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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굿바이, 가난한 환자들의 천국" 무료 병원 도티, 그 35년의 기적

  • 김지수 문화부장
  • 입력 : 2017.06.17 07:00 | 수정 : 2017.06.20 22:18

    35년간 무료 진료했던 은평구 도티병원, 오는 6월 29일 감사미사를 끝으로 아름다운 마무리
    주머니 텅 비어도 병원비 걱정 없어... 수술 입원 후에도 “그냥 가시라”
    빈자와 이주노동자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천국
    2012년, 지역 병원 고발로, 본인부담금 받으라는 행정 명령 받기도
    아플 때 받은 은혜 잊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365일이 훈훈

    ‘가난한 사람에게는 참아주어라. 또한 그들에게 자선을 미루지 말아라. 계명대로 가난한 사람을 돕고 궁핍한 사람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말아라.’-도티 병원 설립자 소 알로이시오 신부(1930~1992).

    도티기념병원의 신 마리아막달레나 수녀와 신 엘리사벳 수녀가 이주노동자 산모의 아이를 안고 있다./사진=박상훈 기자
    도티기념병원의 신 마리아막달레나 수녀와 신 엘리사벳 수녀가 이주노동자 산모의 아이를 안고 있다./사진=박상훈 기자
    서울 은평구 응암동 백련산 자락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도티기념병원. 이곳 진료 대기실은 오늘도 피부색이 다른 각국의 환자들로 북적거린다. 굽은 등의 조선족 노인, 만삭의 동남아 임산부, 다리를 저는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 여인 등등. 저마다 제 몫의 육체의 십자가를 진 환자임에도 이들의 표정이 어둡지 않은 것은, 주머니가 텅 비었어도 병원비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도티병원을 안내하는 팸플릿 첫머리엔 ‘가난한 환자들을 위한 병원'이라는 말이 크게 적혀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분으로 본 병원에서 치료나 수술이 가능한 질병이면 누구든지 진료해드릴 수 있습니다. 시설 생활자나 외국인 근로자도 진료와 수술이 가능합니다'.

    1982년에 문을 열어 35년간 받은 무료 환자가 무려 3백만 명. 외래환자 210만 명, 입원 및 수술환자 85만 여 명 등이 이곳을 다녀갔고, 8천 400여 명의 새 생명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병원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0년 아산상 대상을 받았다.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어느날, 도티 병원을 찾아 원장 수녀인 권 글라라, 접수실 담당 신 마리아 막달레나, 수술실 담당 신 엘리사벳 수녀를 만났다. 글라라 수녀는 30년, 마리아 수녀는 18년, 엘리사벳 수녀는 16년째 이곳에서 살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자글자글 주름진 얼굴, 다들 ‘세상 다 가진 듯'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인터뷰 내내 병원을 ‘우리집'이라고 불렀다.

    -처음 병원이 생겼을 때는 어떤 사람들이 찾아왔습니까?

    신 마리아 막달레나 수녀(이하 마리아) “처음엔 우리집을 잘 이해를 못 했어요. 그래서 수녀님들이 아침 기도 끝나면 가난한 동네를 찾아다녔죠. “아픈 사람 없으세요?”하면서. 환자분께 도티 병원 쪽지를 쥐여주며 그랬죠. 이거 가지고 오시면 무료예요. 돈 안 받아요.”

    -하늘에서 동아줄 내려온 얼굴들을 했겠네요.

    신 엘리사벳 수녀(이하 엘리사벳) “아니요. 의심이 한가득… 못 믿겠다는 거죠(웃음). 심지어 저희가 돌아서는 등 뒤에 “저래도 가면 다 돈 받아. 공짜가 어딨어?” 그러셨죠. 시간이 지나면서 치료받고 나은 환자들을 보더니 점점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도티병원엔 피부색도 국적도 다른 외국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마리아수녀회를 창립한 외국인 신부 소 알로이시오가 오랜 후원자인 골드만삭스의 중역 출신인 조지 도티 씨에게서 100만 달러를 받아 1982년 그의 이름을 딴 무료 병원을 설립했다./사진=박상훈 기자
    도티병원엔 피부색도 국적도 다른 외국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마리아수녀회를 창립한 외국인 신부 소 알로이시오가 오랜 후원자인 골드만삭스의 중역 출신인 조지 도티 씨에게서 100만 달러를 받아 1982년 그의 이름을 딴 무료 병원을 설립했다./사진=박상훈 기자
    큰 병을 얻어 “그냥 집에서 죽겠다"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손에 손에 ‘비표'처럼 도티 병원 이름이 적힌 쪽지를 들고 나타났을 때, 수녀들은 그들의 믿음이 고마워서 울었다. 그 쪽지는 빈자들에겐 가난할수록 대우받는 예수의 처방전이었다.

    -무료 병원이라지만 환자들에게도 우선순위라는 게 있었을텐데요.

    권 글라라 수녀(이하 글라라) “더 가난한 사람을 대우했죠. 가령 전세 사는 사람보다 월세 사는 사람, 월세 사는 사람보다 집없는 노숙자, 보험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 이런 분들을 더 앞세웠어요. 새벽부터 아픈 사람들이 와서 줄을 서곤 했는데, 그때는 많이들 굶던 시절이라, 신부님이 빵과 우유를 사다가 아침을 먹이시곤 했지요.”

    -초기엔 어떤 질병이 많았나요?

    마리아 “갑상선, 유방암, 담석… 종류는 수도 없어요. 특히 목에 혹을 달고 사는 갑상선 환자들이 많았어요. 혹 때문에 기도가 줄어들어 헉헉대시면 그걸 다 제거해드렸어요. 자살 기도 환자들도 많았어요. 양잿물을 마시고 식도가 다 타서 10년 넘게 음식물을 못 넘기던 환자가 수술받고 처음으로 입으로 밥을 먹었어요. 입 안에 눈물과 음식이 범벅이 된 채로 ‘고맙다'고 했던 말도 기억이 나요.”

    수녀님들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저희 집 의료 기술은 최고였어요.”라고 부연했다. “창립자인 알로이시오 신부님이 그러셨어요. “예수님이 병 고쳐주면 재발하던가요? 아니지요? 우리 의사들 실력 최고지요?”하면서 좋아하셨어요.”

    도티병원은 마리아 수녀회를 창립한 소 알로이시오 신부의 오랜 후원자이자 세계적인 투자전문회사 골드먼삭스의 중역 출신인 조지 도티씨가 100만달러를 후원해 건립됐다. 알로이시오 신부(1930~1992. 마리아수녀회를 창립한 그는 탁월한 자선사업가이기도 했다)는 가난한 사람을 예수와 동일시 했다. ‘빈자가 귀빈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의사들은 서울대 의료진에 약도 의료 시설도 최고로 갖췄다.

    진료 과목은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정형외과 등이다. 치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신경과 등은 정기적인 자원 봉사 의료진을 두었다. 환자가 많을 땐 한 달에 170건이 넘는 수술도 했다.

    -그렇게 수술이 많으면 의료 사고가 있을 법도 한데요.

    엘리사벳 “무사고였어요. 신기하죠. 하느님이 도와주셨죠. 그리고 규모가 큰 수술은 신속하게 서울대병원 등 큰 병원에 보냈어요. 작년 말엔 해남 땅끝 마을에서 전복 따던 외국인 노동자가 와서 출산을 했는데, 태어난 아이가 항문이 없는 무항문증이었어요. 그 아이를 제 품에 안고 서울대병원으로 데려가서 고쳤어요.”

    ‘공짜 점심은 없다'는 원칙이 지배하는 세상에, 신을 대신해 말없이 ‘값없는 은혜’를 배달하는 도티 병원의 수녀들. 도티병원 제1의 원칙은 ‘조건 없이 도와준다'다. 그리고 배려로 숙련된 병원 스태프들이 환자를 상대하는 제 1의 원칙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다. “없는 사람에게 이것저것 물으면 자존감이 다쳐요. 그래서 저희는 아주 최소한의 것만 묻고, 질문 대신 미소를 드리죠.”

    그렇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베푸는 도티병원에 시련이 닥친 건 2012년이었다. 은평구 지역 병원에서 무료 진료에 반발해 행정기관에 시정을 요청했던 것. 요는 환자들이 도티병원으로 몰려 지역 병원이 파리 날리게 됐다는 것이다. 당시 이 ‘도티병원 사건'은 인터넷 실시간검색 1위에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됐지만, 법적으로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행정 지도 명령을 받았어요.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의료 보험이 있다면 본인부담금을 받아야 한다는 거죠.” 권 글라라 수녀가 탄식하듯 말했다. 빈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도티 병원은, 그 때 이후 아이러니하게 부자들도 발걸음을 할 수 있는 병원이 됐다. 그러나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기 어렵듯, 이곳은 여전히 빈자들의 천국이다.

    지금은 노숙인과 보험 없는 한국인, 불법체류자를 포함한 외국인 등이 무료 진료 혜택을 누리고 있다.

    환자의 손을 어루만지는 도티병원 원장 권 글라라 수녀./사진=박상훈 기자
    환자의 손을 어루만지는 도티병원 원장 권 글라라 수녀./사진=박상훈 기자
    -환자들이 얼굴이 무척 밝습니다.

    마리아 “네. 처음에 찾아올 땐 근심이 가득해요. 주로 출산을 앞둔 이주 노동자 여성이 많이 오는데 애기 낳고 퇴원할 땐 방긋방긋 웃어요. 빈손으로 왔지만 저희는 빈손으로 보내지 않았어요. 기부받은 기저귀, 분유, 포대기, 아기 옷 등을 바리바리 챙겨줘요. 그러면 또 ‘세상 부귀영화 다 가진 부자처럼' 웃어요. 없는 형편이지만 1만원이라도 기부함에 넣고 가고요.”

    힘없는 자들이 누린 은혜는 새로운 씨앗이 되어 돌아왔다. 부러진 다리를 치료받고 간 흥부네 제비처럼 그들은 백련산 자락으로 시도 때도 없이 박씨를 물고 날아들었다.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오는 사람도 있나요?

    엘리사벳 “그럼요. 한 가족 4명이 함께 오기도 해요. 엄마 아빠가 중고생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제일 힘든 일을 시켜주세요" 그래요. 1층 화장실 청소를 부탁했더니, 장화랑 장갑도 다 챙겨 왔어. 부모가 아이들한테 그러더군요. “너희들이 어려운 시절에 여기서 태어났다. 우리 그 감사함을 함께 갚자." 그러고는 서로 하하호호 온종일 웃으며 청소를 해요. 얼마나 예쁘던지… 우리집 가장 큰 목적이 결국 하느님 사랑 전하고 영혼을 구하는 건데, 그런 모습이 우리한테는 더 은혜가 돼요.”

    글라라 “우리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커서 첫 월급 타고 와서 후원금으로 놓고 가기도 해요. 얼마 전에도 화상으로 치료받은 아이 엄마가 와서 몰래 와서 돈 넣고 가다가 나한테 들켰어(웃음). “우리 아기 오도 가도 못할 때 여기서 치료받았다”고 그 은혜를 못 잊겠대요.”

    연어가 바다를 거슬러 강으로 올라오듯, 그들은 거친 삶을 거슬러 열악한 출생지로 돌아오는 데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한때 남루했던 시절에, 그들이 받았던 풍성한 ‘복'을 잊고 싶지 않아서다.

    마리아 “엊그제도 여기서 태어난 탄자니아 아이가 아빠랑 같이 왔어요. 고국에 돌아간다면서 인사하고 싶다고. 마침 사무실에 축구화 두 켤레가 있어서 선물로 또 줬네요(웃음).”

    도티병원은 개원 후 35년 동안 국가에서 한 푼의 지원금도 받지 않았다. 마리아수녀회 재단 법인(해외 기부자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의 기금으로 병원을 운영했다. 안타깝게도 가난한 예수 가족을 처음 받아준 말구유 같은 이 병원의 진료는 2017년 6월이 마지막이다.

    -이 소중한 공간이 문을 닫는 이유가 뭐죠?

    글라라 “이젠 저희가 소명을 다했어요.”

    -소명을 다했다니요?

    글라라 “의료 환경이 변했어요. 마리아수녀회에서 도티 병원을 운영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요. 이제는 저희 일을 서울시와 보건복지부 같은 국가 기관에서 맡아서 해야된다는 거죠. 해외 후원자들 의견이 그래요. 이제 대한민국이 잘 살게 되었으니, 그 일은 나라에 맡기고 마리아수녀회는 한국 고아들과 해외 빈곤 어린이 교육 사업에 전념하라는 거죠.”

    마리아수녀회는 부산 ‘소년의 집'을 비롯해 서울, 멕시코, 온두라스, 과테말라 등 전 세계 6개국에서 이미 2만여 명의 아이들을 무료로 먹이고 공부시켰다. 이후에도 도티병원의 수녀들은 한국의 고아와 제 3세계 어린이들의 ‘엄마'가 되기 위해 또 세계 각지로 흩어진다.

    도티병원을 운영하는 마리아수녀회 수녀들. “저희는 소명을 다 마치고 물러갑니다.” 오는 6월 29일 도티병원 35주년 감사미사에서는 이 병원을 후원했던 조지&마리 도티 부부와 가족들에게 삼백만 환자들을 대신해 염수정 추기경이 감사패를 전달한다./사진=박상훈 기자
    도티병원을 운영하는 마리아수녀회 수녀들. “저희는 소명을 다 마치고 물러갑니다.” 오는 6월 29일 도티병원 35주년 감사미사에서는 이 병원을 후원했던 조지&마리 도티 부부와 가족들에게 삼백만 환자들을 대신해 염수정 추기경이 감사패를 전달한다./사진=박상훈 기자
    -그럼, 이제 가난한 사람과 이주 노동자들은 어디서 이런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까?

    글라라 “도티병원의 뜻을 사회가 이을 거예요. 저희는 씨를 뿌린 거고요. 여기저기서 문 닫으면 우리가 하겠다고 하는 데가 많아요. 이미 서울시와 보건복지부 주도로 안전망 병원 시스템이 생기고 있어요. 서울대병원 희망센터, 여의도 성모병원과 보라매 병원 등이 뒤를 잇겠다고 나섰고요.”

    마지막으로 도티병원을 ‘우리집’이라 부르며 일했던 수녀들을 함께 모아 잔디밭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들이 초여름 햇살 아래서 사춘기 소녀들처럼 환하게 웃었다. “우리, 너무 철없어 보이죠? 꼭 병원 개원하면서 사진 찍는 거 같애.” “문닫아도 미안할만큼 우울하지가 않아. 할만큼 다했어요. 정말로!” “병원 스태프들이 부디 우리와 함께 했다는 걸 보람있게 여겼으면 좋겠어요.”

    그날 오후 도티병원에서는 필리핀 산모 크리스티나의 마지막 유도 분만이 있었다. 힘차게 울리는 아기 울음 소리가 백련산 자락에 은혜의 메아리처럼 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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