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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두려움이 나의 에너지… 언제 해고될 지 몰라" 24년차 '대리인간' 이정재

  • 김지수 기자
  • 입력 : 2017.06.03 07:00 | 수정 : 2017.06.05 08:11

    영화 ‘대립군(代立軍)'의 비천한 용병으로 돌아온 배우 이정재
    임진왜란 배경으로 왕과 호위 용병의 동행 그린 시대극 ‘대립군'
    “나도 여전히 두려움에 떠는 인간… 언제 해고될 지 몰라"
    “청춘의 아이콘? 45세지만 여전히 젊은 남자이고 싶어"
    ‘대립군'은 시대를 반영하는 영화, 이정재 커리어의 전환점 될 것

    24년차 배우 이정재. 지난 5월 31일 개봉한 영화 ‘대립군'의 용병 역할을 맡아 새로운 전기를 열고 있다.
    24년차 배우 이정재. 지난 5월 31일 개봉한 영화 ‘대립군'의 용병 역할을 맡아 새로운 전기를 열고 있다.
    “지금의 이정재는 20대의 이정재는 상대도 안 될 만큼 멋있죠. 오십이 되면 그는 더 근사해질 거예요.” 일찌기 최동훈 감독은 말했다. 최동훈 감독은 이정재와 ‘도둑들' ‘암살’을 함께 했다.

    “현실의 이정재도 그렇지만 영화에서는 더 멋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걷고 저렇게 행동할 수 있는지 놀라워요. 편집을 끝내고 음악을 입히다 보면 이정재 커트를 다시 넣게 돼요. 그의 움직임은 너무 음악적이죠. 배우가 그런 영감을 주지 않으면 감독은 앉아서 얘기하는 컷만 찍게 되죠.”

    이정재도 자신이 ‘뭔가 반짝반짝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는 걸 인정했다. “화려하다고 할 수도 있지요. 가령 보석이 있다고 치면 저는 그걸 더 반짝이게 보여주는 파트를 맡게 돼요.” 나는 그걸 일명 ‘뺀질미’라고 부르고 싶다.

    정우성이 종종 자신의 화려한 비주얼을 뒤집는 투박한 스타일에 도전한다면(‘똥개’ ‘태양은 없다’ ‘아수라'), 이정재는 그 반대다. 자신의 반짝이는 비주얼에 드라마의 뻔뻔한 캐릭터를 매치해서 매력적인 악역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할 땐 뻔뻔함의 극치였다. ‘하녀’를 보면 그는 그냥 돈 많은 남자를 연기하는 배우인데, 스크린에선 진짜 돈이 많은 사람처럼 보인다. 좋은 와인을 마시고, 가학적인 대사를 하고…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관상'의 수양대군 역할로 필름 안에서 이정재의 뻔뻔한 존재감은 절정에 이르렀다. 이리처럼 잔혹하고 아름다운 왕족 ‘수양'이 야성적이고 충동적인 모습으로 들판에서 걸어 올라올 때, 관객들은 테스토스테론과 기품이 혼재된 그 모습에 탄성을 지르게 된다.

    그랬던 이정재가 신작 ‘대립군'에서 피난인지 반란인지 모를 애매한 임무를 수행하는 비천한 용병 ‘토우' 역할을 맡았다. 영화 ‘대립군'은 임진왜란 당시 명으로 도망간 선조를 대신해 조선에 남겨진 왕세자 ‘광해’와 그를 호위하는 용병인 ‘대립군'의 동행기를 그린 작품이다. 봉두난발인 채로 공포와 살육의 국경을 누비는 이정재는 낯설지만, 야성미 넘친다.

    이정재를 만났다. 짐승처럼 몰려드는 여진족과 왜군의 정수리에 칼과 화살을 찔러넣던 살벌한 게릴라 부대의 수장이, 초여름 하늘처럼 푸른 진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리드미컬하게 인터뷰 자리로 걸어들어왔다.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픽업된 이정재. 연기와 함께 수트 비지니스, 카페 사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이젠 연기에 몰입하는 45세의 중년 배우가 됐다. 작년부터 동료 배우 정우성과 아티스트 컴퍼니라는 매니지먼트 회사를 설립했다.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픽업된 이정재. 연기와 함께 수트 비지니스, 카페 사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이젠 연기에 몰입하는 45세의 중년 배우가 됐다. 작년부터 동료 배우 정우성과 아티스트 컴퍼니라는 매니지먼트 회사를 설립했다.
    미니멀한 페이스에 악센트 같은 풋풋한 웃음을 간직한 만년 소년. 평온, 균형, 질서를 간직한 얼굴. 신화적인 드라마 ‘모래시계’의 보디가드 백재희로 인기를 얻고,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로 X세대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24년 차 배우. 그는 대화를 나누는 동안 완전히 몰입하는 것 같다가도, 문득문득 초조한 기색을 보였다.

    -떨리나요?

    “떨립니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예요.”

    -왕의 가마를 메고 절벽을 오를 때도 그랬겠군요.

    “촬영할 때가 작년 9월이었어요. 카메라 장비를 메고 산을 오르는 일은 모두에게 만만치 않았어요.”

    -CG를 쓰지 않고 기암절벽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원경으로 잡은 걸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아귀레, 신의 분노'가 떠올랐어요. 엘도라도를 찾아 가는 스페인 군대의 광기를 그린 영화지요.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의 원형이 된 작품 말입니다.

    “촬영 시작하기 전에 저도 ‘아귀레, 신의 분노'를 다시 봤습니다. 그 영화엔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촬영 중 위험한 급류를 건너라는 지시를 배우가 거절하자 감독이 배우 클라우드 킨스키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고 계속 연기하라고 협박했어요.”

    -다들 거의 미쳐가면서 촬영했고, 그게 화면에 고스란히 전달되었죠. ‘대립군' 현장은 어땠습니까? 듣자 하니, 진짜 피난민처럼 풍찬노숙이었다던데요.

    “(웃으며)고생스러울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상상 이상이었어요. 덕분에 제 영화 필모그래피에서 아주 중요한 영화 중 하나가 탄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점이 중요한가요?

    “동시대 요소들이 아주 잘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시절의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의 고민이 담겨있지요.”

    -있는 자들의 군역을 대신 치른다는 비천한 용병 ‘대립군代立軍)'을 연기하는 기분이 어땠습니까?

    “대립군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생각해보면 다 가난 때문이지요. 가난 때문에 그 난리 통에 피난도 못가고 가족에게 보리싹 한 줌이라도 보내려고 대신 전쟁터에 나온 거 아닙니까. 가족을 위해서 ‘대립질'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웠어요. 게다가 그들은 정규군도 아니라 늘 전선의 선두에 서야 했어요.”

    -위험한 노동 현장의 비정규직이 생각나는군요. 그런 의미에선 광해도 마찬가지 신세였지요. 아버지 선조가 도망을 가는 바람에 임시로 임금이 되어 전쟁터로 내몰렸니까요. 기억나는 대사가 있습니까?

    “첫 장면의 대사였어요. “무섭냐?”로 시작하죠. 용감한 자가 살아있는 게 아니라 무서워하면서 앞으로 가는 자가 살 수 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내추럴한 미국 배우를 연상시키는 배우 이정재.
    내추럴한 미국 배우를 연상시키는 배우 이정재.
    -영화에서는 두려움, 정의감, 희망 등 여러 감정이 드러납니다. 당신은 어떤 감정에 매료되었나요?

    “사실 영화의 큰 주제는 ‘리더란 무엇인가, 누가 그 리더를 만드느냐’였지만, 저는 그런 거대한 담론보다 ‘두려움'이라는 정서가 전달되길 바랐습니다.”

    -‘두려움’이라…‘지옥의 묵시록'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도 ‘the horror’지요.

    “저 또한 늘 두려움과 동행하며 삽니다. 배역을 앞에 두면 두려워지고, 지금처럼 개봉을 앞에 두면 두려움이 더 커집니다. 24년 동안 배우로 살면서 갖가지 두려움에 직면합니다.”

    -두려운 감정을 어떻게 처리합니까?

    “무조건 부딪혀보려고 해요. 주저하면 더 두려워지거든요.”

    -당신처럼 빛나는 사람에게도 두려움이 함께한다니 놀랍군요!

    “하하하. 언제 은퇴할지 모르는 삶이죠. 뒤늦게 ‘아! 작년이었구나'라고 깨닫기도 하고, 혹은 ‘아뿔싸! 지난달에 은퇴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기도 하겠지요. 늦게 깨달을수록 서글퍼요. 차라리 “당신 해고야!”라고 누가 말해주면 좋을 텐데요(웃음).”

    -후퇴나 은퇴가 없을 것 같은 인생처럼 보입니다만.

    “슬럼프는 있었지요. 외환 위기 즈음이었어요. 남성적인 영화를 하고 싶어서 기다렸는데, 예산이 큰 영화가 없어서 몇 년간 출연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어요. 자연스레 슬럼프가 됐습니다.”

    -‘하녀'에 출연하기 전, 그러니까 연극 ‘햄릿'에 출연하면서 무대에서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를 읊던 때였군요.

    “그렇습니다. 작품을 통해 올라갈 때도 있었고 내려갈 때도 있었어요. 여러 번의 등락을 겪고 나면 안 좋은 상황에선 두려움이 커지죠. 잘 되고 있어도 그 예감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요(웃음).”

    영화 ‘대립군'의 한 장면. 가장 미천한 용병과 가장 높은 지위의 왕세자가 동행하며 ‘왕의 탄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영화 ‘대립군'의 한 장면. 가장 미천한 용병과 가장 높은 지위의 왕세자가 동행하며 ‘왕의 탄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이번 영화에선 어떤 장면을 좋아합니까?

    “마지막에 제 이름이 적힌 호패를 왕에게 주고 떠나는 장면입니다. “강건 하십시오!"라는 간결한 한 마디가 좋더군요.”

    -왜 그 장면을 좋아하지요?

    “제가 맡은 ‘토우'는 거칠고 강한 인솔자처럼 보이지만, 말했듯이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들판에서 여진족과 싸우고 나서도 ‘내가 아직 살아있나'라는 표정을 짓습니다. 성곽 전투에서 왜군들과 대치하면서도 ‘내가 과연 살 수 있을까' 공포심이 가득해요. 그런데도 동료가 싸우고 있으니 함께 죽으러 떠나는 거지요. 우리가 리더로 섬겼던 사람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서요.”

    -당신이 봉두난발 한 채로 싸우는 모습은 ‘이재수의 난' 이후로는 못 볼 줄 알았습니다. 당신 친구이자 동료인 정우성도 시대극 ‘무사'의 노예 역할로 뼈아프게 흥행 참패를 경험했던 바이고요.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은 99년도에 촬영했어요. 프랑스와 합작한 대작 영화였지요. 당시 전 ‘태양은 없다.' 촬영을 몇 회차 남겨두고 있었는데, 김성수 감독이 박광수 감독 이야기를 하더군요. 저는 그분의 팬이었어요. ‘칠수와 만수' ‘그들도 우리처럼' 같은 모던한 영화를 좋아했거든요. ‘이재수의 난'은 흥행엔 실패했지만, 저에겐 정말 고마운 영화였습니다.”

    “저는 후배에게 섣불리 조언하거나 지적하지 않습니다. 술자리에 동석해주면 감사히 여길 뿐이지요(웃음).”
    “저는 후배에게 섣불리 조언하거나 지적하지 않습니다. 술자리에 동석해주면 감사히 여길 뿐이지요(웃음).”
    -‘정사'의 이재용 감독이나 ‘젊은 남자'의 배창호 감독에겐 어떤 감정을 갖고 있나요?

    “저의 젊은 시절을 잘 살려주셨지요. 그분들과도 아주 잘 지냈습니다.”

    -때로는 전지현과 함께한 ‘시월애'나 심은하 곁을 지키던 ‘인터뷰’의 로맨틱한 이정재가 그립기도 합니다.

    “(미소 지으며)저도 언제나 동시대적인 멜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편 ‘마초적인’ 곽경택 감독의 ‘태풍'으로 해적 역할의 장동건 씨와 맞붙었을 때부터 목소리를 변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대에 모래알을 섞은 것 같은 굵은 발성이 신체적으로 거북하진 않나요?

    “표현적으로 과잉이 아니라면 저도 부자연스럽게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발성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성대를 인위적으로 써야 하니까요.”

    -그런 목소리를 내면 더 남자답다고 느끼나요?

    “그건 제 목소리가 아닙니다. 제가 맡은 ‘토우'의 몸에서 나오는 소리죠. 드넓은 자연, 툭 터진 공간, 전투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 정도의 목소리가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립군'이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프리퀄처럼 보인다는 평도 있더군요. ‘관상'에서 기품 있는 수양대군을 연기한 당신이 보기에 광해군을 맡은 배우 여진구의 실력은 어떻던가요?

    “여진구는 나이는 저보다 어리지만, 왕이 되기에 경험과 연륜이 충분했어요. 흩어지기 쉬운 여러 감정을 놓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놀라웠습니다.”

    -친구인 정우성은 당신 연기에 대해 뭐라고 할까요? ‘아수라'에서 정우성의 연기는 어땠습니까?

    “20년 이상 연기를 하다 보면 자기 단점은 스스로 알게 돼요. 친구의 지적보다는 격려가 필요하죠. 우성 씨도 열심히 했다고 격려해 주겠지요(웃음). ‘아수라'는 훌륭했어요. 김성수 감독과 정우성의 콤비는 언제봐도 멋있죠. 당시에 전 ‘인천상륙작전'을 찍고 있었는데, 언젠가는 꼭 한번 김성수 감독, 우성 씨와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여전히 젊은 남자이고 싶습니다. 외모가 젊은 것보다 정신과 마음가짐이 젊어지고 싶달까요. 많은 사람과 오래도록 즐겁게 우정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여전히 젊은 남자이고 싶습니다. 외모가 젊은 것보다 정신과 마음가짐이 젊어지고 싶달까요. 많은 사람과 오래도록 즐겁게 우정을 나누고 싶습니다.”
    -젊을 땐 레스토랑도 하고 수트 사업에도 손을 댔습니다. 지금 그런 욕구는 다 사라졌나요?

    “(미소 지으며) 기질적으로 새로운 일에 대한 욕구가 강했어요. ‘일마레' 카페는 성공도 했었죠. 주변에 패션 관련자들이 많아 양복 사업을 할 기회도 생겼고요. 배우 일만 열심히 했어도 됐었는데(웃음). 큰 성공도 큰 실패도 하진 않았지만, 의미는 있었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인사이드를 들여다볼 수 있었거든요.”

    -정우성과 함께 세운 회사 ‘아티스트 컴퍼니’는 잘 성장하고 있나요?

    “(망설이며)꼭 성장을 해야 하나요? 그것조차 두려움으로 다가오네요. 저는 이곳이 연기자 회사가 아니라 캐릭터를 창조하는 아티스트들의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20대, 30대, 40대를 겪으면서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여유가 생기고 말이 더 많아졌어요. 영화가 이런 거구나, 하는 것도 조금씩 깨달아가요. 몇 번의 실패도 겪었지요. 그때마다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그 상황을 극복했느냐에 따라 이후에 내 행복감이 달라진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40대 중반이면 이제 현장에서 선배로 대접받는 나이지요. 어른과 꼰대의 차이는 뭐라고 보나요?

    “상대를 얼마나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느냐에 의해 달라지겠지요. 저는 후배에게 섣불리 조언하거나 지적하지 않습니다. 술자리에 동석해주면 감사히 여길 뿐이지요(웃음).”

    -열정, 매너, 품위, 야망 등등 이정재를 수식하는 많은 단어가 있어요. 실제로는 어떤 모습에 가깝습니까?

    “그 모든 것이 다 과장이고 욕심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그런 단어를 잘 받을 수 있는 상태로 열심히 만들어 갈 뿐입니다.”

    -잘 사는 건 뭘까요?

    “시간을 잘 쓰는 거죠.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시간을 쓰는 것. 저는 부자가 되기 위한 어리석은 노력보다 행복해지는 쪽에 쓰고 있습니다.”

    -20대의 당신은 청춘의 빛나는 아이콘이었어요. 지금은 어떤 아이콘이고 싶은가요?

    “(크게 웃으며)저는 여전히 젊은 남자이고 싶습니다. 외모가 젊은 것보다 정신과 마음가짐이 젊어지고 싶달까요. 많은 사람과 오래도록 즐겁게 우정을 나누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평가를 듣고 싶습니까?

    “노력하는 사람, 열심히 했던 사람으로 보이면 좋겠습니다.”

    “두려움이 나의 에너지”라고 말하는 이정재.
    “두려움이 나의 에너지”라고 말하는 이정재.
    -두려움이 에너지가 됩니까?

    “당연히 그렇습니다. 하는 일에 대한 소중함을 새록새록 깨닫게 되거든요.”

    ‘대립’이라는 단어를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위해 대신 그 업의 책무를 짊어지는 사람.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나로 존재하지만, 그 삶의 일부는 타인을 위한 ‘대립'의 여정으로 오버랩된다. 때로는 부모의 이름으로, 때로는 자식의 이름으로, 때로는 비정규직이나 임시직의 이름으로.

    자기를 ‘타인'으로 밀어내고 살아온 그 ‘대립'의 개인사는 저마다 아득하고 아찔하지만, 역설적으로 대체 가능했던 나를 대체 불가능한 나로 성장시키는 특별한 자립의 여정이기도 하다.

    어쩌면 배우라는 직업의 본질도 그러하다. 하나의 완벽한 캐릭터가 탄생하기까지, 배우들의 인생은 저 멀리서 그 캐릭터를 향해 천천히 달려왔다는 걸 알고 감탄하게 된다.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에서 실패한 혁명가가 된 이정재, 김성수 감독의 ‘태양은 없다’에서 수트를 빼입고 압구정동 보석 가게에서 다이아몬드를 훔치던 이정재(‘도둑들’의 다이아몬드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작지만!), 이재용 감독의 ‘정사’에서 유부녀와 파격적인 섹스를 나누던 청년 이정재, 그리고 ‘대립군'에서 끝까지 한번도 이름이 불려지지 않은 한없이 낮은 군인 이정재까지. 그가 기나긴 시간 동안 ‘대리 인간'의 임무를 성실해 수행해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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