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은 대한민국 전체 기업의 99%, 고용 인원의 88%를 차지한다. 여기서 따온 ‘9988’은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새 정부 출범 닷새 만에 맞은 중소기업주간(15일~19일), 중소기업계는 문재인 정부 출범을 계기로 우리 경제 패러다임을 중소기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조선비즈는 ‘대기업-중소기업’으로 이분화된 산업 구조를 진단하고 중소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진단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아이오로라(i-Aurora)가 고속 성장할 수 있었던 첫 번째 비결은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주 타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미국에 근거지를 두고 잠시 국내에 들어온 유능한 인재를 채용해 해외지사 업무를 맡긴 전략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이들 직원은 현재 미국 시장에서 영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태성 아이오로라 본부장)

중소기업청은 저성장 시대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있는 ‘고성장 기업’의 대표주자로 아이오로라를 선정했다. 고성장 기업은 상용 근로자가 10명 이상인 중소기업 중 매출 또는 고용이 3년간 연평균 20% 이상 성장한 기업을 말한다.

아이오로라는 키오스크 기반 티켓 솔루션 전문업체로 2013년 6명의 직원으로 출발했다. 티켓 발권기를 중심으로 사업을 넓혀가다가 2016년 ‘스타포토 키오스크’를 선보였다. 스타포토 키오스크는 현장에서 사진을 찍으면 증강현실(AR) 기술을 이용해 유명 연예인과 함께 촬영한 것처럼 합성해 티켓을 인쇄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이오로라는 현재 스타포토 키오스크를 중국 1위 극장 체인인 완다시네마를 비롯, 인도 1위 극장 PVR, 멕시코 1위 극장 시네폴리스 등에 공급하고 있다. 아이오로라의 매출은 사업 초기 6억원에서 올해 100억원 수준으로 늘었다. 내년도엔 200억원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영화산업 박람회 ‘시네마콘(CinemaCon)’에서 바이어가 아이오로라(i-Aurora)의 ‘스타포토 키오스크’를 살펴보고 있다.

김태성 본부장은 1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고성장 기업의 특성 세미나’에서 “중소기업은 수출전시회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직접 발로 뛰어야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다”며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수출 지원 프로그램 등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설립 3년 만에 수출길을 열고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는 아이오로라는 성공비결로 ▲해외시장 공략 ▲해외시장을 공략할 인재 채용 ▲수출 지원 등 정부 지원 프로그램 적극 활용을 꼽았다. 아이오로라와 같은 ‘고성장 기업’이 공통적으로 갖는 특성은 무엇일까.

◆ 유럽, 창업지원에서 ‘고성장 기업’ 지원으로 전략 수정

고성장 기업에 대한 개념은 1970년대 말 제2차 석유파동 이후 고실업(高失業) 상태가 지속하면서 실업률을 낮출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대두됐다. 미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버치(David Birch)가 1979년 ‘일자리 창출과정’이라는 보고서에서 ‘소규모의 고성장 기업이 신규 일자리의 대부분을 창출한다’고 주장하면서 고성장 기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버치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소규모 기업 또는 소기업을 ‘가젤기업’이라고 칭하고, ‘미국 전체 기업의 4%에 불과한 가젤기업이 신규 일자리의 70%를 만들어낸다’고 분석했다.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고용 둔화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유럽을 중심으로 ‘고성장 기업’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유럽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과 같은 신생 고기술(high-technology) 기업이 유럽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고성장 기업을 주목, 기업 지원 전략을 일반적인 창업지원에서 고성장 기업 중심 지원으로 수정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중소기업청을 중심으로 저성장 및 고용 둔화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2014년부터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해 ‘고성장 기업 육성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500개씩 총 1500개의 고성장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책자금, 수출 마케팅, 연구·개발(R&D)로 나눠 3년간 약 1조2000억원의 재원을 투입하는 사업이다.

고성장 기업 관련 통계(‘고성장 기업 업종별 분포도’에서 고성장 기업(SIMS) 수치는 정부 지원을 받은 중소기업 중 2012년 기준 상용 근로자가 10명 이상인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추출했다. 고성장 기업(기업생멸통계)·일반기업(기업생멸통계) 수치는 2015년 통계청 기업생멸통계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출했다).

중소기업청은 고성장 기업 육성을 위해 지난 2012년부터 빅데이터 기반의 중소기업지원사업 통합관리시스템(SIMS)을 운영하고 있다. SIMS의 기업모집단수는 약 152만개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중소기업지원사업의 수혜를 받은 기업 대상이다. 통계청의 기업생멸통계의 기업모집단수는 약 555만개로 2015년 영리기업 중 매출액이 있거나 상용 근로자가 있는 활동기업이 대상이다.

중소기업청이 SIMS를 통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고성장 기업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기업당 평균 수출액이 20억원에서 59억2000만원으로 195% 증가했다. 기업당 평균 종사자는 33명에서 49명으로 48% 늘었다. 같은 기간 기업당 평균 매출액은 57억2000만원에서 143억7000만원으로 151% 증가했다.

특히 수출 고성장 기업이 내수 고성장 기업보다 고용 창출 역량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기준 수출 고성장 기업의 기업당 평균 고용 인원은 55명으로 내수 고성장 기업(49명)보다 6명이 많았다.

정제련 정책과평가 대표는 “내수지향적 기업의 경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실적이 악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며 “중소기업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하고 지속가능한 혁신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해외진출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고성장 기업 중에선 벤처기업이나 기술혁신형중소기업이 일반 고성장 기업보다 고용과 수출역량이 높았다. 고용의 경우 고성장 기업 중 벤처기업은 56%, 이노비즈기업은 52%로 전체 고성장 기업의 증가율(48%)보다 높게 나타났다. 수출 역시 고성장 기업 중 벤처기업은 239%, 이노비즈기업은 237% 증가하며, 전체 고성장기업의 증가율(195%) 보다 많이 성장했다.

고성장 기업은 제조업·전문 과학기술업 등 기술·지식 집약적 업종에 많이 분포했다. 평균업력은 8.2년으로, 업력 10년 이상인 기업의 수가 전체의 45.6%를 차지했다. 세부적으로는 제조업 10년, 도소매업 9.6년,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9.3년 순이었다.

이형철 중소기업청 정책분석과장은 “고성장 기업에 대한 분석결과, 고성장 기업은 일반기업이 금융기관의 지원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기술·수출·인력 부분을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다”며 “앞으로도 기술 혁신·수출 등을 정책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중소기업계 전문가들은 1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고성장 기업의 특성’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고성장 기업’을 정의하는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고성장 기업’ 정의 재논의해야.. 단순 매출보단 고용에 주목해야”

최근 중소기업계에선 시대가 달라진 만큼 ‘고성장 기업’을 정의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위봉수 중소기업진흥공단 수출지원처장은 “‘고성장 기업’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1970년대 말은 경제성장률이 7~10%에 달했다”며 “경제성장률이 3%에도 못 미치는 지금 40년 전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홍지승 산업연구원 중소·벤처기업연구실 실장은 “과거에는 매출이 증가하면 자연스레 고용도 늘어났다. 하지만 최근 기업들은 기업이 성장해도 쉽사리 고용을 늘리지 않는다”며 “어떤 특성을 가진 기업을 ‘고성장 기업’으로 정의할지 재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성장 기업’을 어떻게 재정의해야 할까.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년 평균 매출 ‘또는’ 고용 증가율이 20% 이상인 기업을 고성장 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SIMS에 등록된 업체 중 1만661개가 고성장기업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매출로만 고성장기업을 평가하는 데 대해 이견을 제기한다. 표한형 중소기업연구원 박사는 “고용이 늘지 않고 매출액만 증가한 기업도 고성장 기업으로 분류된다. 지금처럼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엔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기업이 진정한 ‘고성장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홍지승 실장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쭉쭉 오르던 기업의 주가가 순식간에 내려앉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가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고성장기업의 데이터는 어디에 활용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고성장 기업의 성장 직전과 도약 후의 특징을 분석하면 정책적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제언했다. 홍운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빅데이터 기반의 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고성장 기업 분석이 가능해진만큼 향후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시사성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동안 기업의 성과분석은 기업의 매출액이나 고용 등 단일 항목에 대해서만 이뤄져 왔다. 하지만 SIMS는 국세청, 특허청, 한국고용정보원 등 정부 부처와의 협약을 통해 데이터를 공유하고, 이를 통한 종합적인 분석이 가능하다. 예컨대 SIMS를 통해 각 중소기업이 참여한 정부 지원사업의 종류(자금, 수출판로, R&D 등)를 살펴보고, 국세청 데이터를 통해 해당 기업의 휴·폐업 상태·고용·매출 등의 정보를 조합하면 기업의 생존율을 알 수 있다. 어떤 기업이 정책적 지원을 받고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 정량적인 분석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기업의 성숙도에 따라 맞춤형 정책을 정부가 먼저 알려줄 수도 있다.

홍운선 연구위원은 “공성장 직전의 기업은 어떤 특성을 갖는지, 자리를 잡은 후에도 꾸준히 성장하는 기업의 특징은 무엇인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효과적인 정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표한형 박사는 “일자리 창출이 새 정부의 핵심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매출·고용·수출 측면에서 일반기업보다 월등히 높은 성과를 내는 고성장 기업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