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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일당 5만원 은행원

  • 정해용 금융증권부 기자

  • 입력 : 2017.05.19 06:00 | 수정 : 2017.05.19 07:57

    [기자수첩] 일당 5만원 은행원
    “올해 안에 무기계약직 300여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습니다.”(박진회 씨티은행장)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화두로 던지며 금융권에선 주요 은행들의 정규직 전환 소식이 속속 들려온다. 기업은행이 3200여명에 가까운 무기계약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협의를 하고 있고 한국씨티은행도 무기계약직 300여명을 정규직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금융사 직원들의 처우개선은 반가운 변화다.

    반면 변하지 않는 풍경도 있다. 5만3600원. 국내 최대 은행 중 하나인 KB국민은행이 현재 기간제근로자를 모집하며 제시한 일 급여다. 이 은행은 24시간 유선전화와 채팅을 이용해 펀드, 신탁, 퇴직연금 등을 상담해주는 인력을 모으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 5일을 일하면 월 160만8000원을 받을 수 있다.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3교대로 밤을 새워 일하면 이 보다 조금 많은 170만원이 손에 쥐어진다. 5만3600원은 올해 최저 임금인 5만1760원보다 1840원이 많다.

    금융공기업인 예금보험공사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면 170만8214원을 주는 기간제근로자를 모집하고 있다. 5년 전인 2012년 시급 5000원(옛 하나은행‧옛 외환은행‧은행연합회)에서 5500원(NH농협은행), 일 급여 4만원 안팎을 줬던 것보다는 급여가 늘었지만 그간 물가상승률과 법정최저임금이 높아진 것을 감안하면 기간제근로자들의 처우는 변하지 않고 있다.

    더 아쉬운 점은 주요 은행들이 무기계약직 직원들을 정규직원으로 바꾸려는 이유다. 주요 은행 노동조합들은 예전에는 조합원이 아니었던 무기계약직에 대해 순차적으로 조합원으로 받아들여 노조집행부 선출에 대한 선거권을 줬다. 가장 늦게 무기계약직을 받아들인 신한은행도 지난해 이들에게 조합원 자격을 줬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에 성공하면 노조 집행부는 다음 선거에서 이들에게 몰표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기업은행 3200여명의 무기계약직 직원들은 1만여명의 이 은행 조합원의 30%에 달한다. 이런 역학관계와 정부의 기조, 은행 노사관계의 갈등이 맞물려 초봉이 3000만원에 달하는 무기계약직의 정규직화가 이뤄지고 있다.

    새 정부가 비정규직을 줄이고자 하는 이유는 종일 고된 노동을 해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양극화의 그늘 속에 숨막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들이 이해관계가 빚어내는 숫자의 정치학에서 벗어나 늘 그늘에서 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 더 이해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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