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스티브 잡스式 광적인 열정을 '지속 가능한 창의성'으로 만든 中道

  •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 입력 : 2017.05.13 08:00

    [Foreign Book Review] 'To Pixar and Beyond'

    무조건 좋아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인 픽사

    얼마 전 어느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자신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직원들이 한편으로 재미있게 일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철저히 일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리더의 로망일 것이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적어도 미국의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영화사 픽사(PIXAR)에서는 가능했던 일이다. 신간 '픽사 그리고 그 너머: 스티브 잡스와의 비범한 여정'의 저자이며 픽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로런스 레비는 픽사의 성공 비결을 '질서와 자유 사이의 균형'이라고 요약한다. 여기서 질서란 조직으로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규율, 수익에 대한 압박, 효율성의 요구를 말한다. 반면 자유는 새로운 아이디어, 창의성, 자발성을 의미한다.

    [Foreign Book Review] 'To Pixar and Beyond'
    블룸버그
    실리콘밸리 방식으로 할리우드서 성공

    1994년, 저자가 스티브 잡스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픽사에 처음 합류했을 때 픽사는 자유와 창의성이 넘치는 조직이었다. 남이 뭐라든, 출세에 보탬이 되든 말든, 무조건 좋아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픽사의 어두운 면도 발견했다. 그것은 질서의 부재였다. 픽사는 매년 적자를 내면서 잡스의 개인 자금에 전적으로 의존했고, 뚜렷한 전략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경영되고 있었다. 마치 아사 직전의 예술가와 같았다.

    로런스 레비의 저서
    로런스 레비의 저서 ‘To Pixar and Beyond’
    이 책은 저자가 잡스와 함께 픽사에 질서를 도입하는 과정을 자세히 다룬다. 영화에 특수 효과를 내는 컴퓨터를 만들던 회사가 애니메이션 영화사로 방향을 대전환하고, 기업 공개를 하고, 디즈니와 협력하면서 지속 가능한 조직으로 틀을 잡아가는 아슬아슬한 과정이 자세히 다뤄진다. 저자는 결국 전략과 질서보다는 사람과 자유에 방점을 찍는다.

    무엇 한 가지에 미치는 것을 한자로 '벽(癖)'이라고 한다. 픽사 직원들은 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벽을 가진 이들은 보상이나 남의 평가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진정성과 몰입으로 일한다. 그들은 또한 광적으로 높은 기대 수준을 갖고 있다. 픽사에선 품질에 관한 한 어떤 양보도 없고, 서로 무자비할 정도로 솔직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다. 픽사가 성공한 것은 할리우드 방식보다 실리콘밸리 방식에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기존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위험을 기피하고, 창의적 비전보다 예산, 데드라인, 통제에 의존했다. 그러나 픽사는 "창의적 탁월함이란 실패의 벼랑 끝에서 안전이라는 유혹과 맞싸우며 추는 춤"이라고 생각하는 조직이었다.

    배고픈 짐승과 못난이 아기

    픽사의 창립 멤버이며 현 회장인 에드 캣멀은 픽사에 대한 다른 책 '창의성을 지휘하라(Creativity Inc.)'를 썼는데, 그가 생각하는 픽사의 성공 비결 역시 균형이다. 그는 '배고픈 짐승'과 '못난이 아기'라는 비유를 든다. 짐승은 조직으로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규율을 말하며, 아기는 불완전한 시제품을 말한다. 캣멀 회장은 이렇게 썼다. "짐승은 대식가이지만 귀중한 동기부여자다. 아기는 너무도 순수하고 잠재력이 많지만, 예측 불가능하고 많은 시간을 들여 보살펴야 한다. 기업은 짐승을 먹여 살려야 할 필요성, 아기를 키워야 할 필요성을 조화롭게 충족시켜야 한다."

    픽사를 떠난 뒤 동양 사상에 심취한 이 책의 저자 레비는 불교의 중도(中道) 사상으로 픽사의 성공 요인을 해석한다. "중도는 질서와 자유, 효율성과 예술성, 관료주의와 영혼 사이에서 벌이는 춤판이다." 지속 가능한 창의성을 고민하는 모든 조직이 음미해야 할 말이다.
    • 기사보내기
    • facebook
    • twitter
    • google
    • e-mail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