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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영혼없는 공무원 전성시대

  • 이현승 경제정책부 기자
  • 입력 : 2017.06.19 06:00

    [기자수첩] 영혼없는 공무원 전성시대
    14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고용동향에선 긍정적인 신호가 여럿 보였다. 취업률은 오르고 실업률은 내려갔다. 작년 하반기부터 고용 감소를 이끌었던 제조업 취업자 수가 1년 전보다 2만5000명 줄어든 데 그친 점이 가장 희망적이었다. 1월에는 무려 16만명이 줄었었다. 정부가 주목하는 15~29세 청년층의 고용지표도 나아졌다.

    그런데 이를 자랑해도 모자랄 기획재정부는 오히려 겸손했다. 개선의 신호보다 아직 남아있는 고용 악화의 불씨에 주목했다. 15~29세 취업률이 상승하고 실업률이 하락했지만 범위를 20대로 좁혀서 보면 상황은 여전히 나쁘다고 했다. 기재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통계청이 참고로 제공하는 고용보조지표3(체감실업률)을 사례로 들며 "청년 체감실업률은 22.9%에 달한다"고 언급했다.

    체감실업률은 그동안 기재부가 애써 외면해왔던 지표다. 5월 청년 실업률이 9.7%로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던 작년에도 체감실업률은 20%를 넘었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함구했다. 당시 보도자료를 보면 "실업률 증가세가 완화하고 있다"고 썼다.

    정부가 애써 고용지표 개선의 의미를 축소하고 있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추가경정예산안(추경) 때문이라고 보인다. 정부가 이달 초 국회에 제출했지만 야당이 "국가재정법상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대하고 있다. 수출 호조로 경제지표가 개선되자 정부는 "청년 고용시장은 여전히 안 좋다"는 명분을 댔는데 이제 그 명분조차 위태롭다.

    공무원들의 태도가 달라진 건 이뿐만이 아니다. 작년 말까지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추진 현황을 정기적으로 살피던 기재부 공공정책국은 이제 제도 폐지를 준비하고 있다. 누리과정 국고부담 최소화를 주장하던 기재부 예산실은 이제 전액 부담을 전제로 예산을 편성중이다.

    정책방향이 바뀐 것은 대통령과 청와대의 의중이라지만 경제지표에 대한 해석 마저 180도 달라진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지표 해석에는 공무원들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된다. 정권 교체에 책임을 떠넘길 수 만은 없는 문제다.

    공무원들의 태세 전환은 새 정권의 요구 때문이라고 밖에는 해석 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김진표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공무원들이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한 정부 부처 공무원은 "영혼 없이 일하라는 주문과 같이 들렸다"고 했다.

    지난 대선기간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은 영혼없는 공무원을 사실상 적폐로 규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무원들이 그간 추진했던 정책을 부정하고, 현 정권의 색에 맞추기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다. 애초에 엽관제가 아닌 한국에서 영혼없는 공무원을 적폐로 본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닐까. 이대로 가면 영혼없는 공무원 전성시대란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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