 소득 증가율은 상위 1%는 연 평균 5.8%, 상위 1~5%는 4.1%, 상위 5~10%는 4.5%가 각각 증가했다. 같은 기간 나머지 하위 90%의 소득 증가율은 연 평균 1.1%에 불과했다. 성장의 과실을 불균등하게 가지고 간 사람은 부자들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상위 1~10% 중상위층에 대한 실효세율은 최상위 고소득층보다 훨씬 낮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당시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이 2014년 ‘통합소득 100분위 자료를 활용한 소득세 실효세율 및 감세 귀착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최상위 1%는 23.5%, 상위 2%는 12.6%의 실효세율을 부담한다. 하지만 이후엔 급격히 내려가, 상위 5~10%가 부담하는 실효세율은 5.7%에 불과하다. 이 보고서에서 김 위원장은 “상위 2%부터 10% 정도까지의 소득구간에서는 2007년 대기 실효세율이 크게 하락하였다”며 “이들 상위소득층이 감세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였음을 암시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유독 최상위 1% 소득구간에서만 2007년에 비해 그 이후에 실효 세율이 더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이 보고서에서 “’연말정산 근로소득’ 신고자의 3분의 2가 실효세율 1% 미만의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는 사실은 세수 확보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보편복지를 위한 보편증세의 원칙’ 차원에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소득 1~10% 중상위층의 소득이 가파르게 올라가고, 나머지 계층과 격차가 커지는 현상에 대한 우려는 전세계적으로도 높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근로소득만으로 살 수 없는 비싼 주택을 소유한 ‘세습 중산층’의 등장이 선진국 자산 분배 구조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한다.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가난한 사람들보다는 분명히 더 부유하며 국부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을 소유하는 중간 집단의 등장”이 부의 불평등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지난 5월 미국에서 출간하자마자 화제를 불러일으킨 ‘꿈 과점자(Dream Hoarders)’에서 리처드 리브스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미국 사회에서 진짜 계급 격차 문제는 최상류층에서 발생하지 않고 있다”며 “중상위층과 나머지의 간극이 확대되고, 이동성이 약화됐다는 것이 가장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정책, 최소한 경제정책에서 이러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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