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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脫원전의 기회비용]② 10년이상 피땀흘려 국산화한 3대 핵심기술 무용지물 되나

  • 전재호 기자

  • 입력 : 2017.07.07 10:16 | 수정 : 2017.07.07 10:23

    2000년대 초반 中 수출 막히자 3대 기술 국산화 추진
    막대한 예산 투입했는데 원전 중단으로 쓸데없어지나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규모 9.0, 관측 이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한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이 발생하고 약 50분 후 건물 5층 높이인 13m 정도의 쓰나미가 시속 700~800㎞의 속도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덮쳤다. 쓰나미는 해안 주변의 건물을 무너뜨리고 후쿠시마 원전 내의 모든 전기시설도 손상시켰다.

    전기가 끊기자 원자로 냉각수 펌프 가동이 중단됐고 내부 온도와 압력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하루 뒤인 3월 12일엔 노심(爐心·핵분열 연쇄 반응이 이뤄지는 곳) 온도가 섭씨 1200도까지 올랐고 방호벽이 모두 녹아내리면서 수소 폭발까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발전소 주변 대기, 토양, 바다, 지하수에 방사성 물질이 노출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고온, 고압 상태인 원자로에 냉각재(원자로 속에서 핵분열 반응으로 생기는 열을 제거하기 위해 쓰는 물질)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원자로 냉각재 펌프(RCP·Reactor Coolant Pump)는 ‘원전의 심장’으로 불리며 계측제어 시스템(MMIS·Man-Machine Interface System), 원전 설계 핵심코드와 함께 원전의 3대 핵심기술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미국, 프랑스, 캐나다, 러시아와 함께 3대 핵심 기술을 모두 보유한 국가다. 2010년 MMIS, 2012년 RCP에 이어 2017년 설계 핵심코드를 개발해 순수 우리 기술로 원전을 지을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 그러나 새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선언하면서 10년 이상 피땀흘려 개발한 원전 핵심 기술이 사장(死藏)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두산중공업과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이 5년여에 걸쳐 개발한 원자로 냉각재 펌프. 1초당 10톤 가까운 냉각재를 순환시키며 원자로를 식히는 역할을 한다. 3대 원전 핵심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두산중공업 제공
    두산중공업과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이 5년여에 걸쳐 개발한 원자로 냉각재 펌프. 1초당 10톤 가까운 냉각재를 순환시키며 원자로를 식히는 역할을 한다. 3대 원전 핵심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두산중공업 제공
    ◆ 10여년간 개발한 기술 무용지물 될 판

    한국은 90년대 중반 미국 회사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ombustion Engineering)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한빛 3·4호기를 만든 뒤 2000년대 초반 중국에 원전 수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핵심기술이 없어 무산되자 2006년에 핵심 기술 개발에 나섰다. 이 때 탄생한 게 ‘Nu-Tech(Nuclear Technology) 2012’ 프로젝트다.

    2012년까지 3대 기술을 국산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 이 프로젝트는 원전 관련 최대 연구개발(R&D) 사업으로 2006년부터 2011년까지 3637억원의 예산이 투입됐고 올해까지 투입된 금액은 최소 5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3대 기술 중 ‘원전의 두뇌’로 불리는 MMIS의 경우 한국원자력연구원, 두산중공업(034020), 한국전기연구원, 우리기술(032820), ㈜우진, 포스코ICT 등이 2001년 7월 처음 연구를 시작해 10년 만인 2010년 6월 개발에 성공한다. 원전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운전원이 발전소 운전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안전과 관련된 여러 변수를 지속적으로 감시해 안전 기준을 벗어났을 때 신속한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MMIS는 이러한 설비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기술,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원전 설계 핵심코드는 올해 3월에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인허가를 취득했다. 2006년 개발에 착수한지 11년 만이다. 핵심코드는 원전을 안전하게 설계하는데 사용되는 전산 프로그램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연료를 보호하고 방사선 누출을 막는 등의 역할을 한다.

    두산중공업과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은 2007년 RCP 개발에 착수해 5년여 만인 2012년 국산화했다. 7000여개 부품으로 구성되는 RCP는 고온, 고압을 견디고 한치의 오차도 없어야 해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설비다.

    국산화에 성공한 3대 핵심기술은 현재 짓고 있거나 앞으로 지을 원전에 적용될 예정이었다. MMIS와 RCP는 경북 영덕의 천지 1·2호기 원전에, 핵심코드는 울진의 신한울 3·4호기에 적용될 계획이었으나 모두 잠정 중단된 상태다. 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3대 기술은 원전 말고는 다른 데 쓸 곳이 마땅치 않다”며 “과거 정부가 10년 넘게 추진해오던 핵심기술 국산화 사업이 한순간에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원전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통제실. 그동안 외국 업체 기술에 의존해 왔으나 2010년에 우리기술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두산중공업 제공
    원전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통제실. 그동안 외국 업체 기술에 의존해 왔으나 2010년에 우리기술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두산중공업 제공
    ◆ 원전 건설·유지·운영 기술도 수준급

    한국은 2005년 한국 표준형 원전인 ‘OPR(Optimized Power Reactor)1000’을 만들었다. 설비용량 1000㎿, 수명 40년에 규모 6.5의 지진도 견딜 수 있게 설계돼 고리, 월성, 한빛 원전에 사용 중이다. OPR 1000보다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인 게 아랍에미리트(UAE) 수출 모델이자 신고리 3·4호기인 APR 1400이다. APR1400은 설비용량이 1400㎿이고 규모 7의 지진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졌다.

    천지 1·2호기에 적용될 예정이었던 APR 플러스는 APR1400보다 한 발 더 나간 기술이다. APR1400은 MMIS나 RCP를 웨스팅하우스 등 외국 업체에서 들여 왔는데, APR 플러스는 모든 분야를 우리 기술로 만든 것이다. 용량도 1500㎿로 커지고 특히 외부의 전원이 전혀 없어도 원자로를 안전하게 냉각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장착돼 일본 후쿠시마 사고처럼 모든 전원이 꺼져도 최소 3일까지는 안전성이 보장된다.

    원전 경쟁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는 건설, 유지보수, 운영 비용이다.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 업체는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2014년도에 작성한 국회예산처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신형 원전 건설비는 ㎾당 231만원으로 미국(640만원), 프랑스(560만원)의 절반 수준으로 저렴하다. 건설비가 낮은 이유는 원자력 발전소가 한곳에 모여 있어 행정비용이나 입지비용이 싼 영향도 있지만, 플랜트 시공능력이 뛰어나고 연관사업이 발달한 덕분이다.

    건설 비용이 낮아 발전 비용도 다른 나라보다 30~40% 정도 저렴하다. 운전 유지비도 ㎾h당 0.97센트로 중국(0.78센트), 독일(0.88센트)을 제외한 주요 나라보다 낮다. 러시아는 운전 유지비가 ㎾h당 1.67센트이고 일본 1.65, 프랑스는 1.6센트다.

    한국수력원자력은 회사가 보유한 특허를 벤처·중소기업 등 제3자에 양도하거나 기술 사용권을 제공하는데, 지금까지 총 43건의 기술이전을 실시했다. 그중에 하나가 삼중수소 저장운반용기다. 1g에 3000만원이 넘는 삼중수소는 핵융합 연료로 사용된다. 저장운반용기는 10g의 삼중수소를 안전하게 저장하고 운반할 수 있는 용기다.

    한수원이 이전한 기술들은 대부분 시장개척 단계인 것들이 많지만, 상용화가 되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원전 기술은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며 “이 기술들을 그냥 없애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낭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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