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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천 칼럼] 이사회가 창업자 CEO도 해고할 수 있어야

  • 조선비즈 논설주간
  • 입력 : 2017.06.20 04:00

    [김기천 칼럼] 이사회가 창업자 CEO도 해고할 수 있어야
    야후 최고경영자(CEO)였던 스콧 톰슨은 지난 2012년 학력 위조 의혹으로 퇴진했다. 톰슨은 자신의 이력서에 스톤힐대학에서 회계와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다고 기재했다. 그런데 스톤힐대학 컴퓨터과학과는 톰슨 졸업 후 4년 뒤 설립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장 취임 4개월만에 물러나야 했다.

    유나이티드항공의 CEO였던 제프 스미섹은 2015년 회사와 뉴욕·뉴저지항만관리청 간의 부패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사표를 냈다. P2P(개인 간 거래) 대출업체인 렌딩클럽의 창업자이자 CEO인 레노드 라플랜치는 작년에 수백만 달러의 융자 부실과 부정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임했다.

    2012~16년에 시가총액 기준 전세계 2500개 상장 대기업의 CEO 중 82명이 기업 윤리에 위배되는 스캔들이나 부적절한 행동 때문에 물러났다. 내부자 거래, 학력 위조, 회계 부정, 성(性)추문 등과 관련한 CEO 교체가 늘어나는 추세다. 회계컨설팅 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연구 결과다.

    회사측은 대부분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 않은채 사임 사실만 발표하지만 실제는 해고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SNS 등으로 인해 예전엔 그냥 묻혔을 이야기들이 쉽게 전파·확산되기 때문에 기업들도 평판 관리에 훨씬 더 민감해졌다. 전문경영인은 물론 창업자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최근엔 세계 최대 차량 공유업체인 우버의 창업자이자 CEO인 트래비스 칼라닉이 무기한 장기 휴가를 떠나는 방식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사내 성추행을 비롯해 강압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기업 문화를 둘러싼 논란과 비판이 들끓고 있는 데 대한 책임을 진 것이다.

    한편으론 경영진에 대한 이사회의 감독·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엔론과 월드콤 등의 잇단 파산 이후 뉴욕 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은 CEO의 전횡을 막기 위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했다. 상장기업 이사회에서 사외이사가 과반수를 차지하도록 하고, 사외이사의 독립성에 대한 판단 기준도 높였다.

    여기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압력으로 이사회의 변화가 더 가속화됐다. S&P 1500 기업에서 이사회 멤버 중 사내이사는 CEO 한 명뿐인 기업이 75%나 된다. 우버를 비롯해 비상장 기업의 이사회에서도 사외이사가 과반수를 차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기에 따라서는 조금 지나친 부분도 있다. 최근 사내이사가 한 명뿐인 기업의 CEO는 다른 기업 CEO보다 연 평균 81%(460만 달러)의 보수(報酬)를 더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CEO와 다른 최고위 임원들과의 연봉 격차도 CEO만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이 훨씬 컸다. 또 이들 기업은 재무적 위법 행위를 평균 27% 더 많이 저지르고, 수익은 10%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사회를 사외이사 위주로 구성한 결과 기업 내부정보가 차단돼 CEO에 대한 견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사회의 독립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다 오히려 역효과를 낼 정도가 된 것이다. 사내이사가 2~3명인 기업에서는 이런 문제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한국에선 이사회의 독립성과 이사회 중심 경영은 아직 먼 나라 이야기다. 사외이사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지만 제 역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5대 그룹 상장기업 62개사 이사회가 지난해 처리한 안건 1615건 가운데 사외이사들의 반대로 가결되지 못한 것은 3건에 지나지 않았다.

    사외이사가 CEO나 오너의 전횡을 견제하기는커녕 거수기, 방패막이 역할만 하고 있다. 경영 실적이나 윤리적 논란, 스캔들을 이유로 이사회가 CEO나 오너 일가에 엄중한 책임을 묻는 일은 생각하기도 힘들다. 스스로 사임하도록 설득·압박하거나 해고 조치까지 취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오너 일가의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운전기사에 대한 상습적인 폭행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기업 이미지를 떨어뜨려도 자리 보전에 아무 문제가 없다. 형식적으로 사과 한번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사회는 허수아비 기구다. 그래서 오너 중에는 아예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은채 배후조종만 하는 경우도 많다.

    새 정부 들어 재벌개혁 이슈가 다시 정부 정책의 핵심 의제로 부각되고 있다. 여러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저것 복잡하게 따지며 잘 보이지도 않는 해법을 찾아 헤매기보다 이사회와 사외이사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사회가 창업자·오너 CEO도 해고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재벌 문제의 대부분이 풀릴 수 있다. ‘황제 경영’이나 갑질 논란이 크게 수그러들고,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도 높아질 것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사외이사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더 심도 깊은 논의와 숙고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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