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ㆍ사회

[법조 업&다운](79) 건물주 vs 임차인 화재시 책임, 화우 꺾은 소형로펌 융평

  • 정준영 기자
  • 입력 : 2017.05.30 06:05

    일부 세를 내준 건물에서 불이 나 전체가 타버리자 건물 주인과 임차인이 배상 책임을 두고 맞붙은 사건에서 법무법인 화우가 건물주의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법무법인 융평에 역전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8일 건물주 김모(68)씨가 임차인 박모(42)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법원은 그동안 임차인이 건물 화재를 막기 위해 충분한 주의를 기울였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직접 빌려 쓰지 않은 부분의 손해에 대해서도 배상책임을 진다고 판결해왔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법부 견해가 바뀌면서 직접 빌려 쓴 부분과 달리 나머지 부분은 건물주가 임차인의 과실을 입증해야 배상책임을 지게 됐다.

    2009년 10월 경기도 광주 상가건물에 불이 났다. 불은 건물주 김씨가 쓰던 2층 물류창고를 전부 태웠고, 박씨가 빌려 골프용품점을 하던 1층 일부도 화재로 더 이상 영업하긴 힘들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이하 국과수)가 불이 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결론 낸 가운데, 불이 번진 방향을 두고는 소방당국과 국과수의 의견이 각각 ‘위에서 아래’, ‘아래에서 위’로 엇갈렸다.

    건물주는 불이 아래쪽에서 번졌다는 국과수 판단을 전제로 “1층은 박씨 측이 사실상 전부 써 왔다. 박씨네 직원들 실수로 1층부터 불이난 것”이라며 건물 전체 수리비용에, 창고에서 탄 물품 몫까지 4억92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임차인 측도 “건물주가 소방방재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더 이상 영업할 수 없게 됐다”면서 “보증금 4000만원을 반환하고, 보험 처리되지 않은 손해 3억3000여만원을 물어내라”며 맞소송을 냈다.


    [법조 업&다운](79) 건물주 vs 임차인 화재시 책임, 화우 꺾은 소형로펌 융평
    ◆ 건물주, 1심 패소 뒤 대형 로펌 선임해 뒤집기 성공했지만 대법원서 패소

    김씨는 1심에서 개인 변호사를 선임했다가 패소했다. 1심 재판부는 “박씨가 빌려쓰던 부분에서 불이 났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다만 박씨 측이 입은 손해 역시 방재노력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아 보증금 반환 의무만 인정됐다.

    김씨는 1심에서 진 뒤 국내 6대 로펌 가운데 하나인 법무법인 화우를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화우는 소송업무를 주로 맡아 온 황현주(60·사법연수원14기) 파트너 변호사와 이상묵(44·31기) 변호사를 투입했다. 황 변호사는 서울남부지법, 서울중앙지법 등에서 부장판사를 지낸 판사 출신으로 2008년 법원을 떠나 화우에 합류했다.



    화우 황현주(왼쪽부터), 이상묵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홈페이지 캡처
    화우 황현주(왼쪽부터), 이상묵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홈페이지 캡처
    화우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선관주의 의무)를 소홀히 한 이상 임차인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상 남의 건물을 빌려쓰는 입장에서 화재 등 위험을 막기 위해 충분히 주의를 기울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건물주는 평소 골프용품점 직원들이 1층 출입구 부근에서 담배를 피운 뒤 담뱃불을 제대로 끄지 않은 것도 의심했다. 화우는 불이 ‘아래에서 위로’ 번졌다는 국과수 감정결과를 뒷받침할 목격자 진술도 확보했다.

    평소 건물관리 행태, 실제 불이 난 지점 등이 책임을 가를 변수로 떠올랐다. 불씨가 아래층에서 번졌다는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불이 난 장소는 건물주가 2층을 드나들기 위해 쓰이던 부분으로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화우는 사실상 건물 1층 전체를 박씨 측이 써왔다는 건물주의 주장에 더해 “설령 처음 불이 난 지점이 불분명하더라도, 임차인 쪽에서 자신들이 빌려쓰던 부분 외 다른 곳에서 불이 났음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건물을 온전히 유지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음 불이 난 곳이 임차인이 빌려쓰던 부분이라면 임차인은 선관주의 의무를 다했음을 입증해야 하고, 불이 난 장소가 불투명하더라도 건물을 온전히 유지하려 노력했음을 임차인이 증명하지 못하면 결국 임차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2심 재판부는 건물주 측 주장을 받아들여 “임차인이 보존의무를 다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다만 건물에 입은 손해만 배상하도록 했고, 방재설비 미진 등을 고려해 그 책임도 70%로 제한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건물주가 화재 관련 임차인이 빌려쓰던 부분 외 손해까지 배상을 구하려면 임차인이 보존·관리 의무를 위반해 화재 원인을 제공하는 등 계약상 의무위반이 있음을 임대인이 주장·증명해야한다”고 결론을 뒤집었다.


    [법조 업&다운](79) 건물주 vs 임차인 화재시 책임, 화우 꺾은 소형로펌 융평
    ◆ 융평, 임차인 대리해 31년 만에 판례 변경

    박씨 측은 법무법인 융평을 선임했다. 융평은 부동산, 금융, 조세, 기업법무에 특화된 소속 변호사 10명 미만의 소형 로펌이다. 조재우(54·31기) 대표가 1심부터 직접 매달렸고, 상고심에는 이동현(46·34기), 김태근(42·38기) 변호사 등도 함께했다.



    융평 조재우 변호사/법무법인 융평 홈페이지 캡처
    융평 조재우 변호사/법무법인 융평 홈페이지 캡처
    융평은 건물 화재로 골프용품점이 더 이상 영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됐으므로 건물주가 보증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해 1심에서 승기를 잡았으나, 2심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사법부가 1986년 이래 줄곧 구조상 독립한 건물이 아니라면 화재에 과실이 있는 임차인이 건물 전체의 손해에 배상할 책임을 진다고 판단해 왔기 때문이다.

    융평은 상고심에서 빌려준 건물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유지해야 할 ‘건물주’의 책임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불이 건물주가 지배·관리하는 영역의 하자에서 비롯한 것으로 판단되면 그 하자를 없애는 것이 건물주의 의무이며, 임차인이 그 하자를 미리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불로 탄 건물을 원상대로 돌려주지 못한 배상책임을 임차인에게 물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건물 일부를 빌려쓰는 입장에서 화마를 막기 위한 노력을 입증해 보이지 않으면 건물 전체에 대한 배상책임을 지우도록 해왔지만, 건물주 역시 건물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 이상 임차인에게 과도하게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더군다나 이 사건은 구체적인 화재 원인이 밝혀진 상황도 아니었다.

    결국 대법원은 임차인이 빌려 쓰던 부분에 대한 피해는 주의 의무를 다했음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종전처럼 손해를 배상해야 하지만,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임차인의 과실을 건물주가 입증해야 책임지울 수 있다고 기존 판례를 변경했다.

    대법원은 “판례변경으로 임차인의 책임이 완화되는 대신 방재설비, 보험가입 등 건물주가 신경 쓸 부분이 늘 것”이라면서 “방재부담을 임대료에 반영하면 사회경제적인 효율이 높아지고, 화재 발생 위험도 낮추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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