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종시 국책연구단지에서 연구원들이 삼삼오오 모이면 이야기를 나누는 주제가 있다고 합니다. 대전에 있는 대덕연구단지도 마찬가지라는데요. 경제학자와 과학자가 공통적으로 관심을 갖는다는 화제는 바로 ‘정치참여’ 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지난달 18일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 연구기관(출연연) 연구원들의 정치적 활동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출연연과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정치적 중립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출연연은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국가과학기술연구회’로 분리해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법안도 과학기술분야 출연연과 인문사회분야 출연연을 대상으로 한 2개가 발의된 상태입니다.

논란이 된 '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는 “연구기관과 연구회는 정치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의 구성원이 되어서는 안되며, 특히 그 사업을 수행할 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할 행위들도 자세히 적혀있습니다. 연구기관과 연구회는 공직선거시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 ▲특정 후보자를 당선시키도록 하는 행위 ▲특정 후보자를 당선되지 아니하도록 하는 행위 ▲그 밖에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내용.

법안 발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출연연 연구원들은 크게 반발했습니다. 연구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악법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출연연 연구자는 물론 출연연에 속해 있는 모든 이들의 정치활동을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출연연 소속 연구원 A씨는 “출연연 소속 사람들은 헌법에서 보장된 참정권도 없이 학문에만 매진하라는 뜻이냐”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또다른 연구원은 “연구원들은 공무원이 아니다”라며 “이번 법안은 과학기술 분야 출연연을 대상으로 하지만 정치적 중립이라는 명분으로 다른 분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의원들은 “출연연과 연구회가 국가 과학기술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정치 중립을 담보할 제도가 없다”며 개정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연구기관과 연구회가 업무를 수행할 때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업무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도록 하려는 것”이라는 내용도 덧붙였습니다. 출연연과 연구회도 정부의 지원을 받고,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한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 중 상당수가 연구원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이 법안에는 대표 발의자 유의동 의원을 비롯한 김영우, 오신환, 유승민, 이학재, 정양석, 홍철호 등 바른정당 의원 7명과 김성원, 김현아, 이진복 등 자유한국당 의원 3명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유승민 의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이고, 이학재 의원은 농촌경제연구원에서 일한 적 있습니다. 정양석 의원도 농촌경제연구원 출신이고, 김성원 의원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미래기술연구본부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습니다. 연구원 출신으로 정당 국회의원 자리까지 오른 이들이 연구원의 정치적 참여를 제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입니다. 한 출연연 연구원은 이 법안을 연구원 출신 국회의원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묘사했습니다.

유의동 의원실에서는 법안에서 정치적 중립을 키져야한다고 명시한 대상은 출연연구기관의 종사자가 아닌 연구기관 및 이사회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유의동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대선 때 일부 기관장이 특정 정치인이 여는 세미나 등에 참석해 축사를 하거나 현 정부의 정책 지지 또는 비판하는 칼럼을 쓰는 사례가 있었다”라며 “출연연구기관의 종사자들이 소신있게 본인의 연구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해서 연구기관이나 이사회에서 어떤 압력도 행사할 수 없도록 법안을 발의한 것이지 절대로 연구자 개개인에게 까지 정치적 중립성을 강요하기 위해 만든 법안이 아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연구원들은 과연 연구기관·연구회와 구성원을 나눠서 판단할 수 있는지 의문을 표합니다. 법안을 발의한 목적이 연구원들에게 더 큰 자유를 주려는 ‘선의’라면 의원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이들에게 배경을 설명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사실 공공연구기관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관장이 바뀌고 주요 사업에도 큰 영향을 받는 등 부침을 겪은 경험이 많아 정치권의 간섭에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법안 심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연구원들의 이런 우려를 불식할 충분한 논의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