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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서울로7017' 걸어보니... 17개 연결망 갖춘 1024m의 똑똑한 육교, 공원은 글쎄...

  • 김지수 기자
  • 입력 : 2017.05.19 09:02 | 수정 : 2017.05.22 07:42

    10.3m 폭에 1,024m 콘크리트 길은 애초부터 ‘공원’이 아니라 ‘보행로'로 명명했어야
    차량보다 보행 우선하는 세계 도시 패러다임 반영
    17개 길로 연결, 파편화된 도시 이곳저곳을 잇는 네트워크 역할
    공중 수목원은 글쎄… 17m 고가에서 바라보는 도시 뷰가 더 생명력 있어

    5월 20일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가 한창인 서울로7017. 1970년에 생긴 고가차로가 17개 보행길로 태어난다는 의미를 담았다. 고가 보수 비용에 380억, 주변 지역 연결, 중림동과 서계동의 주민 휴식 공간 확충 등에 200억을 더해 총 580억을 썼다.
    5월 20일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가 한창인 서울로7017. 1970년에 생긴 고가차로가 17개 보행길로 태어난다는 의미를 담았다. 고가 보수 비용에 380억, 주변 지역 연결, 중림동과 서계동의 주민 휴식 공간 확충 등에 200억을 더해 총 580억을 썼다.
    5월 20일이면 서울역 고가도로가 ‘서울로 7017’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탄생한다. 1970년에 생긴 도로가 17개 사람길로 재탄생했다는 의미를 담았다.

    서울역 고가도로는 1970년 8월 15일에 개통된 서울역 북쪽의 왕복 2차선 고가도로로 퇴계로와 만리재로, 청파로(청파동→퇴계로, 퇴계로→중림동)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였다. 당초 안전진단 D등급을 받아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박원순 시장은 도시 재생의 관점에서 ‘고가 공원'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고안했다.

    시장은 2009년 맨해튼 서남쪽에 폐(廢)고가 철로를 녹지 공원으로 바꾼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을 모델로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뉴욕의 하이라인'은 ‘서울로7017’를 설명하는 데 좋은 샘플이 되지 못했다. 녹슨 철로와 잡초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는 애초에 ‘폐허와 식물’이라는 돈 주고도 못살 ‘건축적 풍경’이 있는 곳이었다.

    개장을 앞둔 ‘서울로 7017’를 두고 일부 ‘580억짜리 아파트 베란다 같다’는 고약한 평이 나온 이유는 ‘하이라인 파크'에 대한 높은 기대치와 그에 따른 실망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서울로7017은 ‘하이라인'은 맞지만 ‘파크’는 아니다. 10.3m의 좁은 폭에 1,024m 길이의 콘크리트 길은 처음부터 ‘공원’이 아니라 ‘보행로'라고 명명했어야 옳다.

    콘크리트 길에 ‘생물감'을 끌어들이기 위해, 서울시는 국제 공모를 통해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비니 마스의 ‘공중 수목원'을 선택했다. 서울로 7017을 설계한 비니 마스는 고가 전체가 둥근 화분들이 이루는 마을처럼 보이길 바랐다.

    세계적인 건축가 비니 마스가 제안한 공중 수목원이라는 컨셉은 645개 원형화분으로 실현되었지만, 다소 빈약한 느낌을 준다.
    세계적인 건축가 비니 마스가 제안한 공중 수목원이라는 컨셉은 645개 원형화분으로 실현되었지만, 다소 빈약한 느낌을 준다.
    비니 마스는 건축가이기도 하지만 조경전문가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는 정원사였고 그의 어머니는 플로리스트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화분을 분류하고 알파벳 순서로 분류하는 일을 도우면서 식물을 접했다고 한다. 그의 개인적 경험이 서울 고가의 화분을 단풍나뭇과, 목련과, 물푸레나뭇과 등 한국의 식물 과를 이름에 따라 가나다순으로 배열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미세먼지가 살짝 걷힌 어느 날, 아직은 미완성인 서울로 7017을 걸어보았다. 회현역 4번 출구에서 조금 걸어가자 서울로7017의 시작 지점이 나온다. 노란 조끼를 입은 인부들이 리어카로 흙과 식물들을 실어나르며, 마무리 조경 작업에 한창이었다.

    입구부터 크고 작은 원반형 시멘트 화분(지름 1.7m~4.5m에 이른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소나무, 잣나무, 두릅나무, 쪽동백나무, 덜꿩나무, 자작나무… 누군가는 서울역 위에서 함박꽃나무를 보는 것만으로 이곳이 가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가나다순으로 배열된 한국의 식물을 만난다는 것은 아카데믹한 의미는 있겠지만, 시각적 포만감을 주지는 않는다.

    다종다양한 식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조형적 그러데이션, 수목의 풍광은 이곳에서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콘크리트 원반에 심어진 벼와 대나무를 마주하는 것은 생경하고도 초현실적인 풍경이다.

    서울역 부근에 이르면 거대한 설치 조형물 ‘슈즈 트리'를 만날 수 있다. 헌 신발 3만 켤레와 자동차 부품, 녹색 화분이 어우러진 설치 미술인데, 의미는 높이 평가하지만, 왠지 발 냄새가 날 것만 같다.
    서울역 부근에 이르면 거대한 설치 조형물 ‘슈즈 트리'를 만날 수 있다. 헌 신발 3만 켤레와 자동차 부품, 녹색 화분이 어우러진 설치 미술인데, 의미는 높이 평가하지만, 왠지 발 냄새가 날 것만 같다.
    서울역 부근에 이르면 거대한 설치 조형물 ‘슈즈 트리'를 만날 수 있다. 헌 신발 3만 켤레와 자동차 부품, 녹색 화분이 어우러진 설치 미술인데, 의미는 높이 평가하지만 다그치듯 계몽하는 그 직설화법에 왠지 발 냄새가 날 것만 같다. 공공 설치물의 운명이 그러하듯 시각적 호오는 제각각이다.

    곳곳에 철망을 두른 트램플린이라든가 족욕탕 등 편의 시설이 있다. 안전이나 위생 문제는 해결했다고 해도 수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고가 행길에서 고공 점프를 하거나 발을 씻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을 것 같다.

    보행을 중단하고 싶으면 어디로든 빠져나갈 수 있다. 군데군데 원형으로 된 엑소더스가 마련돼 있다. 퇴계로 지하철, 서울역 광장, 청파동, 만리동 등으로 연결하는 둥근 모양의 엘리베이터 6개가 그것이다.

    많은 시민이 염려한 것처럼 노숙자 문제는 크게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엔 밤에 이슬을 피할 곳이 없다. 흡연과 음주도 불가하다. 청계천에 노숙자가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서울역에 머물던 노숙자 일부도 정원사가 되어 공원의 수목을 관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러 대목에서 합리적인 선택설계로 좋은 결과를 유도하겠다는 행정가들의 안간힘이 느껴진다. 자살 방지를 위해 난간의 높이도 1.4m로 조정했다. 죽을 확률보다 다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자살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라는 게 담당 공무원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서울로7017은 제대로 된 숲도 없고, 물도 없고, 그늘도 없는 1,024m의 기다란 육교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이곳은 2년 전만 해도 들이치는 매연에 창문을 올리며 지나갔던 고가도로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은 무엇이고,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서울로 7017이 주는 가장 큰 감동은 ‘헐려 없어졌을 지도 모를 그곳에(그라운드 제로), 지금 내가 있다'라는 자각 그 자체다.

    이곳 난간에서 전국 각지로 경적을 울리며 떠나는 선로 위의 기차, 흰색 점선을 따라 도로를 질서 정연하게 질주하는 자동차를 내려다보는 일은 기이한 평화를 준다. 고가 위에서 바라본 철로.
    이곳 난간에서 전국 각지로 경적을 울리며 떠나는 선로 위의 기차, 흰색 점선을 따라 도로를 질서 정연하게 질주하는 자동차를 내려다보는 일은 기이한 평화를 준다. 고가 위에서 바라본 철로.
    돌이켜보면 90년대 서울은 붕괴의 도시였다. 테러범의 비행기 자폭 없이도 삼풍백화점이 맥없이 무너져 내렸고, 자살 공격단의 차량 폭파 없이도 성수대교가 두 동강이 났다.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는 전쟁의 폐허 위에서 재건되듯, 무너진 백화점과 두 동강 난 다리 위에서 부서진 유리와 철골과 시멘트를 먹고 자라듯 무럭무럭 자라났다.

    도시는 더더욱 화려해지고 부유해졌다.

    2008년 2월, 숭례문이 불타서 무너질 때, 나는 폐장을 1시간 앞둔 서울 시청 앞 광장 스케이트장에서 생애 첫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별안간 사이렌 소리와 함께 나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다음날 아침 가보니, 그곳은 그라운드 제로였다. 2008년 여름, 서울시 청사 한구석이 굴착기에 난데없이 허물어진 걸 알았을 때는 엎드려 자다가 뒤통수에 바리케이드 자국을 맞은 기분이었다. 문화재 지정을 불과 반나절 앞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한강에 방류된 포름알데히드를 먹고 자란 ‘괴물’처럼 붕괴의 트라우마를 딛고 성장한 2000년대 ‘괴력’의 도시는 엄청난 속도로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낡은 것에서 새것으로 재조립되고 대형화되고 규격화되고 서구화됐다. 도시가 표정을 바꾸는데, 이토록 짧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새로운 도시의 언어로 ‘재생'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스펙터클한 광경을 만들어내기보다 기존의 낡은 것을 고치고 연결하는 작업으로의 부드러운 변화. 그 도시 재생의 샘플이 된 것이 바로 서울시 고가도로 보행로 작업이다.

    이곳에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이곳에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서울시 초대 총괄 건축가인 승효상은 말했다. “서울은 산에 세워진 도시예요. 산 자체가 랜드마크죠. 그래서 산 때문에 파편화된 도시 이곳저곳을 잇는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시대의 가치도 많이 바뀌었어요. 도심 안에선 보행 이동이 중요하지, 차량 이동이 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서울역 근처는 특히 도시 조직들이 굉장히 파편적이에요. 예컨대 서울역에서 남산까지 직선거리가 200m밖에 안 되는데, 걸어갈 방법이 없어 택시를 타고 가야 합니다.”

    그 파편화된 길을 이어주며 도시의 네트워크를 선언한 서울역 고가 보행로. 그리하여 ‘공원'이라는 기대치만 버린다면, 서울로7017은 ‘하이라인 파크'같은 ‘엄친아'는 아니지만, 싹싹한 모범생 정도는 된다.

    파편화된 길을 이어주며 도시의 네트워크를 선언한 서울역 고가 보행로. 그리하여 ‘공원'이라는 기대치만 버린다면, 서울로7017은 ‘하이라인 파크'같은 ‘엄친아'는 아니지만, 싹싹한 모범생 정도는 된다.
    파편화된 길을 이어주며 도시의 네트워크를 선언한 서울역 고가 보행로. 그리하여 ‘공원'이라는 기대치만 버린다면, 서울로7017은 ‘하이라인 파크'같은 ‘엄친아'는 아니지만, 싹싹한 모범생 정도는 된다.
    이곳 난간에서 전국 각지로 떠나는 선로 위의 기차, 흰색 점선을 따라 질서 정연하게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를 내려다보는 일은 기이한 평화를 준다. 말하자면 이곳의 볼거리는 시울시가 그토록 홍보하는 645개의 화분과 228종, 2만 4천 그루의 나무가 아니라, 높지도 낮지도 않은 17m 고가에서 바라보는 서울이라는 생물의 뷰(view), 그 자체다.

    걷는 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은 다정하고 아름답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고즈넉한 정취의 옛 서울역(문화역 서울 284), 화상의 기억을 잊은 숭례문의 담담한 위용, 외제 물건을 탐하던 시절의 팽팽한 흥정이 배어 있는 남대문 상가, 만선의 항구로 들어온 것 같은 흥분을 주는 회현동, 비밀 통로처럼 이어지는 편마암과 화강암의 한양 성곽길, 약현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만리동 고개와 봉제 먼지 흩날리던 공덕동… 서울로7017에서 사방 17개 길로 뻗어가는 서울의 생태적 야생은 우리가 사는 곳이 외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었구나, 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라이프] '서울로7017' 걸어보니... 17개 연결망 갖춘 1024m의 똑똑한 육교, 공원은 글쎄...
    참고로 고가 보행로에는 벤치와 빵집, 한식 레스토랑 등의 편의 시설과 함께 111개의 ‘통합 폴(pole)’이 설치되어 있다. 4m 높이의 이 기둥들은 해가 지면 주변을 LED 조명으로 비춘다. 서울의 육체를 찍은 푸른 엑스레이처럼, 밤이면 갤럭시 블루의 은하수 길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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