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도전자들]① 노범준 어웨어 대표 "매일 7가지 질문 떠올려…하드웨어는 트로이 목마"

입력 2017.06.29 06:05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를 아우르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San Francisco Bay Area). ‘첨단 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이곳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CEO들은 어떤 비전과 전략을 갖고 있을까. 매년 2만 개씩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전쟁터에서 이들이 살아남는 비결은 뭘까. 혁신의 심장부에서 끝없이 도전하는 기업가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취재했다. [편집자주]

“구글 홈(인공지능 스피커)으로 집 현관문을 잠그거나 가전제품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우리와 함께하는 멋진(cool) 스마트홈(smart home) 기업들 덕분입니다.”

지난 5월 17일(현지시각)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구글 개발자 콘퍼런스 ‘구글 I/O 2017’ 현장. 리시 찬드라(Rishi Chandra) 구글 부사장의 발표를 앞두고 무대 뒤 초대형 스크린에 58개 기업의 로고가 떠올랐다. HP, GE, LG 등 글로벌 하드웨어 제조업체, 네스트(NEST·구글이 2014년 인수), 스마트싱스(SmartThings·삼성이 2014년 인수) 같은 혁신적 사물인터넷(IoT) 기업의 로고였다. 구글 홈의 새로운 기능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파트너 기업을 소개한 것이다.

노범준(40·사진) 대표가 이끄는 공기 상태 측정 스타트업 ‘어웨어(Awair·법인명 비트파인더)’도 그중 하나였다. 어웨어는 보잉, 삼성전자, 시스코를 거친 노 대표와 듀폰(DuPont)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케빈 조 CTO(최고기술책임자)가 2013년 말 창업한 회사다. 직사각형 모양의 기기를 통해 온도·습도·미세먼지·이산화탄소·유기화합물을 측정·분석해 사용자(개인, 학교, 병원 등)에 맞는 해결 방안을 제공한다.


지난 20일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에서 만난 노범준 어웨어 대표. / 박원익 기자
어웨어는 지난해 7월 아마존 인공지능 스피커 ‘에코’에 이어 올해 구글 홈과 손 잡으며 창업 4년 여 만에 스마트홈 업계 주요 플레이어로 급부상했다. 테크스타스(Techstars), 케이큐브벤처스, 알토스 벤처스, 삼성벤처투자 등 국내외 유명 투자회사로부터 유치한 투자금액은 77억원. 지난 20일 샌프란시스코 어웨어 본사에서 노 대표를 만났다.

◆ 3가지 성공 비결… 문제의식, 네트워킹, 인재 영입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실리콘밸리는 세계 어느 곳보다 회사를 그만두고 스타트업하는 사람을 찾기 쉬운 곳이다. 서울에서 된장국, 삼겹살이 일상이듯 여기에선 창업이 그렇다. 시스코에서 스마트 빌딩(smart building) 프로젝트를 할 때 딸이 태어났다. 침실, 사무실, 버스, 전철, 비행기 등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실내 공간의 미래를 고민할 때였는데, 딸이 아토피가 심해 자연스럽게 건강한 실내 환경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어떻게 하면 센서와 데이터를 활용해 환기·청정·제습·가습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이런 게 미래다 싶었다. 공동 창업자인 케빈 조 CTO의 아이도 천식이 심했던 터라 이 아이디어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의식이 뚜렷해 보인다.

“사업 아이템을 선정할 때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문제가 존재하고, 그 문제를 풀고 싶다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3D프린터, 업무용 메신저 등 다른 아이템을 살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실내 공기질 측정은 내 개인적인 문제였을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 문제를 공유하고 있었다.

아직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실내 환경 문제에 대한 열정을 계속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트렌드가 다가오거나 큰 시장이 존재하는 아이템을 고를 경우 이미 경쟁자가 많고, 선발 주자에 비해 경쟁 열위인 경우가 많다.

창업해서 팀을 꾸리고 투자받으려면 다양한 사업 파트너들에게 내 아이디어를 세일즈해야 하는데, 스스로 간절히 해결책을 원하지 않으면 얼마나 힘들겠나. 나만의 경험과 노하우가 어느 정도 있어야 회사를 발전, 성장시킬 수 있다. 진정성이 필요하다.”


노범준 대표와 딸(위), 케빈조 CTO의 아들(아래). / 어웨어 제공
-테크스타스는 창업 초기 어떤 도움을 줬나.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나 테크스타스 같은 유명 액셀러레이터(창업 투자·보육 업체)에 들어가는 것은 큰 결정이다. 좋은 멘토들을 만날 수 있고, 엄청난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다. 2014년 말 4개월 정도 있었는데, 우리를 포함해 10개 창업팀이 하루 3~4시간 자면서 매일 미친 듯이 뛰었다. 첫 3주 동안 다양한 멘토들과 인터뷰를 했다. 그때마다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90%는 좌절했다. 김치가 익듯 아이디어를 숙성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적지 않은 지분을 액셀러레이터에 줘야 하기 때문에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 달 정도는 데모데이(demoday·사업 아이디어 발표회)를 준비해야 한다. 이런 것이 방해된다고 생각하는 창업가들도 있다.”

-테크스타스를 만나게 된 계기는.

“미시간대학교 비즈니스 스쿨 동기가 테크스타스의 하드웨어 스타트업 프로그램 담당자와 친했다. 그 친구를 통해 프로그램에 합류하지 않겠냐고 간접적으로 연락이 왔다.

창업가에게 네트워크는 자산이다. 억지로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하기보다 공기 청정기 업체 ‘블루에어’ 대표, 공조 시스템 업체 대표 등 우리 회사와 관련된 업계 리더들을 자연스럽게 만나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제품 개발과 연구에 시간 30%를 쓰고 30%는 채용에, 20% 정도는 업계 리더들 만나는 데 쓰고 있다. 실리콘밸리에는 ‘ABR(Always Be Raising)’이란 말이 있다. CEO는 누구를 만나든 투자를 유치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업에 집중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그 인연이 기회로 이어지더라.”

-행정고시 출신 백산 부사장, 글로벌 디자인 회사 아이디오(IDEO) 출신 김보성 CDO(최고디자인책임자) 등 구성원들 면면이 화려하다.

“사람을 뽑을 때 적어도 3개월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은 인재가 중요하다. 당장 합류하지 못할 것 같더라도 꼭 필요한 인재라면 계속 시간을 투자한다.

우리 회사의 마케팅 헤드인 닉 반스(Nic Barnes)가 대표적이다. 회사에 조인하는데 1년 반이 걸렸다. 미국 유명 스타트업 부사장으로 있던 친구인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커피 마시고 점심 먹고 했다. 둘이 옛날 일 생각하며 가끔 웃는다.

창업자들은 직감(gut feeling) 같은 게 있다. 이 직감을 신뢰할 수 있도록 투자자, 인재를 설득하는 게 창업자가 할 일이다. 설령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꿋꿋이 갈 수 있어야 한다.”

어웨어 샌프란시스코 오피스 직원들. 스타트업이 밀집한 소마(SOMA) 지구에 있는 작은 건물 2층 전체를 사용하고 있다. / 어웨어 제공
◆ “그런 세상이 분명히 온다”

노 대표는 2015년 5월 500여 명의 글로벌 기업 관계자들이 참가하는 ‘코드 콘퍼런스(code conference)’ 무대에 올라 어웨어를 소개했다. 코드 콘퍼런스는 월스트리트 저널 출신으로 현재 리코드(Recode) 편집장을 맡고 있는 유명 IT 저널리스트 월트 모스버그(Walt Mosberg)가 만든 콘퍼런스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에릭 슈미트, 일론 머스크 등 IT 업계 거물들이 이 콘퍼런스의 게스트로 초청됐다.

-월트 모스버그를 사로잡은 에피소드가 유명한데, 특별한 설득 노하우가 있나.

“2015년 초 리사라는 기자의 소개로 제품 론칭도 안한 상태에서 월트 모스버그를 만났다. 20분 밖에 없다고 했는데, 이야기 하다보니 1시간으로 길어졌다. 본인이 설립한 코드 콘퍼런스에서 어웨어 제품을 공식 론칭하자고 먼저 제안하더라.

사실 운이 좋았다. 그는 나와 미팅하기 전 중국에 머물렀다. 호텔에 있었는데도 공기가 안 좋아 너무 힘들었다고 하더라. 그도 같은 문제를 느끼고 있었고, 쉽게 공감대가 형성됐다.”

-창업 후 가장 결정적이었던 순간은.

“MIT 미디어랩 교수,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스쿨 총장을 지낸 존 마에다를 테크스타스 멘토로 만난 것이었다. 그는 굉장히 날카롭고 분석적이며 비판적이었다. 주어진 30분 간 내 사업 구상을 얘기한 후 나가려고 했더니 다시 들어오라고 하더라. ‘나는 네가 하려는 비즈니스를 믿는다. 그런 세상이 분명히 온다’고 했다.

궁극적으로 어웨어가 디자인한 방, 병원 등에서 고객이 안심하고 숨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안하면 누군가는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존 마에다가 ‘그렇게 될테니 열심히 하라’는 확신을 줬다. 큰 영감을 얻었다. 그 뒤로 그에게 연락할 때마다 이메일로 답을 바로 주더라. 시제품이 나왔을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자신이 전문 엔젤 투자가는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투자해도 되겠냐고 묻더라. 항상 이 일이 기억난다.

투자자분들 모두 고맙지만, 가장 처음 우리를 믿어 주고 엔젤투자 해준 노정석 리얼리티리플렉션 대표도 기억난다. 그의 신뢰가 없었으면 시작할 수 없었다.”


세계 디자인·IT 업계 구루(guru·스승)로 평가받는 존 마에다 전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스쿨 총장. 그는 현재 미국 최대 벤처 캐피털인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앤드 바이어스(KPCB)’의 자문을 맡고 있다. / 조선일보DB
-뼈아픈 실패는 없었나.

“실패와 좌절은 늘상 겪는 일이다. 투자 요청 메일을 보냈다가 실패한 리스트만 250개 이상이다. ‘노(no)’를 미친듯이 받았다. 오피스용 제품(어웨어 포 비즈니스)을 팔기 위해 전화를 돌렸는데, 열 번에 아홉 번은 관심없다는 응답이 돌아왔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제품을 내놓는 것 자체가 힘들다. 제조 공정을 고려하면 제품 설계부터 소프트웨어 개발 등 모든 내용을 적어도 6~9개월 전 확정해야한다. 다행이 요즘엔 먼저 제품 문의를 해오는 병원, 대중 교통 업체 등이 많아지고 있다.”

◆ 매일 7가지 질문 던져… “trust the process”

-실리콘밸리와 한국은 어떻게 다른가.

“실리콘밸리에선 때때로 현실과 동떨어져 생각할 수 있다.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라는 말이 있는데, 가끔 이런 게 필요하다. 어웨어 창업할 때 ‘안된다’, ‘측정기만 가지고 뭐할래’ 같은 얘기를 숱하게 들었는데, 아마 서울에서 창업했으면 공기 청정기를 먼저 만들었을 지 모른다. 직감을 관철하고 성장하려면 이곳 만큼 좋은 곳이 없다. 더 큰 그림을 보며 헛된 꿈을 꾸는 사람이 많고, 펀딩 받을 기회도 많다. 투자, 인재, 성공을 돕는 문화가 어우러져 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가 미화되어선 안된다. 우리 오피스 바로 건너편에 유명한 드론 카메라 스타트업 ‘릴리(Lily Robotics)가 있었다. 그러나 큰 돈 유치하고도 오래 가지 못하고 무너졌다. 잘난 사람만 모여있는 곳도 아니다. 스타트업을 시작하기 좋은 곳이지만 무서운 곳이며 간혹 인종차별도 있다.”

-경영 철학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직원들과 함께 우리의 업무, 문화, 가치관에 대한 7가지 질문을 매일 던진다. 거창한 슬로건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질문들이다. ‘우리는 고객의 안전과 건강 증진을 돕고 있는가’, ‘우리는 고객이 겪는 진짜 문제(real problem)를 풀고 있는가’, ‘내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나’, ‘우리는 지적으로(intellectual) 정직한가’,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고 있나’ 등이다.

제품 디자인엔 집, 사무실 등 실내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갈 수 있도록 단순하고 실용적인 색, 대담한(bold) 선 같은 가치를 부여했다.”

어웨어 샌프란시스코 사무실 한켠에는 직원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VR(가상현실) 디바이스 ‘오큘러스’가 마련돼 있다. / 박원익 기자.
-어웨어의 목표는 무엇인가.

“전 세계 실내 공간에 어웨어 제품이 다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어웨어가 디자인한 장소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고, 숙면을 취하고, 쾌적하게 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센서를 통해 가능한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소프트웨어를 통해 적절한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하드웨어는 트로이 목마인 셈이다. 현재 2000개 도시, 60개 국 이상에 어웨어 제품이 들어가 있다.”

-예비 창업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지금까지 스타트업을 운영하며 한 가지 확실히 깨달은 것이 있다면 ‘과정을 신뢰하라(trust the process)’는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선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처음 어웨어란 브랜드(알다 ‘aware’와 공기 ‘air’의 합성어)를 만들었을 때 아무도 어웨어를 몰랐다. 이제는 병원, 공공기관, 기업 등이 먼저 연락해 제품에 대해 묻는다. 물론 스타트업이 잘되려면 속도, 숫자가 중요하지만 이런 것들의 노예가 되면 안된다. 하드웨어로 오랜 기간 존경받는 기업들을 보라. 다이슨만 봐도 30년 된 기업이다. 이런 업체들은 브랜드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것들을 말해 준다. 매일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는 게 확실하다면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과정이 지나면 꼭 열매가 열린다."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에 비치된 공기질 측정기 어웨어(위)와 어웨어 글로우(아래). 어웨어앱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실시간으로 실내 공기 상태를 점검하고, 연동된 환풍기나 가습기를 작동해 공기 상태를 제어할 수 있다. / 어웨어 제공

노범준 대표는

한인 교포 2세로 퍼듀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미시간 대학에서 산업공학 석사, MBA를 마쳤다. 보잉, 삼성전자를 거쳐 시스코에서 프로젝트 매니저, 사업 개발 등을 담당했다. 2013년 11월 케빈 조 CTO와 샌프란시스코 집 차고에서 어웨어를 공동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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