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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내 영화의 장르는 '봉준호'... 관객에게 아름다운 상처 안기고 싶다"

  • 김지수 문화부장
  • 입력 : 2017.07.01 07:00

    ‘옥자' 칸 소란에 이어 멀티플렉스 배급도 좌절, 전국 107개 스크린에서 개봉
    ‘국민' 감독 봉준호, 데뷔 14년 간 제 각자로 ‘억울한' 생물들의 소동과 소통 아름답게 그려
    “아름다움이란 좋은 의미의 상처, 관객에게 상처로 남고 싶어"
    “영화가 사회 바꿀 수 없지만… ‘옥자', 고난 겪었어도 파괴되진 않았다"

    봉준호는 연세대 사회학과와 영화 아카데미를 졸업했으며, 데뷔작인 옴니버스 단편 영화 ‘지리멸렬'에서부터 한국 사회의 위선을 통렬하게 풍자했다./사진 제공=NEW
    봉준호는 연세대 사회학과와 영화 아카데미를 졸업했으며, 데뷔작인 옴니버스 단편 영화 ‘지리멸렬'에서부터 한국 사회의 위선을 통렬하게 풍자했다./사진 제공=NEW
    봉준호 감독은 몸집이 크다. 그가 만든 변종 바이러스 ‘괴물'이나 슈퍼 돼지 ‘옥자’만큼은 아니지만, 확실히 거구다. 전문가의 손질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헝클어진 머리는 ‘미래 소년 코난'의 성인 버전이다. ‘봉테일'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디테일에 집착하지만, 공식 석상에서도 한결같이 고집스럽게 회색 재킷에 검은 티셔츠, 진 팬츠, 앞이 뭉툭한 낡은 신발을 신고 나타나는 그다.

    일종의 충무로의 ‘너드' 스타일이랄까. 그리고는 사랑에 빠진 난처한 얼굴로 ‘영화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목소리는 고성능 앰프를 내장한 듯 크고 낭랑하며 묘사는 섬세하고 정확하다. 자신이 창조한 생명체(커다랗고 영리한 슈퍼 돼지)의 드로잉을 보여주며 자랑할 때는 마치, 임산부가 태아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는 것 같다.

    유머와 슬픔을 버무린 담담한 어조로 그가 말했다. “이 영화는 ‘가족’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이야기입니다.”

    4년 전 어느 날, 봉준호는 ‘엄청나게 크고 친절하며 내성적이고 슬픈 이미지'를 갖춘 생물을 떠올렸다. 그리고 2017년 여름, 그것을 실현해준 미국 회사 넷플릭스와 스코틀랜드 여배우 틸다 스윈턴에 충분히 예의를 지키고 싶어 했다.

    나는 문득 봉준호보다 더 큰 몸집에 더 큰 야심이 느껴지는 마이클 무어나 스티븐 스필버그, 피터 잭슨 같은 할리우드 감독을 떠올렸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일까. 지금 시점에서 그들이 던졌던 정치적 메시지나 외계 생명체가 봉준호의 그것만큼 포용력 있거나 동시대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한마디로 지금 봉준호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인물 중 하나다. 변방의 아시아 감독인 봉준호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은, ‘글로벌’이라는 화두를 넘어서 독특하게 글래머러스하다. 현재 지구상에서 봉준호만큼 과거와 현재와 미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변방과 중심,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아우성’을 사려 깊게 담아내려는 감독은 드물다.

    결과적으로 세계적인 스트리밍 회사 넷플릭스가 자신들의 신규 고객 확장을 위해 박찬욱보다 봉준호를 먼저 선택한 건 잘한 일이다. 한국의 몇몇 작가주의 감독이 그러하듯 ‘예술가로서의 에고’를 돌출시키는 해프닝 한번 없이, 어떤 이야기든 우직한 몸으로, 우왕좌왕하는 인파를 뚫고 우아하게 착지하는 그의 저력이 놀라울 뿐.

    14년 전, 피해자도 용의자도, 서울 형사도 시골 형사도 제 각자의 ‘억울함'을 그대로 포용했던 농촌 스릴러 ‘살인의 추억'의 아련한 추억을 넘어, ‘괴물'과 ‘마더'와 ‘설국열차'의 정거장을 지나, 또 한 번 돼지든,
    자본가든 각자의 처지에서 애처로운 생물들을 모아놓은 ‘옥자'까지 전력 질주한 봉준호가 가쁜 숨을 고르며 말했다. ‘아름다운 영화' 혹은 ‘영화의 아름다움'에 대해.

    “제게 있어 아름다움이란… 좋은 의미의 상처예요. 제가 만든 좋은 이미지가 상처가 돼서 오래 갔으면 좋겠어요.”

    디지틸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 넷플릭스가 570억원을 전폭 투자해서 만든 영화 ‘옥자'. 봉 준호 감독은 “나와 촬영 감독인 다리우스 콘지는 보통의 영화를 찍었다. 큰 스크린에서 상영될 것이라는 전제로.”라고 말했다.
    디지틸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 넷플릭스가 570억원을 전폭 투자해서 만든 영화 ‘옥자'. 봉 준호 감독은 “나와 촬영 감독인 다리우스 콘지는 보통의 영화를 찍었다. 큰 스크린에서 상영될 것이라는 전제로.”라고 말했다.
    때론 그가 만든 아름다운 이미지만큼이나, 그가 심어놓은 영화의 대사들이 아득하게 머리를 때리기도 한다.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비 오는 터널 앞에서 용의자 박해일에게 했던 말, “밥은 먹고 다니냐?”
    ‘마더’에서 김혜자가 아들 원빈을 대신해 감옥에 간 청년에게 했던 말, “너는 엄마 없니?”
    ‘옥자'에서 산골 소녀 미자가 달음질치며 백 번도 넘게 부르짖었던 말 “옥자야~”

    생명에 대한 놀라운 경외를 간직한, 사랑스러운 ‘국민' 감독 봉준호를 만났다.

    -(옥자 스티커를 보며) 분홍돼지 스티커를 너무나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고 계시는군요. 마치 엄마처럼.

    “(눈빛 가득 하트를 담아)집에서 키우고 싶어요. 단독 주택이라면 가능할 텐데… 아파트에서 키울 순 없죠.”

    -저 아름다운 피조물을 어떻게 창조하셨나요?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패드를 펼친다)처음엔 제가 이렇게 드로잉을 했습니다. 그다음엔 이렇게… 또 이렇게... ”

    -오! 미야자키 하야오의 ‘토토로'같네요. 귀여워요.

    “틸다(틸다 스윈턴)에게 보여줄 땐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이었어요. 나중에 ‘괴물' 디자인했던 친구가 점점 더 진화를 시켰죠.”

    봉준호가 이 순하고 몸집 큰 돼지를 틸다 스윈턴과 제이크 질렌할에게 처음 보여주었을 때, 그들은 온몸이 녹아내리는 표정을 하며 말했다. “무조건 함께 하겠다”고.

    -최종적으로 ‘라이프 오브 파이'의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를 만들어냈던 에릭 얀 드 보어가 참여한 거로 알고 있어요. 어쨌든 참 억울하게 생겼습니다.

    “억울하죠. 진짜 억울하잖아요. 돼지 입장에서. 돼지가 얼마나 청결하고 예민한 동물인 줄 아세요? 동물학자들은 돼지가 진돗개보다 IQ가 높다고 해요. 그런데 다들 돼지는 항정살이나 삼겹살로만 보지요.”

    ‘옥자’의 컨셉 드로잉. 봉준호와 틸다 스윈톤은 평소에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이었고 ‘토토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고 한다.
    ‘옥자’의 컨셉 드로잉. 봉준호와 틸다 스윈톤은 평소에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이었고 ‘토토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돼지를 데리고 흉포한 세상을 모험한 기분이 어떤가요? 옥자와 미자가 맨해튼에서 그랬듯, 칸에서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셨더군요.

    “하하하. 칸에 다녀온 지가 한달 반이에요. 저로선 한참 지난 일인데, 아직 한국에 개봉을 안 했다는 게 더 새롭고 놀라워요.”

    넷플릭스가 이런 소동을 예견했을지 모르지만, 확실히 봉준호의 ‘옥자'는 이슈 메이킹에 성공했다. ‘옥자'가 칸에서 처음 상영됐을 때, 극장에서는 여러 번 야유가 터져 나왔고, 상영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국내 사정도 마찬가지. CJ와 롯데, 메가박스 등 3대 멀티플렉스는 570억 규모의 이 스펙터클한 대작에 극장을 내주기를 거부했고, 영화는 전국 100여 개의 단관 극장에서 개봉된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이후 가장 적은 상영관이다.

    -지난 번 인터뷰 때 “아름답게 완성했으니, 관객들이 빨리 이 영화의 아름다움으로 빠져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아름답다'라는 말을 예전보다 많이 쓴다는 걸 알고 있나요?

    “그랬나요? 제가? 저는 감독이기 때문에 잔상에 오래 남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좋은 의미에서 상처를 입히고 싶어요. 제가 만든 좋은 이미지가 상처가 돼서 오래 갔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운 좋게도 ‘델리카트슨'과 ‘세븐' 등을 찍은 다리우스 콘지 감독과 알렉사 65 카메라로 찍었는데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스펙터클하게 담아줬어요.”

    -후반부의 잔혹한 장면들을 포함해서요. 그 때문에 전반부에 미자와 옥자의 사랑스러운 교감이 묻힌다는 지적도 있죠. 밤 가시에 찔려 쩔쩔매고 홍시를 좋아하는 옥자와 밤이면 미자를 품에 안고 잠이 드는 다정한 풍경들이… 영화 외적으로도 그렇지만, ‘옥자'가 가진 스토리도 상당한 논쟁을 불러올 거라고 예상했을 텐데요.

    “네. 하지만 반려인 입장에서는 ‘옥자'가 가족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이야기거든요. 얼마 전에 임순례 감독이 ‘카라(동물보호시민단체)’ 회원분들과 영화를 봤는데, 소리 내서 울었답니다. 며칠 전 일본 시사회에서도 우는 분들이 여럿 있었어요. 보통 우리는 예쁜 강아지 안고 마트에서 돼지고기를 살 때 불편한 감정을 안 느껴요. 그런데 제 영화가 그 행위를 불편하게 느끼도록 도발적으로 공격한 거죠.”

    -저는 ‘옥자'를 본 이후에도 여전히 소시지와 삼겹살을 먹습니다. 다만 마블링이 선명한 고기 사진이 올라온 SNS를 볼 땐 눈길을 피하게 되더군요.

    “기다란 바이옥시 건으로 옥자 몸에서 고기를 추출하는 장면 때문이지요?”

    ‘넷플릭스는 영화를 리스펙트하는 디지털 아카이빙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는 봉준호.
    ‘넷플릭스는 영화를 리스펙트하는 디지털 아카이빙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는 봉준호.
    -맞습니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맛보기 고기를 추출하는 장면이 충격적이었어요.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설국열차'에서 바퀴벌레 프로틴바를 볼 때 만큼이나...

    “그게 실제 있는 기구예요. 끝이 벌레 이빨처럼 생겼죠. 농협 창고에서 기다란 봉으로 가마니를 찔러 쌀알을 검사하잖아요. 그것의 고기 버전이죠. 영화 후반부에 옥자가 도살장에 끌려와 벌어지는 일이 끔찍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미국 도살장에 가서 본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어떤 장면을 보고 들으셨나요?

    “덴버 공항에서 1시간 반 거리의 콜로라도 도살장에 갔었어요. 거기가 잠실 메인스타디움의 4~5배 크기거든요. 하루에 5천 마리 이상 도살이 이루어져요. 그곳에서도 관리 감독은 백인, 도살은 남미에서 불법 입국한 히스패닉들이 해요. 컨베이어벨트를 지나면서 그냥 툭툭툭 생명이 처리돼죠. 가죽이 벗겨진 두개골엔 아직도 얼굴 뼈, 볼살, 안구가 붙어 있어요. 소머리가 툭 떨어지면 마지막으로 히스패닉들이 달려들어 눈알과 혀를 뽑아서 던져요.

    도살장 옆엔 비육장이 있는데, 거기서 소들이 6개월간 유전자 조작 사료를 먹고 살을 찌워요. 그 공간이 차로 30분을 달려도 끝이 안 나요. 도살장 직원들이 그래요. “우리가 이렇게 조직적인 시스템을 갖춘 게 자랑스럽다"고. 감정이 아주 복잡해질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도살장을 나와 수천 마리의 소들이 그런 분해 과정을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서 있는 걸 볼 때예요.”

    -돼지 몸에 공장 굴뚝을 연결한 포스터 비주얼은 핑크 플로이드 앨범 ‘애니멀'을 연상시킵니다.

    “네. 포스터가 그쪽에서 영감을 받은 건 확실하고요. 영화적 메시지와 맞아서 좋지만, 제가 특별히 핑크 플로이드에서 영감을 받진 않았어요.”

    -3대 메이저 배급사에서 ‘옥자'를 거부한 것도 CJ와 롯데 등 대기업이 육가공 푸드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요? 전작인 ‘설국열차'는 CJ에서 만들고 배급했는데, 이젠 거부당하고 있으니 섭섭할 법도 합니다.

    “노코멘트입니다.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는 통상 극장이 제한적이에요. 그래도 넷플릭스 역사상 100여 개 극장에서 개봉하는 건 역대 최다극장이에요. 북미 10개, 영국 10개 극장 등 가늘고 길게 갈 거라고 봐요.”

    -다른 감독들은 어떻게 보고 있나요?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은 없습니까?

    “설사 반대했다 해도 자초지종을 알면 이해할 거예요. 저는 새로운 걸 하고 싶었어요. 사실적인 CG와 뉴욕 로케이션, 시나리오를 그대로 실현하려면 500억 이상이 드는데, 그걸 감당할만한 스튜디오는 아시아에 없어요. 미국 5대 메이저를 제외하면 모두 인디 스튜디오인데, 거기선 제 이야기를 좋아해도 예산이 350억 까지만 가능하다는 거죠. 돈이 있는 스튜디오는 “도살장 장면을 꼭 찍어야 하느냐?”며 불편해했고요.

    그때 예산을 커버하면서 시나리오를 한 줄도 바꾸지 않겠다고 하면서 넷플릭스가 나타난 거죠 특수성은 익히 알고 있던 바고, 저는 영화를 만드는 게 더 중요했어요. 그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사회 통념에 도전하는 개인주의적인 신념으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에 비해 ‘비호감의 성분’이 적은 봉준호. 그의 모든 영화에는 가족이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최초의 ‘러브스토리'라고 지칭한 ‘옥자' 또한 가족애가 본질이다.
    사회 통념에 도전하는 개인주의적인 신념으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에 비해 ‘비호감의 성분’이 적은 봉준호. 그의 모든 영화에는 가족이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최초의 ‘러브스토리'라고 지칭한 ‘옥자' 또한 가족애가 본질이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도 8월에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찍는다고 들었어요.

    “맞습니다. 그분도 합당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제가 넷플릭스 직원은 아니지만, 무사히 영화를 완성한 데 대해서 예의를 지키고 싶어요. 기본적으로는 저도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다행히도 특별 상영이나 영화제 상영 등 극장 상영 기회가 많아요. 이번 주말엔 타란티노 감독이 운영하는 LA 타란티노 극장에서도 상영해요. 무려 35밀리 필름 프린트 버전으로. 뉴욕 링컨 센터, 토론토 영화제가 운영하는 극장에서도 틀 거고.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서도 상영되는데, 거기엔 틸다 스윈턴과 브래드 피트도 와서 한바탕 놀다 갈 거래요.”

    -고전적인 시네마천국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지만, 덕분에 우린 옥자와 미자의 천국을 볼 수 있게 됐군요.

    “어려운 말이네요. 하하. 아무튼, 제가 영화의 미래를 결론 내리고 싶진 않아요.”

    -어쨌거나 당신은 ‘괴물'도 35밀리 필름 영화로 찍은 사람인데, 최첨단 디지털 스트리밍 회사와 일하다니… 굉장한 반전이에요!

    “사실 감독과 촬영 감독들에겐 켜켜이 쌓인 상처가 있어요. 자신이 만든 영화를 TV 방송으로 볼 때 뛰쳐나가고 싶죠. 가령 영화 화면 비율이 2.35대 1인데, 브라운관에선 그 비율을 무시한 채 좌우가 잘려요. 심의 때문에 담배 피우는 장면이 뿌예지거나 화면을 비집고 다음 방송의 예고가 나오기도 하죠. 그럴 땐 정말 집을 나가고 싶어요. 반대로 넷플릭스는 가정용 믹싱 시스템까지 고려할 만큼 작은 화면의 테크놀러지에 집착해요. 그런 반전이 더 쾌감을 주죠(웃음).”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봉준호의 2006년 작 ‘괴물'. 한강에 방류된 포름 알데히드를 먹고 자란 괴물과 한 가족의 사투를 그렸다.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봉준호의 2006년 작 ‘괴물'. 한강에 방류된 포름 알데히드를 먹고 자란 괴물과 한 가족의 사투를 그렸다.
    -넷플릭스에서는 장르 구분 시스템이 있는데, 봉 감독 영화는 어디에 포함될 거라고 보나요? 히어로? 블랙 코미디? 크리처 무비?

    “모르겠어요. 저는 동물과 사람의 러브스토리라고 주장하고 있고(웃음), 러프하게 말하면 액션 어드벤처 사회 드라마쯤이 아닐까 싶어요. 더 쉽게 말하면 제 영화의 장르는 ‘봉준호'죠. 봉준호스러운 영화. 그렇게 불린다면 저로서도 큰 영광이겠고요.”

    -익숙한 장르 규칙을 부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까?

    “글쎄요. 2시간 내내 한 가지 정해진 형식이 있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실제 생활을 보세요. 하루에도 여러 가지 감정과 사건이 드나들어요. 희극과 비극, 활기와 어색함… 그걸 아는 저는 장르의 깃발을 꽂고 한길로 달려갈 수가 없어요. ‘설국열차'의 경우만 예외였죠. 기차와 디스토피아, 세계 종말 이후를 다뤘으니 SF라는 출발점이 생겼을 뿐.”

    -그렇게 뒤죽박죽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게 봉 감독 스타일인 듯합니다. 일종의 ‘난장판 영화'인데, ‘마더'를 제외하면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옥자' 모두 소동극의 형태를 띠고 있어요. 광장 공포를 앓고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것에 대한 반작용인가요?

    “깽판, 카오스, 난장판을 만들면서 보람을 느끼기는 합니다(웃음). 난동을 세밀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는 면에서 그럴 수도 있겠어요. 저는 사람 많고 복잡한 곳에 가면 두려워지거든요. 이번엔 회현 지하상가에서 난동을 부렸어요.”

    -옥자와 미자와 동물해방연대와 미란도 직원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살인의 추억'의 논두렁 장면과 ‘괴물'의 한강 난동 장면을 연상시키더군요.

    “그 소동 와중에 다이소 매장을 박살을 냈죠(웃음). 회현 지하상가가 천장이 되게 낮아요. 지하상가 중에 가장 낮죠.”

    2003년 작 ‘살인의 추억'. 봉준호 영화의 모든 원형이 함축되어 있다. 어린 아이, 소녀, 가족, 억울한 자. 쫓고 쫓기는 추격전 등.
    2003년 작 ‘살인의 추억'. 봉준호 영화의 모든 원형이 함축되어 있다. 어린 아이, 소녀, 가족, 억울한 자. 쫓고 쫓기는 추격전 등.
    -봉 감독 영화에 변희봉 배우가 중요하게 등장한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살인의 추억', ‘괴물'에서도 해학적이고 정 깊은 한국 어르신으로 등장했는데, ‘옥자'에서도 일종의 회귀지점으로 나옵니다.

    “그렇죠. 돼지와 손녀 이름을 옥자, 미자로 촌스럽게 짓고(웃음). 옥자를 잊으라고 금 돼지를 사주고. 이해할 수 없지만 거기서 벗어날 수도 없는 그런 존재죠. 우리나라 어른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말도 서툴고 설득력도 부족하고. 이번 영화에서 저는 여러모로 세대 간의 갈등을 드러냈어요.

    틸다 스윈턴이 처음 나와서 한 말도 할아버지의 악행을 고발하고 아버지를 싸이코라고 선언한 거거든요. 동물해방전선 전사들도 이전 세대를 비판하잖아요. 윗세대와 불편했던 감정을 어떻게든 드러낸 거죠.”

    -틸다 스윈턴은 당신 영화에서 어느 정도 중요했습니까?

    “틸다는 정말 큰 역할을 했어요. 공동 프로듀서죠. 특히 그녀는 언어의 마술사예요. 이미 ‘설국열차' 할 때 겪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더 각별했어요. 제 시나리오를 존 론슨이라는 영어권 작가가 다듬었는데, 영어 대사의 경우는 존 론슨과 틸다가 함께 붙어서 각색하도록 유도했어요. 두 영국인끼리 머리를 맞대도록 저는 개입하지 않았어요.”

    -틸다와 함께 미자 역의 안서현 양의 캐스팅도 ‘신의 한 수’더군요. ‘괴물'의 고아성과 배두나를 섞어놓은 듯한 다부진 슈퍼 소녀였어요.

    “원래 실력 있는 친구라는 건 알았지만 정말 대단했어요. 그 친구가 약간 뚱한 매력이 있어요. 제이크 질렌할이 와도 큰 반응이 없고(웃음). 일희일비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실제 캐릭터가 그래요. ‘‘옥자'가 내 인생의 영화’라는 식의 호들갑도 없고, 그저 ‘올해는 이런 영화를 하는구나!' 정도의 반응…”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내 영화의 장르는 '봉준호'... 관객에게 아름다운 상처 안기고 싶다"
    -미자가 ‘옥자야~’라고 부를 때나, ‘옥자'를 향해 ‘미래 소년 코난’처럼 도시를 뜀박질할 때 상쾌한 이질감이 느껴졌어요. 특별히 디렉션이 있었나요?

    “아니요. 없었어요. 저는 오히려 안서현 양이 영화에 너무 몰입하지 않도록 산만하게 방해했어요. 쉬는 시간에도 밥차 얘기를 하고, 최대한 흐트러뜨리려고 했죠. 정말입니다(웃음).”

    -정말 배우 복이 많으시군요. 현장에서 특별히 한국 배우와 미국 배우가 다른 점이 있던가요?

    “미국 배우는 트레일러 회귀본능이 있어요. 자기가 연기하지 않을 땐 무조건 트레일러로 돌아가죠. 미국 연출부엔 트레일러 호출만 전문으로 하는 역할이 따로 있을 정도죠. 하지만 틸다는 달랐어요(웃음). 한국 배우들이 죄다 모니터 옆에 모이듯, 촬영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함께 모니터 옆에 둘러앉아 잡담을 하곤 했지요(웃음).”

    -언제부턴가 당신은 매우 글로벌한 인물이 되었어요. 영화 만들 때 한국인이라는 자각을 어느 정도 합니까?

    “제가 따져보니 ‘살인의 추억'을 만들 땐 음악 감독이 일본인이었어요. ‘괴물'을 만들 땐 호주 특수효과팀과 일하고 미국 CG 회사와 화상 통화를 하면서 마무리를 했죠. ‘도쿄'라는 작은 옴니버스 영화를 만들 땐 저 혼자 낯선 도시로 가서 아오이 유와 일본 스태프들과 찍었고요.

    ‘설국열차'는 처음부터 글로벌 프로젝트였습니다. 조금씩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어느 날 현장에 보니 한국, 미국 여러 나라 스태프와 배우들이 다 섞여 있어요. 프로 축구에서 외국 선수가 뛰는 것처럼 이제 국가라는 경계가 없어졌죠.”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내 영화의 장르는 '봉준호'... 관객에게 아름다운 상처 안기고 싶다"
    -제 말은 한국인이라는 문화적 정체성을 어느 정도 자각하는지에 관한 거였어요.

    “특별히 자각하지 않습니다. 미자와 희봉이 대만의 할아버지와 소녀여도 상관이 없어요. 뉴질랜드의 아시안일 수도 있고요. 제가 한국 사람이라 한국으로 설정했고, 그래서 산골에서 마이크 잡고 ‘아아'하는 이장님 흉내를 내는 장면을 만들 수 있었죠.

    하지만 이 영화는 다국적 기업에 관한 이야기예요. 아시아 변방에서 맨해튼 중심부로 들어가는 스토리라 굳이 한국인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없습니다.”

    -여성에 대한 애정은 어떻습니까? ‘플란다스의 개'와 ‘마더'의 배두나와 김혜자는 독특한 여성 캐릭터로도 선정된 바 있지요. ‘살인의 추억'에서도 여성 경관이 결정적 역할을 했고, ‘괴물'이나 ‘설국열차'에서도 여자아이(고아성)가 이상한 질주를 마무리 짓습니다. 최동훈 감독의 미스터리나 박찬욱 감독의 양가감정, 홍상수 감독의 사심과는 다른 지점에서 여배우에 대한 경외심이 있는 건 아닌지요.

    “여자에 대한 저의 두려움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웃음). 이 영화에서도 마지막에 미자(안서현)와 낸시(틸다 스윈턴)가 아주 황당한 거래를 하죠. “순금이네, 오케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돌진하는 두 여자가 만나 이 소동을 끝내는 겁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자가 옥자에게 귓속말을 하던데… 뭐라고 했죠?

    “저도 몰라요(웃음). 안서현 양에게 물어봤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 얘길 했다는군요(웃음).’

    -한편 잔혹한 현실에서 너무 황급하게 탈출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보는 분마다 좀 다른 거 같아요. 어떤 분은 어둠에 초점을 맞추고, 어떤 분은 너무 동화적 해피엔딩 이라고 못마땅해하시죠 잔잔한 강원도 두메산골로 돌아왔지만, 미자와 옥자는 피바다를 목격했어요. 그 씁쓸함을 잊을 순 없죠. 하지만 제게 중요했던 건 이거였어요. 고난을 겪었지만 파괴되지는 않았다는 거.”

    -마지막으로 당신이 영화로 던진 메시지가 사회적 변화를 일으킬 거라고 기대하나요?

    “저는 영화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지 않아요. 다만 현재 상태를 폭로하거나 간명하게 드러내는 정도죠. 세대 간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생체적으로 육체가 소멸해야 끝이 나요. 최근에 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물리적 육체적으로 원하든 원치 않던 때가 되면 등장하고 사라지면서 흘러가는 거죠.”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내 영화의 장르는 '봉준호'... 관객에게 아름다운 상처 안기고 싶다"
    그렇게 미야자키 하야오의 ‘토토로'의 한 장면처럼, 메이와 토토르의 우정의 오마주에서 시작한 ‘옥자'는 학살과 테러와 강간과 쇼비즈니스로 얼룩진 흉포한 자본을 겪은 후 웅장한 자연의 품으로 돌아온다.

    ‘고난을 겪었지만,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 봉준호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긴 여운을 남겼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상처를 남길 순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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