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은 대한민국 전체 기업의 99%, 고용 인원의 88%를 차지한다. 여기서 따온 ‘9988’은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새 정부 출범 닷새 만에 맞은 중소기업주간(15일~19일), 중소기업계는 문재인 정부 출범을 계기로 우리 경제 패러다임을 중소기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조선비즈는 ‘대기업-중소기업’으로 이분화된 산업 구조를 진단하고 중소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진단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짝짝짝.” “위이이잉.”
기자의 왼편에서 손뼉을 세 번 치자 목에 건 기기 왼쪽에서 진동이 울렸다. 목걸이형 블루투스 이어폰처럼 생긴 이 기기는 청각장애인이나 난청인을 위해 소리가 울리는 방향을 진동으로 알려주는 ‘누구나 넥밴드’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나 자동차·오토바이의 경적 소리를 진동으로 알려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지진 등 자연재해 알림과 각종 통신기기 메시지 알림 기능도 가능하다.
이현상 유퍼스트 대표가 18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2017 수출첫걸음 종합대전’에서 기자에게 누구나 넥밴드를 소개했다. “난청인의 경우, 보청기를 착용해야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보청기를 24시간 내내 하고 있는 건 상당히 불편하다. 그래서 보청기가 없이도 소리의 방향을 알려줄 순 없을까 하는 구상에서 이 제품을 개발하게 됐다. 디자인도 보통 블루투스 이어폰과 거의 동일하게 만들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도 장점이다.”
누구나 넥밴드는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과 장애인 복지 수준이 높은 미국·유럽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열린 ‘2016 하반기 수출첫걸음 종합대전’에 참가해 바이어의 반응을 살피며 제품을 보완했다. 누구나 넥밴드 제조사인 유퍼스트는 지난 17일 폴란드에서 온 해외 바이어와 1억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이현상 대표는 “이번 폴란드 바이어와의 계약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며 “지난 5월 문을 연 미국 법인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을 하나씩 선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수출첫걸음 종합대전 전시회장엔 화장품류를 비롯해 미용 가위 등 뷰티 제품이 눈에 많이 띄었다. 남환우 코트라 수출첫걸음지원팀 과장은 “뷰티·식품 기업들이 수출첫걸음 종합대전에서 좋은 성과를 많이 낸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한 바이어는 얼굴과 손등에 미스트를 뿌려보면서 제품을 꼼꼼히 살폈다. 이날 전시회에서 초음파 미스트 기기를 선보인 조희순 케이이온텍 팀장은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에서 반응이 좋다”고 했다.
이날 전시회에 참가한 국내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부스 앞을 지나는 바이어를 붙잡고, 제품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이번 행사엔 51개국에서 총 201개사의 해외 바이어가 방문해 국내기업 648개사와 1500여건의 수출 상담을 진행했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7건, 총 82만달러 규모의 수출계약이 성사됐다. 업무협약(MOU)도 22건 총 730만달러 규모를 체결했다.
◆ ‘안그래도 수출 어려운데…’ 높아진 무역장벽에 한숨
우리나라의 올해 1~2월 수출실적은 835억달러를 기록했다. 722억달러에 그쳤던 작년 동기 대비 15% 성장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무역 실적은 수출 4955억달러, 수입은 4057억달러로, 무역규모 9012억달러를 기록했다. 2011년 무역 1조796억달러를 기록하며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1조달러를 돌파한 우리나라는 세계 경기 둔화로 2015년부터 무역 1조달러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엔 한국의 수출액 순위가 전년보다 두 계단 하락한 세계 8위를 기록했다. 세계 교역 둔화 속에 우리나라의 수출 감소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더 가팔랐던 것이다.
내수시장이 침체하면서 중소기업이 활로를 해외 시장에서 찾아야 한다고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세계 경기 둔화와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면서 수출길이 경색됐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기가 둔화하고, 2012년 유럽 재정위기 등이 발생하면서 세계 각국은 자국의 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비관세 장벽을 강화하는 추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하고 자유무역협정(FTA)도 전면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 중국은 금융위기 이후 기술장벽과 위생·검역 등 비관세 장벽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도입으로 인한 한·중 갈등으로 한국기업에 대한 무역 장벽이 더욱 높아졌다.
수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경제에 이 같은 무역 장벽은 주요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해외 시장이 한정된 중소기업이 받는 리스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하고, 특정 품목 및 지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글로벌 교역요건이 나빠지면 수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로 인한 환리스크도 중소기업엔 부정적인 요소다.
IBK경제연구소가 작년 말 기업은행과 거래하는 중소기업 101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47%가 “올해 수출입 경기는 지난해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답했다. “지난해보다 악화할 것”이라고 답한 기업도 32%나 됐다. 기업들은 수출입 경기 악화를 전망하는 이유로 수출국의 경기 부진 심화(43%), 수출국의 수입규제 강화(18%), 원자재비용 상승(18%) 등을 꼽았다.
◆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수출시장 노크하는 中企
어려운 대외 환경에도 뚝심으로 수출 시장을 뚫은 중소기업이 있다. 발광다이오드(LED) 전문기업인 씨엘포토닉스는 연구개발에 주력해 LED 광원과 관련해 국내 특허 8건과 미국 특허 3건을 획득했다. 지금까지 조명용 LED 광원은 칩 한 개에 0.2~0.5와트(W)급의 작은 광원을 주로 사용했으나 씨엘포토닉스는 칩 하나에 1W급을 넣어 열 제어 기술을 구현한 600W급 광원 양산에 성공했다.
씨엘포토닉스의 LED 광원 기술은 수경재배에도 접목됐다. 또한 방송영상 분야에서도 500W급 이상의 고출력 광원 수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시장을 집중 공략한 씨엘포토닉스는 2016년 5월 미국에 완전호환형 LED 형광등을 처음 수출했다. 지난해 수출액은 29만4000달러. 수출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씨엘포토닉스의 올해 수출 목표액은 70만달러다.
전문가들은 씨엘포토닉스의 성공 요인으로 ‘오랜 연구 끝에 개발된 기술력 높은 제품’과 ‘해외 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도전 자세’를 꼽는다. 이혁주 코트라 수출전문위원은 “씨엘포토닉스는 연구와 개발직원이 주이고 무역 업무 실무 경험이 있는 직원은 없었지만 LED 기술력은 매우 뛰어났다”며 “수출에 대한 의지도 강하고, 해외 바이어를 대하는 영업 태도가 적극적이었다. 자신들이 보유한 뛰어난 제품을 알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결과, 미국 시장 수출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심종영 씨엘포토닉스 대표는 “2019년 1억달러 이상의 매출 성과를 내는 세계적인 조명 선도기업이 되겠다”며 “대한민국 조명 기술의 우수성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전 세계를 강타한 한류의 덕을 보는 기업도 있다. 코리안프렌즈는 2010년 일본에서 한류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콘텐츠 사업을 벌였다. 그러다가 일본보다는 한국에서 사업을 펼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2014년 국내로 들어와 법인을 설립했다.
코리안프렌즈는 화장품, 의류, 잡화 등 세계에서 주목하는 한류 상품을 해외로 판매하기 위해 온라인 마케팅을 활발하게 진행했다. 2015년엔 중국시장을 겨냥해 ‘서울관’이라는 화장품 매장을 오픈하기도 했다. 하지만 작은 회사가 수출을 하려다 보니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특히 미지급 대금으로 인한 경제적 곤란과 다양한 제품을 소개하기가 벅차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새로운 수출길을 찾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코리안프렌즈는 자신들의 부족한 역량을 코트라 등 지원기관의 도움을 받아 해소했다. 코트라가 보유한 글로벌 정보와 네트워크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그 결과, 2016년 1월 두바이를 시작으로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등 15개국으로 수출을 넓혀가고 있다.
이윤주 코트라 수출전문위원은 “코리안프렌즈는 한류 붐을 어떻게 상품화할 수 있는지 신선한 아이디어를 많이 갖고 있었다”며 “늘 트렌드를 민감하게 관찰하고 고객이 원하기 전에 먼저 필요한 물품 리스트를 제공하는 등 발 빠른 대응으로 클라이언트로부터 신뢰를 얻은 게 핵심 성공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 글로벌 中企 되려면… “기술 경쟁력 먼저, 정부 지원은 일원화해야”
수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선 이들 기업처럼 자신들이 보유한 강점을 십분 발휘해야 한다. 중소기업 전문가들은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는 기업 자체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2016년 수출을 경험한 중소·중견기업의 숫자는 관세청 통관기준으로 9만4000여개다. 국내 중소기업이 354만개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수출에 도전할 기업은 아직 충분히 많다. 제품 연구개발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만들어 수출로 연계하는 프로세스를 각 기업에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위해선 중소기업의 기술사업화 과정에서 가장 큰 애로 요인인 자금 문제를 풀어줘야 한다.
정부의 복잡하고 다양한 수출지원사업을 일원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부기관과 지자체가 추진하는 중소기업 수출지원 관련 사업이 백화점 나열식으로 이뤄져, 예산효율성과 지원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온라인 수출지원 ▶해외마케팅 지원분야 ▶해외바이어 상담연계지원 사업 분야에서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간 중복 유사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온라인수출지원 사업의 경우 코트라 ‘buyKORAEA’사업과 중소기업진흥공단의 ‘GobizKorea’, 무역협회에서 운영 중인 ‘트레이드코리아’의 사업이 유사하다.
해외마케팅 지원사업은 중기청의 ‘무역촉진단’, 코트라의 ‘무역사절단’, 한국무역협회 ‘무역투자사절단 파견’, 그리고 각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해외무역사절단’ 등 무수하게 많은 유사한 사업들이 겹치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수출지원사업의 컨트롤 타워를 일원화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신설될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수출지원사업을 모두 총괄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에선 이와 함께 ▲중소기업 해외진출 예산 확대 ▲해외바이어 DB 구축 및 정보 제공 ▲원산지 증명서 발급기관 확대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017년 중소기업 해외진출 예산(중소기업청+산업통상자원부)은 3729억원으로 연구·개발(R&D) 지원의 10%에 불과하다”며 “2022년까지 해외진출 지원 예산을 7000억원까지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쟁력을 갖추고도 내수시장에 안주하고 있는 기업이 수출 시장에 나서도록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도 필요하다. 중기중앙회가 지난해 실시한 ‘내수기업의 수출해법에 대한 중기 의견조사’에 따르면 내수기업이 직수출하지 않는 이유로 14.9%가 “소액 소량 품목으로 수출 추진이 번거롭다”고 답했다. 또 “수출보다는 내수 수익률이 낫다(12.9%)”, “수출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10.4%)” 등 수출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바이어 DB와 관련해선, “정부 수출지원사업 시행기관인 코트라, 중소기업진흥공단, 업종별 단체 및 협회가 수집해 독점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며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전문적인 정보를 무료로 제공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품목별 시장정보 제공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이정희 한국중소기업학회 회장은 “각자 중소기업이 수출 성과를 독자적으로 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정부와 업계가 해외 시장 개척자와 국내 중소기업 제품을 매칭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택 중기중앙회 회장은 “내수기업 수출기업화를 통해 수출기업 비중이 2.7%에 불과한 중소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미래 한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