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뀌자 성과연봉제 유턴? 공기업 우왕좌왕

  • 손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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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5.18 03:12 | 수정 : 2017.05.18 07:35

    [오늘의 세상]
    文대통령 "원점 재검토" 원칙론… 구체적 지침은 없어 혼란

    - "前정부는 성과연봉 하랬는데…"
    도입 합의했던 노조도 "없애자" 직원들 "어찌 되는 거냐" 술렁
    경영진 "빨리 지침을" 발동동

    -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혼선
    채용 미루고, 구조조정 중단도

    작년 말 한국전력공사는 기획재정부로부터 성과연봉제 우수기관으로 지정돼 전 직원이 기본 월봉의 최대 20%까지 인센티브를 받았다. 한전 경영진은 여세를 몰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성과연봉제를 시행하려 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충분한 노사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성과연봉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혼란에 빠졌다. 한전 관계자는 "어렵게 노조를 설득해서 성과연봉제 합의를 이뤘는데 제대로 시행도 못 해보고 중단될 수도 있게 돼 씁쓸하다"고 말했다.

    작년에 금융공기업 중 처음으로 성과연봉제를 노사가 합의해 주목받은 예금보험공사에서는 올해 새로운 노조 집행부가 성과연봉제 폐기를 주장하면서 혼란을 겪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 4급 이상 직원 전원에 대해 차등화된 성과급을 지급하려고 업무평가를 진행하고 있지만, 문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발언 이후 시행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직원들이 동요하고 있다. 예보 관계자는 "성과연봉제가 어떻게 되느냐며 직원들끼리 묻고 있지만 누구도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기업 성과연봉제 좌초 위기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공공 부문 정책을 뒤집고 정반대 정책 방향을 제시하면서 현장에서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기관의 과도한 복리 후생 혜택을 줄이고, 부채 비율을 낮추도록 채찍질을 가했다.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의 공공 부문 개혁을 박근혜 정부는 국정 개혁 성과로 내세웠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반대로 성과연봉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천명하는 등 고용 확대와 노사 간 화합을 강조하고 있다. 정책 방향이 완전히 뒤바뀌자 공공기관들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 현황 그래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우선 성과연봉제를 둘러싸고 혼란에 빠졌다. 성과연봉제는 연공서열에 따라 모두가 똑같은 비율로 월급을 올려주는 게 아니라 능력에 따라 연봉에 차등을 두는 제도다. 대체로 전체 연봉의 30%가량을 차지하는 성과급 액수를 최고등급과 최저등급 간에 두 배 차이가 나도록 설계하고 있다. 평균 연봉 8000만원을 받는 동기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받으면 8800만원을, 가장 적게 받으면 7200만원을 받는 식이다.

    문 대통령이 올해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이던 성과연봉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한다고 밝히자 성과연봉제에 동의하지 않았던 기관들의 노조는 물론 성과연봉제를 합의해준 노조들도 성과연봉제를 무력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성과연봉제 적용 대상인 119곳 중 노조의 반대로 노사 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기관이 48곳이고, 그중 30여 곳은 법원에 무효 소송을 내며 반대하는 중이다.

    현재 공공기관 경영진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원점 재검토'라는 모호한 원칙만 있을 뿐 아직 청와대에서 구체적 지침이 하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기재부는 노조들의 의견을 반영해 성과연봉제를 보완해서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재부의 한 간부는 "민간 기업은 물론 공무원까지도 성과연봉제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의 직장(공공기관)'에 다니는 사람들의 업무 능력을 아예 평가하지 않는다는 건 난센스"라며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경제부총리가 임명돼야 지시를 받아 방향을 잡을 수 있는데 지금은 검토만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공기업 인사·채용·구조조정 계획도 혼란

    인사나 채용에서도 혼선을 빚고 있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 A사는 이달 중에 실시하려던 신입 사원 채용 공고를 연기했다. A사 관계자는 "새 정부의 방침이 나오면 그에 맞춰 채용 인원 등을 조정하려고 미룰 수밖에 없게 됐다"고 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구체적 지침이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다. 금융 공기업의 한 간부는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하겠지만 비정규직을 아예 제로(0)로 만든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어떻게 하라는 건지 빨리 구체적인 지침을 내려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일부 에너지 공기업은 지난해 만든 구조조정 이행 계획을 최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가 에너지 공기업 인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기능 조정을 주문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이를 번복할 가능성이 있어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이창원 한성대 교수는 "성과연봉제를 비롯해 지금까지 추진한 공공 부문 정책의 효과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결과를 공개한 이후에 새 정부가 추진할 정책 과제를 고르는 단계를 밟아야 혼란과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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