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해운업체 머스크가 비용 절감을 위해 마이크로소프트(MS), IBM 등 글로벌 정보통신(IT)업체들과 잇따라 손을 잡고 있다. 지난 2011년 1만8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20척을 일시에 발주하면서 극초대형 선박 시대를 열었던 머스크라인이 또 다시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P묄러-머스크그룹은 지난 4월 28일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해 MS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머스크는 그룹 내 운송‧물류 사업 부문을 디지털 기반으로 전환하고, 이에 필요한 앱 스토어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MS의 클라우드 컴퓨팅 플랫폼 ‘애저(Azure)’를 활용하기로 했다.
머스크는 애저를 이용할 경우 사업에 필요한 솔루션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머스크의 공급망 솔루션 사업부인 담코(Damco)는 이미 애저를 기반으로 관세업무를 처리하고, 각종 문서를 디지털화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 중이다.
이브라힘 괵첸 머스크 최고디지털관리자(CDO)는 “MS 애저는 머스크 디지털 전략의 초석(cornerstone)으로, 운송‧물류사업 전반에 걸친 공통 플랫폼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했다. 머스크와 MS는 이번 협력을 통해 매년 수천만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머스크는 MS 뿐 아니라 IBM과의 협력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머스크는 IBM과 무역‧물류 산업에 응용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IBM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1000만개가 넘는 컨테이너의 전체 이동 경로를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을 올해 안에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블록체인은 2008년 암호화된 전자 결제 시스템 비트코인(bitcoin)에서 시작돼 금융 거래, 핀테크 분야 뿐 아니라 유통 물류 등 모든 분야로 확대되고 있는 기술이다. ‘공공거래 장부’, ‘분산형 거래기록시스템’으로 불리는 블록체인 방식은 공급 과정에서 제품 이동이나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분산된 데이터베이스에 자동 기록‧보관되기 때문에 위‧변조 방지나 사기거래를 봉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거래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머스크는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면 문서의 부정사용을 줄이고, 불필요한 운송 프로세스를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은수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국제물류연구실장은 “블록체인 기술은 상품 생산자, 포워더(운송중개인), 해상운송인, 부두운영업체, 수화인은 물론 관세청, 항만당국 등 모든 컨테이너 국제 운송 관계자들이 공유된 장부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시성(visibility)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가시성은 물류업계에서 화주 등이 원료 공급지부터 최종 목적지까지 연결돼 있는 공급망에서 화물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을 의미한다. 가시성 확보는 경쟁력과 직결된다.
물류 블록체인 기술이 개발되면 기존보다 적은 비용으로 더 빠르게 컨테이너 이동 경로를 추적할 수 있게 된다. IBM은 세계 해운‧물류업계에 블록체인 기술이 전면 도입될 경우 연간 270억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해운업계는 머스크가 비용 절감을 위해 MS, IBM 등 글로벌 IT업체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에는 선박을 대형화해 한 번에 많은 화물을 실어 나르는 방식으로 비용을 아꼈지만, 이로 인해 선박 공급 과잉 현상이 발생해 적자를 기록하게 되자 비용 절감 전략을 바꿨다는 분석이다.
머스크는 지난달 열린 암참(AMCHAM) 토론회에서도 해운의 디지털화를 강조했다. 팀 스미스 머스크 북아시아 대표는 “디지털화를 이용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효율도 높일 수 있다”며 “블록체인 등 디지털 혁신을 통해 화주들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편 머스크는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분류된다. 지난 2011년 극초대형 선박을 일시에 발주해 경쟁사들을 따돌렸다.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 국내 주요 해운사들 또한 머스크의 이 같은 공격 경영에 휘말려 최근 수년간 고전해왔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해운업은 단순히 화물만 나르는 산업이 아니며,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하이테크 산업으로 봐야 한다”며 “현대상선 또한 2013년부터 정보전략팀을 신설해 비용 절감을 위한 IT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