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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현장에서]홍콩 중국 회귀 20년에 비친 한중 수교 25년의 그늘

  •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 입력 : 2017.06.30 14:10 | 수정 : 2017.06.30 16:09

    홍콩⋅한국, 최근 20년 대중 교역비중 14~15%포인트 급증 ‘닮은꼴’
    차이나사이클에 갇힌 경제...중국 경기둔화에 간섭 강화,반중 정서 키워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으로 홍콩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인민ㅎ방군 홍콩수비대를 사열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으로 홍콩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인민ㅎ방군 홍콩수비대를 사열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9일 반환 20주년을 맞는 홍콩을 찾은 모습이 중국 CCTV를 통해 생중계됐다. 시 주석 방문 하루 전인 28일 홍콩에선 가오옌(高燕) 중국 상무부 부부장(차관)과 홍콩 특별행정구 천마오보(陈茂波) 재정사 사장이 ‘CEPA(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투자협의’와 ‘CEPA 경제기술협력협의’에 서명했다.

    상무부는 성명을 통해 내년 1월 시행하는 CEPA 투자협의는 중국이 처음으로 체결한 네거티브 방식의 대외 투자협정이라고 설명했다. 특정 항목을 제외하곤 모두 개방하는 게 네거티브 투자협정이다.

    이날 발효된 CEPA 경제기술 협력협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건설을 별도 항목으로 담고, ‘법률분쟁 해결’과 ‘회계’를 협력 대상으로 추가한게 특징이다. 2004년 시행에 들어간 CEPA를 기반으로 중국과 홍콩간 경제관계가 깊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홍콩 민주주의 운동가 조슈아 웡이 28일 홍콩 골든 바우히니아 광장에서 반중시위를 벌이다 홍콩 경찰에 의해 강제연행되고 있다. /AP연합뉴스
    홍콩 민주주의 운동가 조슈아 웡이 28일 홍콩 골든 바우히니아 광장에서 반중시위를 벌이다 홍콩 경찰에 의해 강제연행되고 있다. /AP연합뉴스
    같은 날 홍콩 최대 민주화 시위인 '우산혁명'의 주역 조슈아 웡(黃之鋒) 데모시스토(香港衆志)당 비서장 등 범민주파 활동가 약 25명은 홍콩섬 골든 바우히니아 광장에서 주권반환 상징물인 골든 바우히니아 상을 점거한 채 반중 시위를 벌였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시 주석은 7월 1일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특별행정구 행정장관 취임식 주관 등 사흘 일정을 위해 전용기로 홍콩국제공항에 도착한 직후 인삿말을 통해 홍콩 특별행정구 성립 20년 축하 홍콩 발전 지지 미래 모색 등의 3가지 목적을 갖고 왔다며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안정적으로 실현되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 주석 방문 하루 전의 두 풍경은 2047년까지 유지하기로 했던 일국양제의 앞날에 굴곡이 적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중국의 한 언론인은 중국판 카카오톡 위챗에 홍콩의 중국 회귀(回歸, 중국은 돌려 받았다해서 이렇게 부름)20주년 기사를 링크하면서 “정치 회귀와 경제 회귀는 됐는데 민심의 회귀는 언제될까”라는 물음을 던졌다. 홍콩에 대한 중국의 정치와 경제 영향력이 커가는 가운데 홍콩내 반중정서가 커가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오는 8월24일로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는 양국 관계 역시 중국의 정치 및 경제적 영향력 확대로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중국의 영향력에 흔들리는 홍콩의 모습은 중국의 우산속으로 들어가게될 지, 중국을 지렛대로 활용할지 도전에 직면한 한국에 적지않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베이징 현장에서]홍콩 중국 회귀 20년에 비친 한중 수교 25년의 그늘
    ◆차이나사이클에 갇힌 홍콩과 한국

    홍콩의 중국 회귀 20년은 중국의 경기변화에 쉽게 영향을 받는 구조를 만들었다. 홍콩의 중계무역 거점으로서의 위상은 변함이 없지만 2016년 전체 교역에서 대중(對中)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50.8%로 1997년 이후 14.5%포인트 상승했다. 전체 수출에서의 대중 수출 비중 역시 34.9%에서 55.3%로 20.4%포인트 올라갔다.

    중국이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으로 타격을 받은 2003년 홍콩에 중국인 개인 관광을 허용하는 한켠 홍콩을 국제금융중심으로 키우는 역외 위안화 허브 육성조치를 잇따라 내놓고, 후강통 선강통에 이어 채권통처럼 홍콩을 중국 자본시장 개방의 채널로 키우는 시스템 구축에 나선 것 등이 양측 경제교류 확대에 기여했다.

    [베이징 현장에서]홍콩 중국 회귀 20년에 비친 한중 수교 25년의 그늘
    홍콩 증시는 시총이 올 5월말 20년새 8배 성장한 28조 홍콩달러에 달하고, 상장사수가 619개사에서 2020개사로 2배 늘어난 것도 ‘중국 효과’가 컸다. 홍콩증시에 상장된 중국기업의 시총 비중이 1997년말 20%에서 2016년말 3배수준인 63%로 높아졌다. 기업공개(IPO)규모가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했다.

    홍콩 금융시장은 세계 최대 역외 위안화 허브로서의 위상도 굳히고 있다. 홍콩 위안화 예금 잔액이 3월말 기준 5831억위안에 달하는 등 역외 위안화의 70%가 홍콩에 몰렸다. 지난해 홍콩과 중국간 위안화 무역결제가 4조5000억위안에 달해 전체 위안화 무역결제의 80%에 달했다.

    시 주석이 홍콩 방문기간중 둘러볼 예정인 홍콩·주하이(珠海)·마카오를 연결하는 강주아오(港珠澳) 대교가 올해 개통되고 중국 정부가 ‘광둥 홍콩 마카오 빅 베이’ 경제권 구축에 나서는 것도 중국과 홍콩간 경제긴밀도를 높일 전망이다.

    하지만 홍콩 경제의 성장세는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졌다. 홍콩 경제규모가 20년간 81% 불어났지만 반환 당시인 1997년 중국의 18% 이상 달했던 수준이 2016년 3% 이하로 내려왔다. 중국 경제규모가 같은 기간 9.6배 늘어난 때문이다.

    2003년 광둥(廣東)성에 추월당한 홍콩의 경제규모는 2016년엔 중국의 31개성과 시 가운데 상위 14개 성의 경제 규모를 밑돌았다. 경제규모 서열로는 중국의 중간급 지방에 해당되는 것이다. 올해엔 경제규모가 선전(深圳)에도 추월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베이징 현장에서]홍콩 중국 회귀 20년에 비친 한중 수교 25년의 그늘

    [베이징 현장에서]홍콩 중국 회귀 20년에 비친 한중 수교 25년의 그늘
    중국과의 교류확대는 중국 경기사이클과의 동조화로 이어졌다. 2013년 시진핑 정부 들어 뚜렷해진 중국의 경기둔화는 홍콩의 성장률 약세로도 연결됐다.홍콩 경제는 지난해 1.9% 성장해 2012년이후 4년만에 다시 1%대로 밀렸다.

    중국의 분유사건에 홍콩 분유가 동이 나는 등 중국 영향력에 취약해진 것도 중국인 관광객이 전체 관광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2%에서 75%로 급증한 탓이 크다. 우산혁명 직후엔 홍콩내 반중정서 고조로 중국인 관광객이 감소한 게 홍콩 경제에 악영향을 주기도 했다.

    주권반환 20년간 홍콩에 이주해 정착한 중국 본토인구는 150만 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작년말 홍콩 인구는 737만명에 이른다. 홍콩에선 중국인의 이주 러시를 부동산 가격이 뛰고 취업난이 가중된 탓으로 돌린다. 카오룽 반도에 있는 40~70㎡ 규모 주택의 경우 20년새 112.4% 올랐다.가구당 평균 부채가 2015년 말 64만6100홍콩달러(약 9790만 원)로 10년 전의 2배로 불어난 배경이다.

    소득분배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지난해 위험수위인 0.5를 웃도는 0.539를 기록했다. 46년 전 지니계수 집계가 이뤄진 이후 최고치다. 홍콩의 국내총생산(GDP)이 1997년 1조 3650억 홍콩달러에서 2016년 2조 4913억 홍콩달러로 2배 가까이 성장했지만 성장의 과실을 친중국 재벌들이 독점했다는 인식이 큰 이유다.

    [베이징 현장에서]홍콩 중국 회귀 20년에 비친 한중 수교 25년의 그늘
    한국 역시 중국과의 경제교류 및 중국인 관광객 확대로 중국의 입김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최근 20년간 대중 교역 비중 증가폭이 15%포인트로 홍콩(14.5%포인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한반도 배치로 인한 한중 사드갈등으로 불거진 중국인 한국 관광 급감 역시 우산혁명 이후 홍콩 관광시장에 닥친 한파를 떠올리게 한다.

    ◆중국 경기둔화와 간섭 강화 시기 켭치면서 반중정서 고조

    [베이징 현장에서]홍콩 중국 회귀 20년에 비친 한중 수교 25년의 그늘
    2012년 본격화된 중국 경기둔화 시기는 홍콩에 대한 간섭 강화 시기와 맞물린다. 1984년 12월 19일 ‘중영 연합성명’에 따라 마련된 ‘홍콩 기본법’은 1997년 이후 50년간 외교와 국방을 제외하고는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인이 홍콩을 통치한다)’의 고도의 자치를 보장했다.

    홍콩 경제일보는 홍콩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방임’(둥젠화·董建華·1997∼2005)과 ‘자치 지지’(도널드 창·曾蔭權·2005∼2012)에서 ‘간섭과 간여’(렁춘잉·梁振英·2012∼2017)로 변했다고 분석했다.

    2007년 당시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홍콩 반환 10주년 기념 식 참석을 위해 홍콩에 도착해  인삿말을 하고 있다. /중국신문망
    2007년 당시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홍콩 반환 10주년 기념 식 참석을 위해 홍콩에 도착해 인삿말을 하고 있다. /중국신문망
    중국 경제가 고성장기에 있고, 홍콩에 중국식 국민교육 도입을 추진했다가 철회하는 등 중국이 홍콩에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던 때만해도 반중 정서가 강하지 않았다. 주권반환 10년째였던 2007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1995년 홍콩에 대한 전망 보도가 잘못됐다고 시인하며 "홍콩은 아직 죽지 않았고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치는 곳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평가할정도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6~7%대로 성장률이 둔화되는 시기에 집권을 하고 있는 시진핑 정부는 홍콩에 대해서도 강한 중국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4년 중국 정부는 7년 전 공언한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약속을 파기했고, 경기둔화와 빈부격차로 쌓인 홍콩 시민들의 불만이 9월부터 3개월여에 걸친 우산혁명 시위로 폭발했다.

    2014년 중국 정부가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약속을 파기하자 터진 우산혁명 시위./EPA연합뉴스
    2014년 중국 정부가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약속을 파기하자 터진 우산혁명 시위./EPA연합뉴스
    중국은 우산혁명 시위를 무산시켰고, 올 3월 친중파의 캐리 람 후보가 1200명의 선거인단에 의해 간접 선거 방식의 ‘체육관 선거’로 뽑혔다. 시 주석은 렁 장관과 람 장관 당선자를 면담할 때 아랫자리에 앉히기 시작했다.

    시진핑 정부는 상무위원으로는 처음 2016년 5월 장더장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홍콩을 방문할 때부터 방문 대신 ‘시찰’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9년만에 홍콩을 다시 찾은 시진핑의 방문도 시찰로 표현됐다. ‘일국양제’에서 동급을 의미하는 ‘양제(兩制)’보다는 상하 관계를 규정해야하는 ‘일국(一國)’에 방점이 찍힌 것이다.

    초대 홍콩 특별행정장관은 둥젠화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홍콩 회귀 20년 동안 바뀌지 않은 것으로 견고한 법치주의를 꼽았다. 하지만, 2015년 말 중국 권력층의 암투를 그린 서적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홍콩의 서점 관계자 5명을 잡아가고, 올 2월 홍콩에 거주해온 중국 투자회사 밍톈(明天)그룹의 샤오젠화(肖建華)회장을 압송해간 것은 그의 주장을 공허하게 만든다.

    영국의 마지막 홍콩 총독이었던 크리스 패튼은 최근 홍콩대 강연에서 “중국이 홍콩의 자치권을 점점 심하게 통제하고 있다”며 “중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1997년 홍콩 배우 유덕화가 ‘같은 피, 같은 민족’이라는 가사가 담긴 ‘중국인’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하지만 홍콩대 산하 여론조사기관 ‘민의연구계획’ 조사에서 중국인으로 생각하는 홍콩인의 비중은 1997년 38.7%에서 2007년 43.1%로 늘었다가 2017년 34.9%로 줄었다. 특히 18~19세의 젊은층 가운데 중국인으로 생각하는 비율은 1997년 32%에서 올해 3%로 급락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홍콩 회귀 20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홍콩에 도착한 29일 공항에서 영접을 받고 있다./AF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홍콩 회귀 20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홍콩에 도착한 29일 공항에서 영접을 받고 있다./AFP연합뉴스
    중국은 시 주석이 30일 인민해방군 홍콩수비대를 사열한데 이어 중국 첫 항공모함 랴오닝함을 7월에 홍콩에 입항시킬 것으로 알려지는 등 강한 중국의 면모를 계속 과시하고 있다. 중국이 자체 설계한 최초 1만t급 미사일 구축함인 055형 구축함 1번함이 상하이에서 진수식을 가진 28일이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게 만든 1차 아편전쟁 발발 177주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 인터넷에선 애국주의가 달아올랐다.

    강한 중국의 행보지만 정작 반중시위에는 긴장하는 모습이다. 범민주파 시민단체인 민간인권진선(民間人權陣線)은 30일 저녁 시 주석이 머무는 호텔이 있는 완차이(灣仔)에서 시위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신에 따르면 홍콩 정부는 전체 경찰관 2만 9000명 중 3분의1이 넘는 1만 1000명을 동원해 24시간 경비 태세에 들어갔다. 또 시 주석과 수행단 숙소인 완차이 르네상스 호텔과 그랜드 하얏트 호텔이 30일 부터 나흘간 일반인을 받지 않도록 했고, 두 호텔과 2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컨벤션센터 부근에는 차량을 이용한 공격을 차단할 목적으로 2t 무게의 대형 플라스틱 바리케이드 300개를 설치했다. 시위대가 보도블록을 뜯어내 시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보도블록을 접착제로 붙이기도 했다.

    시진핑 정부의 ‘강한 중국’ 행보는 한국내 반중정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사드갈등을 두고 중국은 핵심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중국의 간섭이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아산정책연구원이 2~3월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인 응답자 60%는 한국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조사때 21%에 머문 부정적이란 답변 비율이 약 3배로 늘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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