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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르포] '37년 역사' 을지로 노가리 골목...'한국의 옥토버페스트' 만든다

  • 윤민혁 기자
  • 입력 : 2017.05.18 16:37 | 수정 : 2017.05.18 20:03

    여름으로 접어드는 요즘 고된 하루를 마친 퇴근 길 직장인들에겐 시원한 맥주 생각이 간절하다. ‘치맥’이 한류 문화 상품으로 꼽힐 만큼 유행하며 맥주엔 치킨이라는 공식이 생겼지만, 대한민국 서민들의 전통적인 맥주 안주는 저렴한 가격과 고소한 맛의 노가리였다.

    을지로 일대는 퇴근 시간 이후엔 사람이 없어 황량하지만, 을지로 3가역 4번출구를 나서자마자 골목 사이로 펼쳐지는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불야성을 이룬다. 37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 노가리 골목이 최근 서울시로부터 정식 옥외영업 허가를 받았다. 시 당국은 옥외영업 허가로 이 골목을 ‘한국의 옥토버페스트’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 37년 전통의 노가리 골목...매콤한 양념에 수백명 인파 ‘와글와글’

    지난 17일 저녁 찾은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수백명의 인파가 몰려 발디딜 틈이 없었다. 좁은 골목에 빼곡히 들어찬 간의 의자 사이론 맥주를 나르는 직원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넥타이를 풀어헤친 직장인들이 연신 맥주잔을 부딪치며 나누는 떠들썩한 소리에 축제를 온 듯했다.

    지난 17일 저녁 9시쯤 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 일대 17개 점포에 수백개의 좌석이 펼쳐져 있다. /윤민혁 기자
    지난 17일 저녁 9시쯤 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 일대 17개 점포에 수백개의 좌석이 펼쳐져 있다. /윤민혁 기자
    이곳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원조집’은 1980년 11월 개점한 ‘을지OB베어’다. 이 점포는 과거 OB맥주에서 운영하던 맥주 체인 ‘OB베어’ 2호점으로 문을 열었다. 그 이후 ‘뮌헨 호프’ 등 맥주집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총 17개의 점포가 노가리 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3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골목도 처음부터 노가리를 안주로 팔지는 않았다. 을지로 OB베어를 운영하는 최수영씨는 “1980년 장인어른(강효근씨)이 처음 가게를 열었던 때엔 OB맥주 체인에서 안주를 공급했지만,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며 법이 바뀌어 주류사업자가 안주를 공급할 수 없게 됐다”며 “이에 장인이 고민 끝에 노가리를 안주로 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곳은 낮엔 공구와 건자재 등을 판매하는 평범한 을지로 뒷골목이다. 최씨는 “80년대 당시엔 인근에 인쇄골목이 있었는데, 납기를 맞추기 위해 24시간 인쇄공장이 운영되는 것이 일상이었다”며 “밤샘근무 후 교대시간에 이곳을 찾아 노가리에 맥주를 한잔하고 귀가하는 공장 인력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1980년 당시 노가리 한마리 가격은 100원, 37년의 세월이 지난 현재는 1000원이다.

    서울 을지로 노가리골목의 ‘OB베어’에서 주문한 노가리. 검붉은 색의 소스가 맛의 비밀이다. /윤민혁 기자
    서울 을지로 노가리골목의 ‘OB베어’에서 주문한 노가리. 검붉은 색의 소스가 맛의 비밀이다. /윤민혁 기자
    노가리 자체에 별다른 맛의 비밀은 없다. 엄선한 노가리를 예전 방식으로 연탄에 잘 구워 내는 게 기본이다. 노가리골목이 유명세를 타게 만든 비법은 소스에 있다. 이곳 골목의 점포들은 고추장에 라면수프를 섞어놓은 듯 한 톡 쏘는 맛의 매콤한 소스를 노가리와 함께 제공한다. 노가리에 소스를 푹 찍어 먹으면 그 알싸한 매운 맛에 절로 맥주를 찾게 된다. 최씨는 소스의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비법은 비밀이지만 라면스프를 넣진 않는다”며 “어떻게 하면 맥주와 잘 어울릴까 고민한 장인의 작품”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 시 당국, 노가리 골목 옥외 영업 합법화… ‘한국의 옥토버페스트로 발전시킨다’

    노가리 골목의 가게들은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노상에 간이 테이블을 깔고 옥외 영업을 해왔다. 그러나 이는 불법이었다. 당국에선 골목 상권 보호와 밤이면 공동화로 우범지대로 변하는 이곳 지역의 안전을 위해 옥외 영업을 묵인해 왔지만, 때론 무질서한 영업행태와 통행 방해로 오가는 시민 또는 주변 업소와 마찰을 빚는 일도 있었다.

    뮌헨호프를 운영하는 정규호씨는 “이곳 일대는 80년대 초반만 해도 직장인들이 퇴근한 뒤엔 ‘암흑천지’여서 길을 나서기 무서울 정도였다”며 “호프집이 늘며 범죄가 줄어들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돼 시에서 특별히 단속하지 않았다”고 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 일대에서 시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수현 기자
    을지로 노가리 골목 일대에서 시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수현 기자
    일대 상인들은 합법적인 영업을 위해 ‘을지로 노가리호프 번영회’를 조직해 지난해 서울 중구청에 옥외영업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중구청은 이에 호응해 골목을 ‘지역상권 활성화 사업구역’으로 지정하고 조례를 개정, 옥외영업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이곳 17개 점포는 5월부터 도로점용료를 내고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합법적으로 영업하고 있다.

    중구는 노가리 골목을 관광명소로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다. 중구 관계자는 “이 일대를 골목 관광명소로 발전시키고 미래세대에 물려줄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상권 활성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판단에 옥외영업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을지로 노가리호프 골목은 2015년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됐고, 지난해 중구에서 시작한 을지로 골목투어 프로그램 ‘을지유람’ 코스 일부이기도 하다.

    번영회는 옥외영업 합법화를 맞아 18일과 19일 양일간 ‘을지로 노가리호프 축제’를 연다. 18일 저녁엔 최창식 중구청장이 방문해 축사할 예정이다. 축제 기간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게는 맥주가 1000원에 제공되며 다양한 공연도 진행된다. 번영회 관계자는 “시 당국이 합법 영업을 위해 힘써준 만큼 한국의 옥토버페스트가 될 수 있도록 상인들이 힘을 합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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