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도전자들]③ 하형석 미미박스 대표 “美 1위 뷰티매장서 매진…뷰티 정보 아마존 능가”

입력 2017.07.27 06:10

“이 마스크팩은 ‘미친 인기(crazy-popular)’로 일시 품절됐습니다.”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 1위 뷰티 소매업체(retailer) ‘울타 뷰티(ULTA Beauty)’ 홈페이지에 한 마스크팩이 품절됐다는 안내문이 떴다. 이 마스크팩은 6월 26일 울타 뷰티 온라인몰과 300여 개 오프라인 매장에 입고됐는데 일주일 만에 재고가 소진된 것이다.

디스코 키튼(disco kitten)이란 이름의 이 마스크팩은 한국 뷰티 스타트업 미미박스(MEMEBOX)가 만든 제품이다. 올해 초 한국에서 출시한 ‘오리지널 크롬 마스크’를 미국인들의 취향에 맞게 바꿔 이른바 대박을 터뜨렸다. 재입고 후에도 매진을 반복하는 등 밀려드는 수요를 못 맞추고 있다.

미미박스는 패션 브랜드 톰 포드와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를 거친 하형석 대표(사진·34)가 2012년에 창업했다. 창업 2년 만인 2014년 초 한국 스타트업 최초로 에어비앤비, 드롭박스를 키워낸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YC)로부터 투자를 유치했으며 지난해엔 굿워터 캐피탈, 포메이션 그룹, 알토스 벤처스, 카우보이 벤처스 등 글로벌 벤처투자사로부터 1430억원을 투자받아 국내 연간 투자 유치액 1위 스타트업에 올랐다. ‘넥스트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 후보로 평가받는 미미박스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지난 5일 미미박스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에서 하 대표를 만났다.

미미박스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에서 만난 하형석 미미박스 대표. / 박원익 기자
◆ 직원들과 영어로 타운홀 미팅…“전략 바꾸니 재방문 60% 늘어

-창업 2년 만에 미국에 진출했다.

“미국 오피스는 미미박스의 전진기지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초부터 이곳에 살면서 기술(tech)부문을 더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화장품, 바이오 등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글로벌 스타트업이 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직원들도 미미박스가 글로벌 스타트업으로서 성공 사례를 보여주길 원했다. 다른 회사가 한 국가에 머물며 높은 빌딩 지을 때 우리는 5개국에 진출했다.

회사 공식 언어가 영어다. 2주에 한 번씩 유튜브로 타운홀 미팅을 하는데, 이 미팅을 영어로 진행한다. 직원들에게 보내는 레터도 마찬가지다. 한국, 중국, 미국 등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에게 파견 근무 등을 통해 서로 교류할 기회도 제공한다. 글로벌 팀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글로벌 문화를 강조하는 까닭은.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제품 기준이 높아지고 글로벌 진출 과정에서 새로운 도전에 계속 직면하고, 그것이 회사 문화에 녹아든다는 점이 중요하다. 다양한 구성원들이 우리 생각을 열리게 한다.

실리콘밸리에 있으면 배우는 것이 너무 많다. 금요일 저녁 페이스북 사무실에 들른 적이 있는데, 직원 30~40%가 남아 있더라. 야근 문화가 부럽다는 뜻이 아니다. 아무도 일하라고 얘기하지 않지만 직원들 스스로 자기 일을 찾아서 한다. 이곳의 리더들은 동기 부여를 잘하는 것 같다. 자발적으로 일하는 수만 명의 브레인 파워는 대단한 것이다. 우리 회사가 내일도 잘하고, 모레도 계속 잘하려면 이런 문화가 중요하다.”

-미국 오피스에서 진행 중인 사업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달라.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현재 자체 커머스(전자상거래) 사업을 안 한다. 홈페이지에서 상품을 클릭하면 울타 뷰티나 아마존으로 연결된다. 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대신 ‘세계 최대 뷰티 정보 플랫폼’을 목표로 데이터 구축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 들어 ‘뷰티의 개인화를 가속화하자(accelerate the personalization of beauty)’는 새 비전을 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웹사이트를 아예 바꿔버렸다. 현재 3만여 개의 뷰티 제품 정보가 들어가 있는데, 올해 말엔 40만 개 이상이 될 것으로 본다. 뷰티 제품 정보만 놓고 보면 아마존보다 많다. 제품 성분, 효능, 사용법, 글로벌 사용자 리뷰까지 제공하는 ‘제품의 모든 것을 가장 잘 이해하는’ 플랫폼이다. 이를 위해 AI(인공지능) 전문 인력도 채용했다. AI가 메이크업 제품의 색상을 찾아내고 제품 관련 영상을 웹에서 자동으로 끌어오는 식이다.”

미미박스 샌프란시스코 사무실. 글로벌 IT 기업이 모여 있는 소마(SoMa, South of Market)지구 중심가에 있다. / 박원익 기자
-뷰티 정보 플랫폼의 수익은 어떻게 올리나.

“아마존, 세포라 등 커머스 플랫폼에 제품 정보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수수료율은 6.5~10% 정도다. 소비자들은 뷰티 제품을 더 많이 알기 원하는데, 그에 비해 온라인 정보는 아직 부족하다. 이커머스를 통해 매출을 많이 올리는 것보다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모든 엔지니어링 파워를 뷰티 제품 정보 찾는 데 투입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제품 상세 정보, 리뷰뿐 아니라 동영상까지 제품별로 정리돼 있다. 영상은 우리가 직접 만들거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가져온다.”

-자체 전자상거래 사업 중단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실제로 자체 커머스 중단하고 미국 내 매출이 많이 줄었다. 타격이 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길게 봤을 때 정확한 정보를 빠르게 제공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미국에서 사업을 해보니 미국 고객들은 한국에서 널리 사용하는 개념인 ‘이중 세안’, ‘마스크팩’ 같은 걸 아예 모르더라. 전략을 바꿔 정보 제공에 집중했더니 고객이 우리 사이트에 재방문하는 비율이 60% 증가했다. 고객이 사이트에서 보내는 시간도 6배 늘었다. 일종의 뷰티 포털인 셈이다. 일부 주주들이 처음엔 걱정했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한다.

회사 전체로 보면 2016년 매출이 2015년의 3배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200%씩 성장하고 있다. 대만, 홍콩, 중국에서 잘하고 있고, 미국 시장도 향후 2~3년 동안 빠르게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 YC 파트너에 수시로 조언 구해…“자기표현 잘하는 팀이 성공”

-창업을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미미박스 창업 당시 티몬에 다니고 있었다. 네이버, 다음 이후에 소셜커머스라는 새로운 스타트업 웨이브가 왔을 때다. 티몬에서 영업도 하고 신사업도 하며 스타트업 문화를 배웠다. 그 전에 일했던 톰 포드도 내가 16번째 직원이었을 정도로 얼리 스테이지(early stage) 기업이었다.

친구들이랑 일하는 걸 좋아했다. 티몬에도 티몬 공동창업자인 김동현 이사, 권기현 이사 등 친한 사람들이 있어서 합류했다. 얼리 스테이지 회사 경험과 친구들과 같이 일한 경험 등이 창업의 바탕이 된 것 같다. 친구들과 뭐 하나 시작하자고 얘기하던 중 내가 미미박스 아이디어를 던졌고 그렇게 회사를 시작하게 됐다.”

-미국 IT 전문지 리코드(Recode)가 YC의 가장 핫한 스타트업 중 하나로 미미박스를 꼽았다.

“YC(와이콤비네이터) 사장(president)인 샘 알트먼(Sam Altman)과 연락을 많이 한다. 미미박스가 사업 모델을 여러 번 바꿨는데, 바꿀 때마다 YC와 상담했다. 샘은 어머니가 피부과 의사여서 특히 우리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조언도 많이 해준다. ‘오피스 아워’라고 하는 YC 파트너들과의 미팅 프로그램이 있는데 지금도 꾸준히 한다.

우리 사무실 바로 위층(2층)에 YC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이 있다. 파트너들이 미팅 가능한 시간을 안내판에 써놓는데, 그걸 보고 자유롭게 올라가서 15~20분 상담할 수 있다. 마케팅 방법을 고민하는 직원 있으면 같이 올라가기도 한다.”

와이콤비네이터가 투자한 주요 스타트업들. 드롭박스, 에어비앤비, 스트라이프 등과 함께 미미박스가 소개돼 있다. / 와이콤비네이터 홈페이지 캡처
-YC가 미미박스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YC가 찾는 팀은 유니크한(독특한) 팀이다. 2013년 말 실리콘밸리에 처음 왔는데, 당시 실리콘밸리 투자는 하드코어 테크놀로지에 집중돼 있었다. 소비재 쪽은 붐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YC 입장에선 핑크색 화장품을 핑크색 쇼핑백에 들고 온 우리가 특이했을 것이다. 화장품 산업은 다른 스타트업이 거의 접근하지 않는 분야였다.

당시 YC는 아시아 쪽에 관심이 있었고, 우리는 월 매출 2억원 정도로 이미 돈을 벌고 있었다. 외부 투자 유치 없이 내가 직접 코딩도 하고 노력 많이 하던 때다. 면접 후 떨어질 줄 알았는데, YC 설립자인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이 전화해 ‘너희가 화장품으로 성공할 지는 모르겠지만 죽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하더라. 폴은 투자가보단 예술가나 철학자 같다. 회사 이름을 뭐로 할지 3일 동안 같이 고민하기도 했다. YC는 누가 더 오리지널한지 본다. 자신을 잘 표현하는 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잘 보여주는 팀일수록 성공 확률이 높다.”

-야후 창업자 제리 양 등 유명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받았다. 비결이 있다면.

한 명의 신뢰를 얻으니 여러 명의 신뢰를 얻을 수 있더라. 우리도 처음에는 투자 유치가 쉽지 않았다. YC의 투자를 받았지만 한국에서 온 회사였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어느 정도 거리를 뒀다. 아시아 스타트업이 크게 성공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당시 제일 먼저 설득했던 두 명의 멘토가 있다. 현재 기업 가치가 10조원인 온라인 결제업체 스트라이프의 창업자 존 콜리슨(John Collison), 한때 ‘청소업계의 우버’로 불렸던 홈조이의 설립자 아도라 청(Adora Cheung)이다. 주말마다 이들을 찾아가 피칭(투자유치를 위한 발표)했다. 나중에 자금 유치할 때가 되니 이 멘토들이 대신 나서서 피칭 해주더라. 이들 덕분에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투자가(VC)인 페즈먼 노자드(Pejman Nozad)까지 만날 수 있었다.

-평판 관리를 잘한 것 같다.

투자 유치 얘기를 먼저 꺼낸 적은 한 번도 없다. 대신 우리를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을 늘리는 시딩(seeding)을 계속했다. 투자자 200명을 만나면 보통 1~2% 정도가 관심을 보이더라. 당장 투자하지 않더라도 미팅 혹은 메일을 통해 회사 정보를 계속 업데이트해줬다.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새로운 투자자보다 한 번 거절했던 투자자에게 투자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

자신 있게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투자자들 말로는 의외로 용감하게 얘기하는 스타트업이 적다고 한다. 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가 약속을 어기게 될까 두려워 그런 것 같다. 투자자들도 스타트업 만날 때 항상 떨리는 마음으로 미팅룸에 들어간다. 실패하더라도 멋있게 실패하고 싶은데, 자신 없는 태도를 보면 그냥 흐지부지될 것 같아 투자를 포기하게 된다더라.”

◆ “한 명의 고객이 절대 만족하는 서비스를 하자”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꾸려나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첫째는 한국에서 사업 기반을 다졌다는 점이다. 한국 직원이 300명 넘는데 이들이 글로벌 진출의 큰 기반을 마련해 주고 있다.

스타트업이라 변화를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경영진이 해외에 나와서 많이 뛰고 있다. 나는 미국, 공동창업자인 김도인 이사는 중국에서 직접 현지 문화를 경험하고 개척해 한국팀에게 전달한다. 글로벌 업무를 전담하는 글로벌팀도 구축해 지역별 피드백을 수집, 제품과 서비스에 반영하고 있다.”

미미박스 샌프란시스코 사무실. 스낵바, 탁구대 등 직원들의 편의를 위한 시설이 잘 마련돼 있다. / 박원익 기자
-경영 철학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결과를 잘 도출하는 것이다. 투자 유치가 될 수도 있고, 해외 사업 확장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도전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

외부에서 보면 사업 모델이 계속 바뀐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더 깊게 들어가는 중이다. 함께 사업하는 파트너들도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한국 화장품 브랜드 개발자의 경우 미국 고객 데이터가 없어서 제품 개발에 어려움을 겪곤 한다. 데이터를 구축해 고객을 이해하면 더 쉽게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 한 명 한 명의 고객을 감성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미박스만의 독특한 기업 문화가 있나.

“다양성이다. 5년 된 스타트업이지만 한국인뿐 아니라 라틴계, 백인, 흑인, 중국계, 대만계 등 다양한 고객을 가지고 있다. 직원 구성도 마찬가지다. 직원 생태계 조사를 하면 5%는 성 소수자(LGBT)다.

판교 사무실에 가면 생맥주 기계가 있는데, 이건 회식을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다. 우리 문화는 이기고 잘하는 문화였으면 좋겠다. 회식할 바에 사무실에서 노는 게 좋다. 회식하고 싶다면 회사에서 생맥주 아무 때나 마셔도 된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향후 목표는.

“YC가 얘기해 준 것 중 하나인데, ‘한 명의 고객이 완전히 만족할만한 서비스를 하자’는 것이다. 아직 못했다. 몇백만 명이 어느 정도 만족하는 서비스는 만들었는데, 한 명을 완전히 만족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애플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예비 창업가를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

요즘 느끼는 점은 다른 창업자들의 얘기를 잘 들어보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나보다 똑똑한 사람을 뽑아라’고 하는데, 대부분 그렇게 못한다. 사실 나도 조언을 무시한 경우가 많다. 훌륭한 조언이 있다고 해도 이를 실행할지 안 할지는 본인 몫이다.

한국인들만 한국인의 장점을 모르고 있다. 한국인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줬을 때 잘 되더라. 우리는 여기서 제품 내놓을 때 ‘본 인 코리아, 디자인드 인 캘리포니아(Born in Korea, Designed in California)’로 표시한다. 우리가 우리의 DNA를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백인 직원을 한국으로 파견 보낸 후 우리 강점이 뭔지 물어본 적도 있다. 우리가 가진 것 중 좋은 것은 살리고, 바꿀 것만 바꾸면 된다. 한국인들이 가진 DNA는 강하다.”

미미박스 미국 웹사이트 첫 화면. / 웹사이트 캡처
하형석 대표는

경희대학교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패션을 공부했다. 패션 브랜드 톰 포드,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를 거쳐 2012년 2월 미미박스를 창업했다. 2014년 한국 스타트업 최초로 글로벌 액셀러레이터(창업 투자·육성 업체)인 와이콤비네이터의 투자를 유치했다. 올해 초부터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 거주하며 미미박스 미국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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