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가을만큼 서늘한 대관령의 여름식물들

조선비즈
  •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
    입력 2017.07.30 06:57

    이 좁은 땅에서 어떤 곳은 물난리인데 어떤 곳은 폭염이 기승입니다.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한 강우량과 기온변화가 관측됩니다.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록적인 폭우와 폭염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기도 합니다.

    해수욕장도 일찌감치 개장했고,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기도 전에 산으로 들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열대야에 시달린 몸으로 일어나서는 아침부터 덥다며 다시 에어컨을 켜는 게 저만의 일은 아닐 겁니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
    좋은 피서지를 찾느라 검색창에 커서를 옮기셨다면 대관령을 쳐보시기 바랍니다. 벌써부터 그곳으로 캠핑을 떠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을 겁니다. 대관령은 고지대다 보니 연평균기온이 낮고 한여름에도 늦가을처럼 서늘할 때가 많습니다.

    대관령으로 지나는 통행량이 많던 시절에는 일기예보 시간에 북한의 중강진과 함께 남한에서는 꼭 대관령의 기온이나 적설량을 알려주곤 했습니다. 그만큼 추운 곳이다 보니 폭설이 내리면 곧잘 통제되곤 하던 길이 바로 대관령 길입니다. 브레이크 라이닝 패드에 무리를 줘가며 굽이굽이 돌아가야 하는 그 길이 지금은 추억의 길이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가서 추억을 만들고 옵니다.


    선자령대관령은 양떼목장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달력에 쓸 만한 사진 한 장은 건질 수 있는, 그 낭만적인 장소를 뒤로 하고 풓꽃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 올라가는 건 선자령입니다. 대관령에서 선자령을 향해 오르다 보면 서늘하게 엄습하는 기운과 곧잘 만나게 됩니다.

    때때로 안개구름 같은 것이 몰려와 공포심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반팔로 갔다간 서늘하다 못해 춥기까지 합니다. 한여름에 간대도 바람막이 옷 하나 정도는 갖고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침이나 저녁 무렵에 때아닌 늦가을 추위를 맛볼 수도 있습니다.

    선자령 등산로 안내판
    선자령으로 향하는 숲길은 사실 습지나 다름없습니다. 냉기가 자주 서리는 것도 질퍽한 습지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습지는 생물의 종다양성이 높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몇 해 전에는 남부지방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백운란을 한국 식물계의 큰 별이셨던 전의식 선생님께서 이곳에서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겨우 한 포기라 아쉽긴 해도 그 정도로 다양한 식생을 갖춘 곳이 바로 대관령 습지입니다.

    이 습지를 그동안 쉬쉬해 온 건 멸종위기식물인 제비동자꽃의 군락지여서입니다. ‘제비’와 ‘동자꽃’이라… 참 어울리지 않은 조합의 이름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강남 카바레의 그 제비는 아닙니다.

    제비동자꽃
    탁발하러 나간 노승을 기다리다가 굶어 죽은 동자승의 슬픈 전설이 있는 동자꽃을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동자꽃과 비슷하지만 꽃잎이 제비의 꼬리처럼 잘게 갈라지는 모습이라 붙여진 이름이 바로 제비동자꽃입니다.

    북방계식물이고 자생지가 제한적인 식물이라 귀하신 몸인데, 남획이 심해지는 바람에 결국 펜스를 쳐서 보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진 찍는 분들은 철조망 틈으로 어떻게든 카메라를 밀어 넣거나 펜스 밖에 남겨진 것들을 찾아 찍어야 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누구를 탓할 게 아닙니다. 그곳에 발자국 내고 서 있는 나 자신도 훼손의 일원이기는 마찬가지니까요.

    동자꽃
    <제비동자꽃 자세히 알기>

    이곳에서는 애기앉은부채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꽃인가 싶지만 분명 꽃이 맞습니다. 모르는 분들은 정말 부채처럼 생겼다고 하지만 부채와는 관련이 없고, 앉아 있는 부처님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방망이 모양의 꽃을 감싸고 있는 망토 것은 포엽(苞葉)의 일종인데, 부처님의 후광처럼 보인다고 해서 불염포(佛焰苞)라고 합니다. 천남성과 식물은 대개 불염포를 갖습니다. 그런데 앉은부채나 애기앉은부채는 불염포라는 명칭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으로 생겼습니다.

    애기앉은부채
    애기앉은부채는 앉은부채에 비해 꽃이 작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사진으로 보면 커 보이지만 실물은 새끼손까락 한두 마디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가지 않는 한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작습니다.
    봄에 피는 앉은부채와 달리 애기앉은부채는 한여름에 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비슷한 식물인데 개화기를 전혀 달리해 종이 분화한 이유가 뭘까요? 아마도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을 겁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최적화된 생활상을 유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보다 식물이 더 잘 아는 것 같습니다.
    <애기앉은부채 자세히 알기>

    애기앉은부채를 찾느라 눈을 굴리다 보면 말털이슬이 먼저 찾아지기도 합니다. 말털이슬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으신 분들은 말털 같은 게 이슬처럼 달린 식물인가 보다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털이슬이라는 식물이 있는데 그보다 크다는 의미에서 ‘말’자가 붙었습니다.

    식물명에 ‘말’자가 들어간 것은 대개 크다는 의미입니다. 말나리나 말냉이처럼 말입니다. 털이슬은 이름 그대로 털이 잔뜩 달리고 이슬 같은 모양의 열매를 맺는 식물입니다. 그 털이슬에 비해 말털이슬은 꽃받침조각이 붉은색인 점이 다릅니다.

    말털이슬
    <말털이슬 자세히 알기>

    이 정도 봤으면 굳이 선자령까지 올라가느라 애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희귀식물은 오히려 높지 않은 지대에 있으니까요. 대관령휴게소로 가는 길만 해도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중나리가 피어납니다. 식물을 좀 안다 하는 분도 그냥 참나리겠지 하고 지나치기 쉬울 겁니다.

    하지만 참나리의 특징인 살눈이 달리지 않고 줄기에 털이 거의 없는, 그것은 분명 중나리입니다. 하늘나리가 하늘을 향해 피고, 땅나리가 땅을 향해 핀다면 중나리는 중간을 보고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중나리
    우리 주위에 흔히 보이는 건 줄기에 털이 많은 털중나리입니다. 털중나리와 중나리는 털의 유무만 차이나는 것이 아닙니다. 중나리는 털이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꽃이 참나리만큼이나 크고 키도 훨씬 더 크게 자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30/2017073000059.html"><중나리 자세히 알기>

    여름의 한가운데서도 그렇게 꽃들은 피어납니다. 치열한 경쟁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 피어난 꽃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핫뉴스 BEST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